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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전생-204화 (204/275)

제204화

깊은 밤.

음영(陰影) 속에서 몸을 드러낸 가면 쓴 사내가 창가에 서 있는 짧은 수염의 사내를 향해 고개 숙였다.

“물건은, 찾아왔느냐?”

“예. 공이추가 끝까지 버티는 바람에 조금 지체되긴 하였으나, 물건은 무사합니다.”

짧은 수염의 사내의 물음에 가면 쓴 사내가 품에서 무언가를 내밀었다.

천에 곱게 쌓여 있었지만, 청록빛을 내고 있어 타구봉을 아는 사람이라면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여전히 화를 내는 듯 윙윙거리고 있었으나, 무시한 짧은 수염의 사내가 타구봉을 집었다.

“찾아오느라 고생했다.”

“당연한 일을 한 것뿐입니다.”

가면 쓴 사내를 뒤로하고 짧은 수염의 사내가 잠시 회상에 잠겼다.

죽은 방주는 그도 익히 알고 있던 자였기에, 어느 정도 그의 최후를 가늠은 하고 있었다.

누구보다 신념이 굳센 자였다.

그랬기에 개방을 그 오랜 시간 동안 흔들리지 않고 유지해 온 것이다.

짧은 수염의 사내에게는 썩 좋지 못했으나 그는 개방방주로서는 최고의 적임자였다.

‘쯧…… 어려울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정말 이렇게 될 줄이야.’

짧은 수염의 사내는 차마 마음속에서 고개를 드는 아쉬움을 전부 털지 못했다.

만일 공이추가 순순히 넘어와 줬더라면 더욱 쉽게 개방을 손에 넣었을 것이다.

결국 끝까지 넘어오지 않아 그를 살해하고, 타구봉을 구해 오긴 했으나 이건 차선(次善) 중에서도 차선이었다.

되도록 공대복이 그를 설득하길 바랐으나,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한 번이었으면 끝날 일을 여러 번에 걸쳐 번복해야 하게 된 것이다.

결국 타구봉과 후개를 두고 그들과 거래를 해야 했다.

짧은 수염의 사내가 후개 공대복을 떠올렸다.

개방의 후개란 놈은 깨끗하고 신념이 강한 공이추의 성격을 빼다 박았다.

다른 점이라면 아직 세상에 때 묻지 않아 순수했다.

그래서 오히려 쉬웠다.

본디 신념이 강한 놈일수록 마음먹기 따라 무서워지는 법이다.

개방을 위한 선택이라며 꼬드기기 시작하니 생각보다 수월하게 넘어왔던 것이다.

‘공이추가 우리로 넘어오는 게 가장 자연스럽고, 빨랐을 테지만, 이렇게 된 이상 수 없지.’

거래의 조건인 두 가지가 개방에 있어선 엄청 중요한 것이기에 절반 이상은 넘어올 가능성이 높았다.

하나, 쓸데없이 심력 소모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거래의 필승(必勝) 요소를 손에 쥐고 있으면서도 귀찮아진 짧은 수염의 사내의 미간이 슬쩍 찌푸려졌다.

“그러게 그 쓸데없는 고집 꺾을 것이지.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쓸데없는 아집(我執)이라는 게 생긴다더니……. 뭐, 나도 나일 먹긴 했지만 그냥 못 이긴 척 넘어왔더라면 아직 더 한참은 살 수 있었을 것을……”

“송구합니다. 주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던 그가 뒷말을 이었다.

“아니다. 네 잘못은 없다. 아무튼 이 사실을 알면 공대복 그놈이 꽤 슬퍼하겠구나. 쯔쯧, 한동안 그놈에겐 함구(緘口)하도록 해라. 이미 우리에게 넘어오긴 했으나, 스승에 대한 애정이 지나친 놈이다. 자칫 어디로 튈지 모르니 눈에 띄지 않게 잘 감시하도록 해. 알겠느냐?”

“예, 가주님.”

짧은 수염의 사내가 타구봉을 요리조리 둘러보던 그때.

울컥.

주륵-

가면 쓴 사내의 입 끝에 끈적끈적하고 비릿한 붉은 무언가가 흘러내렸다.

손으로 스윽 닦아 보고 나서야, 진짜 피라는 것을 인지할 수 있었다.

