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전생-198화 (198/275)

제198화

스릉-

이에 황보운룡이 검을 거두었다.

황보운룡의 표정은 정말 놀랐다는 듯 두 동공이 확장되어 있었다.

“……놀랍군요. 자칫하면 어깨가 잘릴 뻔했습니다. 그사이 마음을 다잡으신 겁니까?”

놀란 음성 속에도 조금 농을 섞은 그의 말에 되레 송하의 입이 튀어나와 표정이 가관이었다.

분명 황보운룡의 소매가 잘려 나갔으나, 누가 보아도 불만족스럽다는 뜻이었다.

조금 웅얼거리던 송하의 자그마한 입이 열렸다.

“보면 몰라요? 봐주지 말래도요.”

한마디를 하고 나서야 송하가 비익검을 거둬들였다.

중얼거리듯 불만을 토해낸 송하의 말에 황보운룡은 덤덤히 말했다.

“정말로 봐 드린 적 없습니다.”

“거짓말 마요! 그쪽이 안 봐줬으면 무슨 수로 내, 내가 그쪽 소매를 잘라요?”

실상 송하도 온 힘을 다하긴 했지만, 정말로 성공할 거라 생각하고 검을 뻗은 게 아니었다.

이미 황보운룡의 실력을 파악한 송하기에, 당연히 황보운룡이라면 전부 피해 낼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송운과도 늘 같은 내용의 대련을 했었기에 마음은 편했다.

그랬기에 더 온 힘을 다해 검을 뻗을 수 있었다.

한데, 그의 소매가 한 뼘이나 잘려 나갔다.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너무 자신의 실력을 과소평가하고 계신 거 아닙니까?”

황보운룡의 반문이 야속했는지 송하의 곱던 미간이 찌푸려지며, 동시에 그를 째려보았다.

“뭐예요? 포기하라고 할 땐 언제고?”

“아무래도 그것은 이미 이겨 내신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리고 그때 일은…… 제가 주제를 좀 넘었습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송 소저.”

“됐어요. 덕분에 정신 바짝 차렸으니까. 오히려 고마워요. 나한테 이런 말을 해 줄 사람, 아마 황보 소협뿐이었을 테니까…….”

송하가 말끝을 흐렸다.

‘설마, 그 며칠간 각성한 건가?’

그 말을 듣고 보니 미세하게 송하의 기운의 흐름이 바뀌었다.

일전에 송하의 기운이 제멋대로 날뛰었다면 조금 더 정갈해졌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하, 이걸 왜 이제야 알았지?’

황보운룡이 조금은 허탈한 마음으로 송하를 다시 바라보았다.

평소라면 더 빨리 알아챘을 터인데, 아마도 이번엔 그녀의 기분을 살피느라 정신이 팔린 상태였던 탓인 듯했다.

덕분에 잠시 혼란스러웠지만 결국 좋은 게 좋은 거다.

당시에는 말을 내뱉긴 하였으나, 한편으로는 정말 이겨 내지 못하면 어쩌나라는 생각에 내내 그 점이 미안해서 발길을 떼지 못했던 황보운룡이다.

하나 그것이 결국 송하에게 약이 되었고, 무인으로서 성장의 발돋움이 되었다면 기뻐할 일이다.

‘중원에 또 한 명의 무인이 탄생했구나.’

생각의 정리가 끝난 황보운룡이 송하를 향해 진심을 다해서 환하게 웃었다.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결국 하나의 벽을 깨셨군요.”

“역시 황보 소협은 그것도 다 알고 있었네요. 하긴…… 그럴 거라 생각했어요. 고마워요.”

송하가 조심스레 그를 향해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 모습에 황보운룡이 어깨를 으쓱인다.

“별말씀을.”

“그, 근데, 왜 아직 안 떠난 거예요? 설마…… 날 기다렸어요?”

송하가 조금은 기대가 담긴 목소리로 물어 왔다.

하나 황보운룡은 가차 없이 고개를 내저었다.

“기다린 건 아닙니다. 단지…… 조금 걱정이 돼서 말입니다. 제 여동생이랑 몹시 닮았더군요, 송 소저가.”

“……아.”

송하의 입에서 작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다른 연유도 아니고, 단지 여동생과 닮아서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일순간 송하는 허탈해하고 있는 스스로에게 화들짝 놀랐다.

동시에 심장이 시큰거리는 것을 느꼈다.

