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전생-152화 (152/275)

제152화

‘육중하나 한 번 한 번이 날카롭다.’

작은 몸집으로 재빠르게 움직이는 그녀는 얼핏 보기엔 도가 무거워 쉽사리 휘두르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나, 눈에 보이는 것과 실체는 엄연히 달랐다.

송운이 조금 더 그녀의 움직임에 집중하니 도의 움직임이 점처럼 보였다.

휘두르는 횟수는 적지만, 한 번 한 번에 기를 모아 정확하게 급소만 노린 것이다.

팽후영의 도가 지나친 곳에서는 반드시 붉은 핏방울이 후두둑 하고 흩뿌려졌다.

처음엔 여인이라 가장 만만히 여겨 덤벼드는 놈들이 제법 있었으나, 점점 그녀의 곁에 쓰러지는 이들이 많아질수록 내빼는 이들도 더 늘어난다.

그에 비해 양풍완은 조금 버거워 보였으나, 그 뒤를 적절하게 당무옥이 받쳐주고 있다.

왠지 모르게 뒤가 묵직한 것을 느낀 양풍완이 뒤를 돌아보더니 놀란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혀, 형님?”

“겉치레는 집어치우고 지금은 싸움에 집중해.”

예전 같으면 협공이라면 치를 떨었을 당무옥이나, 지금은 아니었다.

‘나 혼자만 싸우는 싸움이 아니다.’

그리고 도울 수 있으면 돕는다.

협공도 결국 실력이다.

실력이 모자란다면 그조차도 할 수 없다.

당무옥은 그것을 지난번 싸움에서 처절하게 배웠다.

끄덕끄덕.

양풍완은 잠시 당황하는 듯싶었으나, 이내 앞으로 빠르게 날아드는 검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송운 역시 입가에 흐뭇한 미소를 머금은 채, 마치 싸움을 보채는 듯 웅웅거리는 환성을 꽉 쥐었다.

그렇게 싸움은 점점 고조되어가고 있었다.

* * *

송운의 걱정과는 달리 싸움은 길지 않았다.

점점 싸움의 기세가 밀리고, 살아남은 아군이 몇 없다는 것을 깨달은 놈들이 도망을 치다가, 그것마저 여의치 않자 자진해서 죽음을 택한 것이다.

‘도대체 무슨 금제를 걸어 놓았기에…….’

송운의 미간이 슬쩍 찌푸려졌다.

이쯤 되면 정말 그들에게 최면 따위라도 걸려있는 게 아닌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하나같이 그 끝이 자결이란 말인가?

그때였다.

저벅저벅.

‘음……? 아직도 무언가가 남은 건가?’

그때, 아직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저 멀리서 누군가의 기척이 느껴졌다. 가장 먼저 그것을 감지해 낸 송운의 감각이 강력하게 위험을 경고하고 있었다.

“일단은 돌아가는 것이…….”

“쉿, 모두 숨어요.”

스스슥.

그의 말을 들어 나쁠 게 없다는 것을 이미 온몸으로 경험했기 때문일까?

송운이 막 말을 잇던 남궁장후의 입을 손으로 막고선 지시를 내리기 무섭게 모두가 은신술을 펼쳤다.

그렇다고 한들 몸에서 나는 혈향까지 어찌하겠느냐마는 그래도 일단은 숨는 것이 최우선이다.

송운이 지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저 멀리에서부터 웬 사람 두 명이 옥신각신 언성을 높이며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단 몇 발자국의 차이인지라 조금만 더 늦었더라도 그대로 마주했을 터였다.

아니, 정확하게는 그들의 눈에 띄었을 것이다.

그만큼 아직 그들과의 거리는 제법 멀었다.

잠시 눈살을 찌푸리던 송운이 시력과 청각을 한껏 끌어 올렸다.

그러자 바로 코앞에 있는 것처럼 그들의 외양이 자세히 보이기 시작했다.

‘똑같이 생긴 노옹(老翁) 둘이라…….’

겉면으로 살펴보았을 때 추측되는 나이는 종심(從心)은 족히 되어 보였으나, 육체의 나이는 제법 어려 보인다.

