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전생-125화 (125/275)

제125화

마지막 한 방울까지 들이켠 그들은 마치 온몸에 기운이 펄펄 넘치는 듯 송하와 위강이 몸을 콩콩 뛰었고, 양조광 역시 일전에 겪어봤던 일이지만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뿐이었다.

“나 때문에 이리 몸이 상한 것인데 진작 신경 써주지 못한 내 탓이지. 더불어 강이와 하야 네 것까지 만들어보았는데 다들 좋다 하니 다행이구나.”

송운은 역시 만들길 잘했다는 듯 뿌듯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고, 이로 인해 아직까지도 약간은 불신하던 위강의 완벽한 신임(信任)까지 덤으로 얻어낼 수 있었다.

그렇게 운양상단의 하루가 또 흘러가고 있었다.

* * *

검은 늑대를 상징하는 표식이 그려진 방안.

누군가가 머리를 싸매며 실의(失意)에 빠진 사람처럼 앉아 있었다.

흑랑회주, 진흑창(珍黑彰)에게 커다란 고민이 생긴 것이다.

그 원인은 바로 송운.

자신의 수하들이 수금을 하는 일에 방해를 두고, 그것도 모자라 제법 쓸 만하던 수하들의 단전을 모조리 깨버린 것이다. 아니, 차라리 수하 놈들만 그랬다면 다행이겠지만 객식구로 거금을 주고 들였던 하북성에서 손꼽히던 살수인 추혼살검의 단전까지 깨버린 것이다.

이러니 그가 심란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송운이라……. 송운이라……!’

그 이름은 그도 역시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워낙 소문에 자주 들려왔기 때문이다.

처음엔 별것도 아닌 일이라 생각했지만, 상대가 송운이라는 놈이라는 것을 알고 난 후 더욱 머리가 아파왔다.

‘이름깨나 알려진 고수라고 들었거늘…….’

으득.

원래도 조금 멍청한 짓을 하고 다니던 놈들이긴 했다.

그래도 명색이 흑랑회의 수하다.

하니 열이 뻗칠 수밖에.

“으아아! 이 멍청한 놈들 같으니!”

와장창!

결국 진흑창은 스스로의 분에 이기지 못하고 손에 들린 화병을 던져버렸다.

그냥 거기서 끝이라면 그나마 괜찮았다.

사파임에도 불구하고 흑랑회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 이들은 많았다. 이번에 당한 놈들의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일도 아니다.

다만 이 주변 일대 특별히 큰 정도 문파가 없는 것도 사실이지만 헌현현 내 최고의 회라고 자부했는데 그 때문에 요즘 흑랑회의 꼴이 말이 아니었다.

어쩌면 이대로 가다간 자신의 손에서 흑랑회가 망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를 더욱 심적으로 괴롭혔다.

결국 이럴 때 드는 생각은 오로지 술뿐이었다.

“여봐라! 술을 가져오거라!”

“예, 예. 회주님!”

* * *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 대낮에 흑랑회의 대문 앞에 누군가 찾아왔다.

“……게 누구요?”

갑작스럽게 나타난 모습에 문지기의 목소리에는 하루 종일 땡볕 아래 더위와 맞서야 했기에 짜증이 가득 담겨 있었다.

하나 그는 곧 기겁하며 태도를 바꾸었다.

아무런 말도 없이 가만히 서 있는 그는 온몸에 검은색 옷과 두건으로 두른 이었는데, 정체는 알 수 없으나 겉으로 드러나는 위압감은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했다.

딱 보아도 자신보다 훨씬 무공이 고강해 보이는 그는 그 깊이를 함부로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

“누, 누구를 뵈러 오신 겁니까?”

“……이곳이 흑랑회인가?”

걸걸하면서도 음습한 목소리에 문지기는 냅다 대답했다. 본능적으로 대답하지 않으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맞습니다만……. 뉘신지요?”

“흑랑회주를 만나러 왔다.”

울컥.

문지기는 흑랑회주라는 말에 순간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지만, 우선은 참았다. 혹여 약조된 사람이고 중요한 이라면 호되게 혼나는 것은 자신이리라.

