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전생-146화 (146/275)

제146화

“크큭……. 멍청하군. 위에서 시키면 개처럼 따르는 것일 뿐……. 우리 같은 말단 따위가…… 무언가 알고 있을 것 같나? 내가 설령…… 알고 있다고 해도…… 쿨럭. 그걸 발설하는 순간 어차피 죽은 목숨이거늘…… 크윽…… 그걸 말할 성싶으냐? 네놈들이 더 알아낼 수 있는 건…… 없다.”

“그렇다면 이 녀석이 진실을 토해낼 때까지 때려잡으면……!”

“해서…… 당신들과 거래를 해보려 합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송운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거래요? 무슨 거래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대답은 크고 또박또박 들려왔다.

그 누구에게라도 다 들릴 수 있도록 말이다.

“역시나 조건은 똑같습니다. 우선은 이들의 금기에는 말을 해서도 안 되고 글로 써서도 안 되겠죠. 그렇다면 남은 건…… 이들에게 걸려있는 금기를 풀어내던지, 아니면 그곳을 직접 따라가는 것밖엔 방법이 없습니다. 만일 둘 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겠다면 살려둘 생각은 더더욱 없습니다.”

그 말은, 돌려 말하자면 송운이 결코 죽이지 못해 죽인 게 아니라는 뜻이다. 언제든지 죽이려거든 죽일 수 있으니 얌전히 따르라는 것이다.

‘협박…… 인가.’

송운의 말에 한참을 묵묵히 입을 닫고 있던 우낙이 냉소를 지었다. 이야기를 들어야 하기에, 입만 최소한의 혈을 남겨 살려둔 것이다. 물론 그것도 이미 예전에 비슷하게 겪어본 송운이 조처를 한 상태였지만 말이다.

“큭. 생각대로 따라주지 못해 미안하군.”

“……!”

콰득.

그 말이 끝나는 순간, 말릴 새도 없이 동시에 모두 혀 뒤에 있던 독을 삼키곤, 거품을 물며 자결했다.

‘……허, 일이 어렵게 돌아가는군.’

* * *

“결국…… 결국 이렇게 다 놓쳤네요.”

“이 이상 뭔가를 더 찾아내는 건 불가할 것 같군요.”

그 허탈감에 다리까지 풀린 양풍완은 바닥에 그대로 철푸덕 주저앉았다. 기껏 다 잡은 물고기를 눈앞에서 놓친 기분은 썩 유쾌하지 않았다.

그것도 죽음으로써 말이다.

오룡일봉은 물론이고 송운 역시 마찬가지였다.

“여기선 더 이상 답이 없지 않습니까?”

“예. 곽소협 말씀대로 우선은 마을로 돌아갑니다.”

“몇 날 며칠을 그렇게 고생해서 달려들었는데……. 대체 뭐 하는 놈들이기에 목숨을 이렇게 쉽게 날린답니까? 아무리 악인이어도 제 목숨 아까운 줄은 알던데 이건 뭐…… 독하다고 해야 할지.”

힘이 축 처진 채로 주저앉아있던 양풍완이 물었다. 아직 그로서는 이러한 사고방식이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나 보다. 더구나 아무리 혈교에 대해 들었다지만 모두 들어본 적도, 본적도 없는 존재이기에 이들에겐 너무도 멀리 느껴진다.

어찌하면 이리도 쉽게 목숨을 포기할 수 있을까?

송운은 그 마음이 이해가 가질 않으면서도 이해가 갈 듯 말 듯 한 오묘한 기분이었다.

“빌어먹을…… 교에 대한 충성심에 눈이 먼 자들이겠지. 아니면 자신들도 모르게 죽어라 세뇌당했거나. 그렇지 않고서야 대체 어찌 이런 무모한 짓을……!”

“……주변 반응은요?”

계속해서 열을 내는 남궁장후의 곁에서 가만히 있던 팽후영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녀 역시 표정에 별반 큰 차이는 없었지만, 침묵 어린 화가 잔뜩 어려 있다는 걸 송운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그녀에게서 은은하게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제법 살벌해졌기 때문이다. 송운은 곧바로 계속해서 퍼뜨리고 있던 기운을 다시 끌어들이며 입을 열었다.

