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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전생-206화 (206/275)

제206화

第二章. 결정

선택의 기로에 선 개방의 장로들의 시선이 모두 편무량에게 쏠려 있었다.

오 대 오.

절반의 숫자다.

만일 여기서 편무량이 돌아서지 않는다면 개방은 반 토막이 날 것이다.

아니, 이곳을 빠져나갈 수는 있을까?

척 보아도 이곳에 모인 적의 수는 수십이었으며, 모두 절정 고수의 경지에 오른 무인들이다.

“아직도 생각할 게 그리 많이 남았나?”

가면 쓴 사내가 편무량을 독촉했다.

이에 점점 더 편무량의 어깨가 무거워지고 있었다.

죽음이냐, 삶이냐.

신의냐, 배반이냐.

분명 공이추는 신의를 지키기 위해 죽음을 택했을 것이다.

편무량이 주변을 빠르게 훑었다.

그의 곁에 남아 있는 장로들의 눈빛도 어느새 흔들리기 시작했다. 다만 그의 결정이 끝나지 않았기에 억지로라도 발걸음을 붙잡고 있는 것뿐이다.

‘그만 우리도 넘어갑시다, 편 장로님.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살아야 개방을 다시 되찾을 기회라도 노릴 수 있습니다.’

편무량의 귓가에 저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겉으로 말을 내뱉진 않았지만 오랜 시간 함께해 온 동지들의 눈빛을 어찌 모를까.

으득-

‘……그래, 우선 살자. 살아야 훗날을 도모하지 않겠느냐.’

드디어 결정을 내린 편무량의 고개가 힘겹게 위아래로 움직였다.

오랜 시간 중립의 역사를 이어 오던 개방이 무력 앞에 굴복하는 순간이었다.

편무량의 두 주먹이 미세하게 떨려 왔다.

그 떨림은 곧 온몸으로 전해졌다.

하나, 그 누구도 그의 곁에 다가갈 수 없었다.

가면 쓴 사내의 반쯤 드러난 입꼬리가 미세하게 하늘을 향했다.

표정 변화가 거의 없는 그로서는 엄청난 변화라고 볼 수 있었다.

사실 공이추에게서 입은 상처가 완벽히 낫지 않은 상태다.

워낙 무공보다 정보로 유명한 개방이긴 하나, 상대가 장로들인 만큼 만약을 대비해 실력자들을 모아 데려왔던 차였다.

다행히 예상했던 것보다 더 수월하게 개방을 손아귀에 넣었다.

주군을 볼 면목이 생긴 셈이다.

“조만간 지령(指令)을 내릴 테니 그때까지 허튼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사삭-

가면 쓴 사내의 무리가 마지막 말을 남긴 채 사라졌다.

털썩.

그와 동시에 편무량이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바닥에 주저앉았다.

“편 장로님!”

편무량의 곁에 있던 장로들이 그를 부축하려 했으나, 그가 손을 내저었다.

“괘, 괜찮다.”

너무도 짧은 시간에 많은 사건이 개방을 덮쳤다.

방주였던 공이추가 살해당했고, 그 누구보다 굳게 믿었던 후개 공대복이 배신했다.

이도 모자라 절반에 달하는 장로들이 손쉽게 마음을 돌렸으며, 굳건했던 개방이 이름도 모르는 어느 단체에 힘없이 넘어갔다.

충격에 충격이 더해지니,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대복이가 대체 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점이 바로 그것이었다.

공이추를 누구보다 믿고 따르던 아이가 급작스럽게 마음을 돌린 연유가 무엇일까.

머리를 굴려 봤으나, 답은 나오지 않고 되레 그를 괴롭게 만들었다.

“편 오라버니,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시우. 개방도 변화가 필요한 때요. 차라리 잘되었다고 생각하오.”

그를 조금은 안쓰럽게 쳐다보던 음여랑이 마지막 말을 남긴 채 자리를 떴고, 그녀의 곁에 서 있던 장로들 역시 편무량을 향해 고개를 한 번 숙인 후 급히 따라나섰다.

복작거렸던 회의 장소가 고요해진 만큼, 그의 마음 한편도 휑해진 기분이었다.

방 안에 남은 이들은 편무량을 합해 고작 셋.

그나마도 한 사람은 아까 전 전의를 잃고 쓰러진 창월랑이었고, 멀쩡한 이는 갈천노 한 명뿐이다.

“저들이 누구인지 좀 알아보아야겠다.”

