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전생-148화 (148/275)

제148화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 참 재미있어. 사람이 이리 많은데 다 다른 의미를 품고 있으니 말이야.’

“어찌 되었건 우리가 이렇게 오랜만에 조우했는데, 우리 차나 한잔할까? 어차피 맡은 그 일이야 차분히 풀어나가야 할 문제이니.”

“따라오시지요. 그렇지 않아도 할 얘기가 많습니다. 도움을 주러 오셨으니, 도움을 받아야지요.”

당혹스럽던 낯빛에서 어느덧 반가움이 가득해진 송운이 환하게 웃었다.

* * *

쪼르륵.

방금 막 우려낸 차는 고운 옥빛을 한 채, 하얀 수증기를 내뿜어낸다. 급하게 구해낸 차와 찻잔인지라 제대로 갖춘 것은 없었으나, 그의 실력은 여전했다.

그러곤 차를 사이에 둔 채, 독고백과 송운이 마주한다.

“정말 오랜만이야. 그동안 대체 어디에 있었던 거야? 계속해서 찾았는데, 있던 곳은 아예 사라지고 아무것도 없고. 얼마나 걱정했는데.”

송운의 진심 어린 음성에 독고백의 입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간다.

“본의 아니게 내 송 아우를 걱정시켰구나. 미안하다. 하도 오랫동안 산속에 처박혀만 있었던 탓에 그간 세간이 어찌 돌아가는지가 궁금하여 세상 구경에 나섰던 것뿐이었는데. 네가 이리도 걱정할 줄 알았더라면 미리 서신이라도 전할 것을 내 거기까진 미처 생각하지 못했구나.”

말을 다 들은 송운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여러 가지의 감정으로 요동치던 그의 눈빛이 서서히 고요함으로 물들었다.

“아니야. 그래도 이렇게 멀쩡하게 다시 만나게 되었으니 그거면 됐어. 그것보다는 대체 여긴 어찌 온 거야? 설령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알고 왔을 리는 없을 테고.”

‘역시 물어볼 만하지.’

독고백은 이미 다 예상했다는 듯 잠시 손에 들고 있던 차를 한 모금 입에 담은 후, 입을 열었다. 슬그머니 송운을 바라보던 그의 눈빛에는 여전히 장난기가 가득 배어있었다.

“아, 역시 그게 가장 궁금한 것인가?”

“혹 말하기 곤란한 거라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돼.”

“아니다. 말 못 할 비밀도 아니고, 송 아우에게 내 뭔들 말 못 할까? 아까 말했던 것처럼 중원을 돌아다니다 우연히 지나가던 도중 이곳으로 흘러들어온 것뿐이야. 방랑객에게 정해진 거처가 어디 있겠느냐. 나도 널 이리 만나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지만.”

호록.

송운은 들으면서도 생각보다 담담했다.

‘우연이라…….’

그의 말대로 방랑객에게 거처는 사치다.

다만, 그 우연이 기가 막힐 뿐이었다.

죽어가는 자신을 그 깊은 산속에서 끄집어내 살려준 생명의 은인이었고, 이번엔 임무 도중 그를 마주하게 되었다 라…….

‘참으로 기묘한 인연이지 아니한가?’

송운은 그때의 추억을 곱씹어보았다.

떠올릴수록, 고맙고 또 고마운 사람이다.

하나 더 이상 그를 캐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알고는 있었으나, 원체 비밀이 많은 사람이지 않은가?

설령 무언가가 더 없다고 할지언정, 그러한 사람이 숨기고자 하는 것에 대해 일부러 들춰내고자 하는 마음은 송운 역시 없다.

호기심을 가라앉힌 송운이 독고백의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곤 아무렇지 않다는 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

“더 이상 예전의 일을 떠올리면 뭐 하겠어. 그 이상 들추고 싶지 않아. 지금은 형과 다시 만났다는 것이 중요한 거니까.”

“그러한가? 그래, 몸 상태는 어때? 다 낫긴 했어도 한번 크게 다친 곳은 반드시 뒤탈이 따르기 마련인데.”

드르륵.

