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전생-176화 (176/275)

제176화

第一章. 결승

부우우-

마지막 결승전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흔하던 응원의 목소리마저 침묵을 내뱉는 대회장은 고요 그 자체였다.

이와 더불어 이전의 대결과는 달리 둘 모두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으니 더더욱 정적이었다.

두 무인의 움직임에 몇만 명의 시선이 쏠려 괜스레 관객들까지 미세한 동작, 혹은 침 삼키는 것마저도 조심스러워지고 있었다.

바스락.

조그마한 소리에도 주변의 시선이 몰릴 만큼 그 둘은 미동조차 없었다.

마치 맹수끼리 서로를 염탐하듯 말이다.

얼마의 시간이 더 흐르고, 긴장감이 조금씩 누그러질 때쯤.

먼저 움직인 쪽은 황보운룡이었다.

쌔애애액-!

타닷!

길고 날카로운 황보운룡의 검이 송운의 다리를 노리고 날아왔다.

제법 벌어진 거리에서 휘둘러진 검은 처음엔 느렸으나, 송운의 다리와 가까워질 무렵 가속도가 붙었고, 송운이 가볍게 땅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아직까지 허리춤에 걸린 검을 꺼내지 않은 송운은 그의 검을 쳐 내기보다는 피하길 택한 것이다.

‘초절정에 달한 무인이 공간감까지 뛰어나니 그 상승의 효과가 대단하군. 이번에도 자신의 거리를 잃지 않았어.’

송운은 곧바로 빈틈을 놓치지 않고 자신에게 달려든 그의 몸놀림에 또다시 감탄을 자아냈다.

여태껏 경기를 눈으로만 지켜본 것과는 색다른 느낌이다.

송운 역시도 뒤늦게야 깨닫고 익힌 공간감을 황보운룡은 이미 초절정의 경지에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다.

해서 공격이 빗나가더라도 결코 상대에게 쉽게 주도권을 내주는 법이 없었다.

방금 전의 공격도 송운이 조화경의 경지에 오르지 못했더라면 피했다 한들 어느 정도 타격을 입었을 것이 분명했다.

하나 이번 선제공격으로 인해 놀라움을 금치 못한 것은 송운만이 아니었다.

황보운룡의 눈빛에는 놀라움과 당혹스러움이 섞여 있다.

“……과연 송운이라 이건가.”

황보운룡이 낮게 읊조렸다.

당황한 듯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즐거움이 섞인 듯한 음성이었다.

실제로 그의 안면엔 미소가 여전히 그윽했다.

피해 낼 것은 당연히 예측하였으나, 설마 조금의 타격도 입지 않을 거라는 건 예상하지 못했다.

이미 관객들 사이에선 며칠 만에 일발무패라는 별호를 얻어 냈다는 것 때문에 과거의 소문 역시도 정말 사실일 거라는 이야기들이 나돌고 있다.

하나, 황보운룡은 어느 정도 과장이 묻어 있을 것이라 생각해 왔다.

한데, 상대가 아직까지 검을 꺼내지 않았다는 사실은 황보운룡의 심리를 묘하게 건드리고 있었다.

‘언제까지 그 대단한 실력을 드러내지 않을 수 있는지 두고 보겠습니다.’

스스슥!

순간, 황보운룡의 신형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러곤 곧바로 송운의 머리 위에서 나타났다.

이번엔 황보운룡의 검첨이 송운의 심장을 노렸다.

파바밧-!

하나 이번에도 송운은 그보다 더 빠르게 반응했다.

그의 팔을 손바닥으로 흘려보내며 세 발짝 뒤로 물러선 것이다.

“여기서 끝내지 않을 겁니다.”

황보운룡이 진행하던 공격의 방향을 곧바로 튼 채 송운을 뒤쫓았다.

이번만큼은 절대 먼저 멈추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의 발현이었다.

곧 황보운룡이 송운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는 광경이 연출되었고, 관객들은 하나같이 그들의 신형을 쫓기에 바빴다.

아니, 정확하게는 쫓으려 했으나 찾을 수조차 없을 지경이었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아무리 쫓으려 해도 일반인들의 눈에는 그들의 동선이 보이질 않는 건 당연했다.

“이보게 지, 지금 대회장에서 싸우고 있긴 한 건가?”

“내가 그걸 알았으면 무림인이 됐겠지, 이 사람아! 허…… 거참 신출귀몰하구먼! 조용히 하고 경기나 보자고.”

“뭐, 보면 보이기라도 해야 말이지. 끙.”

어지간한 일이류급 무인들의 눈에도 간신히 그림자 정도나 보일 듯 말듯 인 만큼 그들의 움직임은 빨랐으니, 관중들의 말은 틀린 게 없었다.