해서 한번 참은 그는 다시 한번 정중히 물었다.

“하면 귀인께서는 회주님과 약조를 하고 오신 건지요?”

그러자 그 정체 모를 이는 얼굴에 미세하게나마 귀찮은 듯한 표정이 보였다.

“……내가 굳이 이딴 놈을 만나러 오는데 약조까지 하고 와야 하는 것인가?”

뚝.

결국 그 말에 이성을 놓은 문지기는 다짜고짜 욕을 하며 달려들었다.

“이 미친놈이 어디서 감히 회주님을 약조도 없이 뵈러 온 것이냐?! 우리 회주님이 동네 개라도 되는 줄……!”

서걱.

스윽.

그의 발악은 오래가지 못했다.

육안으로 확인하기도 전에, 검을 뽑아 들은 그는 가차 없이 문지기의 목을 가른 것이다. 순식간에 목을 벤 그는 자신의 검에 묻은 피를 태연히 닦았고, 그 모습은 갑작스러운 소란에 밖으로 나온 부회주의 눈에 고스란히 내비쳤다.

“대체 무슨……. 이게 지금 뭐 하는 짓거리냐! 이놈!”

스릉.

카앙!

“크윽……!”

하나 곧 그 역시도 지면에 내동댕이쳐졌다.

이번에는 목을 베는 참사는 벌어지지 않았지만, 그 정체 모를 이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일은커녕 애꿎은 그의 애검만이 두 동강이 난 채, 생채기 하나 내지 못한 것이다.

만일 그가 손속을 거두지 않았더라면 부회주 역시 똑같은 상황에 부닥쳤을 테지만 말이다.

그때 마침 헐레벌떡 뛰어나온 총관은 허탈한 표정으로 땅에 널브러진 부회주와 목이 잘린 채, 잔뜩 피를 흘리고 있는 문지기의 모습이 들어왔다.

자신이 아는 부회주는 결코 쉽게 당할 정도의 실력이 아니다. 그런 그가 당했다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이라는 것이 틀림없었다.

‘회주님께 알려야겠구나. 심상치 않은 이다.’

흑랑회 중 가장 뛰어난 두뇌를 지닌 그는 잠시 그 검은 옷의 사내와 땅을 번갈아 보더니 상황이 좋지 않음을 깨닫고선 한마디만을 남긴 채, 서둘러 회주가 머무는 곳으로 발걸음을 놀렸다.

“자, 잠시 기다리시오.”

* * *

벌컥.

“회주님! 큰일입니다. 바깥으로 나와 보셔야겠습니다.”

“무슨 일이냐? 무슨 일이기에 묻지도 않고 방에 들어오는 것이야?”

총관은 밤새 술을 마신 것인지, 방안에 가득 들어찬 주향에 눈살을 찌푸렸으나 지금은 그것을 나무랄 때가 아니었다.

“문지기 한 명이 죽고, 부회주님께서 부상을 당하셨습니다.”

그 말 한마디에 진흑창은 조금 취기가 돌던 정신이 번쩍 드는 듯했다.

“어디로 가면 되느냐?”

* * *

“이곳입니다.”

총관이 조용히 속삭였고, 그의 말대로 상황은 좋지 못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그의 눈에는 검은 옷의 사내가 눈에 띄었다. 그 사내는 다짜고짜 진흑창에게 말을 놓으며 물었다.

“네가 흑랑회주더냐?”

진흑창은 순간 들려온 사내의 목소리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부회주가 처참히 당할 만하군.’

진흑창은 그의 모습에 단박에 상황을 꿰뚫어 볼 수 있었다. 꽤나 오랫동안 무림에 몸을 담은 그지만, 이만한 정도의 실력자를 보는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어디 가서 본인도 쉽게 꿀리지 않을 실력을 갖추었다고 했지만, 눈앞의 사내와 싸운다면 필패하리라는 것이 그의 감이 외치고 있었다.

