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전생-193화 (193/275)

제193화

안휘성, 회원현.

고요하던 회원장가에, 아침 댓바람부터 서신을 나르는 하인이 장명도의 방문을 두들겼다.

쾅쾅쾅!

“큰 공자님! 서신입니다요!”

“……으음.”

잠에 취한 지 이제 겨우 한 시진이나 지났을까?

아직은 잠에 취해 있고 싶던 장명도는 정신없는 소동에 힘겹게 옷을 걸쳐 입고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일이기에 이리 소란이냐?”

“서신입니다, 서신!”

“그러니까 누구의 서신이기에 그리 호들갑이야? 오랜만에 깊은 잠이었는데. 어휴, 네놈 때문에 다 깨버렸잖아.”

헐레벌떡 달려와 숨을 헉헉거리는 하인에게 장명도가 머리를 벅벅 긁으며 시큰둥하며 물었다.

최근 들어 강화된 경계령 탓에 밤에는 경계를 하느라, 그리고 낮에는 무공 수련을 포기할 수 없어 약 일주일 동안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였다.

지난밤에도 인시까지 주변 일대 정찰을 돌다 방으로 돌아와 간신히 잠을 청한 것이다.

한데 그런 단잠을 깨웠으니, 그만큼 다급한 사안이 아니라면 각오하라는 눈빛이었다.

장명도의 날이 선 반응에도 입가에 호선을 쓱 그린 하인이 답했다.

“송 공자님이요!”

하인의 입에서 나온 이름에 장명도의 슬금슬금 감기던 두 눈이 번쩍 뜨였다.

“송 공자, 그러니까…… 송운? 운이 그 친구를 말하는 거냐?”

“예. 공자님의 친우 분이 급한 서신이라고 꼭 빨리 전달해 달라고 하셨답니다요.”

하인이 내미는 것을 받아들인 장명도가 급하게 서신을 풀어 헤쳤다.

명도, 참으로 오랜만에 연락하네. 그간 잘 지냈는가?

직접 얼굴을 보러 가야 하는데 시간이 쉽게 나질 않으이.

내 다름이 아니고 이번엔 부탁할 것이 있어 이리 급하게 서신을 전하네.

자네도 알겠지만, 곧 무림에 피바람이 불어닥칠 걸세.

나는 그 피바람을 두고 보지만은 않을 예정이네.

그러자면 함께 위기를 막아 줄 든든한 이가 필요하네.

나는 현재 무림맹에 거하는 중일세.

정신은 잠에서 깼을지언정, 아직은 흐린 눈을 벅벅 비비고 난 후.

끝까지 읽어 나간 서신에서 송운의 다급함이 전해지고 있었다.

요지는 송운이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쉽게 도움을 청할 친구가 아니거늘…….’

장명도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

안휘성은 섬서성과 거리가 멀고, 중원에서도 변방에 가깝다.

한데 회원장가의 가주이자, 그의 아버지인 장일한(張日寒)이 꽤 오랜 시간 두문불출하며 회원장가 내부에서만 기거하던 생활을 접었다.

게다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얼마 전부터 직접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미심쩍은 상황에 장일한을 비롯한 주변 무인들의 낌새도 심상치 않았다.

송운이 말하는 상황은 필히, 최근 강화된 경계령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집안 주변의 일이거니 하며 말을 아끼는 아버지에게 일부러 이유를 묻지 않던 차에, 송운에게서 서신이 왔다.

‘아버지도 뭔가 알고 계신 게 분명해.’

자신은 일전에 회원장가를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지키는 데 송운에게 큰 도움을 받았다.

그가 도움을 요청한 이상, 이미 도와줄 마음을 굳혔다.

“아무래도 지금 당장 아버지를 뵈어야겠구나.”

“모시겠습니다, 큰 공자님.”

장명도의 두 눈에 큰 의지가 일었다.

* * *

“최근 들어, 송운과 총군사의 만남이 잦다고 합니다.”

달그락.

음식으로 젓가락을 들어 올리던 짧은 수염의 사내의 손길이 멈추었다.

탁.

그러곤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그 손길엔 무언가 신경질이 어려 있었다.

“일전부터 자주 총군사와는 왕왕 왕래를 유지하는 중이긴 하였습니다만…….”

젊은 사내의 말을 끊어 버리고선 아주 작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송운…… 역시 그놈인가.”

“예? 송구합니다만 숙부님 잘 듣지 못하여…….”

“됐다.”

젊은 사내가 되물었으나 더는 들을 필요가 없다는 듯 짧은 수염의 사내가 손을 허공에 저었다.

