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전생-185화 (185/275)

제185화

간만에 목적 없이 성을 빠져나온 독고백이 산길을 천천히 걸었다.

하늘은 맑았고, 날 또한 좋으니 점점 그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었다. 그가 걸어가는 길에는 어떠한 발자국조차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런 독고백의 뒤를 바짝 쫓아가는 휘였다.

벌써 수십 번은 입을 오므렸다 폈다 하는 것이 독고백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했다.

결국 굳은 결심을 한 듯 고개를 슬쩍 주억인 휘가 달싹이던 입을 열려던 순간.

“무슨 말이기에 그리 뜸을 들이는 것이지?”

독고백이 먼저 이를 읽었다.

“핫! 역시…… 들켰습니까? 기왕 들킨 거 하나만 여쭤보아도 됩니까?”

“물어봐.”

“주군, 송운이 주군의 무공을 익혔으니, 귀마병을 준다 한들 해치우는 건 순식간 아닙니까?”

그의 물음에 독고백이 무료한 표정으로 허공에 띄워 놓았던 공을 하늘로 날렸다.

후웅-!

퍽!

푸드득!

검은 쇠공이 순식간에 날아가 하늘을 날고 있던 애꿎은 새 한 쌍의 머리를 정확히 관통했다.

그 모습을 지루하게 바라보던 독고백이 천천히 입을 연다.

“시공검에는 완벽함이 없다.”

독고백의 말에 휘가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

“말 그대로다. 완벽함과는 거리가 먼 불완전한 무공이지. 시공검을 사용하면 반드시 시전자에게도 피해가 미친단 뜻이다. 한데 이전보다 강화된 귀마병이 이십도 아니고 오십, 거기에 혈교의 강시술까지 생각하면 아무리 운 동생이라고 해도 혼자선 막아 낼 수는 없다는 거지. 혹은, 무리를 해야만 하거나.”

분명 그가 지켜봐 온 송운이라면 무리를 해서라도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 결국 시전하고 말 것이다.

뭐가 그리 즐거운지 좀 전처럼 독고백의 지루하기 그지없던 표정이 환해졌다.

‘과연 운 동생이 이걸 이겨 낼 수 있을까?’

아마 송운이 여태껏 겪었던 그 어떠한 시련보다 가장 험난한 시련이 들이닥칠 터였다.

아니, 이것은 중원에서 살아가는 모두에게 포함되는 사항이었다.

그간 독고백이 일궈 온 텃밭의 작물이 얼마나 컸는지 시험을 해 볼 무대가 완성되어 가고 있으니.

당금 혈교에는 공손우경이 있다.

단지 독고백이 그에게 하나의 장난감을 던져 준 것뿐이나, 몇 대를 걸쳐 강시술을 이어 온 공손우경이다.

특히나 공손 씨 중 가장 유별나다고 들었다.

그런 공손우경이라면 반드시 강시와 귀마병을 가지고 무언가 흥미로운 물건을 만들어 낼 것이다.

‘그리된다면…….’

혈교의 힘은 정녕 결코 무시하지 못하게 된다.

“하면 이번에야말로 정말 혈교의 시대가 재림하는 건 아닐까요?”

“그럴 리 없을 게다.”

독고백의 답은 단호했다.

송운이라면 분명, 또 그를 놀라게 할 무언가를 보여 줄 거라 굳게 믿고 있었다.

그게 인맥이 되었든, 본인의 실력이 되었든.

“그나저나 그 자존심 강한 마교가 무림맹과 손을 잡았다는 사실은 정말 의외로구나. 쯧, 좀 더 치열할 삼파 싸움을 기대했는데…… 뭐 결국엔 마교와 무림맹은 다시 적이 되겠지만. 역시 구천악 그놈은 마인치고 지나치게 이성적이란 말이야.”

계속해서 미래는 변하고 있고, 최근 들어 그가 읽을 수 있는 천기(天機)가 줄어들고 있었다.

아니, 애당초 그에게 주어져서는 안 될 능력이었다.

한때 그는 인간이나 신선이 될 수도 있었다.

무로서 인간의 정점을 찍은 그는 선계(仙界)에 오를 자격이 주어졌지만, 올라가기 직전에 신선이 되는 것을 스스로 포기하고 인세에 남았다.

그런 독고백에게 주어진 건 천기를 읽는 눈이었다.

하나, 결국 그것은 독고백에겐 독이 되었다.

그를 비롯한 세상 모두에게.

세상의 평화, 협의 등과는 관심이 먼, 그저 무인으로서 순수하게 정점을 찍은 그에겐 그저 모든 게 도구에 불과했으니…….

