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4화
“예? 허어……. 그건 저도 전혀 몰랐던 일입니다. 아니, 아마도 절 제외하고도 아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겁니다. 설마 화령각과 화월문이 연관이 되어 있을 줄이야…….”
“음……. 그렇단 말이지?”
“하나 그 말이 사실이라면 제 생각엔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
“그들이 준 정보와 천조회가 끌어모은 정보와 대조해 본다면 더 명확하고 확실한 정보를 얻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명색이 화월문이니까요.”
결국 믿느냐 안 믿느냐.
받아들이느냐 안 받아들이느냐.
선택의 갈림길에 선 것이다.
송운의 왼손이 습관적으로 그의 머리를 지그시 눌렀다.
“화령각주 또한 하북성에서 신뢰가 제법 쌓여있는 인물이니, 설마 화월문을 두고 없는 사실을 만들어내진 않았을 겁니다.”
“휴우……. 아무래도 조금 더 생각을 해봐야겠어.”
“그리하시지요.”
송운은 양조광을 돌려보낸 후에도 고민은 계속되었다.
‘기껏해야 운양상단의 숨은 주인일 뿐인데, 내게 얻어낼 것이 무엇이 있을까?’
아무리 머리를 굴려보아도 운양상단은 이제 막 커가는 신생 상단일 뿐이고, 화령각이라던지 화월문은 이미 하북성에서 자리를 잡은 지 오래된 뼈대 있는 곳들이다. 그런 곳에서 굳이 거짓말을 해가면서까지 이득을 취할 만한 것은 그 무엇도 없었다.
며칠간 고민한 송운은 나쁜 의도는 아닐 거라는 결론을 내리고는 매영령의 성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생각보단 더 적게 걸리셨네요.”
그녀는 며칠 전 보았던 모습보다 조금은 나아진 모습으로 그를 향해 말했다.
“사실 아직까지도 조금은 긴가민가하오. 하나, 성의를 무시하는 것 또한 예의가 아니라 배웠소.”
“송 대협다운 발언이시네요.”
“하지만 한 번 더 확실하게 선을 그을 필요가 있을 것 같소. 그대의 성의를 받아들인다고 한들, 내게 일말의 희망 따위는 갖지 않았으면 하는 바요. 내게는 이미 마음을 나눈 정혼녀가 있소. 그녀에게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이요.”
송운은 냉랭한 말투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냉정해 보일 순 있을 테지만, 이편이 자신을 위해서도 매영령을 위해서도 나은 판단이었다. 되지 않는 희망은 일찌감치 끊어놓는 것이 후일 덜 아프다.
그런 그의 말을 듣는 매영령은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왔지만, 송운의 의견을 존중하기로 이미 마음을 먹은 지 오래였기에 참을 수 있었다.
다만, 그녀가 바라는 것은 하나였다.
매영령은 최대한 감정을 억누르며 띄엄띄엄 말을 이어나갔다.
“알고 있어요. 저번에도 이미 말씀드렸지만,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 물론……. 쉽진 않겠지만……. 호호. 앞으론 좋은 벗으로서 남았으면 해요. 이렇게 든든한 친우가 있다면 좋을 것 같거든요. 약조된 정보는 저희 화령각 각주실로 원하는 내용을 보내주시면 운양상단으로 보내드릴 거예요. 그럼…… 이만 돌아가 볼게요.”
그러곤 발걸음을 돌려 방을 나갔다.
그녀가 나가자 송운은 입으론 말하지 못한 한마디를 속으로 남겼다.
‘나 또한 좋은 인연으로 남았으면 하오. 화령각주.’
* * *
얼떨결에 하북성 최고의 정보 집단인 화월문의 정보를 제공받게 된 송운은,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정말로 얻을 수 있는지 확인해 볼 필요성을 느꼈다.
받아들이는 것과 믿는 것은 다른 것이니 말이다.
‘총 열 번의 정보라고 했었지.’
송운은 그중 한 번의 기회를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조금 아까운 마음이 들긴 하였으나, 애당초 거의 공으로 받은 것이니 확실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것은 양조광 또한 내놓은 방책이었다.
‘……기왕 사용하는 것. 필요한 정보면 더더욱 좋을 테고.’
송운은 곧바로 화령각에 사람을 보냈고, 정보는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받아 볼 수 있었다.
촤락.
받아본 정보를 읽어나가던 송운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확실히 대단하구나.”
그 명성은 괜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기라도 하려는 듯, 단 몇 장의 서류 그 속에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운양상단에게 필요한 정보만이 알차게 정리되어 있었다.
주변 상단들과 전장들이 어디 어디와 물꼬를 트고 있는지, 그 외의 표국들과 문파들이 총 집합적으로 상세한 규모로 설명되어 있었다.
게다가 얼마 전부터 하북성까지 발을 넓히기 시작한 천조회에게서 들은 정보와도 완전히 일치했다.
정보대로라면 운양상단은 이것을 토대로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으리라.
‘이만하면 정말 믿을 수 있겠구나.’
다만 역시나 아직까진 화월문의 정보가 훨씬 더 방대하다는 것이다.
‘하나, 이정도는 돼주어야 화월문이라 할 수 있겠지.’
송운은 아쉬운 마음이 들었으나, 더 욕심내지는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쉽게 수긍했다.
‘이곳에서 오랜 역사가 있는 곳이니 당연한 것이다. 오히려 이러지 않았더라면 더 신용이 가지 않았을 테고…….’
천조회의 정보력이야, 앞으로 더더욱 날개를 펼치며 비상할 것이다.
송운은 그 점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미 북경의 웬만한 정보 집단들보다 더 거대한 정보력을 구축하기 시작한 천조회가 아니던가.