뒤늦게 충격이 몸 전체로 퍼진 것이리라.

당연히 전부 막아 냈다고 생각했던 가면 쓴 사내로선 당혹스럽기 그지없었다.

“죄, 죄송합니다. 가주님.”

“쯧, 공이추 그 노인네가 황천길에 오르면서 마지막으로 선물을 제대로 주고 갔구나. 하긴, 그자도 이미 조화경에 들었던 자다. 설마 너…… 그걸 그대로 온몸에 받아 낸 것이냐?”

슬쩍 찌푸린 눈으로 그를 쳐다보자, 가면 쓴 사내가 고개를 주억였다.

“……공격의 범위가 워낙 광범위하고 재빨라 완전히 다 피해 내지 못했습니다.”

그 말에 짧은 수염의 사내가 안쓰러운 눈빛을 보낸다.

“미련한 놈. 강룡십팔장의 강기를 그대로 맞받은 게로군. 어쩐지, 몸 주변으로 붉은 기가 보인다 하더라니 만…… 쯧, 가서 제대로 치료를 받도록 해라. 강기로 막았다고 한들, 그 영감 절대로 보통내기는 아니었다. 쉽게 가시진 않을 게다. 한동안은 몸보신하며 쉬도록 해라.”

“감사합니다, 가주님.”

“제 일을 해냈으니 보상을 주는 것뿐이다. 이만 돌아가 보도록 해.”

“예.”

마지막 대답을 남긴 채, 가면 쓴 사내가 빠르게 사라졌다.

“부디 개방이 넘어와야 할 터인데…….”

밤이 점점 깊어지고 있었다.

* * *

제갈염을 비롯한 군사 세 명과 송운이 한 자리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서로가 열띤 의견을 주고받고 있었다.

장로끼리의 회의가 있다면 지금 이곳은 군사들끼리의 회의였다.

무림맹의 총군사인 제갈염을 제외하면 나머지 세 명의 군사들이 속한 문파는 청성파와 화산파, 그리고 모용세가였다.

유일하게 모용세가만이 백능의 반대편에 서 있는 세가였으나, 중원이 전부 위험에 빠진 만큼 그들의 단합력은 단연컨대 최고라고 할 수 있었다.

“장마가 시작된 지 어언 보름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먼저 모용휘(慕容徽)가 입을 열었다.

그의 말대로 중원 곳곳이 물에 떠내려가거나, 혹은 물에서부터 살아남았다고 한들 혈교와의 전투가 벌어지기 일쑤였다.

표면적으로 반으로 나뉜 무림맹이, 백능의 반대편에 섰음에도 이미 시작된 전쟁에 우선 편을 나누기보다는 자신들의 땅을 지키기 위해서는 싸워야만 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아직까지 혈교에 강시보다는 사람이 많았고, 그들과 제법 대등하게 전투를 벌이고 있다는 점이다.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 귀마병이 나타날지 모른다는 게 송운의 우려였다.

게다가 평범한 강시도 이미 죽은 시신을 주술로 일으킨 것이기에 목을 베지 않으면 사지가 잘리거나, 심장이 찔려도 멈추지 않고 다시 일어나 싸웠다.

그것이 강시의 가장 무서운 점이었다.

게다가 상대의 전투력도 완강하여 완전한 승전보만 울리는 실정도 아니다.

계속되는 전투와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강시들이 날뛰면서 중원은 피로 물들고 있었다.

양측이 모두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해서 바짝 긴장감이 돌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분명 조금이라도 더 밀린다고 생각되는 그 시점에 그들은 귀마병을 내밀 것이다.

한시라도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될 터.

‘정말 최악의 상황이구나.’

장마와 전쟁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개방의 방주가 죽었다.

분명 무림맹 내부 어딘가에 몸을 웅크리고 숨어 있을 진짜 적을 찾지도 못했다.

이는 반드시 찾아내야 하는 중차대한 일이었으나, 그런 만큼 군사들에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

적과 적이 난무하는 세상인 만큼 송운과 제갈염의 머리는 숨 가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송운이 군사들의 표정을 면밀히 살피기 시작한 것도 어느덧 오 주야가 흘렀다.

방주가 죽은 지 벌써 오 주야가 흐른 것이다.

