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전생-194화 (194/275)

제194화

“그, 그분이 아버지란 말입니까?”

“맞아요.”

담담하게 말하는 팽후영의 모습에 송운은 잠시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쩐지, 그녀가 도를 다루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고 여기던 차였다.

‘어쩌면 정말 훗날 잘만 다듬어 준다면 무림에 좋은 보석이 될지도 모르겠군.’

처음 팽후영을 보았던 날 느꼈던 그 느낌은 괜히 느낀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게다가 자신이 전생에 목숨을 빚졌던 이의 여식이다. 괜스러운 참견일지도 모르지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졌다.

인간 대 인간으로서.

“아까, 동작을 보던 중 한 가지 발견한 게 있습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송운이 조심스럽게 말하니 팽후영이 고개를 주억였다.

자신보다 몇 수는 더 높은 무위를 지닌 이라는 사실을 잘 안다.

이미 자신의 무공을 다 보여 준 마당에 고수의 조언은 굳이 마다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팽후영이 허락하자 송운이 곧바로 말했다.

“첫 번째 동작과 두 번째 동작을 각각 다시 펼쳐 보십시오.”

“각각?”

송운이 말하며 뒤로 물러섰고 그 정도는 어려울 것이 없었으므로 팽후영이 도를 잡고 동작을 취했다.

부웅-!

퍽!

후웅-!

콰직!

크고 웅장하지만, 그 사이에 벽이 느껴진다.

“이번에는 초식을 따로 생각하지 말고 같은 초식이라 생각하며 동작을 연이어 보십시오.”

초식을 초식이라 생각하지 말라.

‘……무슨 의미일까.’

그 의아한 말에 팽후영이 잠시 고개를 주억였지만, 동작을 연달아 취했다.

하나 이번만큼은 쉽사리 되지 않는다.

조금 전과 비슷하지만 뭔가 오히려 동작이 꼬이는 듯 보였다. 이미 수년간 초식 사이를 나누는 것이 익숙해져 버린 탓이리라.

‘음, 쉽지는 않겠군.’

그것을 빠르게 알아챈 송운이 이번엔 말을 달리했다.

“하면, 초식을 빠르게 펼친다는 생각을 버리고, 천천히 한 호흡에 동작을 이어 보십시오. 하늘과 땅을 잇는 것이 건곤연환탈백도의 진정한 뜻 아닙니까?”

송운이 좀 더 자세하고 차분하게 설명하자, 이번엔 팽후영의 눈동자 속에 당황이 어렸다.

‘하늘과 땅을 잇듯이 동작을 잇는다. 나도 그저 당연하다고 여기던 것을……? 어찌……?’

잠시 혼란에 빠지는 듯 보이던 팽후영의 두 눈에 이채가 어렸다.

번쩍!

‘설마……?’

동시에 연분홍빛이 팽후영의 온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그러곤 마치 동상이 되어 버린 듯 그녀의 동공이 초점을 잃고 제자리에 굳어 버렸다.

앞이 꽉 막혀 더는 나아가지 못하던 길이 송운의 조언 덕에 뚫린 것이다.

그 모습에 되레 당황한 것은 송운이었다.

‘조금은 곤란하게 되었군. 이거 란 매에게 늦었다고 한 소리 듣겠는데.’

도움이 되길 바라였으나, 그 말 하나로 이렇게 큰 깨달음을 얻어 버릴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던 탓이다.

그만큼 사소하게 놓쳤던 것 하나를 아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다음 단계의 길을 뚫어 버릴 수 있는 힘이 있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아무에게나 다 속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되었다면 이 중원 무림에는 이미 고수들로 빽빽하게 들어찼을 터.

송운의 깨달음이 깊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하기에 더욱 이 자리에 발이 메일 수밖에 없다.

무아지경에 빠져든 팽후영의 곁을 지켜야만 했기 때문이다.

자칫 누가 악의적으로 팽후영을 건드린다면 주화입마에 빠지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팽후영에겐 분명 좋은 일이나, 본인 탓에 생긴 일이니 마냥 나 몰라라 두고 가기에도 마음이 쓰였다.

‘허어…… 이렇게 된 이상 부디 하북팽가가 배신자가 아니길 바라야겠군.’

송운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곧 사방이 고요해졌다.

* * *

약 두 시진쯤 지났을까?

곁에서 멀뚱히 서 있는 것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여 심상 수련을 하고 있던 송운의 귀에 팽후영의 미세한 움직임이 들려왔다.