송운이 그 말을 듣자,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형이 지극정성을 다해 보살펴주신 덕에 지금은 이렇게 멀쩡하지.”

탁탁!

송운이 자리에서 통통 튀자, 마른 나뭇가지가 밟혀나가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를 진지하게 바라보던 독고백의 표정도 이내 곧 밝아졌다.

“다행히도 아주 멀쩡해 보이는구나. 아마 내가 잘 돌봐주어서가 아니라 네 몸이 워낙 튼튼해서라는 게 맞을 거야. 그때의 넌 정말 누가 보아도 심각했으니까.”

“음, 그런가? 하하.”

“그럼 무공 수련하는 데에 있어선 큰 지장은 없겠네.”

즐거워 보이는 송운을 향해 독고백이 조용히 혼잣말로 읊조렸다. 애당초 그의 목적은 송운이 한시라도 빠르게 성장하는 것이었으니까. 사실 몸이 멀쩡해졌다는 것은 이미 그를 마주치는 순간부터 기를 통해 알아본 지 오래다.

다시 한번 물은 이유는 만일이라는 가정조차 없애기 위함이었으리라.

독고백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오른다.

‘그럼 몸 상태는 최상이라는 말이로군. 후후.’

그렇다면 더는 망설일 이유가 없다.

독고백은 작금 호기심에 미쳐버리기 직전이었다.

눈앞에 장난감이 있는데 어찌 가지고 놀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내 그럼 다 나은 송 아우의 무공을 좀 보고 싶은데…… 괜찮을까?”

송운은 잠시 멈칫했으나 이내 흔쾌히 응했다.

보통의 무인이었다면 실례가 되는 말이었겠지만, 송운에게 그는 특별한 존재이자, 잘 나았다는 것을 보여줄 수도 있으니 거리낄 게 없었다.

게다가 어차피 제갈염의 다음 서신을 기다리는 데까지는 시간이 조금 더 남았으니까. 기다리는 시간을 지루하고 의미 없이 보내는 것보다야 나은 선택이리라.

“그럼 그럴까?”

* * *

잠시 후.

탁.

“후우…… 후우.”

초식을 마친 송운의 입에선 약간의 거친 호흡이, 온몸에선 땀이 주륵 흘러내렸다.

비록 하나의 초식일 뿐이나, 그의 앞에선 최선을 다하고 싶은 욕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왜 그랬는지는 송운 스스로 역시도 알지 못했다.

짝.짝.짝.

그의 옆에 서 있던 독고백이 양 손뼉을 부딪치며 그를 향해 다가왔다.

“내 송 아우가 검을 드는 무인이라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의 수준일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말은 그렇게 했으나 독고백은 송운이 검무를 펼치는 동안 그의 동작 하나하나를 눈과 머리에 한 동작도 놓치지 않고 모조리 담아냈다.

그러곤 냉철하게 분석했다.

그 어느 때보다 그의 집중력은 최고조에 달해있었다.

독고백은 그 순간 근래 있었던 어느 때보다 더한 전율과 희락(喜樂)이 일었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송운의 무공을 눈앞에서 직접 보는 심경은 그에겐 그만큼 몹시 특별했다.

‘참으로 아름다운 동작이구나. 거기다 사용하는 무공. 독특하군. 흐음, 가히 완벽에 가까워.’

지금껏 수많은 무인들을 보아왔지만, 송운의 무공은 독특했다. 부드러움과 단단함이 동시에 공존하며, 끊김이 없고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알았다.

‘내가 기대한 값어치를 하는구나. 송 아우.’

반면, 독고백의 눈에는 제법 많은 허점들 역시 보였다.

하나 독고백은 그러한 것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어차피 시공검을 익힌 것 역시 금세 따라왔으니 그거야 내가 잡아주면 송 아우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될 터.’

수미일관(首尾一貫) 똑같던 독고백의 표정이 시시각각으로 변했다. 그렇게 보는 내내 독고백은 차분히 머릿속에 넣어두었던 것을 정리한 것이다.

송운을 향해 독고백이 고요한 미소를 지었다.

“운아, 이번엔 나랑 대련 한번 해주겠니?”

“걱정되는데…… 괜찮겠어?”

