소설리스트

학사전생-215화 (215/275)

제215화

스륵-

“부, 부르셨습니까?”

송운의 방에 은밀하게 도착한 이는 다름 아닌 대오였다. 은신에서 가장 뛰어나다 보니, 가장 바쁜 것도 그였다.

최근 들어 더욱 바빠진 그는 정보 수집을 위해 사방을 돌고 돌다 송운의 부름으로 급히 발을 돌려 도착한 것이었다.

‘그사이 또 성장하셨구나. 역시 훗날 신무라는 별호를 얻기에 아깝지 않은 실력이야. 한번 직접 대련으로 겪어 보고 싶지만…….’

송운이 안타까움에 입맛을 다셨다.

날이 가면 갈수록 깊이가 더해지는 그의 은신술은 송운을 매번 놀라게 했다. 송운 스스로도 무공이 더 성장하지 않았더라면 알지 못했을 것이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마 대오각성하게 된다면 아무리 송운 스스로라 한들 찾지 못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괜스레 뿌듯함도 들었다.

‘하나 이럴 때가 아니야.’

원래대로라면 대오와 함께 대련도 하고 깊게 대화도 나누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라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 잘 알기에 송운은 말을 아꼈다.

“오셨습니까? 앉으십시오.”

송운은 다급하게 온 듯 보이는 대오를 먼저 의자에 앉혔다. 평소라면 직접 차라도 끓여 내왔을 테지만 전시 상황이다 보니, 이조차도 사치였다. 대신 간단히 찻잎 말린 것을 끓고 있던 뜨거운 물에 부어 내왔다.

“상황은 좀 어떻습니까?”

반대편에 앉은 송운이 물어왔고, 대오가 곧바로 입에서 술술 정보를 꺼내었다.

“아, 아직까지 북경은 안전합니다. 주군의 부모님과 동생 두 분을 비롯해, 주군의 장인어른께서도 모두 걱정하지 말라 전해 달라 하셨습니다. 몸조심하라는 말씀까지요. 그, 그리고 안휘성에 계신 회원장가도 얼마 전 작은 전투가 있었으나 큰 피해를 입지는 않으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다시 언제든 출격(出擊)이 가능하도록 재정비 중이라고 하시니 걱정 말라고 하셨습니다.”

대오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송운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까지도 북경이 멀쩡하다면 황궁은 굳이 건들지 않겠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부디 그 생각이 맞길 바라며 송운이 고개를 주억였다.

“다들 아직까진 큰 탈이 없다니 다행입니다.”

그때 보고가 끝난 듯 보이던 대오가 갑자기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그, 그리고 매 각주께서 이것을 전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그가 품에서 꺼낸 것은 다름 아닌 작은 사각 목재 함이었다.

매영령과 사각 목재 함.

왠지 낯이 익다.

‘지난번 그것과 같은 것인가?’

끼익-

함을 받아 열어 보니, 역시나 송운의 생각이 맞았다.

작은 환 두 알이 고이 자신의 자태를 뽐내며 약재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그때, 송운이 환약 옆에 작은 서신이 하나 놓여 있는 것을 발견하고 펼쳐 들었다.

송 대협. 화령각의 작은 성의입니다.

저희 화령각 역시 송 대협의 언질 덕분에 미리 전쟁에 대비해 만반의 준비 중입니다. 덕분에 큰 은혜를 입은 것이니 사양 마시고, 전쟁에서 큰 내상 입을 때를 대비해 늘 몸에 지니고 계시다, 혹여. 아주 혹여라도 다치시거든 꼭 복용하세요.

부디 환약은 사용할 일이 없길 바랍니다.

–매영령-

서신을 다 읽은 송운이 제법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대오를 바라봤다.

이미 한 번 먹어 본 적이 있기에 잘 안다. 상처 입고 거칠게 날뛰는 내력을 단시간 내에 진정시켜 주는 환이다.

결코 값싸진 않을 터.

이러한 것을 과연 또 받아도 되는 것일까?

잠시 고민이 들었으나 도로 돌려보낸다고 한들 매영령의 성정상 분명 다시 돌아올 것이다.

