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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전생-202화 (202/275)

제202화

다시 내뱉은 침입자의 목소리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느리고 더듬거렸으며,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끝끝내 돌리지 않은 공이추의 안면엔 너무나도 씁쓸한 고소가 걸린 채였다.

찰나의 순간, 공이추의 목소리에 아주 조금 따스함이 묻어 나왔다.

“……미안하구나.”

침입자는 떨리는 두 손을 꽉 쥐며 공이추를 향해 마지막 절을 올렸다.

“부디 몸조심하십시오. ……스승님.”

그러곤 마지막 말을 남겨둔 채 연기처럼 스르륵 사라졌다.

침입자가 사라지자 단단하던 공이추가 무너져 내렸다.

마치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이젠 정녕, 정녕 돌아오지 않는 것이냐?’

결혼도 하지 않은 공이추가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식처럼 키운 아이였다. 제자라고는 하지만, 그도 공이추도 서로를 가족처럼 의지하며 살았다.

개방의 방도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었다.

그랬던 그가, 어느 날 달콤한 악의 속삭임에 빠졌다.

당금 무림맹은 무너질 것이고 모든 것이 다 바뀔 거라며, 투쟁 의지를 버리고 종속(從屬)한다면 훗날 개방은 손을 대지 않겠다는 그 유인에 걸려든 것이다.

누구보다 맑고 순수한 아이였기에 꼬임은 더 쉬웠을 것이다.

그만큼 개방을 아끼고 스승인 공이추를 따르던 아이였으니.

제자는 공이추의 마음을 돌려 보려 노력한 반면, 공이추는 제자의 마음을 돌리려 노력했다.

처음엔 화도 내 봤지만 역효과라는 것을 깨닫고 회유도 시도하면서 공이추가 무수히 많은 애를 써 보아도 결국은 실패였다.

그렇게 무림맹 내부의 적이 있음을 알면서도 맹인처럼, 벙어리처럼 모른 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 무리에 자신이 아끼고 아꼈던 제자이자 양아들인 공대복(孔大福)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방도들에게도 비밀이었기에, 혼자서 끙끙 앓을 수밖에 없었다.

하나, 조금 전 그 노력들은 모두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마치 사지가 잘려 나간 기분이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공대복이 사라진 그곳을 멍하니 바라보며 서 있던 공이추가 미세한 기척을 느끼고 드디어 고개를 돌렸다. 그러곤 일말의 희망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지만 차마 끝맺지 못했다.

“말했지 않느냐? 이번에도 찾아오면 정말…….”

“그대가 찾는 그자가 아니라 안타깝군. 방주.”

고개를 돌린 그곳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인물이 공이추의 옆에서 다리를 꼰 채 서 있었다. 특이한 건 얼굴의 절반이 가면으로 뒤덮여 있다는 점이었다.

빠르게 사태를 파악한 공이추의 눈빛이 험상궂게 변했다.

동시에 공이추의 주변에 검은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흥분한 그가 기운을 억누르지 못하고 터뜨린 것이다.

휘이이잉-

펄럭!

“네놈이냐? 감히 내 제자를 꼬드긴 것이?”

“꼬드기다니? 넘어온 건 애당초 그쪽 애송이였다.”

공이추는 낮게 깔린 음성으로 가면의 사내를 압박했으나, 가면의 사내는 공이추의 모습이 가소롭다는 듯 여유로웠다.

“갈! 이놈! 그 더러운 주둥아리 닥치지 못할까!”

휘이잉-

우지끈!

공이추가 내지른 단 한 번의 일갈에 허름했던 거처가 풍비박산이 나는 건 순식간이었다.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던 곰팡이 핀 나무집이 무너짐과 동시에 엄청난 먼지를 일으켰다.

“……콜록.”

가면 쓴 사내가 몇 번의 기침을 내뱉었다.

먼지와 함께 휩쓸린 충격파가 제법 몸에 영향을 준 것이다.

하나, 그뿐이다.

가면 쓴 사내가 손으로 휘휘 내저었다.

공이추가 가장 자신하는 취리건곤보(醉里乾坤步)를 펼치며 연달아 손바닥을 날렸지만, 그때마다 가면 쓴 사내는 공이추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해 갔다.

쿠웅!

그로 인해 가면 쓴 사내 대신 공이추의 장력을 받은 땅바닥이 움푹 파여 들어갔다.

