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0화
第二章. 일석이조
“너, 너는 누구냐? 여봐라! 경비병은 어디 갔느냐!”
소리에 놀란 오사총이 허둥대며 외쳤으나, 이미 모두가 송운의 등장에 당황하여 딱딱하게 굳은 지 오래였다.
‘이거 어디서 많이 본 장면 같은데…….’
주변을 한번 스윽 둘러본 송운이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한심함이 가득한 눈빛으로 오사총을 쳐다보았다.
“쯧, 늘 똑같은 대사로군. 질리지도 않나?”
툭툭.
송운이 자신의 어깨에 묻은 그가 직접 부숴 버린 벽의 잔재를 털어 내며 물었다.
처음에 양조광이 납치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혹여나 혈교가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가득했다.
그러던 와중, 다행히도 어떤 상가에서 벌인 짓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나마 마음이 가라앉았다.
조금 차분해진 목소리로 조용히 송운이 읊조렸다.
“그래서 우리 조광이는 어디 있습니까? 두 번씩 같은 말 반복하게 하지 않았으면 하는데.”
“…….”
하나, 그들 중 그 누구도 답할 수 없었다.
송운이 억누르곤 있으나, 쉽사리 진정되지 않는 살기는 숨조차 쉬기 힘들 만큼 그들의 몸을 옥죄고 있는 탓이었다.
입을 여는 것은커녕 미세한 움직임조차 쉽지 않아 보였다.
‘그 많던 놈들은 다 어디 가고! 이런 ……우라질! 끄으으!’
만일 무인이라도 이곳에 있었다면 어찌해 보려 했겠지만, 제법 많은 돈을 투자해 곳곳에 배치해 두었던 호위들은 그 꽁무니도 찾을 수 없었다.
“아, 미안합니다. 나도 모르게 조절이 안 됐네.”
스르륵.
송운이 어깨를 으쓱이자, 그제야 오사총과 그 외 떨거지들을 감싸던 공기가 헐거워졌다.
“커헉……!”
송운이 입가에 조소를 띠며, 몸이 굳어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오사총에게 다가갔다.
콰직!
주륵-
조용히 송운이 탁상에 있던 사과를 하나 들어 박살 냈다.
“이…… 오, 오지 마!”
“이거 봐라. 대답 잘하시네요? 난 또 오줌 지리고 부끄러워서 말 못 하는 줄 알았지. 내가 그렇게 인내심 좋은 녀석은 아니라서……. 자, 기회는 줄 만큼 줬습니다. 계속 말하지 않겠다면 나도 더 이상 말로 타이르지 않을 겁니다.”
송운은 오사총의 바지춤 밑으로 흥건하게 고여 버린 누린내 나는 무언가를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린 채 코를 움켜쥐었다.
“뭣들 해! 어, 어, 어서 데려와! 아니, 모셔와!”
“예, 옙!”
가장 빠르게 정신을 차린 누군가가 소리쳤고, 쏜살같이 방을 빠져나갔다.
“흐음, 제법 말 잘 듣네. 어떤 멍청한 녀석들은 맞아야 정신을 차리던데…… 생각보다 말이 잘 통해서 좋군. 그래도 제법 큰 상가의 소가주라 이건가.”
송운이 혼잣말로 조용히 읊조렸다.
그러곤 이미 제법 오랜 시간이 지난 현령 사건을 떠올렸다.
현령이 혈령이 되도록 죽이 되고 나서야 그 기세가 완전히 꺾였던 것을 생각하면 이쪽이 상인답게 오히려 머리는 더 빨리 굴러가는 편이다.
혹여나 말을 듣지 않으면 어찌하나, 자신이 이 이상 참을 수 있을지 엄청난 고민을 했으나 다행히도 상대는 말귀를 잘 알아듣는 돼지였다.
그렇게 정적 속에서 반 각 정도의 시간이 흘렀고, 집무실의 문이 열렸다.
끼이익-
“데, 데려왔습…… 헉……! 헉! 니다!”
타닷!
송운이 곧바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양조광에게 달려갔다.
“조광아!”
기절한 상태인지 양조광의 몸이 힘없이 땅바닥에 쓰러지다시피 했고, 송운이 빠르게 받아 들었다.
그때, 틈을 타서 슬그머니 신호를 보내려던 오사총에게 송운이 친절하게 말을 건넸다.
“혹시나 해서 말해 두는 건데…… 딴짓하려거든 마음 접는 게 좋을 겁니다. 조금 전에도 봤겠지만, 전 허튼짓만 하지 않는다면 사람을 패지 않거든요.”
말을 끝내고선 오사총을 노려보는 눈은 그대로 두고, 입가로만 호선을 그리는 송운이었다.