교묘히 맹주와의 접촉을 피하고 있으나, 결국 총군사의 말이 곧 맹주의 말이다.

‘작금 맹주의 마음을 뒤흔들고 있는 놈이 송운 그자였구나. 이 둘의 만남이 잦다는 것은 필히 무언가가 있다는 것인데…… 황궁의 개와 대체 무슨 말을 나누고 있는 게지? 아직까지 놈들의 반응으로 보아선 핵심은 찾지 못한 듯한데…… 대체 무엇이냐. 무엇이 맹주를 이토록 움직이게 하는 것이냔 말이다!’

순간 짧은 수염 사내의 하늘로 꼿꼿이 뻗은 눈썹이 움찔거렸다.

어딘지 모를 찝찝함이 짧은 수염 사내의 심기를 거슬리게 했다.

하나, 언제 그랬냐는 듯 그의 표정이 평온해졌다.

“하면 습격은 어찌 되었느냐?”

“예상치 못하게 맹의 무사들과 마주치긴 하였으나 명대로 모두가 자결하였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더불어 시키신 대로 복장을 갖추었으니 혼란만 가중시켰을 뿐, 놈들은 그 무엇도 확증할 수는 없을 겁니다.”

“무림맹 내부에서는 별다른 반응이 없더냐?”

“다들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다곤 하나 이미 일선(一線)에선 물러난 지 오래된 이빨 빠진 늑대들일 뿐입니다. 그자들이 할 줄 아는 것이라곤 그저 세치 혀로 서로를 깎아내리는 게 전부지요. 서로 목소리를 높이며 의심만 하는 중입니다.”

젊은 사내의 말에 짧은 수염 사내가 미심쩍은 눈빛으로 되묻는다.

“호오? 그 이빨 빠진 늑대가 설마 나를 지칭하는 말은 아니겠지?”

짧은 수염의 사내는 겉으론 자상한 듯 보이나 속이 매섭고 단호한 사람이다.

‘헙…… 실수다.’

이빨 빠진 늑대라니.

꺼내선 안 될 단어를 꺼내었다.

헛숨을 들이켠 젊은 사내의 반응과는 달리, 속으로 짓궂은 미소를 내비친 짧은 수염의 사내가 엄하게 꾸짖는 척을 했다.

젊은 사내가 조금만 날카롭게 들으면 그의 말이 농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을 테지만, 그의 기분을 다시 조금이라도 좋게 만들어 주길 바라며 곧바로 머리를 땅에 박았다.

설령 농일지라도 젊은 사내에겐 짧은 수염 사내의 심기가 불편해질수록, 좋을 게 없었다.

아직 자신은 그의 아래였으니까.

혈연으로 맺어져 있다고 한들 주인과 하인 신세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서, 설마 그럴 리 있겠습니까? 제가 어찌 감히 숙부님을……!”

젊은 사내의 과한 반응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짧은 수염 사내가 고개를 내저었다.

“되었다. 그리 놀랄 것 없다, 아자(兒子)야. 끌끌, 그리 행동하면 내 죽어 너의 아비 얼굴을 어찌 본단 말이냐? 어서 고개를 들어라. 무릇 큰일을 할 자는 함부로 고개를 숙여서는 아니 된다 하지 않았더냐.”

“숙부님! 어찌 벌써 죽음을 논하십니까? 숙부님이 아니시면 누가 이 무림을 이끌어 가겠습니까?”

“쯧, 그사이 아부하는 실력만 늘었구나. 그럴 시간에 한 번이라도 더 수련을 하거라. 내가 이것을 취하고 나면 다음 주인이 될지도 모르는 녀석이 아직도 이렇게 부족해서야…….”

그 말에 젊은 사내가 반색했지만, 짧은 수염 사내의 말속에는 아직 확신이 없었다.

무조건적인 믿음.

그리고 확정을 받아 내야 한다.

아직도 부족함이 많다는 것은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하나 그 자리는 탐이 났다.

아니, 세상 그 누구라도 탐을 낼 것이다.

너무도 탐스러워 갖지 않고는 못 배길 만큼!

혈육의 정조차도 끊어 내고 패악질을 저지르며 여기까지 올랐다. 겨우 이 정도 장단도 못 맞출 자신이 아니다.

‘……그 자리의 주인은 반드시 내가 되어야 한다.’

젊은 사내의 주먹이 순간 꽈악 쥐어졌다.

“더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숙부님.”