“이 주변에선 더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작은 산짐승들을 제외하곤 말이죠. 아무래도 이 녀석들이 끝인 것 같군요.”

“하…… 이거야 원, 보기 좋게 실패네, 실패야.”

모두의 안면에는 허탈함이 한가득 담겼다.

그중, 백길의 안색은 일곱 명 중 유독 더 좋지 않았다.

‘역시 마음이 편치 않겠지.’

머잖아 어수선하던 이곳에서 침착함을 유지하며 백길이 시신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처리한다고 해봤자, 전부 나란히 눕힌 뒤 염을 해주는 것이 전부였지만 말이다.

“휴우……. 얼른 하고 갑시다.”

다들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으나 백길의 성격을 너무도 잘 아는 오룡일봉 역시 나서서 그를 도왔다.

손이 많으니 제법 많던 일도 끝나는 건 순식간이었다.

좀 전 보단 한결 표정이 편안해진 백길을 바라보던 송운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우선은 무림맹으로 돌아가도록 하죠. 여기에 있겠다고 해서 죽은 적들이 다시 살아 돌아오진 않을 테니까요.”

第十一章. 절대자의 눈

톡.

토독, 톡.

황제의 침상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아니 그것보다 훨씬 더 화려하고 커다란 위용(偉容)을 자랑하는 그곳에 누운 이가, 반복적으로 길고 흰 손가락으로 음률을 만들어낸다.

사내임에도 불구하고 그 모습은 마치 너무도 아름다워 넋을 잃게 만들 법했다.

비슷한 음률이 벌써 두 시진 째 반복되는 것에 질릴 법도 하건만 주위의 여인들은 마치, 추임새라도 넣으려는 듯 까르르 웃으며 그가 만들어낸 가락에 흥을 더한다.

하나, 정작 그 모든 상황을 만들어 낸 침상에 누운 주인은 몸과 표정이 점점 늘어져만 가고 있었다.

‘역시 이곳에서 듣기만 하는 것은 지루해.’

직접 나서 자신의 눈으로 보고 싶었다.

뿌린 씨앗이 어찌 커 가는지 말이다.

특히나 요즘 들어 더욱 자주 들려오는 송운의 행보는 그에게 더할 나위 없이 즐거움을 안겨 주고 있었으나, 그와 동시에 애가 탔다.

“……송운.”

독고백은 손가락을 멈추곤 그의 이름을 조용히 읊조렸고, 그와 동시에 모든 소음들 역시 마치 기적처럼 멈추었다.

‘재밌는 아이야. 그래서, 역시 가장 많이 신경이 쓰여.’

독고백의 긴 손가락이 옆에 있던 사과를 하나 집었다.

그 사과는 곧 모양을 잃었다.

콰직.

그의 하얀 손가락은 움직이지 않았지만, 순식간에 사과는 과즙을 내며 산산조각이나 사방에 튀어 물들었다.

하나, 누구 하나 경거망동하는 이는 없었다.

이런 사소한 것으로 괜한 소란을 일으켰다간 죽음이라는 결말을 짓게 된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주변 이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독고백은 차분히 자신의 손목에 흘러내리는 과즙을 핥아 마셨다.

‘이 사과처럼 무럭무럭 자라나, 열매를 맺고 어서 날 즐겁게 해줘야 할 텐데 말이지.’

그런 독고백을 천정에 뚫린 구멍으로 들어오는 미세한 빗줄기가 그를 환하게 비추었다. 그러자 그 모습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눈으로 보았다면 누구나 한 번쯤 그를 만져보고 싶은 충동이 일게 만들고 있었다.

물론 그 속에는 화려한 꽃에 가리어진 가시처럼 치명적일 만큼의 잔인함이 숨어있을 테지만…….

독고백은 이곳에 있지만, 그의 눈과 귀는 세상에 널려있다. 또한, 그가 그간 세상에 뿌린 씨앗은 굉장히 방대하다. 곳곳에 그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을 만큼.

그중에 송운은 아주 작은 씨앗에 불과했다.

애초부터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아주 미세한 생물 말이다.

