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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전생-149화 (149/275)

제149화

가벼운 산보를 나온 듯한 몸짓이나 그의 검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아주 오래되고, 거대하고, 험난하여 인간이 감히 오르기 힘든 석산에 마주한 듯한 느낌이다.

알 수 없는 한기에 오금이 저려온다.

꽤나 오랜만에 느껴지는 기분이다.

아니, 이것은 전율이었다.

‘단지 한두 해 익혀온 것이 아니야. 호신용은 더 더욱이 아니고. 이미 몸과 검이 혼연일체(渾然一體)의 수준을 넘어섰어! 이건…… 내가 봐줘야 할, 검이 아니라 내가 당할 수밖에 없는 검이다.’

더구나 이 정도의 실력을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감출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고강한 무인이라는 뜻.

주륵.

땀방울이 송이송이 맺혀 송운의 이마를 타고 흘러내리고, 굳게 맞잡은 검파 역시도 금방이라도 미끄러져 나갈 것처럼 땀으로 흥건히 젖어나간다.

거기에 긴장과 지친 기색이 드러나는 송운과는 달리 아직도 독고백의 안면에는 여유가 넘쳐흐르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송운이 졌어도 이미 한참 전에 졌을 대련이라는 소리다.

“적과 검(劍)을 주고받을 때는 네가 든 검(劒)에 모든 신경과 생각을 쏟아부어라. 그리하면 이처럼 약하디약한 목검도 너에게 만년한철(萬年寒鐵)보다 더 단단하고 강한 검이 되어줄 거다.”

차분히 말을 이어가면서도 잠시라도 긴장의 끈을 건드릴 때마다, 독고백의 검은 마치 뱀처럼 쏘아져 들어왔다. 단지 평범한 하나의 목검일 뿐이건만 수십 개의 독으로 변해 송운을 압박해왔다.

‘이것이…… 이것이 바로 진정한 무공이라는 건가……! 하면 난 지금껏 검을 들고도 검을 든 것이 아니었단 말인가?’

새롭고도 신선한 충격이었으며 깨달음이었다.

그와 동시에 밀려오는 허탈감과 알 수 없는 감정이 섞이면서 눈앞이 까만점 하나 없이 새하얘지기 시작했다.

‘이 느낌은…….’

오래전, 조화경의 벽이 부서져 내릴 때 느꼈던 그때와 비슷하지만 달랐다.

화아악.

송운의 몸이 그대로 멈추었다.

그리고 이내 초점 역시 서서히 잃어가더니 눈이 감겼다.

독고백은 그 모습을 바라보더니 흥미로운 얼굴로 그를 지켜보기 시작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그의 맥박이 점점 상승하며 열망에 가득 찬 눈빛으로 돌변했다.

모든 것은 그가 원하던 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흐음, 드디어 때가 온 건가? 생각보다 빠르군.”

* * *

무아지경으로 빨려 들어간 송운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갇힌 듯했다.

‘이곳은 내 안에 잠재되어있던 무의식의 세계인가?’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으나 몸이 허공에 두둥실 떠 있다는 것만큼은 생생하게 느껴졌다. 주먹을 쥐었다 펴보았으나 그 느낌마저도 확실했다.

‘설마 꿈은 아니겠지.’

조금 전까지 자신은 독고백과 대련 중이었다.

이리도 갑작스럽게 잠이 든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일 터.

‘……?!’

그때, 송운의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이어진 혈도들이 모조리 깨어 움직이기 시작하는 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간지러운 듯하면서도 뜨거운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송운이 처음 의서와 천의선천기공에서 깨달음을 얻으며 대오각성했을 시절 절반이 열린 상단전이 남은 절반의 삼분지 일에 해당하는 양이 다시 한번 트이기 시작했다.

처음 송운이 대오각성을 이루었을 때보다 훨씬 더 방대한 양이 열린 것이다. 그때 당시와 다른 점이 있다면 상단전(上丹田)뿐만이 아니라 하단전(下丹田)과 동시에 활짝 열린 기묘한 상황이라는 것이었다.

‘크으윽…… 크악!’

송운은 곧 온몸이 타들어 가는 듯한 고통과 함께 마침내 조화경의 두 번째 문이 활짝 열렸다.