그 모습에 조금씩 몸을 움직이려던 오사총이 흠칫거리며 멈추었다.
염라대왕을 마주한 것만큼이나 끔찍했기 때문이다.
다시 송운이 기감을 끌어올려 모두를 묶어 둔 채, 양조광을 눕히고선 상태를 살피기 시작했다.
‘맥박 정상, 동공 반응 이상 무, 골절 없음……. 후, 혈을 짚어 잠재웠군.’
양조광의 상태를 확인한 송운이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혹여나 잘못되진 않았을까 걱정했던 마음이 놓이며, 긴장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만약 그가 잘못되었다면 이 자리에서 무슨 짓을 벌였을지는 송운 스스로도 장담하지 못했다.
송운이 다시 한번 오사총 무리를 향해 고개를 틀었다.
그들의 불행이라면 하필 건드린 이가 송운의 친우라는 사실이며, 그중 다행이라면 양조광의 몸에 특별한 외상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마 마지막까지 천향신폭을 터뜨려 준 양일청이 아니었더라면, 이에 재빠르게 운양상단이 움직이지 않았더라면, 양조광은 이미 어느 한 곳이 불구가 되었거나 살아남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더불어 양조광을 이용해 하나라도 더 뜯어먹을 수 없을까 고민했던 오사총의 미련한 욕심이 있었기에 더더욱 안전한 구출을 해낼 수 있었던 것이리라.
그들의 반응을 확인한 송운이 시녀들을 향해 말했다.
“이곳에서 가장 높은 사람을 불러오세요. 이 일과 관련된 모든 처벌은 그분과 대화를 나눈 뒤 결정하겠습니다.”
“아…… 으!”
오사총의 눈동자에 좀 전보다 더더욱 기괴하게 겁에 질렸다.
‘그, 그건 절대 안 된다!’
이에 그가 반발하고 싶어 억지로 힘을 쥐어짜 냈으나, 묶여 있는 입이 움직일 리 만무했다.
“네, 네!”
송운의 말을 듣자마자 가장 행동력이 빠른 시녀 한 명이 재빠르게 방 안을 뛰쳐나갔다.
‘망했다…….’
오사총의 살에 파묻혀 사라질 듯한 두 동공이 좌절에 물들었다.
* * *
태원상가에 비상을 알리는 불이 들어왔다.
한동안 잠잠하나 싶던 소가주 오사총이 큰일을 치른 탓이다.
원목으로 된 침상에 드러누운, 허연 백발의 노인의 안면에 가뜩이나 깊게 파인 주름이 더욱 도드라졌다.
체구가 왜소한 그는 앙상한 팔을 들어 올려 지끈거리는 이마를 꾹꾹 눌렀다.
최근 지병이 악화되면서 어쩔 수 없이 차근차근 오사총에게 상가를 넘기는 일을 진행해 나가고 있던 차였다.
불안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한동안 조용히 지내는 모습에, 그래도 철이 들었다고 생각했던 오사달인데, 이렇게 큰일을 치를 줄이야.
“결국 사총이 이놈이……! 허억…… 쿨럭쿨럭……!”
“가주님!”
오사달이 가쁜 숨을 들이마시며 기침과 함께 피를 토했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총관이 급히 그를 부축했다.
“허어…… 됐다. 난 괜찮으니…… 속히 그분들을 모셔 오너라.”
“……알겠습니다.”
총관이 자리를 비웠고, 곧 건장한 체구의 사내가 다른 이를 둘러업은 채 방 안으로 들어섰다. 이에 오사달이 힘겹게 몸을 일으키며 말을 이었다.
“태원상가의 가주, 오사달…… 쿨럭! 이라고 하오.”
오사달의 병환이 깊은 모습을 본 송운의 안면에 잠시 안타까움이 스쳐 지나간다.
괜스레 집에 계신 아버지 생각이 난 것이다. 하나 이것도 잠시였다.
표정을 겉으로 드러내는 건 어떠한 방향이건 거래를 하러 온 자에겐 좋지 못한 일이었다.
“몸 상태가 영 좋지 못하신 것 같군요. 누워서 대화를 나누셔도 됩니다.”
송운은 그의 말투에 딱히 큰 신경은 쓰지 않았다.
이 일에 직접적이든 간접적으로든 관여한 이도 아니며, 이미 겉으로 드러난 연세만도 대략 망백(望百)을 바라보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망백의 나이.
당장 내일 아침 이승을 떠나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지 않은가.
송운이 아무리 무공을 익혔다 한들 본질은 학사에 있다. 오히려 흰머리 성성한 그가 존댓말을 쓴다니 송운이 더 불편할 지경이다.
