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3화
‘혹여 이 사실을 알리면 자신들이 그간 저질러 온 일들까지 모두 들통날까 두려웠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황궁의 사람들과 직접 마주칠 일은 평생에 가야 몇 번 없을 테니.’
아무리 생각해도 화가 수그러들지 않았다.
제갈염의 말에 의하면 다른 곳의 피해는 호남성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라고 했다. 나타나는 주기마저도 굉장히 들쭉날쭉한데다 하나같이 실력이 매우 뛰어난 자들이라 쉽사리 쫓을 수가 없다고 했다.
‘한데 이러한 놈들일 줄이야……. 아마 이놈들의 뒤를 봐주는 놈들임이 틀림없으리라.’
그들의 본거지를 단숨에 찾을 거라는 생각은 애당초 없었다. 송운은 떨리는 주먹과 마음을 가다듬고 그들을 향해 말했다.
“일을 시킨 놈들의 거처만 말하면 된다. 아니 뭐라도 아는 게 있다면 모두 다. 순순히 말한다면 네놈들은 놓아주마. 단, 두 번 다신 이런 일에 손을 담그지 않는다는 약조 하에.”
“저, 저, 저, 정말입니까요?”
흔들리는 무리와는 달리 그들을 이끄는 머리인 석강(石鏹)은 눈을 부리부리하게 뜬 채, 송운에게 똑바로 물었다.
“내가 그 말을 어찌 믿지? 내 이런 거래를 하고 산 지 어언 이십 년이외다. 한데 내 그 말을 어찌 믿는단 말이오? 이걸 말하고도 우릴 고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단 말이오?”
석강의 그 큰 눈이 송운과 마주쳤다.
“난, 절대 거짓은 말하지 않는다.”
짧은 말이었으나 그 속에 깊은 무게가 있었다.
‘……뭐, 뭐야? 이건.’
순간 석강은 그 엄청난 무게감에 짓눌린 채 몸이 굳어버린 것이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그가 힘겹게 고개를 들어 다시 한번 송운의 눈을 바라보았다.
“형님 무, 뭐하오? 아 어서 말씀드리지 않고! 우리가 언제부터 신용으로 먹고살았다고 이러시우!”
양측으로 재촉하는 사이에 낀 석강은 순간 처음 이 일을 맡았을 때, 자신에게 임무를 주었던 복면의 사내의 말을 떠올렸다.
“만일 이 일이 누군가에게 새어나간다면 네놈들은 죽을 각오를 해야 할 거다.”
석강이 이내 초조한지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설마…… 어차피 벌대로 벌었겠다. 이쯤에서 손 뗀다고 생각하고 놈들이 알아채기 전에 쥐도 새도 모르게 도망가면 되지, 뭘 머뭇거리는 게야? 이 멍청아! 이대로 이렇게 허망이 이 자리에서 목숨을 버릴 셈이냐?’
조금 전 송운의 한마디에 판단은 끝이 난 상황이다.
‘……이자들의 손에선 절대 못 벗어난다.’
오랫동안 이런 판을 굴러온 그의 직감이 온몸으로 말해주고 있었다.
여기서 저항은 곧 죽음이 될 것이다.
‘말하자.’
어차피 센 놈들에게 빌붙었다가 한탕 치고 도망치던 건 자신들이 밥 먹듯이 하던 것이 아니던가?
아무리 놈들이 실수라도 하는 날에는 목숨을 취하리라 으름장을 내놓았다 한들, 당장 현재의 목숨 줄은 바로 앞의 놈이 쥐락펴락하고 있다.
‘우선 여기서 살아나간 후, 이곳을 뜨면 된다.’
어차피 그들을 만나기로 약조된 날은 한참 남았고, 여태까지의 상황을 미루어보아 그날이 되기 전까지는 이곳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더는 머뭇거릴 연유가 없었다. 아까 생각했던 대로 그들에게선 훗날 살아남아 도망가면 그만이다.
석강은 그리 생각하고 싶었다.
“좋소. 내 말 하겠소. 하나! 반드시 부하들과 내 목숨에 대한 약조는 지켜야 할게요.”