“……아.”

이에 곧바로 수련을 끝낸 송운이 팽후영의 곁으로 다가갔다.

털썩.

송운의 예상대로 서 있는 상태로 무아지경에 빠져들었기에 정신이 들기 무섭게 팽후영의 다리에 힘이 풀렸다. 덕분에 송운은 팽후영이 쓰러지지 않게 그녀의 몸을 지탱해줌과 동시에 그녀의 도까지 받아야 했다.

‘지난번 백 형께서도 이러하셨겠군.’

송운이 잠시 독고백과의 기억을 떠올리는 사이 팽후영이 완전히 정신을 차렸다.

“아, 죄송해요.”

잠시나마 송운의 품에 안겼던 팽후영이 몸을 벌떡 일으켰으나, 휘청거렸다.

하나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곧바로 중심을 잡은 그녀는 곧 포권지례를 취했다.

“괜찮으십니까?”

“은공께 큰 신세를 졌습니다.”

송운이 물어보기 무섭게 팽후영은 먼저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무림인에게 있어서 깨달음을 준 이는 은인이나 다름이 없으니, 팽후영 역시 예를 취한 것이다.

덩달아 송운이 포권지례를 취했다.

“별말씀을…….”

“정말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이 은혜는 반드시 잊지 않고 꼭 갚겠습니다, 송 소협.”

팽후영이 재차 송운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고, 약간 뻘쭘해진 송운이 어색한 미소를 띠었다.

오히려 자신은 과거에 그의 아버지에게서 받은 은공을 갚은 것 같아 한결 마음이 편해지던 차였기 때문이다.

“너무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전생에 아버님께 받은 은혜를 제가 갚은 셈입니다.’라는 말을 하고 싶었으나, 이번에도 역시 입 밖으로 내뱉는 건 할 수 없었다.

“이미 새벽 동이 트기 직전입니다. 오늘은 이만하고 돌아가시지요. 저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어서 이만 돌아가 봐야 할 듯싶습니다.”

팽후영 역시 깨달음을 얻으며 혼자 정리해야 할 것이 산더미일 터다. 송운도 이를 잘 알기에 말을 건넸고, 곧 잠시 머뭇거리던 팽후영이 고개를 주억였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고개 숙여 인사한 뒤 빠르게 발걸음을 옮기던 팽후영이, 다시 등을 돌려 송운에게 다가왔다.

“아, 이거.”

송운은 피식 웃으며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도를 바라보았고, 팽후영에게 건네주었다.

“그럼 정말 이만 가 볼게요!”

순간 팽후영의 귀가 빨개졌다.

‘의외로 허술한 면이 있군.’

늘 완벽해 보이던 팽후영에게 이런 면이 있을 줄은 몰랐다.

송운이 속으로 헛웃음을 뱉었다.

第七章. 전쟁준비

새벽 늦게야 방으로 돌아온 송운은 얼마 잠을 자지 못한 채로 곧장 제갈염의 방으로 향했다.

오늘 중대한 만남이 있었기 때문이다.

“왔는가?”

“예, 총군사님.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아닐세. 그럴 수 있지. 바쁜 시기가 아닌가? 우선 앉게.”

반갑게 맞이하는 목소리와는 달리 제갈염의 얼굴이 평소와 달리 조금 무겁다.

아마 그만큼 상황이 힘든 것이리라.

“아무래도 자금이 제법 많이 들어갈 걸세. 더불어 병장기와 식량 역시도 말이야. 우선적으로 맹주께서 회의를 열어 무림맹이 가지고 있는 것들도 모두 보탤 예정이나, 그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 같네.”

“총군사님께선 그 회의에서는 최대한 적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도록 하셔야 합니다.”

송운의 말에 조용히 제갈염이 고개를 주억인다.

“알고 있네. 그 자리를 통해 확실히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판가름은 날 터이니…… 아니 될 수 있으면 그래 주길 바라고 있네. 덫을 치고 있으나 쉽지 않으니 말일세.”

“하면 어찌 되었건 무림맹 내부의 완벽한 자금 융통은 어렵겠군요.”

“그러하겠지.”

제갈염이 얼굴에 고소를 머금었다.

반대하고 나서지 않는다고 해도 당장 무림맹 내부에서 운용할 수 있는 자금력이 문제되고 있다.