하나, 아무리 다혈질에, 술을 좋아한다고 하지만 그 역시 한 회의 회주다. 최대한 침착한 모습으로 대답했다.

“그렇소. 나를 보러 온 듯한데, 우선 안으로 들어오시오.”

검은 옷의 사내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한번 까딱 하더니 곧 진흑창의 뒤를 따랐다.

탁.

폐쇄된 공간으로 들어오자, 그에게 느껴지는 기운은 더더욱 대단했다.

꿀꺽.

마른침을 삼킨 진흑창이 먼저 입을 떼기도 전에 그 사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제야 말이 좀 통하겠군. 최근 들어 송운이라는 놈에게 여러모로 당했다고 했던가.”

“그, 그 일은……!”

“마저 듣고 넌 대답만 하면 된다.”

끄덕.

사내의 분위기에 짓눌린 진흑창은 알았다며 고개를 주억였다. 그의 말은 길지 않았다.

“해서 내가 너희를 도와줄 것이다. 나는 돕기 싫으나, 나의 주군께서 원하는 일이다. 어찌하겠느냐?”

“허……!”

진흑창은 기가 찼는지 헛숨이 새어 나왔다.

기껏 남의 집에 쳐들어와서 한다는 말이 도움을 주겠다니?

하나 그것도 잠시, 진흑창은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곤 진중히 생각에 빠졌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그놈이 설치면서 화령각을 먹으려던 계획까지 어긋나지 않았던가?’

꽤나 고강한 무공을 지닌 이인지라 함부로 나서지도 못한 채, 어찌하면 좋을지 고민하던 차였다. 척 보아도 풍기는 분위기가 어마어마한데, 그런 이가 도와준다면?

어쩌면 손쉽게 송운이라는 놈을 제압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나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의아함이 계속 그를 지배했다.

‘아니지, 한데 어째서 이토록 센 자가 우리를 도우려 한단 말인가? 게다가 이정도의 실력을 지닌 이가 수하라면 대체 주군이라는 자는 누구란 말인가? 허!’

생각을 하면 할수록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지금 당장 결론을 내릴만한 일이 아님을 깨달은 진흑창은 마침내 굳게 닫혔던 입을 열었다.

“내게도 생각할 시간을 좀 주시오.”

“시간이 굳이 필요한 일인가? ……귀찮군. 그러하다면…….”

하나 사내는 진흑창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일으키며 방을 나가려 했다. 설마하니 이런 반응을 보일지 몰랐다는 듯 당황한 그는 결국, 사내의 소매를 덥석 잡았다.

“아, 알겠소! 도와……. 도와주시오.”

진흑창은 스스로도 비굴한 듯한 모습에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고, 그제야 사내는 만족했다는 듯 자리에 다시 앉았다.

“다른 건 필요 없다. 그저 지금은 쉬고 싶군.”

“후우…… 주총관. 방을 내드리거라.”

“예, 알겠습니다. 회주님.”

* * *

사내가 방을 나가자 진흑창은 순간 온몸의 기운이 다 빠져나가는 것과도 같은 착각에 빠졌다.

사람을 상대한다는 것이 이리도 힘든 일이었던가?

진흑창은 곁에 서 있던 총관에게 물었다.

“총관은 어찌하였으면 좋겠느냐?”

그러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 말을 쏟아냈다.

“너무 가까이 하시는 것은 별로이나, 송운이라는 그 눈엣가시 같은 놈을 처리만 할 수 있다면 더 이상 우리 전력에 피해를 입지 않고도 끝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진흑창은 그의 말에 동감한다는 듯 조용히 고개를 주억였다.

“하기야, 이미 손을 잡은 것. 물릴 수도 없는 일이니……. 그것도 맞는 말이로구나. 우선은 두고 보아야겠다. 집 안에 있는 이상 최대한 태가 나지 않는 한에서 그 사내를 감시하도록 하거라.”

“알겠습니다. 회주님.”

함께 있던 총관마저 방을 나간 후, 진흑창은 깊고도 깊어 땅이 꺼질 것 같은 커다란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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