‘군사들도 아직까지는 딱히 이렇다 할 무언가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으니…… 이곳에는 정녕 숨어 있지 않은 것인가. 참으로 답답할 노릇이군.’

일순간 제갈염과 송운의 눈이 마주쳤다.

여전히 오리무중이라는 눈빛이다.

“이걸 어느 쪽이건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군.”

“그러게 말입니다.”

“당금 상황은 어떠합니까? 이 주야 전 산서성에서 제법 큰 전투가 있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모용휘가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아무래도 대별상가에서 오는 길목이니 걱정이 될 수밖에 없는 지역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큰 무림 세가가 없는 산서성 쪽으로는 소림사와 황군이 힘을 합쳐 든든히 버텨 주고 있다 합니다. 덕분에 대별상단에서 보내는 것은 물론이고 운양상단에서 보내온 군량미와 자금, 그리고 병장기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고요.”

그 말대로 유가량이 보낸 배들은 그의 의도에 맞게 강이 불어나도 끄떡없이 무사히 물건들을 옮겼다.

더불어 운양상단에서도 배를 띄워 보내기 시작했기에 몇몇 물에 잠긴 식량들을 제외하면 싸우는 도중 굶을 일은 없을 터였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었다.

“적들의 대다수가 먹지 않아도 유지가 가능하고, 별다른 병장기가 필요 없는 강시라는 게 참으로 아쉬운 시점이로군.”

제갈염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신다.

반쯤 농으로 던진 말이었으나, 그 속에는 진심 어린 마음이 담겨 있었다.

아마도 그것은 여기 앉아 있는 모두가 같은 마음일 터였다.

무림맹의 권력을 나눠 가지려는 것도 무림맹이 평화로울 때나 가능한 이야기일 테니 말이다.

지금은 그것을 지키는 것에 온 힘을 쏟아부을 때다.

“아무튼 병사들과 무인들이 먹는 걱정은 없이 싸우고 있습니다. 이게 모두 황궁과 송 소협께서 힘써 주신 덕분이 아니겠소? 이 어찌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그리고 생각보다 우리 측 무인들이 잘 버텨 주고 있는 실정입니다. 나름대로 중원 곳곳에 세워진 성들도 보호막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완연한 공식 자리인 만큼 제갈염도 송운에게 말을 높이며 감사를 표했다.

그때 누군가 일침을 놓았다.

“하나 총군사님, 이것도 언제까지 갈지 모르는 일 아닙니까? 벌써 벌어진 전투 중 규모가 큰 것이 다섯 번입니다. 지금은 자잘한 전투가 대부분이며 힘겹게나마 막아 내고 있으나, 송 소협의 말씀대로 귀마병이라도 들이닥치면 그 지역은 완전히 전멸입니다. 한시라도 빨리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군사 중 한 명인 청성파의 백무량(白無亮)이었다.

백무량은 누가 보아도 신경을 한껏 날카롭게 곤두세운 듯했다.

‘지금입니다.’

송운이 고개를 조심스레 주억였다.

누군가 언급해 주기를 바라고 있던 제갈염과 송운으로선, 참으로 알맞은 시점이었다.

“백 군사께서 제대로 지적하였군. 해서 우선 제갈세가에서 진법을 통해 방비를 단단히 하기로 결정하였소.”

“하오나 진법은 강시에게는 통하지 않질 않습니까? 그 사실을 아시고도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내 말을 끝까지 들어 보게. 그 점을 보완하기 위해 제갈 세가에서 대책을 내놓은 것이네. 우리 제갈세가는 지난 혈교와의 싸움에서 큰 곤혹을 치렀지. 자네들도 익히 들었지 않은가? 해서 혹시라도 다시 찾아올지 모르는 강시를 막기 위해 지난 수십 년의 세월 동안 그들을 상대할 수 있는 진법을 연구했고, 완성의 시기가 적절하게 맞아떨어졌다네.”

그의 말에 백무량의 눈이 순식간에 솔방울만 해졌다.

“그것이 정녕 사실입니까?!”

“사실이라네. 그렇지 않았으면 내 어찌 이야기를 꺼냈겠는가?”

“하면 어찌하여 그리 중대한 사실을 이제야 말씀하신 겝니까?”

백무량의 질책하는 듯한 말에 제갈염이 표정을 굳혔다.

“군사상 중요도가 높은 만큼 확신이 필요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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