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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전생-140화 (140/275)

제140화

며칠 전 저녁.

송운은 제갈염이 자신의 손을 맞잡으며 마지막으로 했던 말을 떠올렸다.

“무림맹, 그리고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일세. 맹주님께서는 앞으로 자네의 역량에 기대를 걸고 있다네. 음……. 갑자기 이렇게 자네에게 넘긴 것 같아 미안하지만, 저 아이들을 잘 이끌어 임무를 완수해주길 바라네.”

송운은 그때 제갈염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었다.

‘착잡한 일이겠지.’

사실 무림맹에서도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터다.

실상 겉으로 드러난 송운의 직위는 황실에 속해있는 몸. 이렇게 된다면 무림맹의 오룡일봉이 황실의 부대주보다 못하다는 평가가 나돌지도 모르는 상황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그 말인즉슨,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중원 무인의 자긍심을 무너뜨리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물론 지금이야 무림맹 내부에서도 중요 일원들을 제외하고 일반인에게도 알려져서는 안 될 테지만 훗날, 이 일이 해결된다면 반드시 세간에도 알려질 일이다.

하나 그런 불명예 아닌 불명예를 안을 것을 각오하면서도 송운을 이번 일의 대주로 내세운 것은 백능도, 제갈염도 모두 아직 오룡일봉의 능력이 송운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이미 깨달았기 때문이리라.

‘뭐, 장로들을 설득해낸 것은 오룡일봉을 보호하기 위해서가 가장 큰 이유일 테고…….’

그때였다.

콕콕.

송운의 귓가에 누군가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밖을 바라보니 그것은 다름 아닌 새하얀 털로 뒤덮인 작은 몸집의 새였다.

‘이 시간에 웬…….’

잠시 멈칫했던 송운은 곧장 창문을 열어주었다. 그러자 새가 송운의 손 위에 날아와 살포시 내려앉았다.

다리 부분을 확인하니 역시나 그의 예상대로 작게 말린 종이가 매달려있었다. 그 끝에는 송운의 이름이 적혀 있어 수신인이 자신임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고생했다.”

종이를 떼고 송운이 따라준 물을 한 모금 마신 새는 곧장 다시 하늘로 높게 날아 올라갔다.

송운의 얼굴에 자그마한 미소가 지어졌다.

발신인은 굳이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종이에서 아주 미세하게 흘러나오는 향은 몇 번 맡아본 적이 있는 익숙한 향이었다.

‘……매 각주.’

아마 서신을 날린 것을 보아 무언가 정보를 알아낸 것이 틀림없을 터다.

송운은 거침없이 작게 말린 종이를 펼쳤다.

원하시는 정보에 아직 완벽하진 않지만, 최근 호남성(湖南省) 일대에 실종이 잦아지고 있어요. 그것도 어린아이와 젊은 남자들을 위주로요. 다른 곳보다 가장 피해가 큰 곳이고, 제가 직접 나서서 확인해 본 일이니, 확실해요. 그리고 천조회 분들께서도 많은 도움을 주셨구요. 약 이틀에서 사나흘 간격으로 동에서 서로 움직이고 있다고 해요. 오늘을 기점으로 이 서신이 도착할 때 즈음이라면, 아마 도착할 소동현(邵東縣) 근처에 머무를 가능성이 커요.

제가 알아낸 건 이게 전부지만 도움이 되길 바라요.

그리고 부디 몸조심하세요.

화령각.

내용이 길지는 않았지만 담긴 내용은 정확했다.

천조회와 화령각.

두 이름 모두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반가운 이름들이다.

그 때문일까?

복잡한 상황 속에서도 송운의 입가에 잠시나마 미소가 어렸다 사라졌다. 그러곤 서신을 남기고 멀리 날아 가 버린 전서구 쪽의 새카만 하늘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송운의 마음속과는 달리, 하늘은 너무도 고요하고 맑았다.