그의 대답에 기가 찬 송운이 분노로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답했다.
어찌 되었건 지금은 그의 정보가 필요했으니까.
“그 약조, 내 이름을 걸고 꼭 지키지.”
송운이 말하는 눈을 보고 있자니 석강이 무언가 안심이 되는 마음에 마치 무엇에 홀린 듯 입을 열었다.
“귀주성(貴州省) 귀양(貴陽)…….”
퍼버버벙!
파박!
말을 채 마치지 못한 석강과 그 동료들은 그대로 몸이 터져나갔다. 아니, 그 한 명뿐만이 아니라 차례로 몸을 포박해 눕혀두었던 열 명이 모조리 다 터져나갔다.
다행히도 송운이 이를 빠르게 눈치채고 몸을 날려 가장 가까이 있던 당무옥을 낚아채, 자리를 멀리 옮겼기에 무사할 수 있었다.
살과 근육, 내장이 처참하게 터져나간 채로 핏물이 고인 바닥을 뒹굴고 있는 모습은 썩, 볼만한 광경은 아니었다.
그가 입을 여는 순간 동시에 모두 터진 것을 보아하니 그들 모두가 알지 못한 채로 적에게 특정 단어에 대한 속박을 받은 것이 분명했다.
‘이런. 언령인가? ……정말 오랜만에 보는군.’
이내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당무옥이 상황 파악이 끝나기 무섭게 속에서 먹었던 것을 전부 게워내기 시작했다.
“우우욱……!”
이미 전생에서 이러한 것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던 송운 역시 절로 안면이 찡그려지고, 속이 메스꺼워짐을 느낄 지경이었다.
당연히 옆에 있던 당무옥이 이런 상황에 내성이 있을 리 만무했다.
“욱…… 대체 이게……?”
“우욱……!”
“허어 어찌 이러한 일이……. 나무아미타불 아미타불…….”
그때 마침 송운과 당무옥이 있는 곳으로 달려온 오룡일봉 역시 그 피해는 보지 않았다.
다만, 결국 참지 못한 이들이 토악질하기 바빴다.
그 와중에도 백길은 소림사 출신답게 그들의 극락왕생의 길을 빌어주고 있었지만…….
“……손속이 악독하네요.”
유일하게 표정에 거의 변화가 없던 팽후영이 말을 이었다.
“마침 잘 맞게 오셨군요.”
송운이 조용히 고개를 주억이며 답했다.
‘아무리 그저 한 번 써먹고 버릴 패라고 해도 너무하는군. 역시 상대는 피도 눈물도 없는 혈교라 이건가.’
송운은 기껏해야 예전의 그들처럼 독이 입안에 퍼지거나 할 줄 알았다. 한데, 이건 심해도 너무 심했다.
만일 조금만 눈치채는 것이 늦었더라면 코앞에 서 있던 당무옥도 그 여파에 마냥 무사하진 못했으리라.
“이건 아무리 봐도 잔챙이 같죠?”
“맞습니다. 애초에 이런 일을 높으신 분들이 할 거라곤 생각도 안 했지만, 이 정도로 손속에 무자비한 것을 보니 확실히 말단인 건 맞는 것 같네요.”
송운은 잠시 들었던 씁쓸한 마음을 거두어들였다.
아무리 안타까워 보여도, 이들 역시 평생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목숨을 앗아간 이들이다.
단지 응당한 벌을 받는 것뿐이다.
“귀주성, 귀양현이라. 생각보다 그리 멀진 않은 곳이군요. 범위가 넓긴 해도 생각보다 많이 좁혀졌습니다.”
“송 형님. 아마…… 머리까진 아니겠죠?”
끄덕.
“이런 식이라면 아마도 그럴 겁니다.”
“에이 참. 말 놓으시래도……. 진짜 안 놓으시면 저 확 삐집니다?”
“하하. 알겠습니다.”
하나 화기애애한 분위기도 잠시일 뿐.
송운 일행은 모두 마음은 모두 이미 귀주성 귀양현에 가 있는지 오래다.