특이한 점은 찍어 낸 것처럼 똑같이 생긴 얼굴뿐만이 아니었다.

‘저 정도는 그냥 보아도 한눈에 띄겠구나.’

대낮부터 술이라도 퍼마신 것일까?

하나 그렇다고 하기엔 한 명은 코가 빨간 상태였고, 남은 한 명은 어딘가 얻어맞은 듯 코가 퍼렇게 물들어있었다.

송운은 그들의 어딘가 묘한 기운에 최대한 숨을 죽인 채 둘의 대화를 엿들었다.

“에잉, 이 멍청이 늙으니 같으니라고! 그딴 거 하나 제대로 처리를 못 하다니.”

“뭬야?! 누구보고 멍청이라는 거냐! 이 진짜 멍청한 놈아!”

따악!

“이노옴! 내가 네 녀석보다 무려 촌각이나 먼저 태어난 몸이시거늘. 이 버르장머리 없는 놈! 어서 형님이라 높여 부르지 못할까! 이 나이를 먹고서도 아직도 철이 덜 들었단 말이더냐? 누구를 멍청한 노인네라고 부르는 게야!”

“아악! 형이면 다요? 에이, 빌어먹을! 이거 더러워서 원. 그깟 촌각 일찍 태어난 게 무슨 벼슬이라고. 더럽소, 더러워! 에이, 퉷퉤퉤!”

둘의 대화를 보아하니 그들이 형제임은 확실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나저나 대체 누구기에 이 시간에, 그것도 이 외딴 판자촌에서 저런 대화를 나누는 거지?’

송운이 조심히 그 둘을 살폈다.

그나마 다행이라 하면 아직까지는 두 노옹 모두 별다른 반응이 없다는 정도일까.

겉으로 보기엔 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촌부(村夫)라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평범해 보이는 둘이었다.

물론 순수하게 겉모습으로만 따지자면 평범함과는 거리가 조금 멀어 보이긴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들이 점점 가까워질수록 송운 일행의 온몸에 오한이 돋기 시작한다는 사실이다.

‘분명 섞여 있으나, 완벽하게 그들의 것은 아니다. 혹시 저들도 그들의 사주를 받은 것인가?’

어쩌면 그쪽이 더 신빙성이 있을지도 모른다.

부족한 수를 메우기 위해서?

혹은 자신들의 정체를 조금이라도 덜 드러내기 위해서?

어느 쪽이라도 가망성은 존재했다.

‘조금 전까지 무인들이 혈전을 다툰 이곳을 아무렇지 않은 듯 다가올 수 있는 간 큰 일반인이 있을까?’

송운은 다시 한번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미치지 않은 이상, 평범한 사람들은 무인들의 싸움에 끼는 걸 원치 않는다. 아니, 원치 않는 정도가 아니라 두려워했다.

호기심 많은, 세상 경험 없는 어린아이들이라면 모를까, 산전수전을 겪을 대로 겪어 본 노인들이 그럴 리는 더더욱 없을 터.

‘그렇다면…….’

두 노옹을 살피는 송운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그 둘이 평범한 이는 아니라는 결정적 증거로, 둘의 허리춤에 검이 채워져 있었다.

아까보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송운의 시야에 포착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기운만 해도 어마어마하여 ‘나 무인이다.’라는 것을 온몸으로 내뿜고 있었다.

애초에 숨길 생각조차 없는 듯했다.

땅에 닿는 듯 닿지 않는 그들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고, 정확히 송운 일행이 있는 곳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설마…… 우리의 위치를 한눈에 파악하고 다가오고 있는 것인가?’

적진의 한가운데서 아무렇지 않게 걸어 나오고 있는 이들이다.

더 이상 헷갈려 할 연유가 무에 있단 말인가.

“……송 소협.”

곽철우가 목소리를 최대한 낮춘 채 송운을 불렀다.

끄덕.

송운이 그 목소리에 고개를 주억였다.

‘이를 어찌한다.’

이대로 가면 어차피 백이면 백 마주하고 말 것이다.

아니, 애초에 상대는 이 상황을 예상하고 찾아온 것일 수도 있었다.

‘……그다지 좋지 못한 건 확실하군.’