최소한 누가 감히 개방을 이리 쥐고 뒤흔드는 건지, 그 배후만이라도 알아내야 한다.

같은 마음인지 갈천노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뛰어난 자들로 조용히 알아보겠습니다.”

“부탁하마, 천노야.”

몇십 년 만에 편무량이 갈천노의 실명을 입에 담았다. 얼마만큼 그의 정신이 피폐해졌는지,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갈천노마저 창월랑을 데리고 자리를 비우자, 편무량이 바닥을 나뒹굴고 있던 공이추의 시신을 수습했다.

어찌나 억울하였으면 붉게 충혈된 두 눈이 감기지도 않은 채, 뻣뻣하게 굳어 있다.

이 억울함 어디에 토로할까.

‘내 목숨 다 바쳐 꼭 개방을 다시 원상태로 돌려놓겠습니다, 방주님. 조금만…… 조금만 제게 힘을 주시지요.’

편무량이 늙어 틈틈이 비고, 누렇게 변색 된 이를 악물었다.

* * *

한 객점의 꼭대기 층.

대낮에 홀로 식사를 하고 있던 짧은 수염의 사내의 앞에 사람의 형상이 드러났다.

“무어냐? 식사 시간에는 방해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온갖 산해진미를 눈앞에 두고 있던 그의 미간이 슬쩍 찌푸려졌다.

심기가 상한 것이다.

하나 이는 곧 금세 풀어졌다.

“가주님, 개방이 넘어왔습니다.”

“오오오! 그 말이 정녕 사실이냐!”

가면 쓴 사내의 앞에서 처음으로 그가 기쁨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평소의 그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만큼 흥분이 고조된 상태였다.

그런 짧은 수염의 사내에게 가면 쓴 사내가 차분히 설명해 나갔고, 그때마다 시시각각 그의 표정은 점점 더 밝아져만 갔다.

“사실입니다. 신물과 후개의 이야기를 꺼내기 무섭게 화빙화 음여랑이 먼저 넘어오면서, 자연스럽게 나머지 장로들도 넘어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희 쪽의 피해는 하나도 없었고, 개방의 장로 둘이 상해를 입었습니다. 생각보다 일이 쉽게 풀린 듯합니다.”

“으흐흐! 고생했다. 참으로 고생했어! 아직 다 낫지도 않았을 텐데, 한동안 너는 푹 쉬도록 하거라.”

“아닙니다, 가주님. 저는 아직…… 쿨럭.”

짧은 수염의 사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가면 쓴 사내가 입에서 피를 토해냈다.

“쯔쯔, 이거 보래도. 내 말 듣도록 해라. 이번 일만 해도 충분히 쉴 자격이 있으니. 앞으로 자청(資晴)이 녀석에게 일을 모두 맡기면 된다. 그 녀석도 좀 더 배워야 해. 아직 갈 길이 구만리다. 그리 알고, 내가 부르기 전까지는 몸을 추스르도록. 그래야 다음 임무 때에도 차질 없이 해낼 것 아니냐?”

“……예, 알겠습니다. 가주님.”

당금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로 말하고 있으나 결국, 이 또한 명령이었다.

괜히 성치 못한 몸으로 일을 그르치지 말고 뒤로 한 발 물러나라는 뜻이다.

거절할 권한 따위는 그에게 없었다.

고개를 깊게 숙인 채 조용히 물러났다.

“드디어…… 드디어 개방을 손에 얻었구나. 그 기개 높던 개방 놈들이 내 손아귀에 들어오다니! 으흐흐! 그가 꽤 좋아하겠구나. 좋아. 이 정도면 내 지분은 더 늘어나겠지. 반드시 이 무림은 나의 것이 될 것이야.”

그의 치켜뜬 두 동공 속에는 온통 탐욕과 광기로 물들고 있었다.

* * *

“그래, 보여 줄 것이 있다고?”

“……우, 우웨에엑!”

일전보다 더욱 퀴퀴한 냄새가 나는 동굴 안을 더는 견디지 못했는지 가장 뒤에서 따라오던 조익기가 헛구역질을 내뱉었다.

그것도 모자라 곧 오늘 그가 무엇을 먹었는지까지 확인하기 직전.

타닷!

진천후가 빠르게 그의 혈맥을 짚었다.

그제야 조익기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졌다.

진천후와 종초기는 내력으로 향을 막았지만, 그는 그리할 수 없었던 탓이다.

