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전생-171화 (171/275)

제171화

대전 둘째 날.

둘째 날 역시 송운은 첫째 날과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다른 이들은 수련을 하고, 결투를 어떻게든 가까운 자리로 다가가 지켜보기도 했으나 역시나 송운은 어제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송운의 행동과 별개로 첫째 날과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제법 눈에 띄는 무인들이 보였다는 점이다.

“좀 더 다가가서 보는 게 어때요?”

“이 정도 거리면 충분하오.”

평서란이 제안을 해 봤지만 송운은 괜찮다며 멀찍이 자리를 지켰다.

* * *

그렇게 셋째 날이 밝았다.

아침까지 송운의 행동은 일전과 같았다.

일어나서 운기조식을 하고 평서란과 함께 조식을 먹었다.

오늘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일전엔 대련장에서 열 척(尺) 이하의 거리로는 다가가지 않았던 송운이 제 발로 걸어갔다는 점이었다.

그의 차례였기에 너무도 당연한 수순이었고, 역시나 특별할 것은 없었다.

“드디어 오늘이네요. 이런 대규모 예선전이라니 정말 놀라워요.”

“그러게 말이오.”

내심 기대가 되었는지 처음으로 바깥세상을 구경하는 어린아이처럼 초롱초롱한 눈으로 말하는 그녀의 모습은 몹시 사랑스러웠다.

아마 단순히 천하무림대회가 기대된다기보다 늘 황궁과 북경에서만 지내다 오래간만에 바깥나들이를 나온 탓이 더 클 터였다.

그 밝은 기운이 그대로 전해진 것일까.

곧 송운의 마음에도 괜스레 묘한 흥분감과 긴장감이 맴돌기 시작한다.

‘다들 즐거워 보이는구나. 뭐…… 즐기는 편이 짜증을 내는 쪽보다는 훨씬 낫겠지.’

그때였다.

“음……?”

송운의 입에서 의아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그가 펼친 기감이 미치는 반경에 익숙한 무언가가 느껴진 탓이다.

그 기운은 몇 주야 전 마주했던 것과 일치했다.

머지않아 송운은 그 기운을 내뿜는 근원을 찾아낼 수 있었다.

처음 마주했을 때부터 심상치 않게 여겼으나, 따라갈 상황이 못 되어 포기했던 이.

그럼에도 계속해서 그가 기운을 주시한 연유는 단 하나였다.

‘……겉모습은 송하가 아닌데?’

그날은 경황이 없어 조금 헷갈렸으나, 되짚어 보았을 때 분명히 송하의 것이었다.

절정의 경지에 이른 순간부터 상대방이 어느 정도의 경지에 이르렀는지 느낄 수 있다.

또한 점점 무공의 경지가 올라갈수록 섬세하고 넓은 거리를 파악할 수 있다.

물론 상대방이 자신보다 높은 경지라면 예측이 불분명해진다.

하나 그것과는 별개로 같은 무공을 익혔더라도 각각의 사람마다 특유의 기운이 존재하는데, 그것이 바로 선천기공이다.

특히나 송운은 선천지기를 불리는 내공을 익히면서 그 누구보다 기운에 민감했다.

하물며 그것이 자신이 잘 아는 혈육의 것이라면 두말할 필요가 무에 있으랴?

틀릴 확률은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한데 여인이 아닌 사내의 겉모습에 놀란 것이다. 의아한 마음에 다시 송하로 추정되는 이가 서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송운은 속으로 실소를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세세하게 바라보던 그의 눈길에 미세하게나마 인위적인 부분이 포착된 것이다.

‘인피면구인가.’

인피면구란 본래의 얼굴을 가리기 위해 가죽, 혹은 특수한 천을 이용하여 사람 얼굴 형태를 만들어 착용하는 물건이었다.

종종 사람의 얼굴 가죽을 벗겨내 사용하는 경우도 있으나, 암거래로 거래되는 만큼 가격도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더더욱 쉬이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비싼 사람의 얼굴 가죽 대신 소가죽을 엄청 세세하게 세공했군.’

