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전생-210화 (210/275)

제210화

고작 스무 명밖에 되지 않는 이혼혈대는 홍청염을 중심으로 각기 초절정 고수들로만 이루어져 적진을 치고 빠지는 별동대(別動隊)다.

해남도에서 따로 빠져나온 그들은, 광서성과 광동성 일대를 마구 휘저었다.

그렇게 파고들어 도착한 곳에는 모우량을 비롯한 수많은 황군과 무림맹의 무인들이 모여 있었다.

“와아아아-!”

남저명의 행동에 정신을 가까스로 차린 모우량이 외친 소리에 모두가 우렁찬 소리를 내지르며 재빠르게 움직였다.

척척척-!

황군들은 그간 받아 온 훈련대로 궁병이 뒤에 섰고 그 앞을 창을 든 창병들이 막아섰다.

그리고 그 앞을 방패와 칼을 든 이들이 막아섰다.

비록 수백이 당했다고 하나 남은 사천 명이 넘는 황군들이 거대한 진을 치니, 어쩐지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이 보였다.

“장군, 생각보다 놈들의 숫자가 많지 않습니다. 조금만 버텨 내면 후방에 있는 지원군이 도착할 것입니다.”

노중우가 제법 침착한 모습으로 모우량에게 말하자, 혼돈에 휩싸였던 모우량의 눈빛은 곧 자랑스러움으로 돌변했다.

당금이야말로 장군이 전쟁터에서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를 해야 할 때였다.

모우량이 내기를 목에 모아 허공으로 퍼지게 외쳤다.

“우리는 자랑스러운 황제 폐하의 군사들이다! 모두 진열을 유지하고, 적을 응징하라!”

“와아아아-!”

“황제 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더불어 무림맹의 무인들 역시도 빠르게 자리를 잡기 시작하니, 더더욱 그들의 마음속에는 전의가 싹텄다.

그 목소리에 황군의 사기가 바짝 오르기 시작했고, 주변에서 무참히 살육당하고 있던 백성들의 눈빛에도 희망의 불꽃이 반짝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말이다.

“대주, 어찌할까요.”

한쪽 눈이 없는 이가 명을 내려 달라는 듯 홍청염을 쳐다봤다.

홍청염이 웃으며 답했다.

“저놈들이라고 별반 다를 게 있을까? 적당히 반만 남기고 지금까지 하던 대로 네놈들 마음대로 해라.”

“예. 알겠습니다, 대주.”

피의 축제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 * *

황군과 무림맹의 패배 요인은 명백했다.

터무니없이 적은 적의 숫자와 강시가 없다는 사실이 무림맹과 황군의 긴장감을 무너뜨렸다.

즉, 적을 우습게 본 것이 실책이었다.

반면 이혼혈대는 누구보다 빨랐고, 극악무도했다.

강시들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동력과 파괴력은 가히 가공할 만했다.

무엇보다 그들이 훑고 지나간 자리는 차마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잔혹했다.

방패는 부숴 버리고 칼은 휘어 버렸으며, 무수히 날아드는 화살비 속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았다. 오히려 적을 향해 날아가던 화살들은 다시 황군에게 돌아가 그들의 심장과 머리, 몸통을 꿰뚫었다.

“끄아아악!”

“저, 저리 가! 컥……!”

카앙-!

여기저기서 피어오르는 불구덩이에서 허우적대며, 비명을 외치는 이들의 피와 살을 뜯고 즐겼다.

일당백이라는 말이 우습지 않을 만큼 이혼혈대는 황군과 무림맹의 무인들을 몰아붙였다.

오랜 세월 동안 피에 굶주린 그들은 마치 먹잇감 앞의 맹수와도 같았고, 광기 서린 눈빛을 마주치는 순간 제법 높은 무위에 이른 무인들마저도 오금이 저려 올 만큼 살기가 넘쳐흘렀다.

피를 숭상하는 광신도들다운 모습이었다.

사기가 꺾이는 것은 순식간이었고, 대열이 무너지는 것 역시 눈 깜짝할 새였다.

마치 지옥이 있다면 이와 같을까?

챙그랑-

“아아…… 어머니…….”

마치 악귀가 현세에 재림한 것 같은 모습에 싸울 의지조차 잃은 채, 멍한 표정으로 병장기를 손에서 떨구며 죽음을 받아들인 이들도 있었다.

