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전생-117화 (117/275)

제117화

“그리고……. 한 가지 더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송운이 시공검에 대해 각성한 것 같습니다.”

“……호오? 운이가 말이냐?”

“예, 주군.”

부르르.

순간적으로 송운의 얘기에 눈을 번쩍이며 되묻는 독고백의 모습에 은량은 온몸에 소름이 일었다.

하나, 원래 그런 사람이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에 은량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애초에 그의 앞에서 자신이 왈가왈부한다 하여 바뀔 것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의 말에 오로지 복종할 뿐.

“하하하! 그 소식이야말로 참으로 잘된 일이구나. 내 생각보다 시일이 훨씬 더 적게 걸렸어. ……역시 재미있는 아이로구나.”

독고백의 새빨간 입매가 자연스럽게 매력적인 호선을 그렸다. 그의 웃음소리가 곧 무신성을 가득히 타고 흘러 퍼져나갔다.

* * *

털썩.

흑령의 몸이 반 토막이 나면서 쓰러진 직후, 송운 역시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마치 온몸에 힘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그때, 저 멀리서 송하가 자신을 부르며 달려왔다.

“큰오빠! 흐흑……. 괜찮아? 괜찮은 거야? 어디 좀 봐봐!”

그는 울먹거리며 자신의 몸을 살피는 송하를 향해 괜찮다며 미소 지었다. 그러곤 늘 그래왔듯 그녀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어주었다.

“이 오라비는 괜찮다. 송하 너야말로 어디 다친 곳은 없느냐?”

“응응. 난 괜찮아……. 내가 뭘 한 게 있다고…….”

말은 그렇게 하지만 송운은 여전히 그녀가 떨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난생처음으로 적과 마주친 데다, 시신을 본 것도 처음일 테니 멀쩡하다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한 것이겠지. 나 또한 처음으로 사람이 죽는 것을 보았을 당시의 그 기분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거늘…….’

송운은 자신의 몸이 성치 않음에도 송하를 더욱 꼭 안아주었다. 그러곤 조금 전의 상황에 대해 다시 떠올렸다.

그동안 그렇게 노력해도 안 되던 것이 일순간 묘리에 대해 깨달음을 얻으면서 각성하게 된 것이다.

‘한데…… 시공검에 단계가 있을 줄이야.’

일전에 이것을 다루었을 때와는 완연히 달랐다.

처음 썼던 때에는 사용할 수 있는 모든 내력을 소진했던 반면, 방금 전 쓴 것은 시공검을 쓸 때 자신이 가진 힘의 사할 정도만 사용하였다.

하나, 그것만으로도 위력은 엄청났다.

그 결과로 자신과 비슷한 무위에 오른 흑령이 단 한 번의 손짓으로 목숨을 잃지 않았던가?

‘그런 것이 아니라면 지금 내가 이리 멀쩡할 리도 없을 테고…….’

그걸 깨닫고 나니 지난번 무지에 가까운 상태에서 펼쳤던 시공검은 정말 죽을 짓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는 내공이고 선천지기고 거의 다 뽑혀 나갔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실제로 사경도 헤매지 않았던가?

‘내공이 넘쳐흘러 자연의 기를 자신의 것처럼 공용할 수 있는 이가 아니라면 깨닫지 아니하고서 이걸 썼다가는 정말 죽기 십상이겠구나.’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송운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자신 역시 백이 도와주고, 선천지기가 남들에 비해 월등히 많지 않았더라면 필히 죽었으리라.

‘우선은 이곳을 벗어나는 것이 최우선이겠구나.’

송운은 잠시 송하를 옆에 둔 채, 몸을 일으켰다. 한데 몸을 일으키는 순간 머리가 핑 돌면서 속에서 무언가 거무튀튀한 것들이 울컥하고 쏟아져 나왔다.

“쿨럭……! 우욱!”

“오, 오빠!”

겨우 진정되나 싶던 송하가 다시금 놀라며 그를 부축했고, 송운은 괜찮다며 손을 내저었다.

