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전생-208화 (208/275)

제208화

제갈염의 방 안.

그곳엔 송운과 제갈염이 자리하고 있었다.

둘의 얼굴에는 심각한 표정이 자리 잡은 채였다.

“부디 통해야 할 텐데…… 걱정이군.”

“그 사이에 밀정이 있다면 통하지 않겠습니까?”

그날 회의에서 밝힌 진법은 사실 완벽하지 않았다.

아직까지도 미완의 진법일 뿐이다.

그저 혈교와의 전쟁에서 엄청난 충격을 받았던 당대 제갈세가의 선대들이 또다시 그들이 올지도 모르는 공포감에 대비책으로 만들려 한 것이다.

하나 세월은 흘러갔고, 더 이상 혈교에 대한 위협이 사라지자 투자되는 예산과 인력이 많다 여겨진 탓에 결국 그 끝을 보지 못하고 멈춰진 비운의 진법이었다.

그러한 것을 회의에 노출시킨 연유는, 오롯이 밀정의 단초를 잡기 위해서였다.

혈교와 연이 맞닿아 있다면 한편인 그들에게도 필히 정보를 넘기거나 흘릴 것이다. 그리된다면 강시의 출현을 늦추거나, 혹은 그들이 조심스럽게 내세울지도 몰랐다.

제갈세가의 진법 자체의 위용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으니 의심하는 이들은 극히 드물 것이다.

동시에 이 미끼를 무는 순간, 수십 문파와 세가들 중에서 순식간에 삼분지 일이라는 확률로 의심의 폭을 확 좁힐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

세 명 중 두 명이 맹주의 편에 섰던 문파들이다.

되도록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이면서도 하루빨리 밀정이 밝혀지기를 바라고 있었다.

‘이 무슨 모순적인 발상이란 말인가. 허어…….’

하나 이런 둘의 걱정을 증폭시키는 것은 다른 데에 있었다.

“한데 총군사님. 진법을 과연 완성시킬 수 있을까요?”

“으음…….”

잠시 마시던 찻잔을 손에서 이리저리 굴리던 제갈염이 입을 열었다.

“확실하진 않네. 하나, 나는 우리 제갈세가를 믿네. 필히 만들어 낼 걸세.”

“당금, 수많은 무인들이 목숨을 내걸고 강시들과 싸우고 있지만, 그리만 된다면 지금보다 훨씬 수월하게 강시를 상대할 수 있을 겁니다.”

“다만 그것은 일반적인 강시들에게 맞춰져 있는 진법이네. 이미 있는 자료를 토대로 만들 수밖에 없기 때문일세. 그건 알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아직까지는 장마도 있었고, 강시들 역시 많이 출몰하지 않았기에 조금 수월했을 테지만, 앞으로 얼마나 더 지속되고 강해질지 모르는 그들을 상대하려면 반드시 필요할 겁니다.”

송운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우리 제갈세가 내에서도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조만간 좋은 소식이 들려올 게야. 너무 걱정 말게.”

그의 말대로 부디 그렇게 되길, 서로 바라고 또 바랐다.

그렇게 전쟁에서의 하루가 또 흘러가고 있었다.

* * *

대체 얼마만일까.

오랜 시간 동안 장마로 인해 어두웠던 하늘에서, 언제 그랬냐는 듯 뜨거운 뙤약볕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벌써 이틀째 이어진 뜨거운 햇살은 이글거리며 물들을 빠르게 허공으로 날려 버리고 있었다.

거기에 운양상단은 물론이고, 황궁의 무인들이 나서서 물을 몰아내니 조금 더 빠르게 원상복구에 돌입하고 있었다.

아무리 혈교라 할지라도, 정세적으로 황제의 손길이 깊숙이 닿아 있는 곳에는 먼저 손을 쓰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덕분에 아직까진 적당히 느슨한 전장의 공기가 이곳을 덮치진 못하였고, 장마가 그친 북경과 하북성은 그야말로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물이 빠지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그간 물에 휩쓸려간 살림살이들을 하나둘씩 다시 건져 내며 정돈해 나갔다.

그러한 상황 속에 운양상단의 연무장에서 누군가가 허공에 검 꽃을 흩날리고 있었다.

“하압!”

타닷!

쌔애액-!

두 개의 쌍검이 연달아서 마치 한 몸을 이루듯 움직였고, 이를 능숙하게 다루고 있는 주인은 바로 비익검의 주인이 된 송하였다.