환약이 원주인에게 되돌아가지 못할 걸 알면서도 송운이 대오를 바라보자, 그 마음을 읽었는지 대오가 짧은 목을 좌우로 휙휙 내저었다.

“저, 저희 천조회까지 찾아오셔서 절대로 반환은 받지 않으시겠다며 약조까지 받아 가셨다 합니다. 그냥 넣어 두시는 게 어떠하시겠습니까?”

“음…… 또 신세를 지겠군요.”

송운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사각 목재 함에 있는 환을 꺼내 들어 품 안에 고이 집어넣었다. 굳이 송운이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쓰게 될지도 모르는 약이다.

부담스러운 마음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있어서 나쁠 건 없을 터다.

“반드시 요긴하게 사용하겠다고 전해 주십시오.”

그제야 대오가 고개를 주억였다.

탁탁탁!

그때, 누군가 송운의 방문 앞에 도착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스륵.

대오가 사라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천조회가 굳이 무림맹에 숨겨야 할 존재는 아니었으나, 이미 누군가의 눈에 띄지 않는 것이 몸에 밴 탓이리라.

똑똑-

송운의 방에 다가온 이가 문을 두드리자 송운은 찻잔을 치우며 조용히 말했다.

“들어오세요.”

* * *

대오와의 짧은 만남을 한 뒤, 송운은 여러 가지 고민에 빠졌다.

그중 하나는 바로 무공이었다.

‘지금보다 더 강해져야 해.’

아직까진 비록 북경이 안전지대에 속해 있다고는 하나, 언제 어떻게 뒤바뀔지 모르는 판국이다. 마냥 안심하고 있기에는 혈교가 너무도 강했다.

더불어 굳이 북경까지 가지 않아도 당장 눈앞에 놓인 혈교는 조만간 그들의 앞을 막는 이들을 모두 제거하고 결국 무림맹이 있는 섬서성까지 밀고 들어올 것이다.

이는 세 살짜리 코흘리개도 알고 있는, 명명백백한 사실이었다.

‘각개 전투로 사방을 휘젓고 다니던 놈들이 다시 사라졌다. 그리고 그 행적은 점점 광서성과 광동성으로 향하고 있다라…….’

해남도 광서성과 광동성을 차지하는 데 칠 주야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못해도 달포는 넘지 않을 것임은 분명하다.

그 안에, 지금의 벽을 넘어서야 한다.

스스로의 무공에 자신이 없는 것이 아니다. 단지 겪어 본 바로는 혈교가 결코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시공검이 있다고 한들, 선천지기를 최대한 끌어 올려 사용한다고 해도 최대 네 번이 한계일 것이다. 돌아오는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방법을 터득했지만, 아예 없는 것이 아니다. 범위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피해는 크게 돌아온다. 그것조차도 두 번 사용할 때마다 매영령이 준 환을 한 개씩 먹고, 버틴다는 가정하다.

‘그 이상은 과연 내 육체가 버텨 줄까?’

송운은 고개를 내저었다.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그 방법조차도 송운이 몸을 최대한 억지로 욱여넣는 것뿐이니 그 뒤는 정말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올 것이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정신력도 정신력이지만 아마 송운의 천의선천기공으로 인해 끊임없이 맑은 기운이 정신과 몸에 깃들은 것도 한몫했을 것이란 추측이다.

그만큼 위험천만한 무공이다.

익힐 당시에도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겼는가?

어차피 그곳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면 살지도 못할 상황이었기에 초인적인 힘으로 이룬 경지가 아니었던가.

‘백형이 없었다면 이미 죽고도 남았을 목숨이지.’

다시 생각해 보니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아난다.

“한 단계만 더. 현경의 벽만 깰 수 있다면…….”

또다시 소중한 이들을 잃고 싶지 않다.

이번 생에서만큼은 그들을 무슨 일이 있어도 행복하게 만들겠다고, 지켜 주겠다고 맹세했다.

결국 그 길의 해답은 바로 자신이 강해지는 것에 있다.

‘그래. 일단 해 보자. 되든 안 되든 부딪혀 봐야 알겠지.’

선천 기폭도, 질풍신공도 모두 송운이 해낸 것이다.

