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전생-141화 (141/275)

제141화

第九章. 호남성으로

“하아…… 하아……!”

누군가 가던 길을 멈추고선 잠시 숨을 골랐다.

당무옥이었다.

다른 무공이라면 조금 수준이 떨어질지언정, 적어도 경공이라면 오룡일봉 중 최고라고 자부하던 그였다. 한데, 이상하게도 송운을 쫓아가는 것이 너무도 벅차올랐다.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의 속도를 쏟아부었는데도 그의 꽁무니를 놓쳐버렸다.

이제는 송운과 멀리 떨어져 버린 상태.

사전에 장소를 정하지 않았더라면 갈 길조차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인간이 아닌 건가?’

하나 곧, 스스로 생각하고서도 어이가 없었는지 얼굴을 찡그린 채 헛웃음을 내뱉었다.

‘하, 그럴 리가 없잖아. ……제길!’

팍-!

털썩.

성질이 돋은 그는 애꿎은 돌멩이만을 발로 차더니 아예 땅으로 누워버렸다.

‘내가 어쩌다 이리 한심해져 보이게 된 거지?’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에서 익숙한 기운들이 느껴져 온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이 아직까지는 자신의 뒤를 쫓아온 이가 없다는 것이었거늘 이조차도 곧 끝날 모양이다.

‘남궁장후, 그 뒤에 철우 형님. 게다가 영령이까지……. 쳇, 다들 빨리도 따라오는구만.’

분명 격차는 있었다.

어릴 적부터 곽철우야 워낙 모든 면이 뛰어났기에 말할 것도 없었고, 남궁장후 역시 자신보다 나이가 어렸기에 되레 빠르게 성장했다고 볼 수 있었다.

백길은 형인 백오의 뒤에 가려질 법도 하건만 워낙 뛰어난 집안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어느 순간, 실실 웃는 낯짝으로 잘도 당무옥을 뛰어넘어버렸다. 겉으로는 티 내려 하지 않았지만 당무옥 스스로 느끼고 있었다.

어찌 모를 수 있단 말인가?

무림맹을 대표하는 오룡일봉이라는 이름을 얻고 자신이 너무도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아버지의 당당한 아들이자 가문의 한 대들보가 되고 싶었다.

하나, 당금의 그는 오룡일봉 중에서도 가장 꼴찌였다.

무엇을 하든지.

늘 그래왔다.

심지어는 자신보다 어린 매영령에게 마저 밀려버린 것이다. 그나마 자신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는 이는 양풍완 단 한 명뿐이었다.

‘……하지만 양풍완 역시 아직 어린아이일 뿐이야.’

까득.

실제로 오룡일봉 중 아직까지 성년이 되지 못한 이는 양풍완이 끝이다.

그러다 보니 점차 자존감은 하락하고, 반대로 아집(我執)과 자존심은 점점 세져 갔다. 그래도 당무옥 나름대로 이 상황을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어릴 적부터 함께 해왔던 정도 정이거니와 근본적으로 무림맹에 있는 큰 가문들 중 청성파는 가장 작은 세력이었다.

그럼에도 당당히 오룡일봉에 들었으니 이 어찌 질책만 할 수 있단 말인가?

한데, 그렇지 않아도 그것만으로 벅차던 그에게 난데없이 송운이라는 거치적거리는 장애물이 나타난 것이다.

그러니 그의 입장으로서는 상당히 송운이 꺼려질 수밖에 없을 터.

‘재수가 붙어도 옴으로 붙었지.’

인정하고 싶지 않다.

어찌하여 갑자기 나타나 또다시 오룡일봉의 대장 노릇을 하고 있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몇 해 전, 눈앞에서 남궁장후를 단 한 번의 주먹으로 제압하는 것까지 보았지만 고작 황궁의 무인.

그것도 학사 가문의 자제라는 것이 너무도 그를 분통 터지게 만들었다.

‘어디, 얼마나 더 잘할 수 있는지 두고 보겠어.’

벌떡!

그러곤 몸을 일으킨 당무옥이 크게 숨을 한번 들이마신 뒤, 다시 내기를 끌어올렸다.

‘더 이상 두 눈 멀쩡히 뜨고서 밀려나진 않을 거다.’

