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2화
어두컴컴한 지하 동굴 속.
축축한 벽에 피어난 이끼에서 나는 곰팡내와 시신 썩는 냄새가 코를 통해 폐부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 역하게 만들었다.
더불어 그 주변으로는 알 수 없는 글씨들이 적힌 부적들이 사방에 널려 있었다.
음울하고 역겨운 동굴 속에서 신나게 콧바람을 부는 이가 있었으니…….
“으흐흐, 오늘도 새 연구를 시작해 볼까?”
공손우경이었다.
그는 최근 회춘이라도 한 듯, 신이 나 있었다.
새 강시술 개발에 연달아 실패했던 공손우경의 손에 귀마병이 주어진 후, 그는 귀마병에 모든 걸 퍼부어 매달렸다.
언제 씻었는지도 모를 만큼 얼굴은 꼬질꼬질했고, 누렇던 이는 이젠 누렇다 못해 검게 변해 가는 듯했다.
거기에 손톱에는 때가 가득했으며, 머리조차 헝클어져 있는 상태였다.
그만큼 그는 귀마병에 미쳐 있었다.
하나 소매를 걷어붙인 지 얼마 되지 않아 공손우경의 목소리에 짜증이 잔뜩 일었다.
“어찌하면 이것들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거지? 끄응…… 시체를 가지고 한 것도 아니고 살아 있는 놈에게 환을 먹였다고 이성이 마비되고 강시처럼 변한다라…… 이건 주술(呪術)도 아니고, 아무리 해부를 해 보아도 알 수가 없으니 환장할 노릇이군. 이 나이 이때껏 이러한 강시는 듣도 보도 못했단 말이지. 피부는 어찌나 질기고 단단한지 해부하는 것조차 힘이 든단 말이야. 쯧, 이걸 만든 놈은 대체 어떤 미친놈이란 말이냐?”
공손우경은 눈앞에 놓인 귀마병과 강시를 번갈아 보았다.
제법 넉넉한 듯 보이지만, 하나의 시체도 아쉬운 상황이었다. 최근 들어 황궁과 무림의 경계가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애당초 강시는 술법(術法)으로 인해 움직이는, 시체에 주술로 혼을 불어넣는 일이다.
작금 공손우경이 사용하는 강시는 혈라강시(血羅殭屍)로 시체를 굳어 부패하지 않게 만들 뿐이라, 강기를 이용하는 무인들이라면 혈라강시의 육체는 금방 훼손되어 효용성을 잃는다.
그래서 매번 숫자로 밀어붙이는 무식한 혈전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런 공손우경에게 더 이상의 해부는 사치였다.
하나, 이 귀마병은 다르다.
‘지금으로선 광독강시(狂毒疆屍)를 만드는 주술을 완성하든, 귀마병의 비술(祕術)을 알아내든 둘 중의 하나는 해내야 해…….’
딱딱딱딱.
공손우경이 길고 끝이 갈라진 손톱으로 동굴의 벽을 연신 내려찍었다.
최근 진천후의 압박이 더 심해졌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환도 분석해 보았으나, 귀마병에게 먹일 양도 부족한 환을 함부로 뜯어 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가닥이 잡히는 듯하다가도 번번이 끊기니 그의 속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짜증이 잔뜩 난 공손우경이 결국 애꿎은 벽을 주먹으로 내려쳤다.
쿵!
촤라라락!
“크르르……!”
그 소리에 곱게 잠들어 있던 귀마병이 낮고 굵직한 울음소리를 냈다.
“조용!”
물론 공손우경의 명령에 깨갱거리는 존재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때로는 계속되는 실패에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면서도, 그는 여전히 갈팡질팡했다.
진천후의 마음에 쏙 들고 싶다는, 그래서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위치에 서서 다른 이들의 머리를 내려다보는 것, 그리고 죽은 자들에 새 생명을 불어넣고, 창조주로서 그들을 이끌겠다는 야망!
그 두 가지 목표를 향한 미친 열망은 공손우경이 지천명을 넘어선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여태 자식은커녕 제자도 두지 못한 연유기도 했다.
혈교에서는 강시술의 대가 끊어질까 노심초사하였으나, 공손우경은 그조차도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지금까지 공손씨는 대대로 숨을 거두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을뿐더러 직접적으로 전면에 나설 일이 그다지 없는 그들에게 죽음은 크게 신경 쓸 거리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강시술은 삶이며, 애정이다.”