초식을 버리고 하나가 되면서 질풍신공도 더 높은 무공이 되었다.

그때 마침 하나의 생각이 송운의 뇌리를 스쳤다.

‘아! 설마, 시공검을 조금 변형해서 사용하면? 가능한 것일까?’

모든 무공은 변형이 가능하다.

특히나 초식을 초월한 송운의 경우는 더더욱 그것이 쉽게 눈에 보인다. 그렇게 만들어 낸 것 중 하나가 이번 운양상단의 표사들에게 준 무공이었다.

결국 완성해 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송운이 문득 자신의 손에 들린 검을 내려다보았다.

웅- 웅-

그러자 제법 오랫동안 함께 해 온 탓에, 이제는 완전히 손에 익은 환성이 송운에 답해 주듯 몸을 한 번 크게 떨었다.

“그래. 한번 해 보자. 까짓것 부딪히면 뭔가 답이 나오겠지.”

송운이 크게 숨을 들이마신 뒤 숨을 내뱉으며, 환성을 천천히 하늘에서 왼쪽 발 아래로 베어 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아주 천천히, 마치 지렁이가 기어가듯 느릿한 속도였다.

마침내 환성의 끝이 땅바닥을 향하고 나니, 이번엔 다시 오른쪽 발 아래부터 반대편 어깻죽지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후우.”

이번에도 역시 호흡과 함께 매우 느린 속도였다.

아주 단순하면서도, 간단한 동작임에도 이를 열 번쯤 반복했을 때 송운은 온몸이 저릿저릿해 옴을 느꼈다.

시공검을 익히기 전까지만 해도 송운이 휘두르는 검의 속도는 매우 빨랐다. 하나, 당금 검의 속도는 그게 다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계속해서 반복할수록 오히려 천천히 가로지를수록 숨은 더 가빠 오고 검은 더 묵직해지는 반면 몸은 가벼워진다.

뚝. 뚝.

어느새 송운의 이마에 굵직한 땀방울이 맺혀 바닥에 떨어졌다.

단순히 더위 때문이 아니었다.

그만큼 송운은 지금 검과 자신의 몸에 모든 집중을 담고 있는 것이다. 무겁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니 환성이 끝없이 무거워지는 것과도 같은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시공검과는 확실히 달라. 이건 그냥 검과 내 몸이 하나가 되는 느낌이군.’

그렇게 몇 번을 더 반복했을까.

빈 허공에 그려 내던 검로(劍路)가 송운의 두 눈에 정확히 보였다.

‘중(重)과 경(輕).’

그러자 한없이 무겁고 느리던 검이,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빠르게 그어지면서 가벼워졌다. 검과 몸이 하나가 되어 함께 움직이는 것과도 같은 느낌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신검합일(身劍合一).

만일 몸과 검이 하나가 된다면 이와 같을까?

팟-!

“……아.”

송운이 깊고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송운의 온몸을 전율시킨 것이다.

‘그간 나는 왜 만물을 자연이라고만 생각했던 것인가?’

결국, 쇠인 검 역시도 당연하게도 자연에서 난 것이며, 자연의 일부다.

만물인 것이다.

조화경에 오르면서 자연과 몸을 하나로 이루었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검은 별개로 보았으니 하나가 되지 못하였던 것이다.

‘참으로 바보 같았구나!’

아주 찰나의 순간 느껴지던 기운이 사라졌지만, 방금 전의 감촉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이전까지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분명 검을 잡고 있음에도 검을 들고 있는 게 아니라 한 몸이라고 느껴진 것이다.

검이라는 것이 본디 익숙하지 않았던 송운이다.

초식을 버리고 선이 합쳐짐과 동시에 무공이 합쳐졌다. 검이 무기라는 개념을 벗어던지고 마치 한 몸과도 같이 느껴진 이것은 분명 잘못 느낀 게 아닐 것이다.

이 끈을 다시 잡아내면, 분명 질풍신공이 한 단계 더 나아갈 터.

그렇다면 굳이 시공검이 아니더라도 더 높은 경지의 검을 다룰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송운을 벅차게 만들었다.

“다시 집중해 보자.”

예상하지 못했던 수확에 송운의 안면이 활짝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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