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전생-184화 (184/275)

제184화

재빠르게 무복으로 갈아입은 송운과 평서란이 문을 열고 나왔다. 밖에는 이미 준비가 끝난 무림맹 무인들이 열을 맞춰 서 있었다.

오는 길에 상황을 간결하게 들으니, 최근 중원 곳곳에서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느낀 제갈염이 백능의 허가를 받고 암암리에 무림맹의 암영맹군단(暗影盟軍團)을 파견한 사이 일이 터진 것이다.

더구나 혈교가 이렇게 대대적으로 움직임을 드러낸 적이 없었기에, 무림맹에 비상이 걸렸다.

하나, 혹여 무림맹이 빈 사이에 적이 들이닥칠 수도 있다는 우려 역시 배제할 수 없었다.

무림맹 내에 배치해 두어야 할 최소한의 병력을 제외하고 모을 수 있는 만큼 모인 최대한의 숫자는 총 스무 명이었다.

상대는 혈교일 가능성이 몹시 높기에, 어쭙잖은 실력으로는 괜한 죽음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 상위 무인들만 모은 탓이다.

그때, 둘러보던 송운과 평서란의 눈에 익숙한 이의 인영이 비추었다.

먼저 말을 걸기도 전에, 그가 먼저 송운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역시 나오셨군요.”

“황보운룡?”

“아무래도 다들 다급해 보여 자진해서 나서기로 했습니다. 한 손이라도 더 거들면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말입니다.”

황보운룡의 얼굴엔 여전히 미소가 걸려 있다.

‘참 볼수록 이상한 녀석이군.’

그의 말대로 사태가 이러하다 보니 황보운룡이 자진해서 나서는 걸 막은 이는 아무도 없었다.

비록 천하 무림 대회의 준우승자가 되긴 하였으나, 그의 실력도 제법 쓸 만할 것이라는 판단하에 내려진 결정이었다.

한데, 낯익은 인영이 하나 더 보였다.

삿갓을 눌러쓴 송하였다.

“송하야, 네가 대체 왜 여기에 있는 것이냐?”

송운의 얼굴에 약간의 노기가 어렸다.

상황의 설명이 필요했다.

“아, 어. 그게…… 나도 도움이 되고 싶어서…….”

쭈뼛쭈뼛 삿갓을 내린 송하가 말하는 사이 송운의 얼굴에 점점 노기가 어렸다.

“당장 들어가거라. 얌전히 기다리고 있다가 내일 운양상단이 출발하는 즉시 따라가도록 해.”

송운의 단호한 말에도 송하는 요지부동이었다.

“어찌 대답이 없느냐? 지금 네가 따라가려는 곳이 대체 어떠한 곳인 줄 알고……!”

“하지만 오빠를 찾는 소리를 들었단 말이야. 분명 오빠가 갈 거라고 생각했다고…… 오빠가 가면 나도 갈 거야.”

송하는 노기 어린 송운의 목소리에 점점 목소리가 기어들어 갔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의견을 굽히지 않는다.

“아가씨…….”

이번만큼은 평서란도 나서 보려 하였으나, 송하는 결코 이번엔 물러나지 않겠다는 의지로 똘똘 뭉쳐 있었다.

“사지에 오빠 혼자 보낼 수 없어.”

“더는 너의 어리광을 받아 줄 수가…….”

그때, 송운의 말이 끝나기 전에 파견 단장이 큰소리로 외쳤다.

“곧바로 출발한다! 대열에서 벗어나지 마라! 서둘러라!”

“예!”

“우선은…… 출발해야 할 것 같아요, 운 가가.”

평서란이 송운의 옷깃을 슬쩍 잡았다.

“후우…… 우선 다녀온 뒤에 보자. 대신 내 곁에서 절대 떨어져선 안 된다. 알았느냐?”

“응!”

그의 답에 그제야 송하의 얼굴이 활짝 피었고, 송운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 * *

꾸려진 단원들은 송운을 제외하고서는 대다수가 절정의 끝자락에서 초절정 사이에 머무르는 이들이었다. 그들이 최대한 빠르게 속력을 내고 있다고는 하나, 송운이 맞춰 주어야 하는 수준이었다.

‘이대로 가면 늦는다.’