공손우경이 늘 입에 달고 사는 말이다.
그만큼 그의 관심사는 오롯이 강시와 시체뿐이었다.
살아 있는 사람과의 왕래보다 시체와 노는 것이 더 즐겁다.
그것은 어릴 적부터 그러했고, 지금도 별반 다를 게 없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어쩌면 그는 자신의 시신마저도 강시로 만들려 할지도 모른다.
‘분명 강시와 귀마병 사이에는 무언가 비슷한 접점이 존재할 터인데…… 그게 대체 무엇일는지…… 끙! 그것만 찾아낸다면 훨씬 수월할 것을.’
한참을 쥐 나는 머리를 쥐어뜯던 공손우경의 눈길이 곱게 잠든 듯이 누운 채로 묶여 있는 귀마병을 향했다.
그 귀마병의 몸과 머리는 중간중간 내부가 훤히 드러나 있는 기괴한 형상을 하고 있었다.
쉽사리 잘리지 않아 살을 녹여 내 간신히 만든 구멍이었다.
누구든 보았으면 기겁하고 악을 질렀을 법한 외형이다.
하나 그조차도 공손우경에게는 예술이며, 아름다움이었다.
그 모습은 그의 성난 마음을 잠재우는 효과도 있었다.
“어쩜 저리도 아름다울꼬. 낄낄! 내 새끼들. 그래그래, 조금만 기다려라. 곧 이 애비가 너희를 더욱 쓸모 있게 만들어 주마.”
귀마병을 쓰다듬는 공손우경의 입이 찢어질 듯 벌어졌다.
동시에 그의 누런 이가 더욱 돋보였다.
第六章. 자익(自益)
우르르릉!
쾅!
쏴아아아-
천둥번개가 치더니 세찬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벌컥!
“저런, 비 맞은 생쥐 꼴이 되셨네요.”
평서란이 서둘러 큰 모포를 가져와 문을 열고 들어온 송운에게 내밀었다.
“후우, 이제 정말 본격적으로 여름이 왔나 보구려.”
“그러게 말이에요. 이만큼 시간이 지났는데도 지금까지도 혈교는 별다른 준동 하나 없다는 게 놀라워요.”
송하가 무림맹을 떠나고, 백능과의 은밀한 거래를 맺은 지 보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물론 그사이 전혀 위협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나, 그것은 혈교의 것이라고 보기에는 애매모호한 움직임들이었다.
감숙성의 서화현(西和縣)과 호북성(湖北省) 의창현(宜昌縣)에 위치한 마을들에 밤사이 습격이 있었다.
이는 모두 무림인이 아닌 일반 평민들이 대상이었다.
또한 두 곳 모두 교묘하게 무림맹의 눈을 피한 외곽 지대였다.
다행히 경비를 강화시킨 덕에 각각 그 주변 일대를 정찰하고 있던 무당파의 무인들과 무림맹 무인들이 나서서 큰 피해는 면할 수 있었으나, 정찰하던 대다수가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더불어 앞으로 이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건 보장이 없었다.
“이번 두 사건 모두 강시는 보이지 않았어요. 혈교를 가장한 이들의 습격이었죠.”
“그 수가 많지 않고 한 놈이라도 잡히는 대로 전부 자결했다고 하였던가?”
송운이 젖은 머리를 털며 말하자, 평서란이 심각해진 얼굴로 답했다.
“맞아요. 지난번 우리가 나섰던 그때와 비슷해요. 단지…… 이번엔 막을 수 있었다는 게 다르긴 하지만요. 그 탓인지 요즘 정세도 심상치 않아요. 다들 몸을 추스르고 있어요.”
“음, 그렇겠지. 아마 놈들도 맹주가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에 대해 경계하고 있을 테니.”
“그건 그렇고, 우선은 따뜻한 물에 씻고 오세요. 아무리 운 가가래도 이러다 고뿔 드시겠어요.”
“내가 고뿔에 걸릴 리가…….”
“안 가실 거예요?”
평서란이 조용히 웃으며 송운을 바라보자, 더는 거절하지 못한 채 송운이 고개를 주억였다.
“알겠소. 이거, 란 매의 눈빛이 무서워서라도 얼른 다녀와야겠군.”
“후후. 어서 다녀오세요.”
* * *
얼마 전.
조용한 밤, 송운의 방에 제갈염이 다녀갔다.