상대가 정확히 누군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송운은 이런 상황에 이제 이골이 날 지경이었다.

‘최소한 초절정 이상의 고수다. 아니, 어쩌면 나와 거의 비슷한 경지일 가능성도 배제하긴 어렵구나.’

“……후우.”

송운이 작고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하나, 그 작은 한숨 속엔 땅을 파고드는 거대한 무거움이 담겨 있었다.

비록 이겼다고는 하나, 오룡일봉의 다수가 바로 직전에 수십 명과 맞붙은 탓에 기운이 빠질 대로 빠져있는 마당에 더 이상의 싸움은 불리했다.

곽철우 역시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그 사실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기에 차마 함부로 나설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이 중에 가장 멀쩡한 것은 송운뿐이다.

다른 이들은 모두 큰 상처를 입지 않은 것뿐이지, 자잘한 상처들과 함께 내력을 제법 많이 소모한 상태였다.

해서 뒷말을 잇지는 않았으나, 이 상황을 어찌하면 좋을지 송운에게 답을 구하는 표정이었다.

송운이 이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차피 여기서 도망은 무리다.’

만일 진즉 이곳을 떴다고 할지언정, 저들은 그 흔적을 쫓아왔을 것이다. 이 광활한 적진 한복판에서 도망을 친다면 어디로 간단 말인가?

게다가 은신했다고 한들, 이미 저들은 자신들의 위치를 파악했을 가능성이 훨씬 컸다.

‘싸워야 한다면…… 상대방이 방심했을 때 먼저 선수를 취하는 편이 훨씬 효율적일 테지. 피할 수 없고, 부딪힐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선공이 답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방심이라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멍청한 짓인지 깨달은 송운이기에 이보다 좋은 방법은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결정이 내려진 그에게 더 이상 고민은 없었다.

* * *

“어르신들 이곳은 위험하니 발걸음을 돌리시지요.”

숨어 있던 송운이 갑자기 튀어나오자 화들짝 놀라 붉은 코의 노옹이 뒷걸음질 쳤다.

“으잉? 깜짝이야! 이놈은 또 어디서 튀어나온 멍청이야?”

따악!

그러자 또다시 푸른 코의 노옹이 노발대발하며 붉은 코 노옹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이 멍청한 놈 같으니. 멍청하다 멍청하다 하니 진짜로 머리가 돌이라도 된 게냐? 정신 똑바로 차리지 못해!”

“기껏해야 독 안에 든 쥐새끼일 뿐인데, 내가 정신 차려서 뭐 해? 흥! 그렇게 잘난 네가 알아서 처리하지 그래?”

또다시 둘이 옥신각신 싸우는 상황이 되자 송운은 잠시 말을 잃었다.

‘허…….’

어중간하게 둘의 사이에 끼게 된 형태의 송운은 그저 한숨이 새어 나올 뿐이다. 무언가 적과 적 사이에 있어야 할 긴장감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차마 앞으로 나서 보지도 못한 오룡일봉은 그저 숨만 죽인 채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다.

송운이 나서기 전 대주로서 신신당부를 하였기 때문이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송운이 세운 계획은 이러했다.

첫 번째, 만일 본인이 모든 시선을 끌어내지 못하고 전체가 위험에 처한 경우, 죽을힘을 다해 무림맹을 향해 뛰어라.

두 번째, 송운이 저 둘과 맞부딪쳐 혹여나 이기지 못할 경우에도, 무림맹을 향해 뛰어라.

마지막 세 번째 계획도 과정만 조금 다를 뿐, 결과는 같았다.

여차하면 무조건 무림맹으로 향해라.

오룡일봉은 세 가지 계획 모두 자칫하면 함께하던 전우를 버리고 적을 피해 달아난 비겁자가 되는 꼴이기에 반대했다.

그럼에도 송운의 굳은 의지는 쉽사리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조금 전, 혹여나 들릴까 최대한 목소리를 낮춘 상태에서 답답한지 양풍완이 가슴을 조심히 몇 번 내리쳤다.

“아니, 대주! 어째서 우리는 나서지도 말라 하십니까?”

그런 그의 반응에 송운은 침착하게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땐 상대의 전력이 어느 정도 파악이 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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