천기를 읽으니 점점 지루함만이 남았고, 그 지루함을 잊기 위해 독고백은 그것을 악용하기 시작했다.

아차, 싶은 순간 선계에서 힘을 거두어들이려 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한데, 언젠가부터 눈을 감아도 잠을 청해도 억지로 보이던 그 모든 것들이 미세하게나마 줄어들고 있었다.

그러하다 보니 되레 그것이 독고백의 호기심을 증폭시켰다.

그 시점을 곰곰이 돌이켜보니, 이 또한 송운을 알고 난 뒤부터였다.

“여러모로 재밌는 아이야. 살려 두길 잘했어. 쿡쿡.”

휘는 독고백의 표정에서 어딘지 모르게 묘한 위화감이 흘러나옴을 느꼈다.

독고백이 변하고 있었다.

그것이 휘가 지난 몇 해간 애매하게 여겼던 모든 일을 해석해 주고 있었다.

하나 어차피 그것은 휘가 알더라도 관여할 필요도, 관여해서도 안 되는 영역의 것이다.

잠시 헛된 생각에 빠져 있다가 멀어진 거리를 후다닥 쫓아온 휘에게 독고백이 조용히 읊조렸다.

“곧 즐거운 일이 생길 거다, 휘아야.”

독고백이 입가에 호선을 그렸다.

* * *

무림맹으로 복귀한 후, 송운은 또다시 난감해질 수밖에 없었다.

본래 운양상단을 통해 송하를 보내려 했던 것인데, 이미 다녀온 사이에 운양상단이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 먼저 떠난 것이다.

애당초 상단의 일정이 있으니 그것을 나무랄 수도 없다.

다음에 올 상행은 아직 보름이 넘게 남아 있으니, 그 전에 보내려면 따로 보표를 구하거나, 혹은 송운 본인이 따라가야 한다.

하나 당금 무림맹에 비상이 걸린 이상 송운은 이곳을 떠날 수가 없다.

이도 저도 못 하는 난처한 상황에 놓인 것이다.

그때, 송운에게 누군가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혹 송소협께서 괜찮으시다면 제가 직접 송 소저와 함께 북경에 가도 되겠습니까?”

“황보 소협께서 말이오?”

송운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늘 웃는 얼굴을 유지하고 있는 게 조금 미심쩍긴 하나, 제법 긴 시간 동안 함께한 그의 행동으로 보아서는 심성이 나쁘진 않았다.

게다가 분명, 송하와 대진에서 황보운룡은 송하를 봐주고 있었다.

단순히 쓸데없이 기운을 빼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정말 송하를 배려하기 위해 한 발짝 물러서 준 것이다.

그걸 알기에 송운이 더는 그를 미워하지 않았다.

“당장은 딱히 할 것도 없고 중원 유람이나 하려던 참이니, 북경이라면 혼자라도 갈 생각이었습니다. 송 소협께서 마음이 내키지 않으신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요.”

둘 사이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송하가 먼저 칼같이 거절했다.

“싫어.”

하나 송운은 송하의 대답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황보운룡에게 시선을 돌렸다.

“오늘 밤, 술이나 한잔하겠소?”

“술이라…… 나쁠 것도 없지요.”

第四章. 인연

무림맹 근처에 있는 한 객점.

한동안 발 디딜 틈도 없이 북적였던 객점 안은 제법 한산해져 있었다.

활기찬 목소리로 황보운룡과 송운을 반긴 점소이는 이제 막 열세 살이나 되어 보일까? 꽤나 앳된 얼굴로 고개를 꾸벅 숙였다.

“어서 옵쇼! 어디로 뫼실까요?”

“조용한 자리 없느냐?”

“음…… 잠시만요!”

송운의 말을 들은 점소이가 빠르게 사라졌다.

위층으로 안내해 달라 할 수도 있었으나, 굳이 일 층에 자리를 잡은 것은 송운은 아직까지는 이런 소소한 곳이 더 편했기 때문이다.

끼익-

끄그극-

안에서 묵직한 무언가가 바닥을 긁는 소리가 몇 차례 들려왔고, 곧 점소이가 다시 송운 앞으로 뛰어왔다.

“헥, 헥. 안쪽에 자리를 마련해 두었…… 헥, 어요! 따라오시죠!”

그러고선 씩씩한 걸음으로 앞장선다.

그런 싹싹하고 해맑은 점소이의 모습에 송운은 위강이 떠올랐는지 입가에 절로 호선을 그린다.