“뭣들 하느냐! 어서 정신을……!”

푹-!

울컥.

그 모습에 부장이 황급히 소리를 내질렀으나, 바로 코앞에서 목을 꿰뚫린 병사와 같은 꼴이 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는 핏물을 쏟아 낸 채 외마디 비명 한번 내질러 보지 못하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뚝- 뚝-

꿀꺽꿀꺽.

그러자 손으로 우악스럽게 목을 꿰뚫은 이가 목에서 흘러나온 검붉은 핏물을 한 방울이라도 흘릴까 조심스럽게 받아 마시며, 씩 웃었다.

부장의 처참한 최후를 바라보던 병사가 그 소름 돋는 행동에 온몸을 떨며 살기 위해 검을 들고 달려들었지만, 곧 그도 같은 신세로 전락(轉落)하고 말았다.

“이…… 이 악마(惡魔)……!”

서걱.

몸이 반으로 갈라지며, 핏물이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인간의 피는 역시 맛있군.”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피로 범벅을 한 채 손으로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 내는 이혼혈대의 모습은 그야말로 악귀와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그나마 버티고 끝까지 남아 있는 것은 무위가 제법 높은 무인들이었으나, 그들조차 오래 버티진 못했다.

“네 이놈들! 네놈들이 이러고도 무사할 것이라 보느냐?!”

“그건 우리가 알 바 아니다. 단지 교주님의 명을 받들 뿐.”

하늘을 붉게 물들이던 해조차 완전히 저 먼 구름 사이로 숨을 무렵.

순식간에 무림맹과 황군의 규모가 삼분지 일로 줄어들었다.

그나마 남은 이들도 중경상을 몸에 잔뜩 입었다.

그 모습을 보고 아연실색(啞然失色)한 남은 이들의 두 눈에 영영 몰랐으면 좋았을 인영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설마……?”

사람의 형상을 했으나 몸이 굽혀지지 않고 사람처럼 걷지 못하는 이들.

“강시…… 인가.”

남저명의 입에서 튀어나온 그 단어는 마지막 남은 사기마저 모조리 짓뭉개 버렸다.

“……퇴각하시지요.”

“이곳엔 더 이상 답은 없습니다. 살아남는 게 우선입니다, 남 가주!”

속으로 허탈하게 한숨을 들이켠 남저명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더 이상 싸울 수 있는 자가 남아 있는가?

속으로 되물었지만, 답은 ‘아니다’였다.

남저명이 깊게 잠긴 목소리로 외쳤다.

“퇴각한다! 살아남은 자들은 모두 퇴각하라!”

“퇴각하라!”

무림맹과 황군의 완벽한 패배였다.

* * *

광서성과 광동성을 지휘해야 할 모우량이 지난 밤 습격으로 처참하게 죽었다.

죽은 건 황군과 무인들뿐만이 아니었다.

그 자리에 있던 수천 명에 달하는 무고한 사람들이 죽었다.

마치 인간의 씨앗을 말려 버리겠다는 듯 말이다.

해남파 이후로 가장 큰 혈교와의 전투였다.

발 빠른 호사가들은 이번 전투 결과를 중원으로 퍼뜨리기 바빴다.

이 패배에 대해 운남성을 비롯해 귀주성, 호남성, 강서성, 그리고 복건성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도 그럴 것이, 광동성과 광서성이 뚫리면 맞닿아 있는 곳이 그들이기 때문이었다.

간신히 그 지옥에서 살아남아 도망간 이들은 남저명을 비롯한 몇몇 수뇌부들뿐이었다.

완벽한 탈출도 아니었다.

이혼혈대는 충분히 쫓아가 죽일 수 있었음에도 일부러 놓아준 것임을 똑똑히 보여 주었다.

그 지옥에서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고 탈출한 이들은 가족과 전우를 잃었다는 사실에 슬퍼하고 통곡할 시간도, 힘도 없었다.

이 소식은 중원의 무인들과 백성들을 더욱더 절망으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비록 가장 약한 두 곳이 뚫린 것이지만, 단 스무 명에게 이만큼이나 밀렸다는 사실은 듣고도 믿기지 않았다.

중원의 성들은 더욱 굳게 성문을 걸어 잠갔고, 백성들도 모두 침묵을 지키며 고요히 가라앉았다.

