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전생-115화 (115/275)

제115화

“송하야 큰 오빠 말 잘 들어야 한다. 절대 혼자 행동하지도 말고. 알았지?”

“응! 걱정 마. 엄마. 오빠 뒤만 졸졸 잘 따라다닐 테니깐! 헤헷.”

그렇게 한참을 모두와 작별 인사를 마치고 나서야 송운은 집으로부터 발걸음을 뗄 수 있었다.

* * *

‘허허. 들고 갈 것이 꽤나 늘었구나.’

송운은 등 뒤에 실린 봇짐을 보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아무래도 처음 송운이 홀로 짐을 쌌을 때와는 달리 송하가 함께 함으로써 짐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나, 송운은 개의치 않았다.

‘그래봤자 대부분이 옷이니 그다지 무거운 것도 없고…….’

만일 무겁다 한들 또 하나의 수련이라 생각하고자 마음먹었던 송운이기 때문이다.

“야호! 여행이다!”

송운은 신나서 소리 지르는 여동생의 모습을 보며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난생처음으로 집을 벗어나 세상에 첫발을 내딛는 기분이 얼마나 즐거울지는 자신도 이미 한번 느껴보았기 때문이리라.

‘뭐, 그 뒤로는 계속된 고난과 역경에 죽을 맛이었지만……. 이미 지난 일이지.’

그렇게 시작된 여정은 역시나 평탄했다.

본디 경공을 이용하여 빠르게 가려고 했던 송운이나,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도 신기한 듯 주변을 구경하기 바쁜 송하를 위해서라도 걷는 것을 선택했기에 시간은 더뎠으나 그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그였다.

애당초 그녀를 데리고 온 것은 이러한 연유 때문이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생각보다 송하의 걸음 또한 느리지 않았기에, 구경을 하면서도 제법 빠르게 속도를 내고 있었다.

다만, 이것저것 둘러보는 것에 정신이 팔린 송하의 곁에 누군가 해코지를 할 것에 대한 걱정이 더욱 마음을 앞섰다. 해서 늘 송운은 긴장을 늦추지 않고 주변을 감시하는 데 힘썼다.

‘벌써 영청(永淸)인가? 헌현현까진 삼분지 일정도 되는 거리를 왔구나. 오면서도 별다른 일은 없었으니, 앞으로도 조금만 조심하면 될 터.’

“오빠! 어서 이리 와서 이것 좀 봐!”

한참을 주변만 경계하는 송운의 손을 이끌더니 송하가 어딘가로 이끌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형형색색의 옷으로 치장한 광대 패였다.

“어서들 나와서 구경합쇼! 날이면 날마다 오는 패가 아닙지요!”

쿵! 쿵! 쿵!

채앵!

삐이이-!

커다란 북소리와 화려한 갖가지 악기 소리에 맞추어 재주를 넘어가며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어릴 적 송하와 송후를 데리고 함께 나가서 보았던 그 광대 패 이후로 처음 보는 그 모습에 신난 듯했다.

“과녁 맞히기다! 나 이젠 저거 하나도 빠짐없이 정말 잘할 자신 있는데……. 헤헤.”

입에는 어느새 당과 하나를 물고선 배시시 웃는 송하의 모습이 예뻐 보였는지 그는 자신과 머리 하나는 더 차이 나는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번쩍 안아 올렸다.

“오, 오빠?”

“하하. 어릴 적엔 이리 자주 등에 태워주곤 했는데, 이젠 네가 이리 훌쩍 커버려 소용이 없는 것 같구나.”

“에이. 그때가 언제인데. 나도 벌써 어엿한 숙녀인걸? 주변엔 벌써부터 혼인할 거라는 아이들도 있구…….”

송하는 오물거리며 자신이 입에 올린 단어를 말하면서도 부끄러웠는지 얼굴에 홍조가 폈다. 그 모습에 송운은 슬쩍 장난기가 발동했는지 천천히 운을 띄우기 시작했다.

“흐음. 혹여 우리 송하가 벌써 마음에 둔 정인이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구나.”

“그런 건 아니야! 절대로. 절대로!”

풋.

송운은 적극적으로 아니라며 부정하는 그녀의 모습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리 부정하는 것을 보니 맞는 것도 같은데?”

“……정말 아니야. 아직 내 마음에 쏙 드는 이는 보지 못했는걸.”

송운은 왠지 여기서 더 물었다가는 송하가 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장난을 멈추었다. 다 큰 처자를 울릴 수는 없는 법이지 않겠는가?

물론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지만 말이다.

‘……?’

그렇게 한참을 구경에 집중하고 있었을까?

순간 송운의 육감에 어디선가 예리한 살기 어린 시선이 느껴졌다. 천의선천기공으로 인해 더욱 기감이 예민해진 송운이기에 기를 느낄 수 있는 범위가 많이 넓어진 것을 감안하고서라도 생각보다 거리는 가까웠다.

‘대체 누가 이런 살기를……?’

따가움의 끝은 분명 자신을 향해있었으나, 살수라 한들 이렇게 사람이 많은 인파 속에서 함부로 움직일 수는 없을 거라는 생각에 송운은 고민에 빠졌다.

‘슬쩍 확인만 하고 와볼까?’

뭔가 좋지 않은 예감에 따라가려 하였으나, 송운은 이내 송하가 함께 있다는 것을 상기(想起)했다.

‘괜한 일에 휘말리는 걸지도 모른다.’

원체 중원이라는 곳 자체가 위험이 도사리고, 살수가 존재하는 것은 너무도 익숙한 곳이지 않은가.

