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0화
송운은 느껴지는 인기척을 감지하고선 매영령에게 부탁했다. 송운은 그가 매영령의 곁을 지키는 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당금 말하고자 하는 것에 조심에 조심을 기해야 했기에 무례를 범한다 생각하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
‘……! 주하의 기척을 읽었어?’
반면 매영령은 그의 뛰어난 기감에 속으로 찬사를 외쳤다. 매영령 역시 무를 익혔으나, 그저 호신용에 불가한 정도일 뿐이었다. 때문에 무와는 인연이 깊지 않은 탓에 붙인, 그것도 다른 사람도 아닌 화령각주를 보필하는 아이다.
비록 그녀가 여인의 몸이라고는 하나, 자신이 아는 뛰어난 무인 중 한 명이다. 그중에서도 늘 자신을 숨기고 살아야 하는 아이인지라 은신술이 능하였다. 해서 늘 같이 있는 자신도 주하의 기척을 잘 모를 때가 더 많았다.
한데 그것을 송운은 단박에 알아챈 것이다.
‘웬만한 고수들도 쉽사리 알아채지 못하였었는데……. 아무리 눈으로 직접 보았고 대략 알고는 있었지만 송 대협. 역시 정말 만만치 않은 무위를 지닌 사람이구나.’
하나 그녀는 뛰어난 장사꾼이다.
어린 시절부터 사소한 것 하나하나라도 결코 얼굴에 자신의 표정을 드러내 보이지 않는 게 철칙이며 그것이 평생 몸에 배어 있는 매영령이 표정을 드러내 보일 리 만무했다.
이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매영령이 고혹적인 눈웃음을 지으며 주하를 향해 명했다.
‘정말 대단한 여인이다.’
송운은 오랜만에 보는 매영령의 모습에 다시 한번 감탄을 내뱉었다.
평서란이 순결하고 고귀한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백합이라면, 매영령은 사람을 매료시키는 묘한 매력의 양귀비 같은 존재였다.
그만큼 매영령은 누가 보아도 너무도 매력적인 여인이었다. 만일 자신에게 약혼녀인 평서란이 없었다면 그 역시도 이미 넘어갔을 터였다.
“아무리 공짜라고는 하지만, 손님 대접이 소홀하면 안 되겠죠? 후후. 손님이 원하시는 대로 해드려야죠. 주하야 물러가 있거라.”
그녀의 말에 잠시 멈칫하였으나 결국 몸을 드러낸 주하가 말끝을 흐렸다.
“하오나…….”
난처한 목소리로 당혹스러운 듯 주저하는 그녀를 향해 매영령은 다시 한번 나긋하지만, 강단 있는 목소리로 재차 말했다.
“어서.”
“……알겠습니다.”
그렇게 주하가 물러났고 속으로 감탄을 날리고 있던 매영령에게 주변의 모든 인기척이 사라지자마자 굳게 입을 다물고 있던 송운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매 각주. 사람의 이성을 잃고 고통을 느끼지 못하며 몸이 강철처럼 단단하게 변하게 하는 이들을 알고 있소?”
매영령은 송운의 설명에 순간 두 동공이 흔들렸다.
“……? 설마 철강시술(鐵僵尸術) 말씀하시는 건가요?”
“으음. 어쩌면 그것일 수도 있겠군.”
송운이 한 손으로 턱을 쓰다듬으며 곰곰이 상념에 잠겼다.
웬만한 무인들조차 상대하기 힘든 존재인 것은 직접 겪어보았기에 그 위력을 잘 아는 송운이다.
사람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큰 무리수였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어쩌면 그녀의 말이 들어맞을 수도 있다는 판단이 들어섰다.
아무리 송운이라 한들 그런 이들과의 싸움은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존재였지 않은가.
‘만일 내가 시공검을 완벽히 각성하지 못했더라면…….’
결과는 보지 않아도 뻔했고, 그건 너무도 끔찍한 일이다.
‘강시라…….’
