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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전생-122화 (122/275)

제122화

이쯤 되니 송하 역시 그녀를 고운 시선으로 보긴 어려워졌다. 왠지 모를 여자의 직감이 매영령을 피하라는 듯 경고를 해왔기 때문이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송운을 찾아가던 때, 송하가 매영령과 마주쳤다.

“화령각주님?”

눈을 매섭게 치켜뜬 채로 그녀에게 다가오는 송하의 모습은 마치 맹수가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다른 동물에게 경고라도 하듯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매영령은 직감했다.

그녀가 바로 송운의 여동생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질문을 먼저 건네는 쪽이 유리하지.’

해서 곧바로 자연스럽게 미소를 띠우며 먼저 말을 가로챘다.

“어머, 혹시 송 대협의 여동생이신가요?”

“……맞아요.”

“호호. 같은 곳에 계시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이리 마주치는 건 처음이네요. 처음 뵙겠어요. 화령각주 매영령이라 해요.”

하나, 눈웃음을 지으며 너무도 태연스럽게 말을 걸어오는 통에 송하 역시 조금은 누그러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같은 여자가 보기에도 매영령은 꽤나 매력이 넘쳤다.

‘안 돼! 정신 차려. 이 바보야!’

하나, 곧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자 마음먹었다. 여기서 왠지 물러나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송하는 눈을 부릅뜨며 다부지게 말을 이었다.

“……각주님의 소개를 들으려 멈춰 세운 것이 아니에요. 요즘 우리 오빠 숙소에 자주 드나든다는 얘기가 들려와서 말이죠. 그 연유가 그저 입은 은공 때문인가요? 제 눈엔 그리 보이지 않아서요.”

“어머, 그리 보였나요? 딱히 그런 뜻은 아니었답니다.”

뻔뻔한 게 아니라고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 송하는 순간 말을 잃었다.

본인이 스스로 아니라고 하는데 더 뭐라고 한단 말인가?

두 여인의 사이에 보이지 않는 불꽃이 튀었다.

“흥! 아무튼 앞으론 출입을 자제해주세요. 아니, 안 왔으면 해요. 이미 임자 있는 남자에게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오는 모습. 그다지 보기 좋지 않네요. 그럼 이만.”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진 송하는 마지막 말을 남겨두고선 자리를 떴고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매영령은 입가에 씁쓸한 미소를 띠었다.

‘정말 난 안 되는 걸까?’

* * *

그러한 직감은 송운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여인의 심리를 잘 모르는 송운이 보아도 자신을 찾아오는 매영령의 모습은 그저 한낱 정세에 대해 이야기만을 하려는 건 아니었다. 마치 유혹이라도 하려는 듯 늘 매혹적인 옷을 입고, 점점 자신에게 은근슬쩍 피부에 닿으려는 접촉이 늘었다.

물론 그때마다 자연스럽게 몸짓을 틀어 피했으나, 이제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상태였다.

‘설마……. 화령각주가 내게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니겠지.’

설령 있다고 한들, 송운은 그녀의 마음을 받아줄 수가 없다. 이미 자신의 곁에는 평서란이 존재하지 않는가?

‘아무래도 더 이상 만남을 허락해선 안 되겠구나. 그간은 헌현현의 정보를 많이 알 수 있어 유지를 해왔으나……. 이건 아니다.’

그때, 누군가 자신의 방문을 두드렸다.

기운을 살펴보니, 매영령이었다.

“송 대협. 들어가도 될까요?”

“들어오시오.”

끼익.

“오늘은 날씨가 제법 덥네요.”

그녀는 손에 들린 부채를 흔들며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송운의 곁에 앉았다. 한데, 오늘따라 그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화령각주. 앞으로 더는 나를 찾아오지 않는 것이 좋겠소.”

매영령은 갑작스러운 그의 말에 당황했다.

“어, 어째서죠?”