‘소동현이라 ……. 더는 고민할 필요가 없겠구나.’

서신에 담긴 내용은 그날 제갈염에게 받은 자료와 일치하는 부분이었다. 전 중원 각지에서 조용히 일이 벌어지는 곳 중에 유독 더 눈에 띈 곳이다. 어쩌면 함정일지도 모르지만, 오히려 그것으로 인해 누군가의 눈을 가리고 숨기려던 것일 수도 있다.

매영령과 제갈염.

그리고 천조회 역시 송운은 모두 믿고 있다.

이들은 정보라면 뒤지지 않을 안목과 실력을 겸비한 사람들이다.

‘믿는다.’

처음부터 놈들의 머리를 칠 거란 기대는 하지 않는다. 그것은 제갈염 역시 마찬가지.

다만 혈교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이어져 있는지, 그 꼬리를 조금씩 조금씩 따라가다 보면 분명 머리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이는 상당히 중요한 정보였다.

이제 이리된다면 거칠 것이 없어진다.

그간 송운이 선뜻 출발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정보의 확실성 때문이었다.

어떠한 일이건 단 한 번에 해내는 것은 쉽지 않다.

한데, 이 일은 수십 년을 꼭꼭 숨어 있던 이들의 꼬리를 잡아내는 일이다.

절대 쉽지 않은 것이 분명한 일.

더욱더 치밀하고 그에 따른 확신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확답을 받았으니 이제는 움직일 때가 된 것이다.

‘출발을 더는 미루어선 안 된다.’

그렇게 또 하루의 밤이 흐르고 있었다.

* * *

송운을 비롯하여 곽철우, 남궁장후, 양풍완, 당무옥, 백길.

그리고 팽후영까지.

총 일곱 명이 모인 작은 소대.

각자가 따로 움직여 한곳에 모인 그들은 모두 같은 시간에 칼같이 도착한 상태. 단순한 여행길이 아니었기에 다들 몸과 짊어진 짐이 가벼웠다.

다만 마음과 발걸음만은 가볍지 않았다.

이번 일은 무림맹 내부에서도 존재를 드러내는 것을 조심하는 만큼, 배웅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뭐…… 어차피 그런 걸 바란 것도 아니니.’

애당초 형식적으로 무언가를 하는 것은 송운이 딱 질색하는 것이다. 예전에 겪었던 연회 역시 그의 취향은 아니었다.

그중 당무옥이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아직은 의구심(疑懼心)이 잔뜩 배인 목소리였다.

“호남성에 있는 게 확실한 겁니까?”

“호남성에서도 계속해서 아마 우리가 도착할 때 즈음이면 동구현(洞口縣) 혹은 홍강현(洪江縣)까지 넘어가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것은 믿을 만한 분들의 정보에 의해 내린 판단입니다.”

서로의 목소리는 매우 작았지만 알아듣지 못할 정도의 수준은 아니었다. 그의 말투 속에 아직까지는 적지 않은 불신의 씨앗이 한가득 자라나 있었다.

곽철우와 남궁장후는 이미 오래전 송운의 자질을 알아보았지만, 유일무이하게 당무옥은 당금까지도 그를 믿고 있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배타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허어……. 역시나 한번은 거쳐 갈 이야기인가? 갈 길이 바쁘건만 꽤나 골치 아프겠구나.’

송운은 그의 마음을 다시 한번 알아차리고선 속으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하나 그걸 굳이 겉으로 티를 낼 생각은 없었다.

어쩌면 송운의 예상처럼 당연한 일이었다.

무림맹도 무림맹이지만 이들 역시 오룡일봉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인정받은 인재들이다. 비슷한 나이 또래인 그들의 처지로서는, 송운이 두 번씩이나 무리의 중심을 맡는 것이 탐탁지 않게 여겨지는 것이 어쩌면 당연지사.

그만큼 자긍심이 무척이나 강한 이들이다.

하물며 송운이 그에게 보여준 것은 남궁장후와의 단 한 번의 대련뿐.