그녀의 전신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 가고 있었지만,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햇빛에 몸이 절로 움직인 것이다. 물론 쇠붙이 속 죽음의 향을 지독하게 겪어 본 그녀인 만큼, 수련을 게을리할 수 없다는 이유가 가장 컸으리라.

그리고 그런 그녀의 곁에서 두 명의 남자 무인이 서로의 검을 논하고 있었다.

“헉, 헉…….”

바로 황보운룡과 위강이었다.

지난번 사건을 계기로 위강은 더더욱 자신의 시간을 쪼개고 쪼개 무공에 전념해 왔다. 그러던 차에 송하가 돌아오고 황보운룡이 따라 들어온 것이다.

처음 일주일은 송하가 방에서 나올 생각이 없었고, 황보운룡의 실력은 감히 위강이 알지 못했던 터라 홀로 무공에 전념했다.

한데, 그랬던 송하가 방에서 몸을 박차고 일어나 황보운룡과의 대련을 하는 모습을 위강이 목격했다.

정말 우연에 불과했다.

단지 자신의 수련을 하기 위해 나오던 길에, 둘의 대련을 지켜보게 된 것이니 말이다.

위강은 송하가 쌍검을 다루기 시작했다는 사실에 몹시 놀랐으나, 그것 외로도 송하의 실력이 향상됐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아직 무공의 수위는 낮으나 지닌 눈썰미가 워낙 좋았기 때문이다.

그와 동시에 운양상단에 들어왔지만 장막에 쌓여 있던 황보운룡의 실력 역시 엿볼 수 있었다.

실로 놀라운 실력이었다.

마침 황보운룡이 송운과의 연도 닿아 있다는 사실까지 알고 나자, 그 뒤로부턴 위강이 황보운룡을 쫓아다니며 대련을 해 달라며 졸라 댔다.

처음엔 거절을 표하던 황보운룡도 위강의 요구가 재차 이어지자, 차마 신세 지는 처지에 더는 거절할 면목이 없어져 결국 이 상황에 도달한 것이었다.

“여, 역시…… 후욱!”

퍽.

대체 몇 번의 초식이 실패했을까.

당연하게 생각하긴 했지만, 반복되는 농락 아닌 농락에 점점 오기가 들기 시작한 위강이 거칠게 숨을 내뱉었다. 숨을 고르고 다시 한번 황보운룡의 품을 향해 파고들었지만 이번에도 실패였다.

황보운룡이 가뿐하게 뒤로 발을 빼면서 보기 좋게 바닥에 처박힌 위강은 그제야 땅에 엉덩이를 깔고 주저앉았다.

“졌습니다……. 하아, 졌어요.”

옆에서 검에 집중하는 듯 보였던 송하의 눈길이 슬쩍 그곳을 향했다.

‘그러게- 강이, 너는 아직 황보 소협에게 안 된다니까.’

애처롭게 바라보던 송하가 속으로 안타까운 미소를 지었다. 마치 지난날의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안쓰러웠기 때문이다. 더불어, 그녀의 시선은 다시 한번 빠르게 움직였다 제자리로 돌아왔다.

이미 한 번 거절당한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한 그녀지만, 어차피 좀 더 머무르게 된 황보운룡의 모습을 보지 않고 견디는 건 고문과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제대로 고백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으나, 차마 먼저 고백이라는 단어를 꺼내기엔 쑥스러웠다.

그렇게 애석하게 시간만 점점 흐르고 있었다.

땅에 널브러진 위강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후우…… 그나저나, 장마가 거의 걷힌 것 같으니 다시 전쟁이 재개되겠네요. 두 분은 어찌하실 생각이세요?”

멈칫.

위강이 진지하게 물어오자 송하도 휘두르던 검을 멈추었다.

그때, 황보운룡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이번 전쟁에 참여할 것 같습니다.”

“전쟁에 참여하겠다고요?”

속으로 놀랐지만 애써 침착한 목소리로 되물은 송하에게 돌아온 대답은 역시나 ‘그렇다.’였다.

고강한 무공을 지닌 송운과 평서란조차도 위험하다고 말하는 실정이다. 한데 그러한 전쟁에 전면으로 나서겠다니.

무인으로서 당연한 일임에도 걱정되는 마음까진 차마 감추지 못한 그녀가 고개를 축 늘어뜨릴 무렵, 황보운룡의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박혔다.

그 말은 송하의 귀를 번쩍 뜨이게 할 만큼 놀라운 발언이었다.

“그럴 생각입니다만, 다른 곳으로 가진 않을 겁니다. 어차피 갈 곳이 딱히 있는 것도 아니고, 이곳에서 신세를 졌으니 밥값은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 저, 정말이죠?!”