‘핫! 내가 왜 실망을 하고 있는 거야 대체?’

민망했는지 송하가 서둘러 말을 돌렸다.

“나 같은 외모가 흔하진 않을 텐데, 놀랍네요? 하긴 황보 소협이랑 남매라면 예쁘긴 하겠네…… 뭐, 좀 더 머물다 가려면 머물다 가도 돼요. 여기 가주님 마음씨가 몹시 넓으시니까. 우리 큰오빠랑 각별한 사이시거든요. 그럼 전 먼저 가 볼게요.”

황보운룡이 답을 할 새도 없이 말을 속사포로 끝마친 송하는 곧바로 등을 돌려 제 방으로 향했다.

오늘따라 유난히 하늘은 맑았다.

第九章. 폭풍전야

백능이 연 회의가 끝이 난 후에도 반대파 장로들은 서로 흩어지지 못하고 열을 올리는 데 주력했다.

꽝!

콰직.

“천하무림대회가 끝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제는 전쟁 준비를 하자니?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

점창파의 장로인 곡무릉(谷武陵)이 애꿎은 책상을 내리찍었다.

힘을 조절하지 못한 탓에 책상이 갈라졌으나, 이곳에 모인 이들 중에 책상이 부서지는 것까지 신경 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거…… 정말 자칫하면 정말 전쟁이 나는 것은 아닐는지…… 쯔쯧, 걱정이구려.”

백발이 하얗게 센 곤륜파의 장로가 입을 열었다.

여전히 그의 음성에는 못 미덥다는 마음이 짙었고, 미간에 이미 깊게 파인 주름들까지 더욱더 깊어지고 있었다.

“아니 그 상대가 명확해야 전쟁도 하는 것이지. 보이지 않는 적을 어찌 치겠다고? 이미 일전에 있었던 작전도 모두 실패하지 않았던가? 소수 정예로 움직여도 될까 말까 한데, 혈교의 본거지는 어찌 찾으며, 놈들을 어찌 격파한단 말인가? 맹주가 드디어 노망이 난 게 아니고서야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다들 한마디 하기 바쁜 와중에 비교적 젊은 나이인 점창파 장로 성인후(成仁候)가 장로들 사이에서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이러다 무림맹이고 뭐고 전부 다 박살이 나게 생겼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위해 여태까지 참고 있었단 말입니까?”

타 장로들에 비해 나이가 어렸으므로 발언에 큰 힘이 실리진 않았으나, 그들 모두의 같은 목적인 만큼 그 말은 주목받을 수밖에 없었다.

“허, 그래선 아니 되지. 아니 돼! 그런 꼴을 보겠다고 이 긴 세월을 참아 온 게 아니지 않는가?”

그런 그들의 의견을 모두 조용히 만든 건, 모용세가의 모용승(慕容乘) 장로였다.

“하나, 그렇다고 빠질 수도 없는 것이, 황명이 내려왔다 하질 않소? 황명을 어겼다가 나중에 무슨 꼴을 보려고? 우선은 맹주가 원하는 대로 따르고, 눈치껏 빠지면 될 일이오. 다들 경거망동하지 말고 조금은 진정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구려.”

다들 화가 났으나 그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닌지라, 모두가 숙연해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우선은 무인을 추리고 각자 식량을 확보하세요. 모용장로의 말대로 기다려 보도록 합시다.”

마지막 정리의 말이 나오고 나서야 그들의 열기는 가라앉았다.

* * *

“숙부님, 접니다.”

“들어오너라.”

안에서 새어 나온 목소리는 평소와는 달리 심기가 잔뜩 불편해진 듯 곱지 못했다.

꿀꺽.

젊은 사내는 긴장한 탓에 절로 마른침이 삼켜졌다.

‘설마, 이미 전해 들으신 건가?’

젊은 사내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결국 무림맹을 움직이려나 봅니다.”

“그래, 그 능구렁이가 왜 움직이려는 건지 그 연유도 당연히 알아 왔겠지?”

“황명이 있었다 합니다.”

“황명?”

“예. 숙부님. 추측이 아니라 백능의 입에서 직접 나온 확실한 정보입니다.”

“…….”

젊은 사내의 말을 들은 짧은 수염의 사내가 잠시 말을 잃었다.

곧 그의 입에서 웃음소리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고,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허…… 허허허! 크허허허! 그래그래. 황명, 황명이라…… 좋은 핑곗거리구나. 아니, 아니지. 황명을 거론했다면 사실이 분명해. 이거 우습게 되었군. 무림맹의 일에 황궁이 끼어들다니…….”