그의 눈빛은 왜인지 모르게 평소와 달리 몹시도 반짝반짝 빛이 나고 있었다.
“맹주님께서 큰 결심을 내리셨네.”
“총군사님, 잠시만 말씀을 멈춰 주십시오.”
송운이 제갈염의 말을 막았다.
갑작스런 행동에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던 제갈염의 의문이 풀리는 건 순식간이었다.
송운이 두 사람을 중심으로 투명한 막을 펼쳐 낸 것이다.
“이건……?”
제갈염의 두 눈이 화등잔 만해졌다.
얼마 전, 백능이 펼쳤던 그것이었다.
‘과연 송운이란 말인가?’
확실히 이러한 무인이 자신들의 편이라면 백, 아니 천명의 일류 무사가 부럽지 않을 것이다.
“무림맹에도 듣는 귀는 많지 않습니까? 밤이라고 안심하긴 이르지요. 이제 말씀하셔도 됩니다.”
은연중에 송운은 자신의 실력을 드러냈다.
확실하게 자신의 위치를 선언한 것이다.
‘이만큼 실력을 지니고 있으니 믿어라. 믿고 있어도 더 확실하게 믿어라.’라는 의미였다.
잠시간의 침묵이 흘렀고, 제갈염이 평정심을 되찾았는지 다시 차분히 말을 이어 나갔다.
“자네는 알지 모르겠지만……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셨네. 그리고 그 결정을 내리는 데에는 자네의 도움이 있었을 테고.”
이렇게까지 된 이상 제갈염은 송운에게 심중을 숨기지 않았다.
어디서 어떻게 알게 된 것인지 묻지도 않았다.
생각보다 더욱 단도직입적으로 날아온 말에, 잠시 당황했으나 송운도 잠시 흔들리던 자신의 위치를 잡았다.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우치(齲齒) 아닙니까. 그렇다면 도려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혈교 이놈들, 머리가 보통이 아닙니다. 내부의 어느 누군가와 동맹을 맺었을 게 분명합니다. 총군사께서도 잘 아시겠지만 이이제이라는 말이 있지요. 자신들의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선, 적끼리 싸우게 만드는 것이 가장 최선의 선택이니 말입니다.”
“그러네. 역시 송 소협이군. 덕분에 큰 기회를 얻었지. 분명 위험이 따르긴 할 테지만…….”
제갈염의 두 눈에 굳은 의지가 비쳤다.
백능이었다면 씁쓸함을 조금이라도 머금었을 테지만, 제갈염은 조금 달랐다.
이미 송운의 말대로 뿌리까지 썩어 버린 나무는 죽은 것과 다름이 없다.
꽤 큰 타격이 있겠지만 이것은 무림맹에 주어진 위기이자 기회다. 그리고 그것을 쳐 내는 것이 총군사인 자신이 해야 할 일이다.
송운 역시 그러한 제갈염의 의지를 읽었다.
‘무림맹은 썩은 무리를 제거하고, 나는 이번 싸움에서 혈교를 제거함과 동시에 혈교와 흑야 사이에 있을지 모를 관계를 찾아낸다.’
송운과 제갈염이 서로 손을 내밀어 맞잡았다.
서로의 이해타산(利害打算)이 들어맞는 순간이었다.
* * *
맹주와의 정식 동맹을 맺은 송운은 그때부터 바빠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힘을 내줄 수 있는 무인들이 필요할 것 같소.”
드륵-
송운의 말에 평서란이 조용히 먹을 갈기 시작했다.
“황궁에 가능한 한에서 황궁의 무인들을 파견 보내 달라 서신을 넣을게요. 혈교를 잡기 위한 것이라면 폐하께서도 분명 들어주실 거예요.”
“그리해 주겠소?”
“네. 이쪽 일은 걱정 마세요.”
든든한 평서란의 말에 이번엔 송운 역시도 먹을 갈기 시작했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오랜 친우에게 보낼 서신을 적기 위함이었다.
‘최대한 많이 준비해야 한다.’
물자를 모으고 무인을 모아 최대한 많은 준비를 끝마쳐 두어야 한다.
이렇게 오랜 시간을 끌며, 이이제이를 노리고 있는 혈교의 현재 모습을 생각하면 필히 그들도 아직 완연한 준비를 갖추지 못했을 것이다.
이건 엄연한 전쟁이다.
몇십 년 만에 이뤄지는 무림의 혈투가 시작되는 것이다.
붓을 든 송운의 손이 일필휘지로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