“허어, 그러하여도 되겠소? 하면 그쪽 등에 업힌 이도 침상에 눕히는 것이 좋겠구려.”
간신히 기력을 찾은 듯 보이는 오사달이 다시 한번 물었고, 송운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 모습에 시녀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반가좌(半跏坐)를 취한 오사달이 깊이 고개를 숙였다.
“저는 현재 북경에 있는 송가의 장남. 송운이라 합니다. 더불어 운양상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송운의 소개를 들은 오사달이 말을 이었다.
“송운, 그리고 운양상단이라…… 미안하오…… 쿨럭! 내가 늘그막에 자식을 얻어 너무 망나니로 키운 탓이오.”
“가주님의 사과는 받지 않겠습니다. 정말 사죄를 해야 할 사람은 일을 벌인 소가주님이니까요.”
“하면, 원하는 것이 무엇이오?”
순간, 오사달의 다 죽어 가던 눈빛에 번쩍 생기가 돌았다.
분명 무언가 큰 거래가 오갈 것이라는 오랜 세월 상인으로서 살아온 직감이 오사달을 깨운 것이다.
“태원상가의 거래권의 절반을 넘겨주십시오. 그리하시겠다면 이번 소가주님의 치부는 조용히 덮고 넘어가 드리겠습니다.”
“……뭐라? 절반?!”
잠자코 듣고 있던 총관의 두 주먹이 불끈 쥐어진다.
태원상가가 가진 거래권의 양은, 산서성에서 나오는 거의 대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한데 이것의 절반을 달라니?
하나, 화가 잔뜩 올라온 듯 보이는 총관과는 달리 오사달의 얼굴에는 깊은 고심과 함께 차분함이 비쳤다.
“크음…… 차 총관.”
달래듯 오사달이 나지막이 부르니, 그제야 차 총관이라 불린 이가 흥분을 가라앉혔다.
하나, 여전히 분에 겨운 표정은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시겠소?”
송운은 그 말에 고개를 주억였다.
시간을 준다고 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이미 이 거래의 주도권은 송운에게 달려 있으니.
“고맙소.”
말을 마친 오사달이 조용히 눈을 감고 엄지손가락을 이마에 가져다 대었다.
깊은 고심에 빠질 때마다 보이는 그의 오랜 버릇이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아들을 잘못 가르친 이 애비의 잘못도 있으니, 나에게 그 책임을 물으시는 건 어떠하겠소이까.”
“이미 가주님께서는 아드님이신 소가주, 오사총에게 가업을 넘기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번 사건으로 인해서 저희 운양상단이 입은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오랜 시간 믿고 일을 맡겼던 호위단을 통째로 잃었으며, 본래 제때 무림맹으로 들어가야 했던 물목이 제때 도착하지 못하여 거래의 혼선을 빚었습니다. 거기다 가장 중요한 상단주를 납치해 가기까지 하였으니, 저 역시도 가벼이 넘어갈 수가 없는 일입니다.”
“허어……! 쿨룩쿨룩!”
송운의 상세한 상황설명을 듣고 있자니, 눈앞이 새카매졌다.
한 상단을 꾸려왔던 상단주로서 그 의미를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곳으로 오기 전 전해 들은 것보다 훨씬 더 상황이 좋지 못했다.
“가주님!”
송운의 말을 듣고 있자니 점점 혈압이 올라오는지, 오사달이 깊은 기침을 내뱉었다.
하나 그 모습이 안타깝다고 하여 봐줄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아니, 사실 이 정도면 이미 많이 봐주는 셈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감히 양조광을 건드렸다.
송운은 이미 화가 머리끝까지 난 상황이었다.
당장 오사총을 죽을 만큼 패 놓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인 것이다.
더불어 이번 일을 제대로 단죄하지 않는다면 운양상단을 얕보고 언젠간 분명 다시 보복을 해 올 터.
이번 기회에 운양상단의 크기도 늘릴 겸, 결코 그냥 물러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 송운의 생각이었다.
“만일 상단주가 무사하지 않았더라면 저는 이것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했을 겁니다. 하나, 상단주가 무사하니 적당한 선에서 끝맺는 것이 낫다고 여겨 이 정도 선에서 정리한 것입니다.”
송운의 확고한 의지가 목소리에서부터 드러났다.
더 이상 여지를 주지 않겠다며 단단히 못을 박은 셈이다.
쾅!
“아무리 우리 소가주님께서 잘못을 했다고 한들 거래권의 반은 너무 과한 요구 아니오!”
이에 더는 못 참겠다는 듯 차 총관이 노호성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