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5화
구구구궁-!
‘저것이 바로 진정한 단홍청참마도란 말인가……!’
도를 쥐고 있던 염청장이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읊조렸다.
“이게 네 마지막이 될 게다. 즐거웠다, 아해야.”
꽈악.
그의 검을 쥔 두 손이 바짝 말아 쥐었다.
송운 역시 동시에 무거운 발걸음을 세 번 옮겼다.
곧 어마어마한 굉음과 함께 온 천지가 울부짖었다.
콰과과과과과광-!
* * *
휘이잉-
“이, 이게 대체……?”
싸움의 피해 범위에서 간신히 벗어난 오룡일봉이 눈 앞에 펼쳐진 진경(珍景)을 바라보며, 황망한 표정을 지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곳곳에 자리하고 있던 집들마저 한 채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붕괴한 채, 온 주변이 깨끗해져 있었다.
단홍청참마도법(斷紅靑斬魔刀法).
천지쌍비, 둘의 무공이 몇십 년 만에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굉음이 멎음과 동시에 뭉게구름이 피어오르며 그사이에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송운과 염청장, 염홍장뿐이었다.
황량해진 마을.
이젠 마을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폐허의 중심에 꿋꿋이 서 있던 염홍장이 억지로 입꼬리를 하늘로 끌어 올린 후, 미세하게 떨리는 입을 벌렸다.
“이 정도로…….”
주륵.
툭.
하나, 그 마지막 말조차 끝까지 잇지 못한 채 몸통이 위아래로 분리되며 미끄러졌고, 붉은 핏물이 잔해로 더러워진 바닥을 가득 적셨다.
그것은 염청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허억…… 컥…… 쿨럭!”
그로부터 촌각도 지나지 않아 뒤에 서 있던 송운이 무릎을 굽히며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털썩.
“송 소협!”
“형님!”
“대주!”
놀랄 새도 없이 서둘러 송운이 있는 곁으로 달려간 오룡일봉이 쓰러지기 직전의 그를 부축했다.
순간적으로 거대한 힘을 쏟아부은 송운 역시 멀쩡하진 않았으나, 그저 내상을 입었을 뿐이었다.
덕분에 외상으로 보이는 것은 없었고, 그저 폭발의 영향에 의해 옷깃이 그을린 게 전부였다.
송운은 스스로 놀랐다.
‘지난번 때보다 무공이 훨씬 더 좋아졌어. 내기도 조금 더 안정되어 있고……. 쿨럭, 제대로 먹힌 것인가?’
송운은 그 찰나의 순간에 시공검을 사용함과 동시에 선천지기로 몸을 보호했다.
엄청나게 빠른 연계 속도였다.
차마 말로는 설명이 불가한 일이었다.
굳이 연유를 찾아낸다면 상단전이 개방되면서 조금 더 머리를 쉽고 빠르게 굴리게 된 덕일까.
그것이 아마 지난번과는 다른 결과의 이유일 것이다.
‘결론은 방법이 아예 없는 게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선천지기가 많으면 많을수록 이 무공을 펼치는 데 유리한 것이었나?’
찰나의 순간 혼자만의 상념에 빠져 있던 송운의 귓가에 곽철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괜찮으십니까?”
“저는 괜찮습니다. 그보다…….”
송운이 뒤를 향해 돌아봤다.
그 자리엔 이미 처참히 죽음을 맞이한 두 형제의 시신이, 마치 죽어서도 둘은 하나라는 듯 엇갈린 채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그런데도 그들의 입가에만큼은 자그마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약속은 지키지 못하겠군.’
시공검을 펼친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손속에 사정을 두었다면 저곳에 누워있는 건 저들이 아닌 바로 송운이었을 터다. 그만큼 그들이 펼친 것은 어마어마한 위력을 지닌 무공임은 틀림없었다.
“아미타불, 아미타불…….”
송운이 씁쓸한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 참혹한 광경에 백길이 자그마하게 읊조리며 손을 모았다. 그가 비록 생전에 악인일지라도 결국은 생명이 아닌가?
