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전생-142화 (142/275)

제142화

생각보다 사태가 심각했다.

이렇게 백성들이 고통받고 있는데, 관아의 높은 자리에 있던 놈들은 도망만 치고 없단 말인가?

‘관리를 따로 두는 연유가 바로 이러한 때에 백성들을 돌보기 위해서거늘……!’

단지 아버지와 함께 황궁에서 연을 맺고 연인과 장인어른이 황궁에 있기에 관리들을 욕보이는 그들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이미 전생으로부터 뼈저리게 그들을 잘 알고 있었기에 더더욱 화가 나는 것이다.

벌컥-!

그때, 객잔의 문이 힘차게 열렸다.

“송 형님!”

“쿨럭쿨럭!”

“캑, 캐객!”

급작스러운 방문에 놀랐는지 먹던 것이 목에 걸린 채, 캑캑대는 사내의 등을 두드려주며 문 쪽으론 시선이 향했다.

“모두 도착했습니까?”

“예.”

‘역시.’

송운이 이 객잔에 들어오기 전 일부러 자신의 기운을 미세하게 알아볼 수 있도록 흘려두었는데, 역시나 그것을 따라온 것이리라.

송운은 뜻밖의 등장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들을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두 분 덕분에 소중한 정보를 얻었습니다. 계산은 미리 든든히 해두었으니 마저 드시고 가시지요.”

“아…… 예, 예.”

“그럼 이만 가보죠. 오시느라 고생하셨겠지만, 오늘 밤은 조금 분주히 움직여야 할 것 같습니다.”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송운을 바라보던 그들은 더는 송운과 문을 열고 들어온 이들을 볼 수 없었다.

그저 아직 찬 봄바람이 그들의 얼굴을 훑고 지나갈 뿐.

휘잉-

“조, 조금 전까지 사람들이 있었는데…….”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 * *

“역시 송 형님. 빨리도 도착하셨습니다.”

남궁장후가 여전히 씩씩한 목소리로 말했다.

예전과 같이 비꼬는 말투가 아닌, 진심으로 존경이 담긴 목소리였다.

그렇다.

이곳까지 오는 거리는 하북성에서 섬서성에 가는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 곳이다. 다만 그때와 다른 점이라면 송운의 몸 상태가 최상이었다는 것뿐.

해서 더더욱 빨랐다.

시간상으로는 약 반나절에서 하루 정도의 차이일 뿐이었지만 거의 송운과 오룡일봉의 실력 격차는 이미 쳐다볼 수도 없을 만큼 벌어져 있었다.

그렇다 보니 송운은 도착하고 나서도 약간의 지친 기색을 보일 뿐 멀쩡했지만 오룡일봉의 안면에는 감추려 해도 피곤함이 잔뜩 들어서 있었다.

“뭐라도 좀 알아내신 게 있습니까? 좀 전에 보니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시는 것 같던데요.”

역시나 눈치가 빠른 곽철우다.

송운은 조용히 고개를 주억였다.

“생각보다 사태가 심각합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백성들을 보살펴야 할 관리들마저도 자리를 모두 떠난 상태라 합니다.”

만일 호남성에 구파일방, 혹은 오대세가 중 하나라도 존재했다면 이 정도로 처참하진 않았을 터다.

‘딱히 이 땅을 위험까지 무릅써가며 보호하려고 드는 문파도 없어.’

호남성은 주변 다른 성 일대에서 가장 서로 감시와 다툼이 잦은 곳이다.

수도인 북경과는 거리가 멀고, 그 멀리 떨어져 있는 성(省)과 현(縣)들 중에서도 호남성은 중심지를 이루고 있다. 그렇다 보니 주변의 큰 문파들이 서로 차지하겠다며 덤벼들었고, 오랫동안 계속된 싸움으로 지친 그들이 결국 협정을 맺고 모두가 평등하게 이 땅을 점령하지 못하도록 서로가 정해버린 것이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곳은 무인들의 불모지(不毛地)가 되어버렸다. 어떤 의미로서는 간섭을 받지 않는다는 것일 수 있지만, 그것은 곧 보호 역시 받지 못한다는 것과 다름없다는 소리다.

그 덕분일까.