‘제법 멀리 피해도 곧장 잘도 따라오는구나.’

모든 공방은 황보운룡이 쫓으면 송운이 피하는 식이었다.

그 간격은 멀어지지도 가까워지지도 않고 있었다.

처음 몇 번의 공격은 완벽하게 피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송운의 거리를 파악해 낸 황보운룡이 계속해서 송운을 괴롭혔다.

우뚝.

그때, 먼저 쫓는 것을 멈춘 황보운룡이 송운을 다그쳤다.

“……대체 언제까지 피해만 다니실 작정입니까?”

그 말에 송운이 황보운룡을 말없이 응시했다.

아직까진 검을 빼 들진 않았으나, 송운도 슬슬 그의 공간감이 어느 정도에 달해 있는지 파악이 되어 가던 참이었다.

황보운룡이 먼저 말을 걸어왔으니 송운도 궁금하던 질문을 하나 던졌다.

“아까 풍이라는 자에게 많이 봐주는 것 같던데. 지금을 위해 아껴 둔 겁니까?”

송운의 말에는 조금의 아니, 조금 더 많은 가시가 박혀 있었다.

“……일부러 그러려 했던 건 아닙니다. 대결에 집중하시죠.”

“뭐, 원하시는 대로.”

송운이 어깨를 으쓱였다.

스윽.

이내 송운이 기수식을 취했다.

그건 탐색전이 끝났다는 신호였다.

짧은 변화에 제법 고강한 무위를 지닌 무인들의 눈빛이 반짝였다.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분위기를 느낀 것이리라.

그 수많은 관객들 중에서 송하의 눈빛이 가장 빛이 나고 있었다.

꿀꺽.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구나.”

지금까지 둘의 대진을 모두 두 눈에 담아 둔 송하의 음성에는 차마 억누르지 못한 격한 감정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또한 경기를 지켜보면서 송하 스스로 황보운룡을 이기지 못한 사실을 완벽하게 받아들였다. 저 정도의 실력이라면 송하가 보아도 자신이 한 수 아래라는 것을 온몸으로 느낀 것이다.

반 각 동안 서로를 탐색하면서도 숨 하나 거칠어지지 않은 둘이다.

아니, 황보운룡은 조금 거칠어진 듯도 했으나 단지 그뿐.

“칫…… 오빠를 상대로 저만큼 버텨 낼 줄이야.”

송하는 황보운룡을 향해 감탄을 내뿜었다.

그 감탄이 조금 비꼬는 듯했으나, 그 속에 담긴 마음만큼은 진심이었다.

물론 송운이 아직 단 한 번도 타격을 가하지 않은 탓도 있었으나, 송하의 눈에는 이것만으로도 이미 황보운룡이 대단해 보였다.

송하가 여러 생각을 할 무렵.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던 둘의 기류에 다시 격한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 * *

서로 기수식을 취한 이후.

송운과 황보운룡의 사이에 더 날카로운 바람이 불어닥쳤다. 여전히 선공을 날리는 것은 황보운룡이었고, 방어를 하는 건 송운이었다.

단지 조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송운이 검을 빼어 들었다는 점이었다.

여태껏 송운이 권각술만 사용했던 연유는 탐색의 목적도 있었으나, 실제 목숨이 오가는 싸움이 아니기에 함부로 뽑지 않은 것도 있었다.

송운이 사용하는 검술은 대다수가 광범위를 타격하거나 여파가 컸기에, 그가 검을 든다는 것은 곧 그만큼 위험한 상황에 처했다는 뜻이었다.

하나 지금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황보운룡이 공간감을 정확하게 꿰뚫고 사용하고 있기에, 상대적으로 거리가 짧은 권각술로만 상대하기에는 조금 버거웠기 때문이다.

채재쟁-!

캉!

그럼에도 아직까지 선공을 단 한 번도 날리지 않은 송운은 오롯이 황보운룡의 검을 맞받아치는 것에만 집중했다.

정확하게는 그의 허점을 찾기 위해서다.

‘음, 정말 기본기가 탄탄한 이로군.’

송운의 눈동자에도 놀라움이 스쳐 지나갔다.

이번 생에서 비슷한 또래에 이만큼의 경지를 이룩한 이를 본 적이 있었던가?

없었다.

대략 초절정의 끄트머리에 서 있는 자다.

쐐애액-!

‘이크.’

카가각!

처음엔 그가 공간감을 익혔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생각이 달라졌다.

권각술에서 검술로 넘어가면서 황보운룡이 주춤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만일 그가 누군가에게 배워서 공간감을 익힌 것이라면 이때 조금이라도 멈칫거렸을 터다.