“생각해 보면, 그만한 도움을 주었다 한들 이정도로 그대와 내가 이리 만남을 가질 정도는 아니었소. 해서 그러한 것이니 양해를 부탁하오. 혹여 도움이 필요하거든 사람을 보내겠…….”

송운이 말을 채 마치지도 못한 그때, 매영령이 그를 향해 소리쳤다.

“좋아해요! 송 대협.”

미처 말릴 틈도 없는 순간이었다.

‘혹시나가 역시나가 되어버린 것인가?’

우려했던 것이 현실로 나타났다.

매영령이 그를 향해 난데없이 고백해버린 것이다.

송운은 순간 머리가 띵하니 아파져 왔다.

그는 왼손으로 울려오는 머리를 붙잡았다.

애당초 찾아오겠다는 매영령을 좋게 말하여 돌려보내려 하였으나, 그녀의 억지 아닌 억지에 어쩔 수 없었던 것뿐이다.

하나, 더는 안 될 일이다.

송운은 표정을 싸늘하게 굳혔다.

“처음부터 내게 정혼자가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지 않았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겠다는 그대의 말에, 정말 흑심 따위는 없는 것이라 여겼소만. 지금 보니 아니었군. 그리고 난 계속 말했지만, 대협이라는 호칭을 받을 만큼 대단한 사람이 아니오.”

“하지만……!”

매영령이 금방이라도 울 듯한 표정으로 그에게 반박하려 했지만, 이번엔 송운이 그녀의 말을 막았다.

“어찌 사내가 되어 정혼자를 두고 다른 여인을 곁에 두라 하는 것이오? 화령각주가 그 정도로 안하무인인 줄 알았다면 내 애초에 그대를 구하지 않았을 것이오!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 돌아가시오. 그리고 두 번 다신 볼 생각은 없으니 날 찾아오지 마시오.”

매영령은 거의 쫓겨나다시피 송운의 숙소에서 빠져나왔다. 그가 날린 말 한마디 한마디가 비수가 되어 마음 깊숙이 박히니, 마음 한쪽 구석이 너무도 아려왔다.

처음부터 몰랐어야 했다.

‘차라리…… 차라리 이럴 거면 그때 그냥 그만두어야 했는데…….’

그날 이후, 한동안 화령각의 맨 꼭대기 층은 나오지도 그 누구의 발길도 들이는 것도 허락지 않았다.

第十一章. 뜻밖의 제안

그 일이 있은 지 며칠이 흘렀다.

조용해진 환경에 송운은 조금 허전한 마음도 들었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매영령이 보고 싶다거나 그런 건 없었다.

다만 미안한 마음이 들 뿐.

그때, 밖이 평소와 달리 소란스러웠다.

‘손님이라도 온 것인가?’

하나 그렇다고 하기엔 너무도 요란했고, 누구의 것인지 모를 기분 나쁜 사파의 기운이 잔뜩 몰려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결국, 읽던 책을 덮고 몸을 일으킨 송운이 바깥으로 향하자 이를 기다렸다는 듯 웬 시커먼 복장을 한 놈들이 떼거지로 송운에게 다가왔다.

“네놈이 송운이라는 떨거지냐?”

그중 한 명이 조용히 그에게 시비를 걸듯 말했고, 송운은 심상치 않은 기분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만. 대체 누구기에 이 대낮에 남의 상단에 와 소란을 피우는 것이오?”

“크크. 이거 웃기는 놈일세? 소란은 네놈이 먼저 피우지 않았느냐?”

송운은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내가 언제 소란을 피웠다는 것이오?”

“약 달포 전! 화령각 앞에서 수금을 하러 간 우리 형님을 개 패듯……. 아, 아니 아니지. 쫓아내며 소란을 피웠다고 들었다! 꼴에 소문까지 났다지? 이래도 발뺌할 것이냐?”

씩씩거리며 말을 잇는 놈의 말에 송운은 그때의 일을 상기했다. 자세히 보니, 그들의 왼쪽 가슴팍에는 죄다 검은색 늑대를 상징하는 표식이 그려져 있었다.