얼핏 보면 태가 나지 않을 정도로 정교한 것으로 보아 제법 상등급으로 보였다.

그렇다고 해서 구하지 못할 이유도 딱히 없는 정도.

아마도 저것을 구해 준 이는 양조광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십수 년간 눈에 배기도록 봐 온 골격이 송운의 매서운 눈썰미에 띄지 않을 리 없다.

자세히 보니 이토록 어설픈 구석이 제법 많았지만, 송운은 곧 슬쩍 고개를 돌려 자리를 피했다.

그녀의 마음을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 대회가 끝나기 전까지는 송하의 존재를 모른 척해 주고 싶은 오라비 겸 선배의 심정이었다.

‘흐음, 실력을 겨루어 보고 싶었던 거겠지.’

송하 역시 이제는 어엿한 무인이었다.

대회에 참가하는 데 딱히 제한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다른 이들과 실력을 겨뤄 보고자 하는 그녀의 마음을 이해 못 할 것도 아니었다.

‘아버지께는 조금 죄송한 마음이 드는구나.’

송후에게도 무를 가르쳤지만 송후는 무보다는 문이 앞서는 아이였다.

의외로 여인인 송하가 더더욱 열심히 송운을 따라잡으려 애를 썼다.

심지어 재능도 송하가 압도적으로 더 높았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운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만큼 말이다.

더불어 가장 중요한 아버지인 송악도 딱히 그런 송하의 앞길을 막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의도치 않게 세 명의 자식 중 두 명이 자연스레 무인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나마 송후라도 문의 길을 제대로 걷고 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 생각해 보면 자신 역시도 거인까지는 도달했지 않은가?

‘뭐…… 둘 다 잘하면 좋은 거겠지.’

물론 송하는 아니었지만.

“가가? 어디 가세요?”

갑자기 가던 걸음을 멈춘 채, 몸을 튼 송운의 모습에 평서란이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평서란은 여전히 기분이 들떠 보였고, 송운 역시 굳이 그것을 깨뜨릴 생각은 없었다.

“아무래도 길이 이쪽이 아닌 것 같구려. 저쪽으로 가 보는 게 좋겠소.”

돌아서는 송운의 입가에는 어느샌가 미소가 조용히 피어오르고 있었다.

* * *

송운과 송하가 속한 조의 예선전이 시작되었다.

다행히도 부여된 번호가 서로 꽤 멀리 떨어져 있었기에 예선전에서 직접적으로 마주칠 일은 없을 듯했다.

송하의 번호가 한참이나 앞서 있었기에 송운은 느긋이 그녀의 경기를 지켜볼 수 있다는 말이다.

자리를 잡고 앉은 지 얼마나 지났을까.

‘드디어 송하군.’

드러난 그녀의 모습에 송운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이천육백칠십 번! 이천육백칠십일 번!”

무림맹이라는 위엄을 보여 주기 위해서일까?

바닥 전체가 대리석으로 꾸며진 대련장이 멋을 뽐내고 있었다.

그 위로 내딛는 송하의 발걸음과 풍의(風儀)가 위풍당당하여 모르는 이가 본다면 여인이라 의심하기 힘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 상대방에게는 그리 보이지 않았나 보다.

“크크큭. 이거 예선부터 힘 뺄 생각에 걱정했는데 기우였구나. 적당히 상대해 줄 터이니 너무 겁먹지 말거라!”

뚜둑 뚜두둑.

그리고서는 상대방 측 무인은 거구의 육체를 이리저리 풀어가며 온갖 뼈들을 괴롭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송운의 미간이 미세하게 찌푸려졌다 펴졌다.

‘무를 배웠다는 놈이 덩치만으로 우세하다고 기세등등하다니. 경솔하군.’

“에이, 딱 보아하니 어린 청년이로구만, 살살하게 거!”

“쯧쯧 어쩌다 저런 대진을 만나서는…… 상대를 잘못 만나 예선도 통과 못 해 보겠구먼.”