그 모습은 마치 거대한 웅덩이가 생겨난 듯했다.

눈앞에서 펼쳐진 어마어마한 장력은 가면 쓴 사내 역시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정면으로 받았다면 갈비뼈가 모두 함몰되어 숨도 쉴 수 없을 만큼 뭉개졌을 것이다.

‘과연, 나이를 먹었다 하더라도 방주는 방주인가.’

적어도 공이추는 조화경에는 들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 나이에 이렇게 어마어마한 괴력을 내기란 불가능일 터.

‘정말 귀찮게 되었군. 이성을 흩트리는 수밖에.’

더는 시간을 끌어선 안 되겠다고 마음먹은 가면 쓴 사내가 가볍게 도발을 넣었다.

“개방의 방주라고 하여 기대했는데, 그새 실력이 많이 죽었나 보군. 이제 그 자리에서 물러날 때가 된 거 같은데. 제자에게 물려주고 뒷전으로 빠진다면 목숨만큼은 살려 주마.”

“이…… 네이노오옴-! 네놈의 사지를 뭉개 주마!”

공이추가 눈에 핏발을 세운 채 가면을 쓴 사내에게 달려들었다.

그의 양손에는 어마어마한 바람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제자가 관련된 일인 탓일까?

이성을 온전히 붙잡지 못한 공이추가 가면 쓴 사내에게 달려들었고, 그의 손에서 형성되던 거대한 바람이 이내 하늘로 승천했다.

콰르르르릉!

순식간에 하늘 주변으로 먹구름이 뒤덮이고 회오리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회오리바람은 곧 거대한 용의 모습이 되어 가면 쓴 사내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고 있었다

누구든 의심하고 놀랄 법한 모습이었으나, 오밤중인 데다 최근 끊이지 않는 장마 덕분에 신경을 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저게 개방의 강룡십팔장(降龍十八掌)인가……? 역시 놓친 게 아쉽군.’

가면 쓴 사내의 반쪽짜리 얼굴이 미세하게 찌푸려졌다.

개방이 편을 들어 주면 그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전력이 될 터였다.

지금 눈 앞에 펼쳐지는 것처럼 개방의 칠 결, 즉 장로급부터는 수준 높은 무공을 구사(驅使)해 낸다.

그뿐일까.

개방은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도 있을 만큼 방대한 방도들을 데리고 있으며, 곧 그들이 듣고 보고 느낀 모든 것은 정보가 된다. 거기에 개방만의 독문진법인 타구진으로 약 팔백 명에 이르는 대진을 사용한다.

앞서 내세운다면 제법 큰 전력이 될 것이며, 그들이 죽으면 곧바로 강시로 만들어 부활시키고자 했던 것이 바로 혈교의 계획이었다.

남들은 개방이 하나로 뭉치지 못하는 집단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그들은 그 누구보다 충성심이 강하며, 뭉칠 땐 뭉치는 강력한 집단인 것이다.

‘이런 것 하나 해내지 못하다니. 쯧. 쓸모없는 녀석.’

그토록 아끼던 제자임에도 결국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의 주인이 가장 갖고 싶어 했던 것 중 하나를 갖지 못했다.

일순간 짜증이 일었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길 무렵, 계속해서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는 가면 쓴 사내에게 공이추는 점점 더 화가 차오르고 있었다.

으드득.

‘내 마지막 혼신의 힘을 다하리라……!’

공이추의 몸에서 회색빛이 맴돌며 연기가 피어올랐고, 곧이어 하늘에 거대하게 떠 있던 용이 눈을 붉게 빛냈다. 하늘이 번쩍거리는 것과도 같은 모습은 참으로 웅혼(雄渾)했다.

아마도 평생 그가 펼쳐 본 그 어떠한 강룡십팔장보다 거대하리라!

“잘 가거라.”

공이추의 세월의 주름이 잔뜩 진 손바닥이 재빠르게 휘둘려졌다.

키아아아아-!

그 손바닥을 따라, 거대한 용이 괴성을 지르며 높디높은 허공을 갈라 가면 쓴 사내를 덮쳤다.

쿵-!

가면 쓴 사내가 용에 감싸져 빛이 발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막대한 힘을 소진한 공이추는 제자리에 무릎을 꿇고 넘어졌다.

“……쿨럭!”

너무 과도하게 힘을 쏟아부은 탓에 고질병이 도진 것이다.