본디 무림맹의 자본을 함부로 사용할 수 없는 것이 맞지만, 당장 그 엄하다는 황궁 내에서도 뒷돈은 만들어지며, 새는 돈이 생긴다.

하물며 무림맹이라고 크게 다를 건 없는 것이다.

더불어 이런 혼란이 유지될수록 돈과 명예에 집착하는 장로들이 가만두고 보았을 리도 없다.

이미 제법 많은 돈들이 빠져나간 상태라, 무림맹의 곳간과 금고로는 어림없다는 소리다.

“하면 어느 정도까지 가능하실 것 같습니까?”

“무림맹 내부가 돌아가야 할 자금까지 생각한다면…… 대강 금자 백 냥 정도 가능할 것 같네.”

입으로 내뱉는 제갈염의 목소리가 씁쓸했다.

금자 백 냥.

금자 백 냥만 두고 본다면 결코 적은 돈은 아니나, 전쟁 중 먹고 움직일 무인의 수를 생각하면 어림없는 정도다.

“너무 큰 걱정은 하지 마십시오, 총군사님. 황실에서 자금적으로도 도움이 될 듯합니다.”

“허어…… 이거 황실에 큰 빚을 지겠구먼. 한데 이는 황실에서도 허가가 난 사실인가?”

“며칠 전, 황궁으로 서신을 보냈습니다. 먼저 폐하께서 내리신 명이니, 황궁에서는 넉넉히 보태 주실 겁니다. 백성들의 원통한 목소리가 하늘을 찌르니, 대신들도 어찌할 도리가 없을 테니 말입니다.”

“그것 참 좋은 소식이군.”

그나마 한시름 놓았다는 듯한 제갈염의 귓가에 또 하나 놀랄 만한 이야기가 전해졌다.

“아, 더불어 자금을 더 융통할 만한 곳을 알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 말인가?”

조용히 듣고 있던 제갈염이 흥분한 듯 일순간 목소리가 커졌다.

제갈염도 본인의 목소리가 과했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곧 다시 목소리를 가라앉혔다.

“큼, 내가 너무 흥분했군. 미안하네.”

그의 모습에 송운이 자그마한 미소를 띠었다.

“하하, 아닙니다. 당금 운양상단의 자금력이 제법 됩니다. 더불어 상계 쪽에 아는 지인이 있지요. 현재 상황을 알리고 훗날 이를 보상할 만한 품목을 적어 거래를 하시면 틀림없이 자금을 보탤 것입니다. 더불어 상가인 만큼 병장기와 식량까지 넉넉히 보급이 가능할 겁니다.”

“허어…… 그래. 내 자네의 상단 이야기는 얼마 전에 들어 알고 있네. 북경과 하북성에서는 이제 따라올 상가가 없다고 하더군. 더불어 산서의 절반에 해당하는 거래권을 얻었다는 것 역시 들었네만…… 대체 그 지인은 어느 지인이기에 그리 자신하는가?”

“제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면 그만큼 자신이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혹, 대별상가를 아십니까?”

“대별상가라면…….”

잠시 멈칫했던 제갈염이 곧 무릎을 탁! 하고 쳤다.

“설마 그 대별상가를 말하는 겐가?”

“맞습니다. 더불어, 당금 운양상단 역시 제법 많은 자금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혈교는 전 중원의 적인 만큼, 저희 역시 도울 수 있는 만큼 돕겠습니다.”

몇 해 전, 본디 몰락의 위기를 크게 겪었어야 할 대별상가다.

하나 송운의 약을 대신해서 팔며 한동안 큰돈을 만졌고 그것을 계기로 크게 발돋움하여 상권이 전보다 더 커졌다.

수완이 좋고 이미 한 대를 걸쳐 얻은 신임으로 주변 일대를 모두 장악하였으니, 자체적으로 가진 자금이 어마어마할 것이다.

더불어 그 주인인 유호길은 송악의 둘도 없는 친우이며, 그의 아들인 유가량은 이미 송운과의 우애를 튼튼히 다졌다.

게다가 가치가 있는 것이라면 위험도 무릅쓰는 두 부자기에 송운의 부탁에 응해 줄 것이다.

“정녕 그게 가능할까? 돈을 가진 자들은 돈이 많은 만큼 쉽게 내주지도 않을 터인데?”

“대별상가의 가주님과 소가주 모두 저와의 인연이 깊습니다. 상황을 전달하고 거래 조건을 적당히 내걸면 어지간해서는 거절하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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