한데, 몇 번에 걸친 송운의 활약은 그를 놀라게 했고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직접 나서 겪어본 송운은 생각과는 달리 떡잎부터가 다른 열매였다. 그는 알면 알수록 점점 자신의 궁금증을 유발하는 존재다.

까고 또 까 내보아도 무언가 끊임없이 그 속에서 알 수 없는 무언가가 흘러나온다.

‘흐으음…… 생각보다 느려.’

어서 빨리 그가 성장하기만을 바랐다.

성장한 모습으로 자신을 즐겁게 해주기를 바랐다.

그런데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자니 그의 성미를 자꾸만 송운이 부추기고 있다. 자꾸만 조금만 더 빨리 쫓아왔으면 하는 간절함이 생겨난다. 그리고 그것은 독고백으로 하여금 자꾸만 송운을 더욱더 벼랑 끝으로 내몰게 했다.

내몰아도 또다시 기어 올라와, 그의 지루함에 손을 저어 뒤집는다.

‘또…….’

하나 이내 독고백은 고개를 좌우로 휘휘 내저었다.

‘아니지, 아니야. 원래 계획보다야 빠르게는 가고 있지. 내가 너무 성급한 거야. 지금까지 지켜봐 왔던 그 누구보다 빠른 속도야.’

독고백이 놀랄 만큼, 왜 진작 알아채지 못했을까 싶을 정도로 그만큼 송운은 탐이 나는 열매였다.

그의 말대로 단지 자꾸만 그렇게 느껴지는 연유는 독고백이 송운에게 거는 기대가 크기 때문일 것이리라. 특히나 지난번 직접적으로 송운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난 후에는 더더욱 말이다.

그만큼 그 기억은 짧지만 독고백에게는 강렬했다는 뜻일 터.

오랫동안 암흑 속에 빠져있었던 독고백에게 있어서 그 시간은 오랜 지루함을 달래주는 가뭄의 단비 같은 것이었다. 한번 그 맛을 알고 나니 잊기가 여간 쉽지 않은 듯했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이곳에서 앉아서 기다린다고 빨라질 것 같지도 않고 말이야. 귀찮지만…….’

독고백의 고운 입매가 부드럽게 곡선을 그린다.

펄럭!

오만함이 한껏 몸에 밴 몸짓으로 오랫동안 등에 기대 누워있던 독고백이 옷자락을 펼치며 몸을 일으켰다.

스스슥.

이에 독고백 주변으로 몰려있던 수십여 명에 가까운 여인들 역시 그를 따라 물줄기가 갈라지듯 일어선다. 누구 하나 입을 열어 맞추지 않았고, 구경하는 이도 없었으나 실로 어마어마한 광경이다.

그때, 수많은 여인 중에서도 가장 독보적인 아름다움과 풍성한 몸매를 지닌 여인이 그의 뒤로 조용히 따라붙었다.

얼핏 보면 너무도 잘 어울리는 선남선녀였으나, 그 둘의 관계는 아쉽게도 그러하지 못했다.

그렇게 하기에는 두 남녀의 관계는 너무도 먼 존재였으니까.

“어디로 뫼실까요?”

입술이 열리며 흘러나온 소리는 외모와 매우 잘 어울리는 매혹적인 음성이었다. 만일 일반 사내가 보았다면 한눈에 반해 전 재산이라도 내줄 만한 미인상이다.

하나, 독고백은 그런 여인을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앞으로 걸어 나갔다.

“계속 앉아만 있었더니 몸이 쑤시는구나. 오랜만에 밭으로 산책이나 좀 즐겼으면 하는구나. 쿡쿡.”

그러자 여인의 입가에도 미세한 미소가 떠올랐다.

“예, 알겠습니다. 주군.”

* * *

“이제 어찌합니까? ……대주. 벌써 며칠을 공으로 보냈는데.”

아직도 대주라는 호칭은 어색한 것인지 당무옥이 쭈뼛거리며 송운을 향해 물었다. 굳이 그렇게 부르지 않아도 된다고 이미 언질을 주었지만, 당무옥은 꿋꿋하게 그 호칭을 애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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