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전생-151화 (151/275)

제151화

第一章. 천지쌍비(天地雙鼻)

“예, 혈교의 소굴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진지한 표정의 송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모두가 아닌 척 너스레를 떨며 슬그머니 한 발자국씩 뒤로 내빼었다.

송운은 그 모습을 보고 때아닌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나, 이제 겨우 막 입구에 다다라 한 걸음만 디딘 상태였기에 가능했지, 그렇지 않았다면 되레 함정에 걸린 것과 마찬가지였을 터.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던 남궁장후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좀 전보다 한층 줄어든 목소리로 질의를 던졌다.

“그게 사실이라면 이제 우리는 어찌하면 되는 겁니까? 이곳은 생각보다 작지 않습니다.”

남궁장후의 말대로 오룡일봉과 송운은 적진 한가운데에 들어온 것이다.

호랑이 굴에 제 발로 들어온 격이랄까.

지금까지의 전투는 외부에서 벌어졌기에 그들 역시 무리에서 따로 떨어져 나온 존재였다.

해서 그 정도라면 송운 일행 정도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으나, 실상은 이렇게 적진 한가운데 떨어져 있는 거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어쩌면 혈교의 전력이 한 곳에 몰려 있는 상태일지도 몰랐다.

송운의 말을 듣고 조금 다급해진 남궁장후와는 달리 송운은 태연히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 측도 전력을 다해야겠지.”

“하면 곧바로 무림맹에 연락을 넣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예를 들자면 지원 요청이라든지…….”

다들 지원 요청이라는 의견에 동의하는 듯 보였으나, 송운의 생각은 달랐다.

이미 발을 들인 이상 여기서 섣부르게 발을 뺀다면 자칫 적을 놓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그와 동시에 이번이 자신의 성장을 시험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더구나 혹여 지원군을 불러 시끄럽게 판을 키웠다가 놈들이 눈치라도 채게 된다면 그때는 이 판자촌만이 아닌, 이 주변 마을들조차 모조리 쑥대밭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 상황은 우리가 원하는 방향이 결코 아니야.’

애당초 혈교로부터 무고한 사람들을 지켜 내기 위해 나선 작전이다.

조금의 위험도 감수할 수 없었다.

이런저런 고뇌가 송운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어느새 그의 왼손은 관자놀이를 지그시 누르고 있었다.

하나 그런 것과는 달리 결단은 빨랐다.

“이번 일은 우리가 맡았으니 우리가 마무리 짓도록 하죠. 총군사님께서도 그리 믿는다고 하셨습니다. 저도 여러분을 믿습니다. 또한 저는 저 자신 역시 믿을 겁니다. 아니, 믿습니다. 여태껏 우리만으로도 충분히 잘 싸워오지 않았습니까? 더불어, 이 이상 사람들에게 해가 가서는 안 됩니다.”

처음엔 조금 주춤거리는 듯 보였으나, 자신감이 차 있는 송운의 모습과 말에 오룡일봉 역시 묘하게 믿음이 가기 시작했다.

물론 아무런 근거도 없이 이런 말을 했다면 미친놈이라며 손가락질하며 한 바가지로 욕을 쏟아부었을 테지만, 그럴 일은 없었다.

이미 그들 모두 송운의 놀라운 무위를 두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던가?

그래서인지 송운의 말을 듣고 나자, 든든해짐과 동시에 없던 자신감마저도 용솟음치는 것 같았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힘인가?’

송운은 이야기가 끝나기 무섭게 곧바로 앞을 응시하며 기감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이미 주변은 간파하고 있었으나 더 넓은 범위를 확인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송운 스스로도 놀라운 건 생각보다 기감이 예리했고, 제법 방대한 범위를 모두 상세하게 느낀다는 사실이었다.

이윽고 송운의 기감이 순식간에 실처럼 이어져 사방팔방으로 퍼져나갔다. 이 마을 전체를 뒤덮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말이다.