그런데도 오히려 없었다면 송운이 되레 이상하게 여겼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부딪힐 것이란 생각은 했지만, 이거 시작부터 만만치가 않구나.’

그나마 다행이라 여기는 점은 곽철우와 남궁장후와는 이미 서로 간의 어떠한 접점이 생긴 상태다.

게다가 백길은 자신의 형이 믿은 사람인 만큼 의심이나 불만의 여지가 없었고 팽후영은 그다지 그런 일에 민감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양풍완은 더는 형들의 의견에 반박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르는 건가?’

이러한 상황임에도 송운은 불만은 딱히 없었다.

다만 앞으로 어찌 혈교를 찾아내야 할지, 그것에 중점을 둘 뿐.

“만일 그곳에 가서 없다면? 우리는 둘째치고 우릴 믿어주신 맹주님과 총군사님의 위상에 먹칠을 하는 꼴이 될 겁니다.”

당무옥이 연신 비꼬듯 돌려가며 송운을 향해 추궁하는 듯 바라보던 그때.

누군가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찌나 핵심만을 찌르는지 해당 사항이 없는 이들의 가슴까지 콕콕 찔릴 정도였다.

“뭘 망설이고 있는 거예요, 오라버니? 언제까지 여기서 쓸데없는 기 싸움만 하고 있을 건가요?”

“그건……!”

조금 전까지의 패기는 땅에 내팽개친 것일까.

당사자가 팽후영이라는 것을 깨닫고선 더는 언급하지 않았다. 평소엔 고요할 정도로 잘 나서지 않지만 나서게 되면 누구보다도 무섭다는 걸 당무옥 역시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다만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할 말만을 가슴에 담아 둘 뿐이었다.

“하면 우리가 그곳으로 가면 어찌하면 되는 겁니까?”

“도착하는 대로 이인 일조로 흩어져 주변에 뿌려진 놈들의 흔적을 샅샅이 찾아야 합니다. 놈들은 서로만 알아들을 수 있는 신호로 곧바로 그 장소로 모일 테지요. 만일 그들을 찾아 미행할 수만 있다면 놈들의 꼬리부터 쫓아 최종적으로 놈들의 정보를 얻는 게 우리의 계획입니다.”

“칫……! 망할 혈교 놈들 같으니라고. 꼬리만 잡혀봐라!”

놈들의 행적을 이미 다 들은 남궁장후가 역정을 냈으나, 이내 송운이 부드럽게 그를 진정시켰다.

“총군사께서도 당부하셨지만 명심할 것은 그 누구라도 단독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과 만일 마주치게 된다고 한들 최대한 싸움은 피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만일 가능하다면 꼭 생포하라……. 아직 우리는 적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음……. 생각보다 간단한 것 같으면서도 어렵군요.”

이번엔 가만히 듣고만 있던 곽철우가 송운의 답에 표정을 절로 찡그린다.

적을 죽여서도 안 되며 맞붙는 싸움 또한 피해야 하는 상황.

이 얼마나 모순적이란 말인가.

송운 역시 무모한 지령이라는 것을 알기에 잠시 입에 고소가 머물렀다.

하나 오래가지 못했다.

‘벌써 해가 떠오르고 있다.’

한시가 급한 상황이다.

만일 그들이 그곳으로 향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실패한 작전이 될 테고, 그렇게 된다면 위험을 무릅쓰고 더 많은 사람이 움직여야 한다.

‘그렇게 되면 놈들은 지금보다 더 은밀하게 숨어버리게 된다. 쫓는 처지로선 더 불리해져 버릴 뿐.’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은 없었다.

“그럼 곧바로 호남성으로 가도록 하지요.”

파밧!

마지막 말을 남긴 송운은 곧바로 내기를 끌어올려 호남성이 있는 방향으로 뛰어나갔다.

그 뒤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남궁장후를 시작으로 남은 모두가 같이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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