짧은 수염 사내의 입가에 작은 호선이 그려졌다.

* * *

휘영청 달 밝은 밤.

부웅-!

퍽!

후웅-!

콰직!

달빛 아래 긴 머리를 휘날리며 작고 가녀린 몸집과는 어울리지 않는 도를 잡고선 도발적인 눈빛을 빛내며, 끊임없이 수련에 매진하고 있는 여인.

팽후영이었다.

묵직하면서도 무식하리만큼 큰 파공음은 절로 듣는 이의 몸을 움츠리게 할 정도였다.

하나, 그녀는 흉악하고 무거운 도를 잡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곱고 아름다운 선을 그렸다.

거기에 달빛이 더해지며 팽후영을 더더욱 돋보이게 만들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도무(刀舞)였다.

얼마나 더 도를 휘둘렀을까.

“후우…… 후우……!”

얼굴부터 입고 있던 도복까지 땀으로 흠뻑 적시고, 거친 숨을 들이 내쉴 때쯤.

팽후영의 도가 허공에서 멈추었다.

바삭.

어디선가 나뭇가지 밟는 소리가 들려온 탓이다.

“그만 숨어서 지켜보시고 앞으로 나오세요.”

“들켰습니까?”

“일부러 들키려고 내신 소리 아니었나요?”

송운은 속내를 들킨 듯 순간 움찔했다.

제갈염과의 이야기를 마치고 돌아가던 길에, 늦은 밤 들려오는 소리에 저도 모르게 발길이 향한 송운은 곧바로 팽후영을 알아보았다.

그 누구건 타인의 수련을 엿보는 것은 예의가 아니기에 곧바로 발길을 돌리려 하였으나, 팽후영의 도법이 왠지 어디선가 많이 본 듯했다.

그 기시감에 이끌려 저도 모르게 끝까지 연무를 보게 된 송운은 양심상 보고도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예상대로 그녀의 실력은 제법 상승했다.

하나, 아직 모자란 부분도 많았다.

해서 몰래 본 값이라도 지불하기 위해 팽후영의 말대로 일부러 나뭇가지를 밟은 것이다.

“수련을 함부로 엿보려던 의도는 없었습니다. 제 무례에 용서를 바랍니다.”

잠시 송운의 사과를 듣던 팽후영이 깨끗한 천으로 땀을 닦으며 답했다.

“뭐…… 본다고 닳는 건 아니니까요.”

예상외의 담백한 반응에 송운은 잠시 놀랐다.

송운은 팽후영이 화를 낼 줄 알았기 때문이다.

멋쩍어진 송운이 다른 말을 이어 나간다.

“한데, 과연 건곤연환탈백도(乾坤連環奪魄刀)로군요.”

“마치 제 도법을 잘 알고 계시는 듯한 말씀이시네요?”

송운이 슬쩍 아는 척을 하자, 팽후영이 그제야 조금 신경이 쓰인다는 듯 말했다.

송운이 팽가도를 아는 연유는 하나였다.

전생의 마교대전에서 멀리서나마 한 사내의 무위를 지켜본 적이 있었다. 당시 어렸던 송운의 목숨을 구해 준 은인이기도 했다.

팽후영의 물음에 송운은 막힘없이 답했다.

“모를 것도 없지요. 약 이십 년 전, 황룡대도(黃龍大刀) 팽가도(彭加途) 대협이 하북팽가의 도법(刀法)이 가진 위력을 직접 만천하에 알리시지 않았습니까? 물론 당금도 현역이시지만, 하북팽가에 그분의 도법을 비슷하게 구현하는 무인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그것도 팽 소저일 줄은 더더욱 몰랐고요.”

“아는 것도 모자라 그분의 무위를 눈앞에서 직접 보신 분처럼 말씀하시네요.”

팽후영의 말속에 의문이 날카롭게 묻어 나왔다.

이에 재빨리 송운이 답했다.

“어릴 적 그분을 멀리서나마 뵌 적이 있습니다. 그뿐입니다.”

차마 ‘제 목숨을 구해 주신 분이시기도 합니다.’라는 말은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었다.

그걸 말했다가 나중에 진실이 밝혀지면 자신은 미친놈 취급을 당할 게 분명하지 않은가.

마치 어릴 적 아버지에게 할 수밖에 없었던 거짓말과도 같은 맥락이다.

속으로 미안한 마음을 전할 무렵, 팽후영이 놀라운 발언을 했다.

“……그분이 제 아버지세요.”

“……?!”

팽가도의 여식이 팽후영이었다니!

송운으로선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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