그때, 빛 사이로 무언가가 꿈틀하는 모습이 공이추의 두 눈에 포착되었다.

‘설마……? 그럴 리가……?’

스륵-

툭.

공이추의 두 눈을 부릅뜬 머리가 힘을 잃은 몸뚱이에서 흘러내렸다.

자신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의아한 눈빛이었다.

한때 개방의 방주라 불렸던 그가, 칠십 년의 생 끝에 허망한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그 시선의 끝에는 가면 쓴 사내가 서 있었다.

가면 쓴 사내는 먼지만 뒤집어쓴 채, 큰 피해가 없어 보였다.

용이 그를 덮칠 무렵, 빠르게 강기로 온몸을 둘러싼 것이다.

“멍청한 노인네 같으니라고. 그러게 권주를 왜 마다해서는 이런 귀찮은 일을 맡게 만드는 거야?”

후두둑.

마지막 말을 남긴 그는 자신의 검에 묻은 핏방울을 찝찝하다는 표정으로 빠르게 떨쳐 냈다.

그러곤, 공이추의 품속을 뒤적여 보았다.

안에는 청록빛이 나는 봉이 있었다.

겉으로 봐서는 그저 평범한 몽둥이에 불과하지만 개방의 방주에게만 전해져 내리는 신물, 타구봉이었다.

웅우웅-우웅-!

타구봉이 마치 화를 내며 자신의 몸을 만지지 말라는 듯 윙윙거렸으나, 이는 곧 무시당했다.

“타구봉이군. 방주 보듯 모시는 신물이라 하였던가? 이것을 되찾으려거든 마음을 돌려야 할 것이다. 개방이여.”

마지막 말을 남긴 가면 쓴 사내는 그대로 허공에서 사라졌다.

* * *

제갈염이 급하게 송운을 불러들였다.

사안이 급박한 만큼, 이번 회의에는 백능도 함께였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임을 느낀 송운이 조용히 고개를 숙인 뒤 자리에 앉았다.

사방에 막이 쳐졌음에도 불구하고 백능과 제갈염이 쉽사리 입을 열지 못하자, 먼저 송운이 질의했다.

“이번에 치른 두 번에 걸친 싸움은 큰 피해 없이 잘 마무리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데 혹 전쟁 준비에 차질이 생긴 것입니까?”

“으음……. 차질이라기보다는 무림맹 내부의 적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 같소.”

그 질의에 먼저 답한 것은 백능이었다.

백능이 입을 여니 차례로 제갈염이 다음 말을 이었다.

“개방의 방주가 죽었네.”

“……!”

송운의 두 눈이 솔방울만 하게 커졌다.

예상치 못한 발언이었다.

방주가 죽다니, 이게 대체 무슨 말이란 말인가?

“이러한 시기에 그가 암살을 당할 줄이야……. 더구나 거기서 끝이 아닐세. 아무래도 죽인 자가 타구봉을 가져간 듯하네.”

제갈염의 표정이 굳으면서 두 눈이 굳게 감겼다.

공이추가 살해당했다.

아무리 희수(喜壽)에 가까운 나이라고는 하나 그는 개방의 방주다.

못해도 조화경의 경지에 닿았을 그가 이렇게 허망하게 갈 줄이야! 하나 그것보다 더 무서운 건 바로 그런 공이추가 암살을 당했고, 그와 동시에 개방의 신물인 타구봉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이었다.

“이건 정말…… 개방의 근심이 크겠군요.”

송운의 목소리가 안타까움으로 가득 물들었다.

동시에 주변의 공기도 무겁게 가라앉았다.

개방의 방주가 죽은 것도 모자라, 타구봉이 사라지고 팔결인 후개.

즉, 방주를 계승할 이가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

타구봉법은 그 위력이 거대하고, 타 문파 혹은 세가에 새어 나갈 것을 염려하여 대대로 방주에게만 구두로 전해져 내려오는 개방의 최고 무공이다.

이러한 무공을 이어 나갈 이가 둘씩이나 살해당하거나 실종됐다. 이는 말할 것도 없이 개방의 존폐(存廢)가 달린 거대한 위기인 셈이었다.

시기가 안 좋아도 너무 좋지 않았다.

“당금 개방은 어찌하고 있습니까?”

“난리도 난리가 아니네. 아직 전 중원의 방도들에게 퍼진 것은 아닌 듯하나, 적어도 칠결급의 장로들은 모두 알고 있는 듯하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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