‘……흑랑회라는 놈들인가 보구나. 허, 설령 그때 내게 맞은 녀석의 복수라도 하러 온 것인가? 그렇다 치기엔 너무 늦군.’

송운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게 대체 언제 적 일이란 말인가?

벌써 달포가 흐르고도 칠 주야가 더 흐른 일이다.

‘정말 악질 중 악질인 놈들이로구나.’

올 것이라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정말 찾아올 줄이야!

열이 솟구칠 대로 솟구친 송운이 놈들을 향해 한마디 던졌다.

“어찌 무를 배운 놈들이 무리한 고리대금과 봐주는 명목의 세를 내놓으라 하면서 힘없는 여인들을 겁박할 수 있단 말이냐? 참으로 파렴치한 놈들이 따로 없구나.”

송운의 비아냥거리는 듯한 말투에 열을 받은 것일까?

흑랑회 놈들이 모조리 단체로 달려들었고, 송운은 그 모습에 허리춤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하나, 손은 아무것도 잡지 못하고 헛손질을 했다. 급하게 튀어나온 터라, 방안에 두고 나온 것이다.

그런 송운의 모습에, 순간 움찔한 흑랑회 놈들이 이때가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달려들었다.

“하압!”

하나, 그것은 그들의 오만이오, 착각이다.

본디 다수의 칼 앞에 아무리 뛰어난 무인이라도 무력해질 테지만 검보다야 발과 주먹을 쓰는 것이 더 편한 송운이다. 이를 송운을 처음 보는 흑랑회 놈들이 알 리는 없었다.

‘검이 없다 한들 네놈들 하나 상대하지 못할까.’

송운은 속으로 피식 웃은 뒤, 놈들의 칼부림에 대응해 나가기 시작했다.

퍼억!

“크아악!”

카앙!

“아아악! 내, 내……!”

챙그랑.

쩌정!

송운은 자신에게 달려들던 놈의 손목을 강하게 쳐내며 지면에 떨어지는 검을 집어 들고선 뒤에 오는 놈의 검을 쳐내며 그 역시 주먹으로 응대했다.

잠시 후, 놈들은 신음을 흘리며 눈이 허옇게 뒤집힌 채로 모조리 땅에 드러누울 수밖에 없었다.

“끄으흑……! 으아아!”

“꺼헉……. 끄르륵…….”

처참한 놈들의 모습에도 송운은 눈살 한번 찌푸리지 않았다.

‘네놈들 따위가 쓸 무공이라면 없애는 것이 낫다.’

악한 놈들일수록, 손속을 가벼이 두면 또 달려들 것은 보지 않아도 뻔한 일이다. 해서 죽이진 않았으나 차례차례 총 스무 명이나 되는 놈들을 모조리 제압하면서 단전을 깨버린 것이다.

너무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상황을 지켜보던 문지기들은 모두 놀람이 가득 찬 눈빛으로 그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약 반 각도 걸리지 않아 상황이 끝나는 듯 보였다.

누군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면 말이다.

“……네놈. 제법 강하군. 나까지 나서게 하다니 말이야.”

추혼살검(追魂殺劍) 이라고도 불렸던 추능(秋陵)은 갑작스럽게 나타난 자신의 모습에도 흔들리지 않는 송운의 두 동공을 보고선 본능적으로 자신을 이미 알아채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그의 오래된 살수 경력의 감이었다.

한동안 잠잠했던 흑랑회 놈들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에 혹여 또 바보 같은 짓을 할까 싶은 마음에 따라나선 길이었다. 어차피 흑랑회에서 자신을 객식구로 받아들여 이곳에 눌러앉은 뒤로부턴 무료한 삶에 지겨워지던 참이다.

한데, 그렇게 따라나섰던 그의 눈에 재밌는 상대가 나타난 것이다.

흑랑회 놈들의 단전이 깨졌다든가 하는 사실은 그에게 이미 관심거리가 아니었다. 다만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이 실력자가 궁금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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