천지쌍비의 마지막은 씁쓸했다.
오로지 백길과 송운만이 염청장과 염홍장의 곁에서 명복을 빌어 줄 뿐이었다.
양풍완이 아직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설마하니 이 정도 수준의 무공을 지닌 괴인이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이 마을 전체를 날려 버릴 줄이야…….”
“그럼 이곳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방금 돌아다니며 확인했는데, 이 마을에 살았던 사람들은 진즉에 집을 비운 것 같습니다. 일반인의 시신은 단 한 구도 보이지 않더군요.”
“혹은 그들 모두가 혈교에 잡혀갔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하겠군요.”
“……아.”
백길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던 차, 팽후영의 일침이 일리가 있다는 생각에 또다시 분위기는 침울해졌다.
이미 사람이 대거 실종되고 있는 상황이다.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우린 또 흔적도 찾지 못하겠네요.”
그렇지 않아도 침울하던 차에, 당무옥의 그 말은 다시 한번 분위기를 가라앉혔다. 그렇다면 결국 이번에도 완벽하게 혈교의 꼬리를 놓친 셈이니.
딱!
그때, 누군가가 당무옥의 이마에 꿀밤을 놨다.
“악!”
억울함이 가득 담긴 외침을 내지른 당무옥이 쳐다본 시선 끝에는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남궁장후가 있었다.
“쳐다보지 마라. 눈치도 없는 녀석 같으니라고.”
“혀, 형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마가 부었지 않습니까?!”
“……결국 또 한 방 먹은 건가.”
팽후영이 둘의 투닥거림을 뒤로 한 채, 송운의 말에 고개를 주억이며 조용히 읊조렸다.
“어쩌면 되레 우리가 낚싯대에 걸린 물고기 신세일지도 모르겠네요.”
다 잡은 듯하다가도 또 놓치고 놓치길 벌써 세 번째.
이제 허탈하다 못해 해탈이라도 할 지경이었다.
‘닭 쫓던 개의 신세가 딱 이러한 기분일까? 이 정도까지 쫓아왔는데도 결국은 또 놓쳤다. 대체 혈교란 놈들 얼마나 점조직으로 나누어져 있다는 말인가?’
울컥.
“쿨럭……!”
“형님!”
일순간 올라오는 화에 멀쩡해 보였던 송운이 피를 한 움큼 토해냈다.
“일단은 이곳은 저희가 수습하고, 의원부터 찾아야겠네요. 대주라는 분의 몸 상태가 이러하니 뭘 하겠어요. 몸부터 추스르죠.”
“팽 소저, 전 괜찮…….”
송운이 그것에 대하여 더 말을 하려 했으나, 팽후영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을 가로챘다.
“어차피 이곳에선 흔적을 찾으려야 찾을 수 없어요. 보시다시피 그 여파로 먼지 하나 안 남기고 모조리 날아갔으니까요. 아까는 어쩔 수 없이 명령에 따랐지만, 지금은 부상당한 환자의 몸입니다. 사지 모두 멀쩡한 저희 말 들으시는 게 좋으실 거예요.”
한 마디 한 마디 내뱉을 때마다, 틀린 말이 하나도 없는 탓에 반박조차 하지 못한 송운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휴…… 예. 그러도록 하죠.”
그녀 말대로 작금은 재정비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第二章. 동맹
천지쌍비와 격전을 치른 지 약 삼 주야가 흘렀다.
얼마 기다릴 것도 없이 사건 보고가 올라가자마자 송운 일행 모두가 복귀하는 쪽으로 결정이 났다.
특히 큰 부상이 아니라며 내상을 입은 송운은 연신 거절하였으나, 맹주의 권한으로 속히 의원에게 보내져 치료가 감행되었고, 완전히 파괴된 마을은 처음부터 다시 하나하나 재정비에 들어갔다.
사건이 벌어진 곳이 사천성 중에서도 무림맹이 있는 곳과 워낙 가까운 탓에 빠르게 소식이 오고 가니, 일이 처리되는 것은 일사천리였다.