하나 이도 잠시.

표정이 작게 굳어진다.

‘결국 송운의 단독행동이 아니었군. 단순히 우호 관계임을 나타내려고 보낸 것이 아니었단 말이지?’

짧은 수염의 사내가 쓰린 속을 부여잡았다.

“숙부님께서는 진짜 황궁이 개입했다고 믿으십니까?”

“그렇다. 이제 단순히 우리끼리의 싸움과는 조금 다르다. 황궁이 끼어든다면, 무림맹의 힘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니 조금 더 복잡해지겠어. 끌끌! 어쨌건 그렇게 된다면 송운 그놈이 갑자기 이곳에 온 연유가 설명될 테고, 백능 그 영감탱이가 이리 급하게 움직이려는 것도 같은 뜻일 터.”

짧은 수염의 사내가 입맛을 다셨다.

실제로 송운이 황궁의 명을 받은 것은 사실이나, 먼저 이 사태를 파악하고 알렸다는 점은 백능이 입단속을 단단히 시킴으로써 전혀 알 수 없었다.

하나, 황궁이 본격적으로 나섰다는 것이 밝혀진 이상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무림맹이 나서서 해야 할 일에 다른 세력이 끼어들게 되면, 그들만의 전쟁에서 양상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과연 황궁은 이번 일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는가.

또한 그들이 개입하려는 연유는 단순히 혈교 때문인가?

혹은 백능이 황궁에까지 도움의 손을 내밀었는가?

그렇다면 어디까지 개입하려 하는가?

마교에서 내미는 손까지 맞잡은 백능이었다.

그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가설이었다.

‘생각보다 쉽지 않은 싸움이 되겠구나.’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킨 상황에 짧은 수염의 사내의 머리가 지끈거려 왔다.

‘끄응, 나도 이제 나이를 먹긴 먹었나 보군. 겨우 이 정도 일에도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을 보니.’

“숙부님! 괜찮으십니까?”

짧은 수염의 사내가 머리를 부여잡자, 젊은 사내가 그를 부축하려 하였으나 손길을 탁 하고 밀쳐 냈다.

“아직 네게 부축받을 정도로 나일 먹진 않았다, 이놈아. 이 정도로 호들갑 떨지 마라. 아무튼, 상황이 제법 복잡해졌구나. 그래. 네 생각은 어떠하냐?”

“저는…….”

저벅저벅.

짧은 수염의 사내의 질의에 답을 하려던 그때, 벽 안쪽에서 누군가가 조심스레 걸어 나왔다.

지난번 보았던 그 땅딸보에 겁 많던 사내였다.

그는 지난번과 별다른 게 없는 모습이었다.

여전히 어깨를 움츠리고선 겁 많은 눈동자로 사방을 둘러보고 있었다.

‘아.’

젊은 사내는 이번 질문은 자신이 아닌 저 땅딸보 사내에게 한 것임을 알아채고 입을 닫았다.

“쯔쯧, 이곳은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다. 하니 편하게 네 생각을 털어나 보도록 해.”

짧은 수염의 사내의 말에 그제야 안심이 된다는 듯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예, 예. 어르신. 아마 황궁과 무림맹 양측 모두 이해관계에 놓여 있을 겁니다.”

“그것은 이미 나도 이미 아는 이야기다. 설마 네놈은 나를 그 정도로 바보로 아는 게냐?”

“그, 그럴 리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제 말은 처음부터 차근차근 밟고 나가야 진실을 추론해 내기가 더 편하기 때문입니다.”

짧은 수염의 사내의 말에 잔뜩 긴장한 땅딸보 사내는 황급히 두 손을 휘저었다.

어찌나 긴장했는지 그리 덥지 않은 상태의 방 안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마에는 어느새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래? 마저 말해 보아라.”

“큼, 흠! 아무래도 그들이 움직인 정황상 황궁이 먼저 손을 내밀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근거는?”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송운이라는 자가 무림맹에 도착한 이후, 무림맹의 정세가 급변하기 시작했습니다. 혈교를 암암리에 찾아 나서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라 하셨지요. 아마 이 시기의 움직임은 모르는 이들이 대다수겠지만, 이미 정보를 알고 있는 저희로서는 황궁이 먼저 손을 쓰도록 움직였다는 것이 더 유력하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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