어느 순간부터 이곳에는 주로 상단들만이 몰렸다. 각자의 상단을 지킬 정도의 세력 이상을 갖는 것도 불가했다.

보이지 않는 눈들 때문이었다.

해서 관리들의 횡포도 가장 심한 곳이 바로 이곳.

‘호남성.’

송운은 그제야 이곳이 왜 같은 일이 벌어지면서도 수많은 성 중 가장 눈에 띌 수밖에 없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이러한 곳에서 제대로 된 보호를 받았을 리가 없지.’

송운이 고개를 좌우로 내저었다.

“……사정이 그러하다 보니 이곳이 눈에 띌 수밖에요. 그런데도 계속 놈들이 움직이는 연유는 아마 이 사실을 아직 잘 파악하지 못했거나, 아니면 그만큼 자신감이 넘치고 있다는 이야기겠지요.”

송운의 이야기를 들은 오룡일봉의 안면이 종잇장 꾸겨지듯 찌푸려졌다.

“아미타불, 아미타불…….”

“이래서 관리 놈들이 싫어. 하는 건 제대로 있지도 않으면서……! 쳇.”

“장후야.”

평소 성격대로 말하던 남궁장후를 향해 곽철우가 슬쩍 눈치를 주자 그제야 말을 정정시켰다.

말하자면 송운 역시 황궁의 사람이기에 아마 듣기 거북할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리라.

“아……. 뭐, 꼭 다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곽철우가 눈치를 주고 나서야 송운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선 말을 돌리려 했지만 둘의 생각과는 달리 송운은 의연했다.

“괜찮습니다. 곽 소협. 저도 그러한 현실 정도는 이미 깨닫고 있으니까요. 이미 이곳은 황실과 먼 거리에 있는 곳입니다. 제대로 된 손이 닿기 어려운 탓도 있겠지요.”

송운이 너무도 덤덤하자, 오히려 민망한 것은 남궁장후였다. 그래서인지 곧 큰소리로 화두를 돌렸다.

“큼! 아무튼, 그러니까 지금 호남성 전체가 난리라는 거 아닙니까?”

“예, 맞습니다. 그 덕분에 아마 자신들의 세상인 마냥 계획대로 계속해서 이곳으로 밀고 오고 있겠지요. 그나마 다행이라면 저희가 추측했던 동선을 벗어나지 않고 그대로 다가오고 있다는 겁니다.”

“흥. 자신감이 아주 넘치시는구만.”

물론 지금처럼 정보를 얻으려 마음먹고 알아본다면 얻을 수 있으나 일반인들이 알아채기엔 어려운 동선이다. 겉보기엔 단일한 것 같지만 속을 보면 제법 복잡하기 때문이다.

지금 송운 일행이 있는 곳은 동구와 홍강 그 사이다.

그렇다면…….

“오늘 이후, 반드시 이 부근을 지나갈 겁니다.”

송운의 두 눈이 반짝, 하고 빛이 났다.

그것은 마치 절대로 먹이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강렬한 의지가 담긴 맹수의 눈빛과 흡사했다.

멈칫.

찰나의 순간 맴돈 그 묘한 싸늘함은 모두를 옥죄였다.

‘뭐, 뭐야…… 이건?’

그 모습에 가장 당혹스러운 것은 당무옥이었다.

곧 송운은 언제 그랬냐는 듯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고 당무옥은 고개를 휙 돌렸다.

‘그럼 그렇지.’

하나, 당무옥과는 달리 남궁장후는 되레 그런 그의 모습에 소름 돋게도 잠잠했던 피가 끓어오르는 듯했다.

혈교가 얼마나 위험한지 반복해서 들은 탓에 두려움도 있었지만, 이것은 어쩌면 제대로 된 송운의 고강(高强)한 무공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내일이 왠지 모르게 기대되는 남궁장후였다.

“지금 마을에 가까이 가는 것은 서로에게 좋지 않을 것 같군요. 우리 역시 괜히 수상한 사람으로 오해받아 좋을 건 하나도 없을 것 같군요. 이곳에서 하루 노숙하도록 하죠. 내일은 아마 힘든 하루가 될 겁니다. 아니…… 이 임무를 완수하는 날까지요. 쉴 수 있을 때 최대한 푹. 쉬도록 하세요.”

