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9화
양조광의 호위단장인 양일청(楊一淸)이 재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어차피 이놈들의 목적은 단주님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굳이 이곳을 파고들었을 리 없지.’
놈들이 만일 단순히 절도가 목적이었다면 애당초 숙소에 머물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을 것이다.
물건을 노렸다면, 행렬을 이어 갈 때가 덮치기엔 더 좋았으니까.
흑의인들은 정확히 야심한 밤, 이들이 모두 자리를 잡기까지 기다린 것이다.
마치 사냥꾼이 사냥감을 잡기 위해 오랜 시간 땅굴을 파고 기다리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호위단장 양일청이 슬쩍 눈살을 찌푸렸다.
“어디서 보낸 놈들인지는 모르겠으나, 곱게 물러난다면 없던 일로 묻어 주마.”
하나 그런 양일청의 말에 콧방귀를 뀌며 흑의인의 수장이 되레 맞받아쳤다.
“큭, 너희야말로 단주를 내놓고 물러난다면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겠다. 살고 싶다면 물러나라.”
서로 팽팽한 기 싸움을 나눌 무렵.
“……단주님, 절 따라오시지요.”
백리풍이라 불린 이가 조용히 양조광의 뒤를 확인하며 그를 이끌었다.
하나 재빠르게 그 낌새를 알아차린 흑의인의 수장이, 정확히 양조광이 있는 위치에 날카로운 암기를 날렸다.
쌔애액-!
퍽!
“어딜!”
“막아서라!”
“쯧…… 어리석은 놈들. 어쩔 수 없군. 모두 죽이고 단주만 살려서 데려간다!”
그 말을 기점으로 양쪽 무인들의 검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쌔액-!
카가강!
검술보다는 암기술에 더욱 능해 보이는 흑의인들은 재빠르게 몸을 비틀며 호위단의 검을 피했고, 이내 호위단이 양조광을 중심으로 진을 펼쳤다.
하나, 여러 가지 암기가 날아다니니, 초반에 힘이 실렸던 호위단이 조금씩 밀리기 시작했다.
단순히 자신만 피하면 끝나는 흑의인들과는 달리, 호위단은 양조광을 암기로부터 보호해야 하는 탓이었다.
파밧-!
단순히 싸움이 목적이 아닌 호위가 목적이다 보니 생기는 허점이었다.
“날려라.”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상보다 과정이 길어지는 탓에, 점점 초조해진 흑의인의 수장이 조용히 읊조렸고, 곧 커다란 폭발음이 울렸다.
‘이런……!’
퍼벙!
파바바박!
“컥…… 쿨럭!”
퍼벅!
“크헉……!”
순간, 허공으로 날린 날카로운 암기들이 호위단의 어깨에 박혔다.
주로 소단위 암살에 사용되는 비격파뢰폭(飛擊破雷爆)이었다.
비격파뢰폭이 무서운 이유는 직접적인 살상보다는 암기의 끝에 현음부시독(玄陰腐屍毒)이 묻어 있다는 것이었다.
썩어 가는 주검에서 뽑아낸 독으로 이를 맞는 순간부터 서서히 살점과 정신이 부식되어 가는 제법 치명적인 독이었다.
푸슉-
‘독…… 인가. 크윽.’
양일청이 작고 뾰족한 암기를 뽑아내었다.
양조광에게까지 미칠까, 양일청이 몸을 날려 막았을 때 박힌 것이었다.
실상 암기는 몸에 그리 깊게 박히지 않았으나, 이미 그 주변으로는 살이 검게 물들어 가고 있었고, 혈액까지 침투한 후였기에 점점 의식까지 흐려졌다.
“운양상단주의 상태부터 확인하라. 철수한다.”
“예.”
흑의인들의 동작은 빨랐고 이내 양조광의 혈을 짚어 기절시켜 둘러업은 후 허공으로 사라졌다.
“단…… 주님…….”
치익-
퍼버벙!
그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던 양일청은 양조광의 품속에서 떨어진 천향신폭까지 기어가 간신히 터뜨린 후에야 정신을 잃었다.
마지막까지 자신의 사명을 다한 것이다.
* * *
푸드득-!
푸드드득!
조용하던 운양상단에 비상이 걸렸다.
운양상단에 온 후로 단 한 번도 격한 반응을 보이지 않던 새장에서 새가 날아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움직임이었다.
쾅!
“부, 부 단주님!”
“무슨 일입니까? 대체 무슨 일이기에 이 난리를…….”
위강의 의문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새장을 직접 들고 온 곽 총관의 손끝에 이미 위강의 시선이 고정된다.
그토록 터지지 않길 바랐건만, 천향신폭의 향을 맡은 새가 정신없이 이리저리 날아오르고 있었다.