광범위임에도 불구하고 기감은 놓치는 것 없이 속속들이 송운의 뇌리에 정보를 가져다줬다.

‘하나, 둘 셋…… 마흔. 후. 구석구석 잘도 숨었구나. 많다면 많고, 적다고 하면 적은 것인가.’

숨어 있는 인원은 총 마흔 명.

그중 절정 고수만 열 명이었다.

‘결코 얕볼 만한 숫자는 아니지.’

지난번에 마주쳤던 녀석들은 초절정 한 명에 절정에 이른 놈이 한 명, 나머지가 모두 일, 이류급이었다면 지금은 초절정 급을 대신하는 절정급 고수가 열 명이었다.

어디서 갑자기 이렇게 많은 고수들이 튀어나왔나 싶을 정도로 혈교에 속한 이들의 무력이 제법 높았다.

‘혈교의 특성 때문인지 대체로 숨어 있는 걸 참 좋아하는군. 어차피 본격적으로 싸움이 개시된다면 모두 튀어나오겠지만…….’

그렇게 속으로 송운이 전략을 짤 무렵.

누군가 송운의 곁으로 다가왔다.

“대략 서른 명은 넘는 것 같습니다.”

남궁장후였다.

“그래, 총 마흔 명이다. 그중 열 명은 절정 고수이고, 나머지는 모두 일류급이지.”

“마, 마흔 명이나요?”

무력으로선 가장 약한 양풍완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려왔다. 아무리 과반수가 일류급이라 할지언정, 절정 고수의 숫자가 만만치 않게 느껴진 탓이리라.

움찔.

그와 동시에 그들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당무옥의 몸 역시 순간적으로 경직되었다.

지난번의 그 끔찍했던 기억이 떠오른 탓이었다.

당무옥은 애써 불안감을 지우려 노력해 봤으나, 그 당시의 기억은 그에겐 정말 지옥과도 같은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만일 송운이 없었다면 이미 죽어도 열 번은 갈가리 찢겨 죽어 없어졌을 목숨이다. 머리가 잊는다고 해도 몸이 쉽사리 잊을 리가 없었다.

꿀꺽.

당무옥은 굳은 몸을 억지로 일깨우려 노력했다.

‘……여기서조차 무너지면 나는 무인으로서의 자격 박탈이야.’

당무옥이 두 눈을 꼭 감은 채 손을 움직이려고 안간힘을 써 봤다.

그러나 마음먹은 대로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야속함을 떠나, 이제는 화가 날 지경이었다.

툭-

그때였다.

어깨에서 따스한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자, 당무옥의 고개가 자연스럽게 그쪽을 향해 돌아갔다.

“……대주?”

그 손의 주인은 다름 아닌 송운이었다.

“당 소협, 아무런 걱정 마세요. 이젠 등 뒤를 지켜 줄 동료가 함께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말을 듣자마자 마치 기적처럼 경직됐던 몸이 부드러워지기 시작했다.

겨우내 추위에 꽁꽁 얼었던 얼음이 따스한 햇볕에 녹아내리듯 말이다.

지난번에도 느꼈지만, 이번에도 역시나 마찬가지였다.

당무옥의 굳어있던 손이 그제야 천천히 검파로 향했다.

‘볼수록 신기한 사람이다.’

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 * *

그것이 마치 신호라도 된 것일까.

당무옥이 검파에 손을 가져다 댄 지 촌각도 지나지 않아 적들의 무차별한 공격이 시작되었다.

“다들 무사하셔야 합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송운을 비롯해 모두가 흩어져 각기 온 힘을 다해 싸우기 시작했다.

채재쟁!

카각-!

“끄으으아!”

“으랴앗!”

가장 먼저 나선 송운은 검을 뻗으면서도 사방을 둘러보는 것은 잊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오룡일봉 전부가 나서는 전투는 그도 처음이었다.

늘 같이 출전했지만 직접적으로 오룡일봉이 나설 만한 일이 없었다.

같이 싸워 본 것은 당무옥과 곽철우가 전부였다.