‘……그나마 이 정도로 조절할 수 있게 된 덕에 약간의 내상을 입은 정도로 끝난 것이겠지.’

송운은 한없이 걱정이 담긴 두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동생을 향해 말했다.

“송하야. 아무래도 더 이상 지체해선 안 되겠구나. 언제 또다시 적이 나타날지도 모르는 곳에 이렇게 무방비상태로 있을 수 없다. 최대한 빠르게 운양상단까지 움직여야 할 것 같은데, 괜찮겠느냐?”

만일 저 검은 복면의 죽음을 알아챈 동료들이 새롭게 나타나면 더 골치 아파질 것이다.

송하는 그 뜻을 단박에 알아듣고는 울먹이는 와중에도 고개를 연신 주억였다.

“그럼, 서둘러 가자꾸나.”

第九章. 회우(會遇)

“실례합니다만……. 길 좀 묻겠습니다. 혹시 운양상단이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천신만고(千辛萬苦) 끝에 송운은 헌현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송운이 한 일은 양조광이 있을 운양상단을 찾는 것이었다.

오는 길 도중에도 간간이 운기조식을 했음에도, 송운과 송하의 상태는 그다지 양호하지 못했다. 송운은 적잖은 내상을 입은 데다 경공술을 무리하게 운용한 탓이었고, 송하는 그저 부족한 내력에 지친 것이다.

헌현현에 간신히 도착한 송운이 길을 묻자 행인은 행색이 안쓰러워 보였는지, 친절하게 방향을 가르쳐 주었다.

“저기 저쪽 골목으로 들어가서 한 삼십 걸음 정도 더 가면 있지요. 아이고. 어쩌다 이런 꼴을……. 서둘러 가보시오. 적어도 단주님께서 쫓아내지는 않으실 테니.”

그 행인은 단순히 그가 운양상단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 향하는 것일 거라 생각했는지 연신 안타까움의 혀를 차며 사라졌다.

‘조광이가 그동안 덕을 많이 베푼 모양이구나.’

그러는 와중에도 운양상단의 좋은 평가에 괜스레 기분이 좋아지는 송운이었다.

가는 도중 물어물어 도착한 운양상단 앞.

생각보다 큰 규모에 송운은 또다시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자리를 잡았다고는 했지만 이 정도로 클 것이라는 건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참을 문을 바라만 보고 있던 송운에게 문 앞을 지키고 있던 문지기들이 다가왔다.

“무슨 볼일로 오셨습니까?”

천천히 다가오는 그들은 조금은 경계하는 기색이 다분했다. 워낙 운양상단에 대한 별별 소문이 다 도는지라 가끔 금전을 요구하거나 음식을 조금 나눠 먹을 수 있냐며 물어오는 이들이 제법 되었기에 그러한 것이었다.

송운 역시 왠지 문지기들의 마음을 알 것 같아 조심스레 답했다.

“이곳의 단주님을 뵈러 왔습니다. 송운이라 말씀드리면 아실 겁니다.”

문지기들은 송운이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무언가 기억이 났다는 듯, 곧바로 고개를 숙이며 잠시 기다리라는 말과 함께 안으로 사라졌다.

그들이 들어간 지 약 촌각 정도 되는 시간이 흘렀을까?

안에서부터 우당탕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송운은 그 기운의 주인이 양조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끼익.

벌컥!

“헉헉……. 운 공자님!”

거친 숨을 내쉬며 한달음에 버선발로 뛰쳐나온 자.

‘역시 조광이가 맞았구나.’

송운은 그 모습에 머쓱한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았다. 자신이 왔다는 얘기를 전해 듣자마자 달려왔는지 민망함도 모른 채 맨발의 차림으로 뛰쳐나온 것이다.

“하하. 자네, 이게 무슨 꼴인가? 신은 신고 나왔어야지. 그러다 발이라도 다치면 어쩌려고…….”