모두가 송운의 말에 알았다며 고개를 주억였지만, 단 한 명 당무옥은 여전히 표정이 좋지 못했다.

‘……흥. 역시 마음에 안 들어.’

* * *

다음 날.

뿔뿔이 흩어질 그들의 동선을 모두 엮었다.

그리고 그 와중, 송운과 당무옥이 함께 묶였다.

한 시진 전.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이곳은 사방으로 뚫려있고, 어느 경로로 갈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장소가 꽤나 넓어서 한곳에 뭉쳐있다가는 놓칠지도 모릅니다. 그러다가 마을로 넘어간다면 자칫 인질들이 생길지도 모르는 일이구요. 해서 다섯 분 중 기감이 가장 뛰어난 백길 스님과 곽 소협. 이 두 분은 따로 찢어져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나눠진 조는 남궁장후와 팽후영.

백길과 양풍완, 그리고 곽철우.

송운과 당무옥.

이렇게 세 조였다.

“왜, 왜, 왜 어째서요? 왜 하필이면 접니까?”

당무옥은 어째서 자신과 송운이 함께해야 하냐며 불만을 토해냈지만, 그것은 잠시뿐이었다.

싫어도 어쩔 수 없다는 걸.

당무옥 역시 공은 공이고 사는 사라는 것을 말이다.

송운이 딱히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지만 임무 중 대주의 말을 어길 만큼 바보는 아니었다.

“정말 왜 하필이면 나랑 엮어가지고는…….”

당무옥이 혼잣말로 한참을 투덜거릴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와 발소리가 들려왔다.

‘쉿.’

송운이 그런 그를 향해 조용히 하라며 입가에 손가락을 갖다 대는 행동을 취했다.

“요즘 애새끼들이 아주 다 무섭다고 전부 몸 사리는 바람에 수익이 좀처럼 많질 못하단 말이오. 에잉.”

“크하하하하하! 그래도 이것만 해도 예전 우리가 벌던 수입보다야 몇백, 몇천 배는 더 많다 이놈아! 죽고 싶지 않거든 잔말 말고, 오늘은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 길 안내나 잘하란 말이야!”

송운과 당무옥은 동시에 몸이 굳어지는 현상을 겪었다.

“하……!”

“허……!”

기가 막힌 소리다.

‘그간 사람들이 이런 놈들한테 납치를 당했다고?’

기운이 빠져나갈 만큼 허무한 상황이다.

도무지 새어나가는 탄성을 막아낼 도리가 없다.

하루를 꼬박 새우며 길목을 지켰는데, 눈앞에 잡힌 물고기는 고작 삼류급밖에 되지 않는 시정잡배 놈들이니 말이다.

더는 지켜볼 연유가 사라졌다.

송운이 직접 나서려는 그때.

척.

앞을 바라보고 있던 당무옥이 송운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 정도쯤은 내가 혼자 해도 되니 괜히 고생 사서 하지 마시지요.”

“음…… 알겠습니다. 다만 죽여서는 아니 됩니다.”

“그런 것 따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쳇. 누굴 바보로 아나, 정말.”

파박!

그 말을 마지막으로 당무옥이 곧바로 그들의 앞에 튀어 나갔다.

“누구냐!”

당무옥이 나서자 놈들의 시선과 검 끝이 죄다 그곳으로 몰렸다.

채재재쟁-!

채쟁-!

“누구긴 누구야. 네놈들 잡으러 온, 저승사자이지.”

당무옥의 말대로 일은 금방 처리되었다.

아무리 오룡일봉 중 가장 실력이 낮다고 한들 시정잡배 따위가 당무옥의 상대가 될 수는 없었다.

흩어졌던 모두가 다시 모인 자리.

“사, 사, 살려줘! 아니 살려주십시오! 대협! 우리는 그저…… 그저 많이 잡아들일수록 돈을 더 얹어준다기에 그, 그러했던 것뿐이오. 우리도 먹고살아야 하기에……!”

“……그만.”

자신이 살기 위해 남의 목숨을 취한다?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다.’

해서 더 화가 났다.

만일 주변 일대의 다른 문파들이 조금만 나서주었더라면, 아니. 하다못해 관리라도 이 사실을 황실에 알렸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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