그뿐만이 아니라, 이 둘을 지켜보던 구경꾼들조차도 모두가 송하를 얕보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그 기세를 등에 업은 탓도 있을 것이다.

쨍쨍한 햇볕 아래, 거대한 그림자가 송하를 덮칠 무렵이었다.

데엥-!

시작을 알리는 육중한 종이 울리기 무섭게 도발하려던 상대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이었다.

“오거…… 컥!?”

쿵-!

육중한 것이 땅에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거구가 쓰러졌다.

눈 깜짝할 새에 가느다란 체구가 그의 중심을 파고들었고, 묵직하게 날린 그 한 방은 무기를 꺼내 들 필요도 없이 승을 이끌어 낸 것이다.

좀 전까지만 해도 시끌시끌했던 장 내외가 모두 급격하게 조용해지면서 사회자 역시 당황했으나 노련미로 황급히 송하의 가슴팍에 달린 명패를 보고선 서둘러 승을 외쳤다.

“푸, 풍(風)! 승!”

이는 곧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결과에 잠시 어안이 벙벙해져 있던 관중들의 함성 소리를 이끌어 내기엔 충분했다.

“……우, 우와아아아!”

휘이익-!

“멋지다!”

“거, 참. 체구가 작아도 할 건 다 하는구만! 허긴 사내대장부라면! 껄껄!”

조금은 놀리는 듯한 발언도 들려왔지만, 송하는 여전히 무심한 표정으로 장내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아니, 남들이 보기엔 무심한 표정이었으나 송운의 눈에는 보였다.

잔뜩 긴장한 듯 보이는 송하의 표정이다.

아직까진 딱히 무언가 보여 준 것은 아니나, 순간 왠지 모르게 그런 송하의 모습을 보니 뿌듯한 마음이 드는 것 역시 어쩔 수 없는 오라비의 마음일까.

‘한데 송하야 풍이라는 이름은 조금…… 그러하지 않으냐? 허허.’

송운이 속으로 너털웃음을 짓고 있을 때, 송하가 빠르게 관중 속으로 사라졌다.

그때, 평서란이 그의 옷깃을 슬쩍 잡았다.

“가가. 방금…… 아가씨 아닌가요?”

이에 송운이 고개를 좌우로 내저으며 살포시 입가에 검지를 가져다 댔다.

그의 두 검은 동공 속에는 장난기가 그득해 보였다.

실로 오랜만에 보는 모습이다.

그래서일까? 곧장 알아들은 평서란이 눈웃음 지으며 검지를 입에 가져다 댔다.

“후후. 알겠어요. 쉬잇. 입단속 잘하도록 할게요.”

얼마 되지 않아 송운의 차례가 다가왔다.

당연한 결과로 가뿐히 송운의 승리였다.

그날 저녁.

예선전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모두 같은 장소에서 식사를 하게 되어 있었다.

무림맹에서 그들에게 주는 특혜와도 같은 것이었다.

무거운 채찍을 휘둘렀다면 그에 상응하는 달콤한 상 역시 내리는 것이 마땅하다는 백능의 명이 일전에 있었기 때문이다.

송운은 들어선 식당 안을 한번 쓱 훑어보았다.

‘음…… 되레 역효과인가?’

좁은 공간에 모이게 되니 더더욱 서로에 대한 신경전도 수위가 높아지는 추세인 듯 보였기 때문이다.

하나 그렇다고 하여 꼭 모두가 그러한 것도 아닌 듯했다. 이미 대회에 참가하기 전부터 서로 친분을 쌓고 있는 무리들도 제법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서로 아무도 모르겠지만.

시끌벅적한 인파를 뚫고 나온 송운과 평서란은 제법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가가.”

찰나의 시간이 흘렀을까?

배식받은 식판을 내려놓기 무섭게 평서란의 붉은 앵두 같은 입술이 슬쩍 난감하다는 듯 입이 앙다물렷다.

평서란이 입고 있는 옷에 황궁의 사신이라는 징표를 가슴에 달고 있다는 점과 눈이 부신 외모. 마지막으로 허리춤에 차고 있는 검이 평서란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고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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