한동안 그들을 쫓아다녔던 송운으로선, 혈교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치고 빠지는지 몸소 겪어 봤기에 급급해져 가고 있다.

결국 속력을 더 내기 위해 송운이 단주의 곁으로 달려갔다.

아무리 송운의 실력이 뛰어나고, 본디 무림맹의 소속이 아니라고 하여도 일단은 함께 움직이기로 응한 상태다. 엄연히 단주가 있는데 개인행동을 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아무래도 저 혼자라도 더 속력을 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해도 괜찮겠습니까?”

급하게 꾸려진 잠풍단(潛風團)의 단주를 맡고는 있으나, 이미 송운의 실력을 익히 들어 알고 있는 담벽남(覃碧藍)이 고개를 끄덕였다.

송운이 작금 그의 단원으로 들어와 있다고 한들 황궁의 사람이었다.

쉽게 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더구나 한시가 급한 지금, 그가 먼저 가겠다는데 굳이 말릴 생각은 없었다.

“그리해 주시겠습니까?”

“하면, 먼저 가서 동태를 살필 테니 최대한 서둘러 주십시오.”

담벽남과의 이야기를 마친 송운이 다시 평서란과 송하의 곁으로 돌아왔다.

“란 매, 내 먼저 가 볼 터이니 송하를 부탁하오. 란 매 역시도 몸조심해야 하오.”

“네. 도착해서 봬요. 운 가가도 몸조심하시고요.”

마지막 말을 남긴 송운은 순식간에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눈 깜짝할 새에 사라졌다는 말이 어울리는 장면이었다.

‘정말 대단하구나, 송운.’

송운의 행동을 하나도 빠짐없이 지켜보던 황보운룡이 속으로 감탄사를 내뱉는다.

이미 한번 손속을 겨루어 보았으나, 여태껏 자신의 스승을 제외하고선 단 한 번도 자신의 공간감을 공간감으로 뚫어 버린 이는 없었다.

무공이 뛰어난 자라고 해도 황보운룡의 타고난 공간감을 따라가기는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가 폐쇄적인 곳에서 평생을 살아온 탓도 있을 터다.

하나 아마 모르긴 몰라도 중원의 강호 내에서 황보운룡만큼의 공간감을 지닌 이는 손에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역시 재밌는 사람이야.’

황보운룡의 가슴에 또다시 호승심이 차오른다.

“우리도 서둘러 따라간다! 모두 속력을 더 내라!”

“예 단주님!”

* * *

얼마를 달렸을까.

한달음에 달려간 송운은 허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아니, 달려오면서도 이미 어느 정도 예상을 하긴 했다.

이곳의 상황을 전하기 위해 달려왔던 사신이 무림맹에 당도한 시간, 급하게 단을 꾸린 시간, 그리고 다시 이곳까지 달려온 시간을 모두 합치면 이미 상황이 종료되기까지는 충분했으니 말이다.

“……젠장.”

평소의 송운에게서 좀처럼 듣기 힘든 욕지기가 작게 흘러나왔다.

주변을 돌아보니 이미 습격을 당한 마을은 황폐해져 있었으며, 곳곳에 불이 나 시체 타는 냄새가 피어올라 송운의 코를 괴롭게 하고 있었다.

푸드득!

까악-! 까악-!

오직 까마귀 떼만이 먹잇감을 찾아 허공을 맴돌고 있을 뿐이다.

그야말로 악귀가 지나간 듯한 흔적.

아니, 악귀보다 더한 인간들의 짓이었다.

“오랫동안 숨어 지낸 놈들이라 치고 빠지는 것 하나만큼은 정말 잽싸구나.”

놓쳤다는 생각에 아쉬운 마음이 가장 컸지만, 한편으론 위험할지도 모르는 전장으로부터 송하가 휘말려 들지 않을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드는 송운이었다.

‘어쩔 수 없는 오라비의 마음인가…… 후우.’

송운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파였다.

치익-

차마 마을을 이대로 둘 수 없었던 송운은 마을의 우물을 찾아 물을 길어 불을 끄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아직 큰불로 번지진 않았기에, 얼마 걸리지 않아 불을 모두 끈 송운의 눈에 시신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욱…….”