물론 서둘러 뒷수습을 나선 것은 이 사건이 보고되면서 가장 큰 난리가 아미파와 청성파, 사천당문이었다.
맹주인 백능은 본디 이렇게 밝혀질 사건이 아니나, 사천성은 애당초 그들의 구역이기도 하니, 지금이라도 소식을 전하는 것이 이치에 맞는 것이라며 의견을 내세웠기 때문이다.
제갈염 역시 이 점에 있어서는 맞다 생각이 되었고, 일치된 의견으로 빠르게 그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소식이 닿기 무섭게 어느 문파 할 것 없이 너도나도 모두가 뒤집혔다.
명문대파인 청성파와 아미파, 사천당문이 각기 자리 잡고 있는 이곳 사천성의 보안에 구멍이 뚫린 사실이 바깥으로 새어 나가기라도 한다면 그야말로 엄청난 치욕이었기 때문이다.
감히 정파의 세 기둥이 자리 잡은 사천성에선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들의 발등에 불씨가 떨어진 셈이었다.
* * *
콰앙-!
“이 대체 무슨 마른하늘에다 날벼락이랍니까?!”
“거 아무리 놈들이 조용히 움직였다곤 하나, 그 정도 규모의 마을이 모두 점거당했는데 아무도 몰랐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설마하니 혈교가 다시 재기하였을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던 것 아니오?”
아미산(峨嵋山)에 위치한 아미파.
청성산(靑城山)에 위치한 청성파.
마지막으로 사천성 성도(成都) 부근에 위치한 사천당문(四川唐問)까지!
원형의 탁자에 각 문파에서 대표하여 나온 세 명이 옹기종기 모여 서로가 서로에게 핏대를 올리기 한창이었다.
하필 이번 파문(波紋)의 주요지가 마치 이들을 농락이라도 하겠다는 듯 버젓이 이 세 문파가 둘러싸고 있는 쌍류현(雙流縣)에서 벌어졌다.
“이는 필히 혈교의 농간이 분명하외다. 그렇지 아니하고서야 어찌하여, 그것도 하필이면 쌍류현에 발을 들일 수 있단 말인지……! 쯧!”
푸른 도복을 입고, 콧잔등에서 시작해 왼쪽 입가까지 걸친 기다란 자상을 지닌 중년의 남성이 어이가 없다는 듯 한숨을 길게 내쉬며, 혀를 찼다.
그러자 이번엔 반대편에 앉아있던 초록색 옷을 걸친 남성이 되레 역정을 낸다.
“아니, 그러는 그쪽에서야말로 대체 주변 관리를 어찌하신 겝니까? 쌍류현에서 가장 가까운 문파는 청성파 아닙니까? 혈교라니, 이게 가당키나 한 소립니까?!”
“허, 이보시오 당(唐) 가주……! 이 일이 어찌 우리 청성파만의 탓이란 말이오? 게다가 우리 청성파는 일찍이 이번 일에 관련하여 우리 문파의 가장 큰 대들보인 아이까지 내보내었단 말이오!”
마치 책임 전가라도 하겠다는 듯 물고 달려드는 당천립(唐仟立)의 모습에 울컥한 독비량(犢飛亮)이 목에 핏대를 세웠다.
하나 당천립 역시 여기서 말로 질 생각은 없는지 기다렸다는 듯 질타를 쏟아부었다.
“말 한번 잘 꺼내셨소. 그것이야말로 어쩌다 임무에 얻어걸린 것 아니오? 그게 어찌 청성파가 직접 나섰다고 할 수 있겠소이까? 맹주님의 결정이 아니었느냐 이 말이외다!”
평소 불같은 성품을 여지없이 드러내는 당천립이었다.
“후우…… 우선 모두 진정들 하세요. 너무 감정이 앞서고 있지 않습니까.”
그 순간, 천지가 떠내려갈 듯 싸우던 두 명의 중년 사내들 사이에서 곱지만 또렷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비록 머리는 모두 밀었으나, 젊은 시절 사내깨나 울렸을 법한 고운 자태를 지닌 여인이었다.
아니, 아직도 그녀의 미모는 여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