전생에서 송운 역시 들어 본 적은 있었지만 나타났다는 이야기는 전대미문(前代未聞)한 일이다. 해서 의심을 하다가도 마음을 접어두었던 부분이 아니던가?
홀로 한참을 상념에 빠졌을까.
송운은 이내 고개를 좌우로 슬쩍 흔들었다.
‘……하기야 이미 전생에 있었던 기억과 틀어진 지는 오래전 이야기이기도 하지.’
이제 와서 강시가 튀어나온다고 해도 새삼스레 이상할 것은 전혀 없다는 게 또 다른 견해였다. 그제야 송운은 다물었던 입을 열었다.
“매 각주 말대로 강시술일지도 모르오. 내가 아는 건 오롯이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으나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뿐이지만.”
그 역시 놀란 것은 사실이었지만 송운보다 더 놀란 건 매영령이었다.
“……설마 그것들을 직접 눈으로 보신 거라 말씀하시는 건 아니겠죠?”
살아 있으나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이성을 잃고 온몸이 강철보다 단단하다는 자들의 이야기는 매영령 역시 살아온 이십삼 년 평생을 통틀어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금시초문의 일이다.
그나마도 서책을 가까이하여 금서에 가까운 범위까지 읽어나가면서 얼핏 이나마 알게 된 것뿐이다.
한데 송운은 마치 그것들을 직접 본 것처럼 설명하고 있지 않은가?
만일 진짜로 그런 기이한 것들을 보고도 살아 돌아온 것이라면 좀전의 일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혼자만의 상상에 빠져있던 그녀를 놀리려는 듯 송운은 덤덤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맞소. 그것도 이곳에 오기 직전에 벌어진 일이오. 매 각주도 정녕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이오?”
들려오는 송운의 대답에 매영령의 눈이 놀람과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것이 아무리 평정심을 유지하는 그녀라지만 이번 일에 대해서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그런 게 정말 실존하던가요?!”
약간 고조된 목소리로 묻는 그녀는 송운에게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행동이나 상당히 흥분된 상태였기에 가능했다.
요즘과도 같은 시대에 철강시라니!
정보를 파는 그녀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신선한 부분이질 않은가?
“후……. 내 두 눈으로 직접 본 것이니 확실하오. 아마 마인들이 사용하던 것일지 싶은데……. 아무튼 이것에 대해 좀 알아봐 주었으면 하오. 분명 이대로 놔두었다가 자칫하면 어디든 큰 해를 끼칠지도 모르는 일이니.”
하나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정말 위험한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매영령도 그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문득, 한 단어가 그녀의 머릿속을 스쳤다.
‘설마…… 혈교(血敎)?’
매영령이 급격하게 심각한 표정으로 얼굴빛이 새하얗게 질렸다.
지금은 그저 스스로의 호기심만을 내세울 때가 아니었다.
“혈교…….”
“혈교?”
송운이 무슨 말이냐며 되묻자, 매영령이 입술을 꼭 깨물며 답했다.
“그게…… 저도 직접 본 적은 없어요. 꽤나 오래전 모습을 감춘 집단이거든요. 하지만 서적으로는 본 적이 있어요. 해서 자세히 알진 못하지만요. 오래전 혈교라고 불리며 피를 숭상하여 미쳐 날뛰는 살인자 집단이라고 하더군요. 피는 하늘로 통하는 연결 통로라 굳게 믿어 직접 사람을 죽여 혈은 의식에, 남은 시신은 강시술에 사용한다고……. 본래 마교에서 금지시킨 무공을 사용하는 바람에 마교에서 조차도 감당하지 못하고 떨어져 나가 배척당한 존재라고도하구요. 아마…… 송 대협의 설명대로라면 어쩌면 그들일지도 모르겠네요.”
‘매 각주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
매영령의 말을 다 듣고 난 송운은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더 큰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순간 그의 전신을 휘감았다.
“만약 매 각주 말대로라면 정말 큰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겠구려. 우선 좀 빠른 시일 내로 알아봐 주었으면 하오.”