그래서 더더욱 자꾸만 주변으로 시선이 분산되었다.

사실 상대가 저 정도 전력이라면 송운이 홀로 휩쓰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오히려 더 상승한 송운의 무공실력에 더불어, 지난번 전투와는 다르게 초절정 고수가 하나도 없기에 그의 기준으로 보자면 수월한 편이다.

하나, 그럼에도 송운은 나서는 것을 자제하고 오룡일봉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다.

‘실전만큼 좋은 수련은 없다.’

그가 가진 무공 철학 중 하나였다.

물론 조금의 사심이 있다면 오룡일봉의 실력을 직접 자신의 눈으로 보고 싶은 마음도 컸다. 더불어 굳이 연유를 하나 덧붙인다면 당무옥의 지난번 실수를 만회하고, 무인으로서 내려앉은 마음을 일으켜주고 싶었다.

도를 지나친 자신감은 자만심(自慢心)이나, 적당한 것은 자긍심(自矜心)이었다. 비슷한 말 같지만 만(慢)과 긍(矜)의 차이는 엄연히 다르다.

무인에게 자긍심은 중요한 덕목이었다.

송운은 이들에게 그것을 다시금 일깨워 주고 싶은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한 단계 앞으로 나아갈 적기이리라!

‘음…… 이리되면 조금의 사심이 아닌가?’

그런 송운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가 물러나기 무섭게 싸움은 점점 더 격렬해져 가고 있었다.

“큭……! 이런…… 씨, 아프잖아!”

부웅-!

빠각!

“커, 커헉……!”

한 대 맞은 것이 무척 아팠는지 미간을 찌푸리며 남궁장후의 무식하게 거대한 주먹이 사방을 휘저었다.

그의 주먹이 닿는 곳엔 열에 아홉은 적의 신음이 터져 나왔다.

찰나의 순간들이었으나 그것만으로도 얼마 전 직접 손속을 섞었던 때보다 일보 더 진전해 있다는 게 느껴졌다.

‘확실히 장후가 습득하는 속도가 빨라.’

그다음으로 송운의 눈에 들어온 것은 곽철우였다.

그의 검이 한 번씩 휘둘러질 때마다 허공에 화산파의 상징인 붉은 매화가 허공에 짙게 흩날렸다. 그 매화 꽃잎 하나하나가 전부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적을 향해 꽂힌다.

지난번 무황비고 때에 비한다면 확실히 엄청난 경지를 성취한 것이다.

다만 남궁장후와 조금 다른 게 있다면 곽철우는 제법 실전 경험이 있어서인지, 남궁장후에 비해 좀 더 능숙해 보인다는 점이었다.

한데, 그보다 놀라운 광경은 따로 있었다.

“아미타불, 아미타불!”

옆에 있던 백길도 어느샌가 평소 목에 걸고 다니던 커다란 염주를 손에 쥐고선, 장법(掌法)으로 적과 대치 중이었던 것이다.

‘물론 그도 무인이니 당연한 것이긴 하지만…….’

송운이 봐 온 소림사의 누구보다 더 스님다웠던 이가 바로 백길이었다.

그런 백길의 몸짓이 막, 거대하고 묵직한 호(虎)의 모습에서 재빠르고 날렵한 표(豹)의 모습으로 변하던 참이었다.

‘……소림오권(少林五拳)인가?’

그의 손끝은 평소 부드러운 성정과는 반대로 소림사의 무학답게 매섭고, 용맹하면서도 쾌속(快速)했다.

가히 소림사에서 후기지수로 내세울 법한 실력이었다.

다만 그는 입으로 아미타불을 끊임없이 중얼거리고 있었다.

송운은 속으로 작게 실소를 내뱉었다.

비웃는 것이 아니라, 전투에서조차 그답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팽후영이었다.

팽후영 역시, 다른 이들에게 지지 않겠다는 듯 등에 메고 있던 거대한 도를 쉴 새 없이 휘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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