이제 겨우 정말 꼬리를 잡았을 뿐이다.
놈들이 이 사실을 눈치를 채기 전에 더욱 먼저, 움직여야 한다. 늦을지도 모르나, 자칫하면 애써 얻은 정보가 헛수고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이제부턴 곧장 귀양현으로 가면 되는 겁니까?”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런 식의 술수를 쓰는 녀석들이 이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을 리 만무하니까요. 현은 알았으니 그 주변의 가장 중앙부터 찾아가도록 하죠.”
“형님. 그렇다면 역시 이번에도…….”
남궁장후의 불안함이 가득 담긴 목소리가 채 끝맺음을 하기도 전에, 송운이 말을 이었다.
“예, 뛰어야겠지요.”
“이런 젠장……. 귀양현에서 보십시다. 형님!”
“그, 그럼 저도…….”
남궁장후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경공을 사용해 가장 먼저 튀어 나갔고, 이에 질세라 다른 이들도 몇을 제외하고 뛰기 시작했다.
그들의 마음은 모두 같았으리라.
‘이번엔 결단코 먼저 도착하고 만다!’
第十章. 추격전
“하아…… 하아……. 제길!”
팍!
“오셨군요.”
“……아무래도 이번에도 먼저 도착이신가 보군요.”
이제 막 도착한 팽후영이, 애꿎은 땅을 향해 화를 내는 남궁장후를 보며 송운에게 스치듯 물었다.
하나 마냥 그렇다고 하기엔 주변 분위기가 썩 좋지 않았다.
“분명 그러한 것도 있겠지만……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그사이에 도주한 것 같습니다.”
“적의 흔적 같은 거라던지, 뭐 남은 게 아무것도 없는 겁니까? 이번에 몸통을 놓치면 이젠 정말 언제 머리에 도착할지 모르는데……!”
당무옥이 다급하게 물어왔지만, 그에 반해 송운은 상대적으로 침착한 모습이다. 당무옥의 눈빛 속에선 애써 힘들게 찾은 증거를 놓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간절해 보였다.
하나, 그것은 송운 역시 마찬가지다.
아니 오히려 더 다급하면 다급했지, 결코 담담할 수 없다.
‘마음은 잘 알겠으나, 이런 시기에 나마저 초조해봤자 도움이 될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침착하자. 뭐든 생각해내야 한다.’
잠시 심호흡을 내뱉은 송운이 말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그러고는 더는 말을 잇지 않고 눈을 감은 채,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하나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는 달리 그의 주변에서는 수많은 기운이 빙빙 맴돌다 사방으로 널리 퍼져나갔다.
그러기를 얼마가 지났을까.
‘……찾았다.’
침묵은 오래가지 않았다.
“다른 것은 다 지웠을지 몰라도 급하게 떠나느라 흔적을 다 지우지는 못한 모양입니다. 호남성에서 마주했던 것과 같은 그 특이한 기운을 찾으면 됩니다. 도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으니, 아직은 이 주변 일대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테지요. 찾을 기회가 우리에겐 있을 겁니다.”
“이리 끼어들어 말하기 송구하오나, 송 소협. 이 주변 일대는 중원 사방으로 길이 열려있는 곳입니다. 놈들이 어디로 갔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 아닙니까? 하물며 이미 이곳이 놈들의 본거지 중 하나라면, 만일 이것이 혈교가 파둔 함정이라면 어찌합니까?”
곽철우 역시 이번만큼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송운을 바라보았다.
“든든한 이들이 이리 모여 있는데, 못할 것은 또 무에 있겠습니까? 함정이라고 해도 파고들 겁니다. 이번에도 역시 흩어져서 찾아본다면 반드시 찾을 수 있을 거구요. 백길 스님, 그리고 곽 소협. 두 분 모두 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하나 이곳은 호남성과는 또 다르지 않습니까? 여기서는 정말 이 이상 정보도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이미 놓쳤다는 것이 기정사실이라도 된 마냥 발을 동동 구르며 양풍완이 재촉하니, 송운이 그의 어깨를 툭 치며 다독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