안내를 받아 간 곳은 점소이의 말대로 사방이 틀어막힌 자리였다.

일반적으로 객잔 일 층에는 이러한 자리가 없었다.

송운의 말을 듣고선 급하게 만들어 낸 자리인 듯했다.

“그럼 주문하시려거든 저를 크게 불러 주세요!”

덥석.

송운은 둘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듯 빠르게 빠져나가려는 점소이의 옷깃을 붙잡았다.

그러곤 그의 손을 펼쳐 번쩍이는 은자 세 개를 내려놓았다.

짤그랑.

“헉! 이, 이, 이건 너무 많은데요? 대협! 한 개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은자를 보고선 눈이 솔방울만 해진 점소이는 쏜살같이 은자 두 냥을 송운에게 다시 돌려주었다.

보통의 아이들이었다면 그저 감사하다고 받아 갔을 텐데, 손사래를 치며 떠난 점소이의 모습에 송운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정이 많으시군요.”

그 모습을 유심히 들여다보던 황보운룡이 객잔에 들어온 이래 처음으로 말문을 열었다.

“보통 이런 곳에서 일하는 아이들은 집에서 가장 노릇을 하는 경우가 많더이다.”

“하나, 자칫 그런 호의가 그들에게는 동정으로 보일 수도 있는 법입니다.”

“그렇게 치자면 아까 황보 소협이 말한 호의도 동정이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사람이라면 응당 타인에게 호의를 가질 필요가 있는 법이라고 배웠소.”

송운의 말에 황보운룡이 잠시 말문이 턱 하고 막혔다.

“본디 학사 가문의 자제분이시라더니 겉보기와는 다르게 꽤 고지식하십니다.”

“나에 대해 제법 많은 것을 알고 있구려.”

송운이 미심쩍은 표정으로 바라보자, 황보운룡이 어깨를 들썩였다.

“뭐, 굳이 제가 알려 하지 않아도 이미 무림맹 주변으로 송 소협의 칭찬과 이야기가 파다하니, 두 귀가 있다면 모를 수 없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듣고 보니 그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

이미 송운은 그만큼 유명 인사였으니.

“큼, 이럴 게 아니라 뭐라도 시키도록 합시다. 식사 때가 돼서인지 배가 출출하군. 술은 화주면 되겠소?”

“애당초 술은 가리지 않으니, 송 소협께서 드시고 싶은 걸로 주문하십시오.”

황보운룡의 말에 송운이 자연스레 사람을 불렀다.

아까 그 점소이였다.

“대협! 식사는 고르셨어요?”

“동파육 한 접시에 소면 두 그릇, 그리고 화주 하나만 가져다주렴.”

“네이! 알겠습니다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헤헤.”

송운의 주문을 들은 점소이가 해맑게 웃으며 뛰어나갔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주문한 음식들이 차례대로 나왔다.

그때 송운의 눈에 무언가 이질적인 게 보였다.

“음?”

“어, 그게 만두는 소인이 넣은 주문입니다! 혹 실례가 되지 않으신다면야 맛있게 드셔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러고선 고개를 꾸벅 숙이는 것이 아닌가?

송운은 속으로 너털웃음을 지었다.

“알았다. 맛있게 먹으마. 고맙다.”

“그럼 소인은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혹시 필요하신 게 있으시거든 언제든 불러 주십쇼!”

송운의 칭찬을 들은 점소이는 살짝 볼이 상기된 채로 자리를 떠났다.

후루룩-!

남은 두 사내는 우선 앞에 놓인 소면을 들이켜기 시작했다.

소면이 사라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한 그릇 가득 들어찼던 소면이 밑바닥을 보일 무렵엔, 시켰던 화주도 동이 났다.

쪼륵-

한 병을 더 시키고 나서 잔에 남은 술을 따른 송운이 조심스럽게 궁금했던 질의를 꺼냈다.

“한데 황보 소협은 어이하여 아직까지 본가로 돌아가지 않고 이곳에 머물고 있는 것인지…… 물어도 되겠소?”

“…….”

송운의 질문에 잠시 머뭇거리며 입을 꾹 다문 황보운룡의 모습에 송운이 속으로 아차 싶었다.

괜한 걸 물어봐 미안하다며 사과를 하려던 참이었다.

“내가 초면에 …….”

“제겐 본가가 따로 없습니다.”

시종일관 미소를 잃지 않았던 황보운룡의 미간이 찰나의 순간 찌푸려졌다 펴졌다.

하나 이를 놓칠 리 없는 송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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