파바밧-!

* * *

호남성 일대.

최근 들어 계속해서 벌어지는 흉흉한 사건들로 인해 마을 전체의 분위기가 묵직하게 가라앉은 상태.

밤늦게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것조차 거부하는 이런 시기에도 몇몇쯤은 이를 거부하고선 술을 퍼먹는 길을 선택하기도 한다.

꿀떡꿀떡.

탁-!

“꺼억! 술맛이 아주 죽이는구만.”

따악!

“에라이……! 장사도 제대로 안 되는구만 잘도 술이 목구녕으로 넘어가냐?”

“크헉! 말로 하면 될 걸 왜 사람 뒤통수는 노리고 X랄이요?”

“예끼 이놈이 말버릇은!”

“아 모르오! 누군 뭐 좋아서 마시나? 속이 답답하니 그러지! 어찌 되었건 오늘 수입도 영 꽝이올시다. 끌끌……. 대체 그따위 소문이 뭐가 그리 무섭다고 다들 꼭꼭 숨은 게야?! 하루 이틀 이런 것도 아니거늘!”

술기운이 슬슬 돌며 호기롭게 소리치던 그에게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당신들은 그 소문이 무섭지 않습니까?”

“그거야 당연히……!? 누, 누, 누구냐?”

“흐악!”

콰당!

갑자기 기척도 없이 나타난 한 청년의 모습에 술을 마시던 사내 둘이 혼불부신(魂不附身)하며 뒷걸음질 쳤다. 방금까지 취해가던 정신이 번쩍 돌아올 만큼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직전까지만 해도 이 공간에는 자신과 같이 일하는 사람 단둘이서만 있었던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다.

한데 갑자기 자신들 앞에 나타난 이 청년은 누구란 말인가?

철푸덕-!

결국 다리에 힘을 잃고 주저앉은 사내 둘이서 꼴사나운 표정으로 눈물을 쏟아내며 청년의 다리를 붙들어 맸다. 이미 정신은 혼미해지고 오로지 살아야겠다는 집념 하나만이 그들의 머릿속을 지배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제, 제, 제, 제발 살, 살려만 주시면 저희가……!”

청년은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약간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두 손을 내저었다.

“음…… 이거 제가 실례를 한 것 같군요. 저는 사람을 해치지 않습니다. 진정하세요.”

“저희가 가, 가진 모든 것을……! 으, 으응?”

“저는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 말씀드렸습니다. 단지 이 근처 길을 지나가는 행객(行客)일 뿐이니 진정하시지요.”

청년은 그저 자신들을 향해 웃음 짓고 있을 뿐.

잠시 후.

기절하기 일보 직전이던 그들도 더는 본인들에게 아무런 위해가 가해질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야 정신을 붙잡을 수 있었다. 하나 오히려 정신을 붙잡고 나니 머릿속은 더더욱 복잡해져만 갔다.

“서, 설마 이곳의 사정을 듣고 구하러 온 사람인가?”

“예끼! 아우님. 여기는 웬만한 문파들도 손을 대지 않는데, 설마 놈들이 나섰겠는가?”

멀쩡하니, 남자다우면서도 잘생긴 얼굴.

거기에 어디서도 쉽게 눈에 뜨일 법한 커다란 키와 약간 더러워진 무복, 왼쪽 허리춤에는 가렸지만 필히 검으로 보이는 것까지.

갑자기 나타난 이 청년은 누가 보아도 무인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다.

왜 하필 이러한 시기에 이곳을 지나가게 됐을까?

혹여 그 소문의 악인은 아닐까?

이러저러한 생각이 사내들의 머릿속을 뒤흔들 때.

옆에 앉아 있던 다른 장사꾼이 먼저 운을 떼었다.

둘은 아주 작게 대화를 나눈다고 생각하고 있었겠지만, 청년은 이미 그것 역시 다 듣고 있었다.

“그러니까…… 단순히 이곳을 지나가던 행객이다, 이 말이요?”

아까는 의심의 눈초리였다면 지금은 무언가 음흉한 눈빛으로 청년을 향해 묻고 있었다.