송운의 물음에 독고백은 괜찮다는 듯 고개를 주억였다.

독고백이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그리고 곧 그의 오른쪽 허리춤에 매달려있던 수수한 모습을 한 검초에서 나온 검을 뽑아 들었다.

“……?”

알 수 없는 그의 행동에 송운은 그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심지어 그 검은 쇠로 된 검조차 아니었다.

‘목검?’

어느새 송운의 마음을 알아챘는지 독고백이 의미심장한 얼굴로 친절히 설명해주었다.

“아, 이거. 진검을 쓰기엔 조금 위험할 것 같아서 말이야.”

숨을 편히 내쉬던 독고백이 이윽고 서 있던 자리에서 천천히 자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기수식 자세가 매우 독특한데?’

송운 역시 기수식을 취하면서도 전생에서도 현생에서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그의 특이한 자세에 눈이 갔다. 숱한 세월 속에 제법 많은 무인들을 만나보았다고 자부하는 송운이다. 혹여 자세가 아직 제대로 잡히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뚫어져라 쳐다보았으나, 연신 쳐다보아도 도무지 알 길이 없다.

‘대체 무슨 무공을 배운 거지?’

하나 거기서 일은 호기심은 이내 빠르게 잊혀 갔다.

“그럼 잘 부탁해. 송 아우.”

마지막 말을 기점으로 시작된 대련은 송운을 당혹스러운 마음으로 밀어 넣었기 때문이다.

따악-!

찌이잉.

묵직한 쇠와 가벼운 목검이 부딪치는 소리는 둔탁했다. 날카로운 쇠의 그것과 뭉툭한 나무가 부딪히는 데에도 전혀 밀리는 느낌이 없다.

아니, 잘리지도 않는다.

송운은 검이 맞부딪힐 때마다 손목이 욱신거리며 저려옴을 느꼈다.

애당초 가볍게 하려고 시작한 대련은 점점 깊이가 더해져만 간다. 짧게 끝날 줄 알았던 대련은 점점 길어져 가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교묘하게 독고백의 목검이 먼저 송운의 검을 파고들어 와 검인(劍刃)을 비켜 치고 있었다.

틀어막기도 급급한 실정이라 공격을 가하는 순간을 찾기가 힘들었다.

너무도 단단하다.

‘대체 백 형은 어째서 이런 사실을 숨긴 거지?’

기껏해야 호신용 정도로 배웠을 거라 생각했다.

더구나 함께 다닌다는 여인은 호위라 밝힌 데다 겉으로 보아도 무인의 기세가 드러난다. 이미 여인에 대한 탐색을 마쳤던 송운은 제법 뛰어난 무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탓에 오히려 송운의 혼란은 더욱 가중되어 갔다.

“어딜 보고 있는 거야?”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송운의 곁으로 독고백이 가까이 따라붙었다. 그리고 둘의 검이 또 한 번 부딪혔다.

타닥-!

“……크윽!”

순식간이었다.

‘이, 이건……!’

송운의 얼굴에 점점 당혹감이 물들어간다.

이번에도 역시 독고백이 손속에 자비를 주지 않았다면, 저 검이 목검이 아니었다면 이미 자신은 싸늘한 주검이 되어 땅바닥을 구르고 있을 터다.

송운의 두 눈동자가 흔들렸다.

꿀꺽.

입안이 바싹바싹 마르며 마른침마저 절로 삼켜졌다.

여태껏 독고백이 검을 쓰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기에 그 충격은 더욱더 컸다. 이만큼 강한 이를 만나는 것은 너무도 오랜만의 일이다.

머릿속으로 문득 몇 해 전 죽은 사도영이 떠올랐다.

‘해남마제?’

아니, 아니다.

그조차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

‘천마?’

그 역시도 마찬가지다.

독고백은 평생 싸워왔던 그 어떠한 무인보다 강하다.

내려찍을 듯한 기세로 흉흉하게 달려드는 맹수의 것은 아니나, 그렇다고 해서 순하디순한 초식동물은 더더욱 아니다.

검을 나누면서 한참의 생각 끝에 송운은 떠올랐다.

‘……석산(石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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