* * *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반소(半霄)에 자릴 잡았던 해가 어느덧 황혼에 이르러 송운의 주변을 붉고 검게 물들이고 있을 무렵.

털썩.

꼿꼿하게 멈추어 서 있던 송운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듯 넘어지려는 걸 독고백이 받아내었다.

‘드디어 한 발자국 더 앞서나가게 되었구나. 축하한다. 송 아우.’

이전 경지를 깨고 올라가며 크나큰 정신력을 소모한 탓인지 깊이 잠든 송운을 둘러업고 오룡일봉이 기다리는 곳으로 향했다.

독고백의 예상대로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모두 잠을 이루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비록 잠든 척을 하고 있는 이도 있었으나, 독고백은 이조차 느낄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격렬한 것은 남궁장후였다.

계속해서 마음에 걸리는 인물이, 깊은 밤이 돼서야 송운을 둘러업고 나타났으니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리라.

“이,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운 형님이 어찌하여!”

“장후야.”

“형님! 우욱…… 이, 이건 대체 무슨 냄새요? 퀴퀴한 게…… 설마 측간(厠間)에라도 빠졌답니까? 그래서…… 기절한 거고?”

말하면서도 스스로 어이없어했으나 그 정도로 지독한 냄새였다. 그러면서도 남궁장후는 서둘러 송운에게 손을 내뻗었다.

그를 받아들기 위함일 터다.

‘측간이라…… 큭, 하하하! 그 사이, 좋은 벗을 두었구나. 송 아우.’

제갈염은 그런 남궁장후의 말에 피식 웃음을 흘렸다.

남궁장후의 말대로 송운의 온몸에서는 알 수 없는 냄새가 가득했으니까.

그런 송운을 반듯하게 눕혀놓은 후, 한참을 바라보던 독고백이 드디어 고개를 들었다.

스윽. 슥.

탁.

그러곤 송운의 옆에 짤막한 글귀를 남긴 후, 마저 몸을 일으켰다.

“이 정도면 된 것 같군요. 그간 겪은 일에 피곤했는지 그만 제 앞에서 곯아떨어져 자지 뭡니까? 별일은 아니니 오늘 밤은 푹 쉬게 놔두시면 될 겁니다.”

“그런 겁니까? 뭐…… 미, 미안하게 됐습니다.”

멋쩍은 모습으로 사과하는 남궁장후를 향해 미소 지은 독고백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려 합니다. 운 아우를 잘 부탁합니다.”

“이렇게 가시려 합니까? 송 소협이 일어나면 아침이라도 함께 하시고 가시는 건 어떠하시겠습니까? 보아하니 사이가 돈독하신 듯한데. 저 아이는 그저 성격이 다급한 것뿐이니 너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곽철우가 그를 만류하며 붙잡으려 하였으나, 독고백은 단호히 거절했다.

“아닙니다. 길을 떠도는 처지에 오랜만에. 그것도 우연히 친한 아우를 만나 이미 몹시 기분이 좋아져 발걸음을 잠시 멈추었을 뿐입니다. 제가 방랑벽이 심한 터라……. 하하. 그럼 다음에 또 기회가 있다면 뵙도록 하지요.”

곽철우는 그 말에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주억였다.

애당초 자신들과의 연이 닿은 이도 아닌데다 하물며 가던 길에 마주쳤던 사람을 무슨 수로 막으랴.

“안녕히 계십시오.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아, 그리고 아우를 잘 부탁합니다.”

간단한 인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

묵묵히 그의 곁을 지키던 홍야화(紅夜花) 홍월림(弘月林)이 독고백에게 질의를 던졌다.

“주군. 하온데…… 송구하오나 한 가지 여쭈어보아도 괜찮으실는지요.”

평소 워낙 입이 과묵한지라 오히려 독고백이 놀라움을 내비쳤다. 그러는 와중에도 최대한 태를 안 내려 하는 것 같았다. 혹여나 그의 심기를 건드릴까 걱정하는 모습이 제법 귀여웠는지, 되레 독고백이 호기심이 가득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네가? 호오. 그래. 무엇이 그리 궁금한 것이냐?”