“예. 뭐…… 이런 시기에 오게 된 건 참으로 불운한 것 같지만 말입니다. 해서, 이곳 사정을 좀 자세하게 듣고 싶습니다만……. 실례가 될는지요?”

“흠흠. 거참. 사람이. 흠……!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것도 있어야 하는 법이 사람의 도리가 아니겠소? 아니지, 게다가 내가 그쪽 때문에 놀란 것은 또 어찌 보상하고? 안 그렇소, 형님?”

입을 먼저 뗀 그가 사내의 허벅지를 꼬집으며 눈을 찡긋거린다.

이건 잔말 말고 자신의 말에 맞장구를 치라는 신호다.

하루 이틀 같이 지낸 사이도 아니고 그 정도도 못 알아챌 사내가 아니다.

이내 냉큼 고개를 빠르게 주억였다.

“그, 그렇지 그렇지! 암, 그렇고말고!”

정신을 차리자마자 아까의 기겁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엄지와 검지를 비비며 최고의 쿵짝을 선사하는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청년은 슬쩍 기가 찼다.

‘바다는 메워도 사람의 욕심은 못 채운다고 하더니……. 아까는 살려 달라 외치더니 이제는 제값을 하라 난리구나.’

그 청년은 바로 송운이었다.

가장 먼저 도착한 송운은 이미 날이 어둑해진 상태에 머물 곳을 찾던 도중 유일하게 보이는 손님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슬쩍 끼어든 것이다.

잠시 말을 건다는 것이 이리도 큰 죄(?)가 될 줄이야.

하나, 마을의 소식은 마을 주민.

특히 개중에도 그런 것들에 상당히 예민한 장사꾼들이 가장 잘 아는 법.

가뜩이나 늦은 시각이라 사람도 없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정보를 얻기 위해선 이 방법이 나쁜 것 같지는 않았다.

‘역시 자금을 넉넉히 챙겨온 건 좋은 생각이었던 건가.’

송운은 슬쩍 쓰려오는 속을 붙잡고선 객주를 향했다.

“객주님.”

연신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던 객주는 순간 자신이 불리자 깜짝 놀란 토끼처럼 눈이 커다래져 송운을 쳐다보았다.

“예, 예?”

“좋은 술과 고기를 좀 내주시지요. 돈은 반드시 지불할 터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따끈따끈한 열기에 보기 좋게 토실토실 올라왔던 음식들이 어느덧 뼈를 드러내고 본래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었다. 술동이째 가져다 놓고 마시던 술도 어느새 그 끝이 보이고 있었다.

그 사이 송운과 장사꾼들의 이야기는 무르익어 가고 있었지만.

“……그럼 호남성 일대가 지금 거의 이 상태라고 보면 된다는 겁니까?”

“그런 셈…… 쩝쩝…… 이오. 이곳에 뭐 제대로 된 무림세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쩝쩝. 소문이 점점 커지면서 횡포 부리던 악덕 놈들은 이미 자기 몸 챙기겠다고 몸을 숨긴 지 오래됐지요. 이 망할 것들……! 이럴 땐 가장 먼저 꽁무니를 빼니, 좋게 봐주려도 봐줄 수가 없다니까? 안 그렇소, 형님?!”

콰앙-!

관리들의 횡포에 덤으로 뒷골목에서 자리를 잡고 있는 이들에 대한 분노가 극도로 커졌는지 마시던 술잔을 내려놓으며 열변을 토해낸다.

하나 이내 곧 송운이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선 민망함에 목을 가다듬는다.

“큼큼. 아무튼 점점 이쪽 근처로 다가오고 있다는데, 덕분에 장사도 전혀 되질 않고 완전히 이쪽 시장이 다 죽어버렸소. 다른 건 몰라도 장사 하나는 절대 망할 수가 없는 곳이라 믿고 거래를 튼 것인데 지금 당장 쪽박 차기 직전이란 말이요! 에잇……!”

설명을 마친 그는 어지간히 속이 탔는지 이번엔 술을 벌컥벌컥 들이마신다.

‘이거…… 생각보다 상황이 안 좋은 것 같군.’

그들의 답답함이 이내 송운에게도 전달이 되었는지 표정이 점점 같이 굳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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