“아, 아가씨?”

순간적으로 기쁨의 탄성을 내지른 송하의 모습에 놀란 위강이 그녀를 불렀으나, 당금 그녀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듯했다. 황보운룡과 앞으로도 함께할 거라는 생각에 마냥 흥분한 모양이었다.

‘이제 곧 헤어져야 할 거라 생각했는데.’

더불어, 송운만큼은 아니지만 황보운룡의 실력이라면 이 난세에 운양상단에게도 큰 힘이 될 것이다.

그런 송하의 반응에 적잖이 당황하는 위강과는 달리, 오히려 황보운룡은 그녀를 귀엽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아…… 설마?’

지금 보니, 송하도 황보운룡도 서로의 거리가 늘 멀지 않게 있었다.

둘이서 멀어질 법하면 다시 가까워지고 너무 가까워지려 하면 다시 살짝 거리가 벌어지긴 하였으나, 결코 서로 척지지는 않았다.

처음 송하가 돌아온 일주일 동안 폐관 수련 아닌 폐관 수련을 할 때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어쩌면 더 빨리 알아챌 수도 있었던 사실이다.

이미 시녀들 사이에서도 조금씩 말이 돌고 있던 참이었지만, 물품 조달에 정신없이 바빴던 위강으로선 알 리가 없었다.

‘진작 눈치를 챘어야 했는데. 운 공자님께서 마음에 들어 하시려나……? 에잇, 모르겠다.’

둘 사이에서 도는 묘한 기류를 느낀 위강이 입가에 짓궂은 미소를 띠었다.

어린 나이라곤 하지만 평생을 눈칫밥으로 살아온 세월은 남녀 간의 그것조차 눈치채지 못할 만큼 둔하지 않았다.

“어, 흠! 저는 그럼 이만 단주님께 가 봐야겠습니다. 앞으로 준비해야 할 게 더 많아질 것 같아서요. 황보 소협! 오늘 대련은 정말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제 부족함을 많이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럼 전 이만!”

마지막 말을 남기고서는 위강은 바람처럼 사라졌다.

“아, 저, 저도 그럼 이만…….”

위강을 따라 자리를 비우려던 송하의 옷깃을 황보운룡이 살짝 붙잡았다.

“같이 갑시다, 송 소저. 저도 어차피 그쪽으로 가려던 차였으니 말입니다.”

“어? 아, 그, 그래요!”

생각지도 못한 황보운룡의 행동에 놀란 송하가 고개를 빠르게 주억였다.

‘아휴! 속도 없어, 정말.’

스스로를 질책하면서도 묘하게 그녀의 볼이 발갛게 물들었다.

* * *

장마가 완전히 가시고 난 후, 가장 큰 전장은 무림맹에서도, 황실에서도 멀리 떨어진 곳인 광서와 광동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미 오래전 해남마제의 죽음으로 봉문에 들어선 해남은 본래 무림의 규율대로라면 지나쳐야 했을 테지만, 온 무림에 이를 갈아 온 혈교에게 그러한 자비 따위는 없었다.

그리고 이미 그 주변에서 이를 갈고 있던 타 문파들이 자신의 안위를 지키는 것도 바쁜 시기에 해남파를 도울 리는 만무했다.

결국 해남파는 가장 먼저 파괴되고 짓밟혔다.

고강한 무위를 지녔던 무인들이 전부 사라진 지 고작 몇 해가 지났을 뿐이다.

하나 힘이 없는 해남파가 몰락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들의 시체는 평안한 안식을 취하지도, 땅에 묻히지도 못했다.

혈교가 부족한 강시의 수를 채우기 위해 해남도를 전부 점령해 버렸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 일대는 전부 피로 물들고 있었다.

이는 산적들과 수적들이라고 해서 피해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오랜 시간 동안 호남성 일대의 수로를 차지하고 떵떵거렸던 상강수로십팔채(湘江水路十八寨) 중 하나인 수룡채(水龍寨)가 발칵 뒤집어졌다.

“채주. 곧 놈들이 귀주성과 호남성까지 치고 들어올 것입니다!”

수하 한 명의 호들갑에 수룡채의 주인 장삼팔(長三捌)이 주먹을 굳게 쥐었다.

“나도 알고 있다. 윗선 놈들도 계속해서 조취를 취하고 있다고 하니, 우리는 놈들의 발목을 최대한 오래 피해 없이 막아 내면 된다. 정 안 되면…… 우선 수룡채를 버린다.”

“채, 채주!”

그의 발언에 수하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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