송운이 웃으며 말하자 양조광이 그의 두 손을 덥석 잡고는 반색한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운 공자님, 이게 정말 얼마 만입니까? 문지기 말로는 웬 아가씨도 함께하셨다 하여 혹시나 했는데, 송하 아가씨셨군요.”

하나, 그것도 잠시.

숨을 고른 그가 송운과 송하의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보더니만 서둘러 그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한데, 두 분 모두 안색이 몹시 좋지 못하십니다. 아니지, 이럴 때가 아니라 어서 안으로 들어오시지요. 그저 반가운 마음이 앞서 이리 문 앞에 서 계시게 두었습니다. 송구합니다.”

“그렇게 하자. 난 괜찮은데 송하의 상태가 썩 좋질 못하니……. 들어가서 자세히 말해줄게.”

상단 안으로 들어간 양조광은 우선 송하에게 따로 방을 내주고 시녀들을 붙여주었다.

아니, 내어주려 했지만 송하가 거절의 의사를 밝혔다.

“송하 아가씨. 정말 혼자 괜찮으시겠습니까?”

“난 괜찮아. 집에서도 이젠 남의 도움 없이 잘만 해내는걸? 더 이상 어린애도 아니고……. 조광 오라버니. 난 혼자 할 수 있으니까 우리 오빠 좀 잘 부탁해.”

걱정이 가득 밴 얼굴과 씁쓸한 목소리로 말을 남기고는 안내받은 방으로 들어갔고 송운과 양조광 모두 그녀의 성격을 알기에 더 이상 말리지 않았다.

“조광이. 나도 우선은 좀 씻어야 할 것 같아. 오는 길 내내 제대로 씻질 못했더니 찝찝하다.”

송운이 미안하다는 말투로 말하였으나, 양조광은 웃으며 괜찮다며 탕에 물을 받아두었으니 금방 준비될 것이라며 자리를 떴다.

“그렇게 하시지요. 저 역시 급한 것은 없으니 천천히 준비하시고 나오세요. 오랜만에 다 같이 먹을 저녁상을 좀 차려두고 있겠습니다.”

* * *

찰방.

금세 따듯하게 데워진 물은 적당한 수증기로 뒤덮여 송운의 심신을 달래기엔 충분했고, 물속에 몸을 천천히 담근 그는 곧 흐트러진 내기를 다스리기 시작했다.

그의 생각대로 겉과는 달리 속은 엉망진창이었다.

‘……역시. 내상을 입은 채로 무리하게 몸을 혹사시켰구나.’

오는 길 도중 잠깐씩이나마 내력을 안정시켜보았으나, 계속되는 경공에 나아질 시간이 없었다.

아무리 좋은 선천지기라지만 만능은 아니다.

생명의 원천이라 한들, 해서 그것을 사용한다 한들, 내상을 입은 채 무리하게 되면 역시나 상태는 좋지 않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순간적인 깨달음으로 시공검을 조절하는 능력을 얻었지만, 그 역시 상당한 무리가 오는 것은 막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걸 그 누구보다도 잘 아는 송운이었으나 흑령과 마주친 이후 안전을 장담할 수 없었기에 그것을 감안하고서라도 이리 무리를 한 것이다.

‘다행히 그 뒤로는 아무도 쫓지 않았지만…….’

정말이지 아찔한 시간이었다.

그 순간 시공검이 발현되지 않았다면 꼼짝없이 죽은 목숨이었다.

“후우…….”

송운은 겉으로 새어 나오는 깊은 한숨을 뱉어냈다.

그 모든 것보다 지금 당장 걱정이 되는 것은 자신의 몸이 아닌 송하의 상태였다.

‘이정도야 며칠 천의선천기공과 함께 푹 쉬면 금방 낫는다. 하나 송하는…….’

짧은 시간 동안 너무도 많은 일을 겪었다.

처음으로 무리하게 경공을 펼치며 내력 소모를 하며 지친 것도 지친 것이지만, 내색은 하지 않고 있어도 아마 심적인 부분이 지금 송하에게는 가장 힘들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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