이미 전장에 익숙해진 송운이지만, 언제 보아도 불에 탄 시신만큼은 적응이 되지 않는다.

마을 곳곳을 한참을 둘러보았을까.

“뭔가 이상하군.”

그동안 보아 왔던 곳과는 뭔가 상당히 다른 이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동안 혈교가 스쳐 간 현장의 흔적은 거의 대다수 납치 위주였다.

그들의 목적이 단순한 살상이 아닌 강시를 만들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한데, 이번엔 시신이 지나치게 많이 방치되어 있었다.

그래 봤자 열 구가 채 못 되긴 하나 이 자리에서 죽은 시신이라도 그들에겐 딱히 별다를 것이 없기에 여인들을 제외한 사내들의 시신은 거의 씨를 말렸는데 이번만큼은 달랐다.

송운이 한참 머리를 싸매고 있을 시점에, 잠풍단이 속속히 도착하기 시작했다.

‘휴.’

송하와 평서란이 도착한 모습을 보고 송운이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오셨습니까?”

가장 먼저 도착했던 담벽남이 송운에게 다가왔다.

그는 송운의 얼굴에서 이미 모든 걸 읽었는지 기운 빠진 목소리로 물었다.

“이번에도 역시입니까?”

“애석하지만 그렇습니다. 도착했을 땐 이미 시신만이 남았을 뿐, 산 사람의 흔적은 없었습니다.”

“허어…… 이거 아무래도 맹주님께서 실망이 크실 것 같군요.”

안타까움이 배인 목소리였다.

그것은 송운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어찌 이리도 답답하리만큼 잡히지 않는 것일까.

이쯤 되니 이제는 혈교는 사실 없는 무리이고, 누군가 지어낸 환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나 그렇다고 치기엔 눈앞에 참혹한 증거가 있으니,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답답한 상황이 반복되는 것이다.

“한데, 이곳은 뭔가 이상합니다.”

“무엇이 말입니까?”

허탈함에 물들었던 담벽남의 눈빛에 잠시 이채가 돌았다. 단주로서 무언가 하나라도 얻어가는 게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크니 말이다.

“깔끔하게 절단된 시신들도 있고, 불에 타도록 놔둔 시신들도 제법 있습니다. 여태껏 혈교에 대해 조사해 봤지만 이러한 현장은 처음 봅니다.”

송운의 말을 들은 담벽남이 신음을 흘렸다. 말뜻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탓이다.

이를 알아챈 송운이 재빨리 다음 말을 이었다.

“자세히 말하자면 그들은 흔적을 남기지 않습니다. 놈들이 직접 남아 있지 않은 이상 말입니다. 보통 그들이 다녀간 곳에는 살아 있는 자이건 시신이건 사내라면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데려간다는 뜻입니다. 한데 이곳에는 대략 열 구의 시신이 버려진 채 뒹굴고 있더군요. 그것도 모두 사내였습니다.”

“그 정도는 손이 부족해서 두고 갈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의문을 품은 담벽남이 물었고, 송운이 고개를 내저었다.

“여태껏 제가 본 현장에는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더구나 시신 한 구가 아쉬운 녀석들입니다. 그러니 더더욱 의심이 듭니다. 이번이야말로 정말 혈교를 빙자한 다른 무리일 수도 있을 거란 추측입니다.”

“아니 대체 어떤 놈들이 이런 짓을 벌인단 말입니까!”

담벽남의 말대로였다.

예전 같으면 마교라고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딱히 마교를 믿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굳이 이런 식으로 중원을 들쑤실 이유가 없었다.

오죽했으면 먼저 무림맹에 손을 내밀었을까.

그렇다고 해서 사파도 아닐 것이다.

사파는 오래전 싸움으로 인해 대다수가 무너져 내린 상황이었으니까.

“혈교가 아니라면 그들의 추종자가 생겼을 수도 있어요. 혹은 우리가 모르는 동맹이거나…….”

어느새 곁으로 다가온 평서란이 자연스럽게 송운과 담벽남의 대화에 참여했다.

“동맹?”

담벽남이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무림맹에도 분열이 일어나고 있지 않나요?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

“그건…….”

평서란의 날카로운 대답에 차마 반박하지 못한 담벽남이 입을 꾹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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