바뀐 공간감에 적응하기 위해서.

그러므로 이건 익힌 것이 아니라 타고난 것이다.

그때, 송운의 눈에 황보운룡의 허점이 들어왔다.

찰나의 순간, 송운의 눈빛이 마치 먹잇감을 찾아낸 맹수처럼 날카롭게 빛났다.

순식간에 송운의 검이 황보운룡의 품을 파고들었고, 곧바로 승패가 갈렸다.

자신의 심장에서 종이 한 장 차이로 겨누어진 송운의 검첨을 바라보던 황보운룡이 입꼬리를 쓱 올리며 송운에게 손을 내밀었다.

“우승 축하드립니다.”

“……송운 승!”

“와아아아!”

“역시 일발무패! 송운이다!”

“풍악을 울려라!”

여태껏 울렸던 환호성 중 가장 큰 함성이 대회장을 울렸다.

* * *

대회가 모두 끝이 난 대회장은 언제 그랬냐는 듯 몹시도 휑했다.

중천에 떠 있던 해도 이미 저 지평선을 넘어 어둠에 잠긴 지 오래였다. 남은 것은 오로지 조금 전까지 격렬하게 응원하며 관람하던 사람들의 흔적뿐.

그런 대회장의 한가운데에 두 개의 인영이 비쳤다.

“결국 참지 못하고 뛰쳐나왔구나. 쿡쿡. 세상에 얼굴을 비칠 때가 되었지.”

새카만 머리에 흑요석 같은 짙은 두 눈을 지닌 사내.

독고백이었다.

“황보운룡 말씀이시군요.”

그 이름에 독고백의 두 눈이 반짝, 빛났다.

“그래. 이미 오래전부터 점지해 두었던 아이지. 짐작했던 것보다 성장이 늦어져 언제쯤이나 제 발로 세상에 나올까 했는데 이곳에 나왔을 줄이야. 덕분에 이번 나들이에 생각보다 더 재밌는 볼거리를 감상할 수 있었지 않느냐. 후후.”

천하 무림 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선 오랜만에 바깥으로 걸음을 한 독고백이다.

의도하진 않았으나 덕분에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송운과 황보운룡의 경기를 지켜볼 수 있었다.

경기를 지켜보는 내내 단 하나의 변장도 하지 않았으나, 그 누구도 알아보는 이도 없었다.

그의 외모와 곁에 있는 홍월림의 외모가 뛰어나 정체보단 겉모습에만 신경을 쓴 탓이었다.

“게다가…… 운 동생까지 출전할 줄은 정말 몰랐거든. 송 동생과 황보운룡이 무림대회에서 맞붙을 줄이야. 이거 정말 나오지 않았으면 정말 아쉬울 뻔했어.”

마지막 결승전의 승패가 갈리면서 사방에선 탄식과 함성이 동시에 터졌으나, 그가 봤을 때 이번 결과는 아주 당연했다.

송운의 실력이 지난번 보았을 때보다 훨씬 더 많이 안정된 모습인데다, 아무리 황보운룡이 공간감에 뛰어난 재능을 지녔다 한들, 이미 조화경의 끝자락에 닿아 있는 송운을 이기는 것은 무리다.

하나, 독고백이 눈여겨본 자인만큼 그 재능만큼은 무시할 수 없는 게 바로 황보운룡이다.

독고백이 새빨간 입술을 혀로 핥았다.

“갈수록 내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늘어나는군. 뭐,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즐겁지만 말이야. 후후, 이만 돌아가자. 더 이상의 볼거리는 없을 듯하니.”

“예, 주군.”

스슥-

말을 마치기 무섭게 순식간에 두 인영이 허공으로 연기처럼 사라졌다.

* * *

‘오빠가 이겼으니 됐어.’

자신은 비록 졌으나, 하나의 상처 없이 승리를 거머쥔 송운을 보며 괜스레 뿌듯한 마음이 드는 송하였다.

그러곤 결승전이 끝나자마자 송하는 행여나 나가는 길에 송운과 마주할까 서둘러 인파를 제치고 빠져나가려 했다.

지난번과 같이 많은 인파 속에 파묻히듯 사라지면 아무리 송운이라도 자신을 찾아오지 못할 터.

쓰고 있던 삿갓을 더욱 푹 눌러 내린 송하가 빠른 걸음으로 자리를 옮기려던 순간이었다.

갑자기 손목에 느껴지는 감촉에 놀란 송하가 토끼 눈이 되었다.

또다시 누군가 자신의 손목을 낚아챘기 때문이다.

하나 이번엔 느낌이 조금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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