쾅!
“이런 젠장! 당장 송 공자님과 천조회에 서신을 날리세요. 어서요!”
한동안 평화로웠던 운양상단의 기류가 급격하게 울렁이기 시작했다.
* * *
짹짹-
푸드드득!
“……하암.”
어제의 바쁜 일정을 마친 채, 오래간만에 평화로운 아침을 맞이한 송운은 창가에서 부산스러운 새소리가 들리자 잠에서 깨어났다.
송운이 슬며시 눈을 떠서 새를 바라보니 그 발에 익숙한 무언가가 묶여 있었다.
“서신 아닌가요?”
“그런 것 같소.”
그 옆에서 동시에 눈을 뜬 평서란이 먼저 반응했고, 이내 창문을 열었다.
서신을 풀자마자 새는 푸른 창공을 향해 날아갔다.
“…….”
서신을 펼친 송운은 순간 숨이 턱 막혀 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송 공자님.
양 단주님께서 직접 무림맹으로 상행을 꾸려 가시던 도중 납치를 당하신 것 같습니다.
하진현 부근에서 그 흔적이 끊겼습니다. 상단의 물품에는 손을 대지 않은 걸 보면, 애초부터 단주님이 목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최대한 빨리 움직이곤 있으나 송 공자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제발 도와주십시오.
서신은 제법 형식을 갖추었으나, 위강의 다급한 마음이 절로 눈에 보였다.
“아무래도 조광이가 납치를 당한 것 같소.”
“납치라뇨?”
평서란의 눈이 동시에 솔방울만 해졌다.
“말 그대로라오. 설마 혈교는 아니겠지?”
송운의 목소리에선 불안감이 가득하다.
하나 이럴 때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송운이 빠르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대오 형님.’
아마도 지난번 일 이후로, 그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연락선일 터다.
“혈교가 아무리 날뛴다고 해도, 설마…… 거기까지 손을 미쳤을 리는 없지 않겠어요?”
“부디 그러길 바라야겠지. 일단은 대오 형님께 연락을 취해야겠소. 더불어 매 각주에게도…….”
심각한 얼굴로 붓을 집어 든 송운의 손길이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빠른 속도로 서신을 작성한 송운이, 이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이번 일은 내가 직접 나서야 할 것 같소. 이곳을 좀 부탁하오, 란 매.”
송운은 자리를 비워야 하니, 대신해서 송하와 황궁의 일을 부탁한다는 의미이리라.
곧바로 평서란이 고개를 주억였다.
“이곳은 걱정 마세요. 어차피 저의 일인 걸요. 부디 몸조심하세요.”
하필이면 이러한 불안정한 시기에 벌어진 사건이기에 더욱 다급할 마음이라는 걸 아는 평서란이 송운의 손을 꼭 쥐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듯, 서두르다 더 큰 일을 치를까 걱정이 된 탓이다.
“란 매가 걱정할 일은 절대 없도록 하지. 그럼…….”
말을 마친 송운의 신형이 빠르게 사라졌다.
* * *
대오를 시작으로 매영령에게도 서신이 전해졌고, 그들은 모두가 한마음으로 양조광을 찾아 나섰다.
겉으로 단주가 납치당했다는 소문이 나돌면 운양상단이 손해를 입을 수 있다고 우려하여, 입단속을 철저히 시키는 것은 위강과 곽 총관의 몫이었다.
그도 당장 나서서 양조광을 찾는 데 기여하고 싶었으나, 단주가 부재인 상태에서 부단주까지 자리를 비우는 것은 상단에 상당히 위험한 일이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송 공자님께서 직접 나서셨으니 괜찮을 거야. 곧…… 무사히 돌아오실 거다. 위강아, 침착하자.’
그들이 초조해하는 동안에도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 * *
“이, 이를 어쩝니까?”
“닥쳐! 조용히 하라고!”
뱃살이 적어도 열 겹은 접힐 만큼 육중한 몸집에 키는 대략 육 척 정도 될까.
이미 이목구비는 살에 파묻힌 지 오래되어 보이는 사내의 얼굴에 불안, 초조함이 가득했다.
어찌나 초조해 보이는지 그 조그마한 움직임에도 불안감이 가득했다.
‘아무래도 너무 큰 물건을 건드린 건가. 하…… 이 거지 같은 자식들이!’
그는 산서성(山西省) 태원(太原)에 자리 잡은 태원상가의 소가주, 오사총(吳思聰)이었다.
연세가 지긋한 초대 가주이자 아버지인 오사달(吳思達)을 대신하여 얼마 전부터 소가주인 그가 상단을 물려받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자식이라고는 달랑 하나뿐인 탓에, 영 못 미덥지만 쓸데없는 잡음을 없애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러던 차에 얼마 전, 오사총에게 하북성에 있는 크고 작은 상단의 단주들이 찾아왔다.