“보좌관이라는 녀석이 어찌 저리…… 쯧.”

종초기가 여전히 그를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혀를 찼다.

아무리 머리를 쓰고, 잡심부름을 하는 놈이라고 해도 무공을 전혀 쓸 줄 모른다는 점이 너무도 못마땅했기 때문이다.

그와 동시에 이제는 익숙하다는 얼굴로 조익기를 바라보던 진천후의 시선이 다시 공손우경에게 돌아갔다.

“아까 말했던 거, 다시 말해 봐.”

“예. 교주님. 제가 무엇을 만들어 냈는지 보시면 아마 깜짝 놀라실 겁니다. 흘흘!”

‘당장은 자네의 모습이 더 놀라운 것 같은데.’

공손우경의 외관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점입가경이었다.

얼마 전에 보았던 것보다도 더 허리가 휜 듯한 공손우경의 모습에 진천후가 안쓰러운 듯 고개를 내저었다.

촤라락-!

공손우경이 깊게 가려졌던 곳의 천막을 조심스럽게 걷어 냈다.

그러자 조익기의 눈에 경악이 어렸다.

“이, 이, 이게 대체 뭡니까?!”

진천후들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관 속에 고이 잠들어 있는 강시들이었다.

한데, 여태까지 봐 왔던 강시들과는 생김새가 묘하게 달랐다.

손끝이 검푸르지 않았고, 약 스무 구 정도로 보이는 강시들은 손끝 이외에도 몸이 검기보다는 청록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이건 대체 뭐지?”

의문이 가득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진천후를 뒤로하고 유일하게 알아본 이는 종초기였다.

“이건……! 설마, 광독강시인가?”

“예. 드디어 오랜 제 숙원이던 광독강시를 만들어 냈습니다. 교주님!”

그의 표정에는 자랑스러움이 가득했다.

“비록 귀마병의 비술을 알아내지는 못하였으나, 그 대신 광독강시를 완성해 냈지요. 흘흘, 이 녀석들은 기존에 데리고 있던 혈천강시보다 훨씬 위력이 높습니다. 이 녀석들의 손끝만 스쳐도 독이 스며들 겁니다. 시독(屍毒)인 만큼 해독약도 만들기 어렵지요.”

그때, 누군가의 기척이 느껴졌다.

사삭-

“이놈! 누구냐?”

종초기가 빠르게 검을 놀렸지만, 이내 그의 검은 누군가의 손에 거두어졌다.

캉!

“워워, 진정해. 넌 여전하구나? 여기까지 힘겹게 찾아온 손님에게 이런 걸 겨누면 무섭잖아?”

“큭, 네놈이로군. 너에게 무서운 것도 있었더냐?”

그 모습에 단숨에 알아챈 진천후가 코웃음을 내뱉었다.

여전히 작은 몸집에 장포를 두른 이.

휘였다.

휘는 검이 목 끝에 닿았던 사실조차 잊은 듯 태연한 표정으로 옷을 툭툭 털어 내고 있었다.

“음, 그건 그런가? 아냐. 나도 세상에서 무서운 건 있다. 딱 한 분. 그나저나…… 오! 드디어 광독강시를 만들었어?”

“교주님, 대체 저 오만방자하고 예의까지 없는 놈은 누굽니까?”

자신의 공간에 누군가 멋대로 침범했다는 사실이 몹시도 불쾌한지, 표정을 찡그린 공손우경이 휘를 가리켰다.

“그러고 보니 날 직접적으로 보는 건 처음인가? 하긴, 너는 무공이 뛰어난 건 아니니까. 난 그동안 네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봐 왔거든.”

생글생글 웃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휘의 모습에 순간 공손우경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반이불사 공…….’

스스스스-

번쩍!

속으로 중얼거리며 주문을 외운 그의 부름에 답이라도 하듯 몸을 일으킨 광독강시 한 구가 휘의 등 뒤를 노렸다.

철퍼덕-

하나, 순식간에 제압당하고 말았다.

“은인에게 너무한 처사 아니야? 내가 귀마병을 넘기지 않았더라면 광독강시 만드는 데 더 시간이 걸렸을 텐데. 쳇, 그래도 효과는 제법이네.”

중얼대던 휘가 광독강시의 손톱이 스친 장포를 아쉽다는 듯 바라보며 벗었다.

“……?!”

그사이 공손우경의 두 눈이 솔방울만 하게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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