평소라면 생각할 수 없는 속도로 닿은 소식은 황궁을 다시 한번 왈칵 뒤집어 놓았다.

“폐하, 이는 정녕 큰 악재이옵니다. 놈들이 황궁까지 쳐들어오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없지 않습니까? 지금보다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되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폐하, 이미 국고의 절반을 내주었습니다. 무림맹에서 상단들의 힘까지 빌리고 있다고 들었는데, 나라의 재산을 여기서 더 축내선 안 되옵니다!”

“……그만! 그래. 해서 대체 어디까지 피해를 입은 것이라 하는가?”

이런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서로를 헐뜯기 바쁜 신하들의 모습에 넌덜머리가 난다는 듯 황제가 최대한 노기를 억누른 채 묻자, 조용히 듣고 있던 송악이 입을 열었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아직 완벽하게 뚫린 것은 아니지만 광동성은 칠성암(七星岩)과 정호산(鼎湖山), 그리고 남곤산(南昆山) 일전까지 밀렸으며, 광서성은 의주현(宜州縣)과 전양현(田陽縣), 계림현(桂林縣)까지 모두 적도들의 손에 떨어진 상황이라 합니다.”

송악의 말에 결국 황제가 지끈거리던 머리를 부여잡았다.

“어찌하여 이리도 쉽게 무너질 수 있단 말인가?”

“…….”

황제의 질의에 여태 신나게 입을 떠벌리던 이들 모두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열지 못했다.

그때, 조용히 두 주먹을 꽉 쥐고 있던 평목단이 바닥에 고개를 처박았다.

쿵!

“모두 소신의 잘못이옵니다, 폐하! 무능한 소신을 벌하소서!”

평목단은 당장 전장에 나서, 선봉을 서고 싶었지만 황궁 최고의 검인만큼 그에게는 황제의 곁을 지키는 의무가 있었다.

하물며 하나뿐인 딸이 칼부림이 오가는 전쟁터에서 무림맹과 함께하고 있으니 속이 얼마나 타오를까.

그런 평목단의 마음을 아는 것인지, 황제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다, 아니야. 무림맹의 무인들조차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처지에 내 어찌 평 우도독을 탓하겠는가? 당장 중원의 모든 장군에게 이르라. 이미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온 백성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다. 최대한 헛소문이 돌지 못하게 막고, 더욱 굳게 성문을 걸어 잠가 유시(酉時) 이후로는 그 누구도 통행하지 못하게 하라.”

황제의 목소리는 근엄했지만, 목소리는 낮고 깊게 침체되어 있었다.

“예, 폐하. 명을 받잡겠나이다.”

“명 받잡겠나이다. 폐하.”

* * *

타닥- 딱!

생명이라고는 허공에서 시체 더미 위를 붕붕 날고 있는 까마귀들이 전부인 잠계현(岑溪縣).

불에 타다 만 잿더미들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질렀다.

곳곳에 기괴한 모습으로 널브러져 있는 시체들이 어제의 끔찍했던 모습을 대변하고 있는 듯했다.

그 위를 검은 무복을 입은 인영들이 걸어가고 있을 때였다.

바스락.

“저…… 좀 사…… 살려…… 끄륵.”

간신히 숨만 쌕쌕거리며 내쉬던 한 병사가 목울대로 울컥울컥 차오르는 핏물을 삼키며 미약한 손길을 내밀었다.

하나, 병사는 곧 그 작은 생명의 불꽃마저도 잇지 못했다.

콰직!

촤악-

순식간에 병사의 머리통이 박살 나며 그 안에 들었던 뇌수와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그러자 병사의 꿈틀대던 마지막 손가락도 움직임을 멈추었다.

누가 보아도 잔혹하지만, 무표정하게 병사를 밟아 죽인 사내는 자신의 몸에 묻은 피를 닦아 내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원래 살려 줄 생각은 없었지만, 기왕 보낼 거라면 한 방에 보내 주는 것이 더 깔끔하다고 여긴 탓이다.

정말 끈질기게도 간신히 숨이 붙어 있었을 뿐, 이미 병사의 몸은 상하체가 반쯤 분리된 상태였다.

툭툭.

드디어 옷에 묻은 피와 뇌수를 만족할 만큼 털어 냈는지, 병사에게 자비 아닌 자비를 내린 사내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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