용건은 간단했다.
자신들이 산서성과 거래를 트고 싶으니 가장 큰 상가인 태원상가인 소가주의 허락을 구한다는 것.
마치 간이고 쓸개고 모두 다 떼어 줄 만큼 아부를 하는 그 모습에 속내를 알면서도 기분이 좋아진 그는 아주 조금의 거래권을 쥐여 주었다.
그러자 그들은 더욱 많은 돈과 재물을 가져다 바쳤고, 그렇게 친분을 쌓으며 오사총과 가까워진 듯한 느낌을 받았을 때, 은밀한 거래를 제안했다.
“소가주 어르신, 요즘 운양상단이 상도덕도 없이 너무 나서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운양상단을 처리하는 일에 저희가 나선다면 쉽사리 들통나겠지요. 하나, 저희가 직접 움직인다면 너무 쉽게 들통날 테니, 섣부르게 움직일 수도 없어 고민입니다. 해서 그 일을 소가주 어르신께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태원상가는 하북성에 위치하고 있으니, 만일 일이 잘못된다고 하여도 의심받을 일은 없을 것입니다. 소가주께서는 그저 은밀하게 처리만 해 주시면 됩니다. 뒷정리는 저희가 알아서 할 것이고, 일이 잘만 처리된다면야 운양상단에서 떨어져 나올 거래권의 절반을 드리겠습니다.”
“크흠……!”
이 말을 조용히 듣고 있던 오사총이 헛기침을 하며 곁눈질을 해댄다.
‘좋아. 절반은 넘어왔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그의 입에서 허락이 떨어질 게 분명했다.
“하면 내가 무엇을 해 주면 되겠는가?”
역시나는 역시나였다.
‘옳거니.’
이런 쪽으로는 도가 튼 그는 거의 다 넘어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이번에 운양상단의 단주가 직접 움직인다고 합니다. 자고로 어느 단체든 머리를 잃으면 휘청거리는 법 아니겠습니까?”
“한데, 그 송운인가 뭔가 하는 자가 뒷배라고 하지 않았나? 듣자 하니 그자는 무척 뛰어난 무인이라고 들었는데?”
“마침 송운 또한 자리를 비운 상태이니, 이번이 처음이자 하늘이 주신 마지막 기회일 것입니다.”
오사총 역시 운양상단이 얼마나 컸는지, 그들과 거래하는 사업체가 얼마나 많은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 역시도 조금 탐이 나던 것인데, 어찌할 도리가 없어 차마 나서지 못했다.
그런 차에 하북의 상단주들이 먼저 나서서 그를 부추기니, 욕심이 많고 귀가 얇은 그로서는 혹할 만한 이야기였다.
게다가 최근 산서성까지도 조금씩 발을 뻗기 시작한 운양상단이 눈에 거슬리던 참이었다.
기회라 생각한 오사총이 미끼를 덥석 무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리해서 크게 마음먹고 벌인 일이거늘…….
“이런 우라질 같은 놈들! 점점 옥죄어 오고 있질 않으냐! 이, 이를 대체 어찌하면 좋단 말이냐? 응?! 무슨 대책이라도 내놓아 보란 말이다!”
쨍그랑!
그의 성질에 애꿎은 꽃병이 깨지고, 곁에 있던 시녀의 두 눈이 불안감에 마구 흔들렸다.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던 상단의 식솔들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자칫하면 자신들에게도 피해가 미칠 만큼의 대형 사건을 쳐 놓고서, 이제 와 대책을 내놓으라니 어이없기 그지없었으나, 모른 척만 하기엔 이미 자신들은 그와 한배를 타고 있었다.
무엇이라도 대책을 내놓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에, 누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소가주님, 차라리 그 양조광이란 자가 있는 곳을 저들이 알아채기 전에 풀어주는 게 어떠하겠습니까?”
짝-!
그 말에 눈동자가 커진 오사총이 손뼉을 마주쳤다.
“아아, 역시 그럴까? 어차피 그자는 여기가 어딘지도, 우리의 정체도 모르고 있을 텐데. 눈과 귀를 가린 채로 아무 데나 풀어주고 그놈들 말대로 우리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발뺌을 하면…….”
그때, 어디선가 살기가 깃든 목소리가 그들의 귀를 울렸다.
“누가 누구 맘대로 발뺌한다는 거지?”
“그거야 당연히 내 마음대로……!”
당연히 이 공간에는 자신들만 있다는 생각에 자연스럽게 답하던 오사총의 말이 굉음과 함께 잘려 나갔다.
쾅!
“우리 조광이 어디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