“어찌하여 저 송운이라는 사내만 유독 그렇게 예뻐하시고 집념하시는 겁니까? 저번에도 그러하시고 매번 그러하시지 않습니까. 아무리 이해하려 하여도 이해가 가질 않기에…… 아……! 별 뜻은 아닙니다. 용서하십시오. 주군.”

송운과 재회한 후, 연신 즐거움의 웃음을 내비치던 독고백의 모습이 도무지 이해하려 해도 이해가 되지 않은 것이다.

평소에도 거의 표정 변화가 없는 홍월림이 의구심이 가득 찬 모습으로 물어오니 독고백은 그저 웃음이 나올 뿐이다.

독고백이 홍월림이 말한 단어를 되새김질했다.

“집념. 집념이라…….”

참으로 재미있는 단어다.

독고백이 그동안 살면서 집념이란 단어를 느낄 일이 있었던가?

‘과연 이것이 집념일까?’

홍월림은 한참을 말없이 서 있는 독고백의 모습에 혹여나 그의 눈 밖에라도 났을까, 곧바로 터지기 직전의 폭탄이라도 들고 있는 것마냥 전전긍긍한 마음을 안고 있을 무렵.

독고백의 입이 다시 열렸다.

“월림아.”

“……예?”

당장 목이 떨어져도 시원찮을 판국임에도 너무도 자상하게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겁에 질린 사냥감처럼 눈이 똥그래진 홍월림이 잠시 멍해진 채 있다가 성급하게 답해왔다.

“너 말이다, 이 세상에서 제일 싫은 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소신 아직 덕이 부족하여 잘 알지 못합니다. 송구합니다.”

홍월림은 속으로 생각했다.

‘……아.’

더는 내일에 떠오를 해 따위는 보지 못할 것이라고.

자신의 참견이 주제를 넘었다.

보여서는 안 될 호기심이었다.

대체 왜 그랬을까?

평소의 그녀였다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행동을 스스럼없이, 그것도 너무도 자연스럽게 물었다는 게 홍월림 스스로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만큼 송운이라는 이가 너무도 궁금하였던 것일까.

이미 여러 번 죽을 뻔한 위기를 넘겼으나, 이번만큼은 넘기기 힘들지도 모른다는 위험한 외줄 타기.

하나, 그녀의 예상과는 달리 두 번 다시 듣지 못할지도 모른다 생각했던 독고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심심한 거다. 끝없는 인생이 지루하면 지루할수록 피를 보고 싶거든.”

말을 마친 독고백의 붉디붉은 입술의 끝이 곡선을 그려냈다.

第十二章. 만리추종향(萬里追從香)

부스럭.

잠결에 불편한 지 몸을 뒤척이던 송운이 번뜩 눈을 떴다.

“아……!”

두리번거리며 사방을 훑어보았으나, 어느새 바깥은 컴컴한 어둠이 지배하고 있었고, 자신이 누워있는 곳은 대낮에 있었던 장소와도 전혀 달랐다.

‘허어…… 정말 그 상태로 정신을 잃고 쓰러진 건가.’

송운은 찬찬히 자신의 몸 상태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달라졌어.’

머리도 역시나 한 번 더 지각(知覺)이 된 상태인 건지 이전보다 훨씬 맑고 개운한 상태다. 어찌나 개운한지 만일 이 상태로라면 어떠한 책을 가져다 놓아도 한 번만 훑으면 다 기억 속에 저장해둘 수 있을 거란 자만심까지 들 지경이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후각을 찌르는 듯한 악취가 스멀스멀 기어 올라와 송운의 미간을 찌푸리게 했다.

“윽……. 이 무슨 냄새가 이리도 지독하단 말인가?”

하나, 그것에 대한 출처를 아는 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바로 송운 자신의 몸에서 나는 냄새였기 때문이다.

그나마도 간신히 중요한 옷만 남긴 채 모조리 벗겨져 있는 상황이었다.

‘설마 그것 때문인가?’

송운은 서둘러 운기조식 자세를 취해 소주천을 돌리기 시작했다.

송운의 추측이 맞아떨어졌다.

상단전과 하단전이 동시에 열리면서 그 속에서 막혀 뚫리지 못했던 은혈(隱穴)들이 열렸다. 이에 오랫동안 송운의 몸 안에 쌓여있던 좋지 않은 독성들이 피부를 통해 내뿜어져 나가며 지금의 결과물이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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