게다가 이번 일로 인하여, 새로운 인연의 발판을 마련한 셈이다. 나중에 혹여 천조회와 화월문이 부딪힐 일이 생기더라도 화령각주와 친분을 맺고 있다면 어느 정도 유순하게 지나갈 수 있으리라.
‘어쩌면 이번 일이 생각보다 잘 된 것일지도 모르겠구나.’
송운의 입가에는 어느새 만족스러운 미소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第十二章. 흑랑회
그 후로도 운양상단에서 송운의 일상은 똑같았다.
새벽에는 홀로 수련을 하고, 오후에는 송하와 위강의 수련을 봐주며 양조광과의 시간을 갖고 운양상단의 일에 대해 논의했다.
생각보다 빠르게 따라오는 위강은 송운을 매우 놀라게 했다. 하루 종일 일을 돕느라 지칠 법도 하건만, 수련을 하는 시간에 있어서만큼은 빼지 않고 놀라운 집중력으로 열심히도 따라왔다. 거기에 기억력도 뛰어나 한번 보고 들은 것은 잊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니, 어린 송하와 송후의 모습을 다시 보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지는 송운이었다.
‘조광이가 참으로 인복이 좋구나.’
거기에 송하 역시 지지 않겠다는 듯 거의 종일을 수련에 매진하다시피였다.
‘이러다 쓰러지진 않을지 걱정이 되긴 하지만…….’
말린다고 말려질 송하가 아니었기에, 송운은 그저 그런 그녀를 지켜보며 격려해줄 뿐.
한데, 그런 일상에 새롭게 송운이 시작한 일이 하나 생겼다.
무언가를 열심히 달이는 일이었다.
둘의 수련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도 송운은 평소와 달리 계속해서 불 앞에서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가 끓이는 탕이 풍기는 향은 몹시도 그윽하여 주변에 널리 퍼져나가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이 모두 그 향에 발길을 한 번쯤은 멈추었을 만큼 말이다.
그것의 연유란 바로 이러했다.
그날도 어김없이 서류 처리에 열중하는 그를 바라보고 있자니 송운은 얼마 전 수련을 마치고 머뭇거리던 위강이 조용히 말을 해왔던 것을 떠올리고는 입을 열었다.
“조광아.”
“예. 운 공자님.”
“너무 몸을 혹사시키는 거 아니야?”
“무슨 말씀이신지요?”
양조광은 급작스러운 송운의 말에 의아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러자 송운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며칠 전 위강에게 듣기론 그간 이 많은 일을 이 년간 거의 혼자 해왔다 하던데……. 아마 내가 도와주는 게 아니었다면 도움을 받으려 하지 않았을 거라고 말이야. 몸은 괜찮은 거야?”
그의 말에 그제야 알겠다는 듯 양조광이 속으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후우……. 내 그리 말하지 말라고 일러두었거늘……. 강이 이 녀석. 기어코 운 공자님께 말했구나.’
양조광은 늘 그래왔듯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
“하하. 이제 괜찮습니다. 이 년이라고 해봤자, 반은 거의 일이 없어 지금처럼 서류가 많지도 않았구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강이 녀석이 괜한 말을 했나 봅니다.”
투둑.
하나 그의 말에 몸이 마치 반박이라도 하려는 듯, 코에서 핏물이 뚝 하고 떨어졌고 그것은 정확히 송운의 눈에 들어왔다.
“그럼 이게 핏물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이야? 괜찮아? 당장 약이라도 한 첩 지어 먹여야겠다. 내가 그동안 네게 너무 무심했어.”
이에 놀란 송운이 다급히 자리를 박차고 나가려 했지만, 양조광은 그를 말렸다.
“전 정말 괜찮습니다. 그저 기가 조금 허해졌나 봅니다.”
애써 웃어넘기려는 양조광의 모습에 송운은 오랜만에 예전에 만들었던 선천지기를 이용한 건강 음료가 떠올랐다. 한 일 년간 불티나게 팔렸지만 무황비고의 사건이 터지면서부터 더 이상 만들지 못하게 되어 사라져 버린 비운(?)의 약이었다.
‘그걸 왜 이제야 다시 떠올린 것이지?’
해서 그다음 날부터 송운은 양조광을 위해 선천지기 음료를 다시 만들기 시작했고, 기왕 만드는 것 송하와 위강의 것도 함께 만드느라 정신이 없었던 것이다.
곧바로 팔을 걷어붙인 송운의 그 행위는 몇 날 며칠 동안 이어졌고, 오늘까지도 계속되고 있었다.
‘이제 슬슬 다 달여질 때가 되었는데…….’
그때, 송운의 두 눈이 빛났다.
그러곤 재빠르게 손을 움직여 불을 꺼내리고선, 끓어오르고 있는 약을 향해 기운을 끌어올렸다.
우우웅.
‘그때보다 훨씬 더 강력해진 기분이구나.’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간 많은 일이 있으면서 송운이 성장하고 선천지기는 더욱 불어난 상태였기 때문이다.
송운은 오랜만인지라 양의 조절에 실패라도 할까 숨까지 죽인 채 조심스럽게 기운을 흘려 넣었고, 마침내 건강 음료가 완성되었다.
“색깔도 그렇고 훨씬 효과가 강력하겠는데?”
송운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천천히 음료를 세 개의 그릇에 옮겨 담았다.
* * *
그렇게 심혈을 기울여 완성된 건강 음료는 각기 양조광과 송하, 그리고 위강에게 전해졌다. 아무도 불평 없이 그것을 받아 마셨고, 이내 모두가 같은 반응을 보여 왔다.
“이거 대단한데요?”
“와……. 큰 오빠 이거 정말 잘 팔린 이유가 있었구나!”
“감사합니다. 운 공자님. 괜히 이 더위에 힘들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