송운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자리에서 털고 일어났다.
더는 지체해서는 안 될 것만 같은 불길한 기운이 그를 재촉했기 때문이다.
그런 그의 마음과 같았는지 매영령 역시 여전히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볍게 주억인다.
“그러도록 하죠. 알아보는 대로 연락을 취할게요. ……아! 송 대협!”
자신을 다급히 부르는 매영령의 목소리에 송운이 가던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았다.
그리고선 무슨 일이냐는 듯 바라보는 그를 향해 매영령이 걱정이 가득 담긴 음성으로 뒷말을 이었다.
“정녕 그들이 혈교라면 절대로 혼자선 싸울 수 없을 거예요. 누가 되었던 반드시 도움을 요청하세요. 송 대협의 무위를 결코 무시하려는 것이 아니에요. 하지만 혼자서 절대 그들과 싸우면 안 돼요. 아셨죠?”
“그 충언. 마음 깊이 새겨듣겠소.”
그 말을 끝으로 송운은 사라졌고, 홀로 남은 매영령은 차마 하지 못한 마지막 말을 속으로 외쳤다.
‘……무운을 빌게요. 송 대협.’
* * *
터벅터벅.
“큰오빠!”
운양상단으로 돌아온 송운에게 걱정스러운 눈빛을 가득 머금은 채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송하의 모습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래. 송하야. 별일 없었느냐?”
“응. 아무 일도. 근데 무슨 일이야? 갑자기 천조회 오라버니들까지 모두 다 돌아와서는 오빠는 안 오고 정말이지 걱정돼서 혼났단 말이야.”
송운은 은근슬쩍 투정을 부리는 송하를 향해 슬쩍 미소 지으며 그녀를 달랬다.
‘허허. 역시 아무리 컸다고 해도 아직 아이는 아이로구나.’
차라리 그녀의 이런 모습이 송운으로서는 훨씬 안정되었다. 그만큼 회복했다는 이야기일 테니 말이다.
“아무 일도 아니다. 그저 요즘 너무 흑랑회가 조용해서 혹시나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일이라도 벌어질까 하여 부탁드린 것이다. 하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송운은 그런 송하를 조심스레 달래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치……. 알았어. 오빠가 아니라고 하니 내가 뭐라 할 말도 없고.”
조금은 새침하게 고개를 튼 그녀는 예전의 송하였다면 끈질기게 캐물었을 테지만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송운이 아니라면 아닌 것이다.
그게 맞았다.
송하는 그렇게 점점 더 송운을 굳건히 믿고 있었다.
‘녀석.’
새삼스레 또다시 그녀의 성장이 와 닿았는지 송운은 송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슬쩍 붉어진 얼굴로 볼이 빵빵해진 채 고개를 피했다.
“오빠도 참! 나도 이제 어엿한 어른이라고.”
“하하. 그래. 이 오빠도 잘 알고 있다. 잡담은 조금 있다 나누기로 하자꾸나.”
“잘 알고 있기는……. 알겠어.”
말을 끝으로 송하는 본래 있던 수련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 * *
송운은 가장 먼저 양조광을 찾아 나섰다.
‘아무래도 상의를 좀 해봐야겠구나. 혼자 결단을 내리고 훌쩍 떠나기에는 사안이 너무도 급박하고 위중하니…….’
똑똑.
“나야.”
끼익.
송운이 조심스레 방문을 두드렸고, 두말할 것도 없이 반가운 마음이 가득 실린 문이 열렸다.
“오셨습니까? 공자님. 강아, 차 좀 내 와줄 수 있겠느냐?”
그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송운을 반겼고 곧 안에 함께 있던 위강이 양조광의 말에 쪼르르 나가 차와 다과를 준비했다. 그리고선 눈치로 볼 때 있어선 안 되는 자리라는 것을 느꼈기 때문일까.
위강은 더는 길게 말하지 않고 자리를 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