과한 관심은 자칫 화를 불러오는 법.

동생과 함께 하는 길인만큼 위험한 일에는 되도록 휘말리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만일 진정 자신을 향했던 것이라 한들, 동료가 있어 함께 움직인다면 송하를 위험에 빠뜨릴지도 모르는 상황인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고 해도 똥은 더러워서 피하는 것이지 무서워서 피하는 것이 아니니.

‘그래. 나 혼자 있는 것도 아니고……. 꽤나 멀리서 느껴진 것이니 지나가는 살수겠지. 내가 너무 예민해진 것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송운은 과감하게 관심을 끄고 송하가 있던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한데, 그 찰나의 순간에 생각에 너무 깊이 빠졌던 탓일까? 그가 고개를 돌렸을 때는 제자리에 있었던 송하가 없었다.

‘사라졌다?!’

다급해진 송운은 곧바로 기감을 넓고 깊게 펼쳐 송하를 찾아 나서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송운은 그녀의 기를 찾을 수 있었다. 인파 속에서 밀리고 밀려 의도치 않게 자리가 옮겨진 것이다.

“휴우……. 잠시라도 눈을 떼서는 안 되겠구나.”

송운은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송하의 곁으로 빠르게 향했다.

* * *

여행을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맞이한 정신없던 하루는 어느덧 하늘이 새빨간 노을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아직…… 딸꾹! 한잔하고 들어가지 친구!”

“껄껄. 자네 많이 취했네. 이만 들어가야 하네.”

“오늘 하루는 정말 피곤했어. 끄응. 대체 무슨 짐이 그리 많은 게야?”

“그래도 어쩌겠나? 우리 일인 것을. 그렇다고 때려치울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자네가 참게나. 다 우리 잘되라고 하는 일 아니냔 말이야.”

거나하게 취한 취객들부터 하루 내내 짐을 옮긴 짐꾼들까지 참으로 많은 종류의 사람들이 드나들고 있었다.

‘사람이 제법 많구나.’

이곳에서 가장 큰 객잔 앞에 선 송운은 밤이 되어도 북적이는 마을의 풍경에 또 한 번 고민에 빠졌다. 사람이 많은 만큼 누군가 의심받지 않고 쉽게 숨어들기에 최적의 장소였기 때문이다.

아닐 거라며 부정하려 하였지만 아까 낮에 겪은 살기는 보통의 것이 아니었다.

‘최소 일급살수다.’

더구나 어딘지 모르게 낯설지 않은 그 기운은 여전히 송운을 깊숙이 짓누르고 있었다.

살수는 은신과 순간적인 능력에 가장 특화되어있는 이들이다. 그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은밀하게 파고드는 것은 순식간일 터.

아직은 어리고 실전 경험이 적은 송하로서는 어떠한 상황에 대처하기란 여간 쉬운 일은 아닐 것이 자명한 일이었다.

‘과연 이곳에서 오늘 하룻밤을 묵어도 괜찮을지 의문이구나.’

더구나 전생에선 이러한 예감이 들 때면 어김없이 좋지 않은 일들이 벌어지곤 했던 터라, 괜한 의심이라며 생각하고 그냥 무시하기엔 마음이 뭔가 찝찝했다.

‘게다가 낮에 일까지 생각하면……. 차라리 이곳을 빠르게 떠서 작은 마을로 향하는 것이 더 낫겠구나. 아니, 지금부턴 최대한 빠르게 조광이에게 가는 것이 좋겠어.’

“오빠 왜 들어가지 않고 가만히 서 있는 거야?”

때마침 생각을 마친 송운에게 먼저 송하가 말을 걸어오자 조심스레 상황을 설명했다.

“송하야 미안하지만, 오늘 밤은 쉬지 않고 다음 마을로 서둘러 이동해야 할 듯싶은데……. 괜찮겠느냐?”

“헤에……. 응! 사람들에게서 듣기만 했던 야반도주 같은 거야? 나 이런 것 꼭 해보고 싶었어! 오빠랑 함께 하면 더더욱 좋구. 그러니까 난 괜찮아 오빠.”

다행히 송하는 해맑게 웃으며 적극적으로 의견에 대해 찬성했다.

‘녀석. 정말 해보고 싶었던 게 많았던 게로구나. 그동안 참아온 것이 용할 정도이니……. 허허.’

송운은 걱정이 몰려오는 상황에도 밝게 웃는 송하의 모습에 절로 오빠의 미소가 지어졌다.

“최대한 네게 맞추어 갈 터이니 힘들면 말해야 한다.”

“응!”

그렇게 시작된 야밤의 움직임은 밤을 새워 꼬박 달린 보람은 있었다. 달은 여전히 그들의 머리 꼭대기 위에 두둥실 떠 있었다.

‘이제 축정이다. 조금만 더 일찍 도착하면 해가 뜨기 전에는 쉴 수 있을 터.’

아직 경공에 익숙하지 않은 송하를 위해 속도 조절을 하는 덕에 시간이 좀 더 걸리긴 했으나, 송운은 직감적으로 다음 마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느껴졌다.

계속해서 달려오던 휑한 길과는 달리 제법 많은 기운들이 그에게 감지된 것이다.

‘이 정도 속도라면…… 반 각 내로는 도착하겠구나.’

송운은 옆에서 아까의 해맑던 모습과는 달리 말이 없어진 송하가 걱정되었는지 말을 걸었다.

“하야. 힘들진 않으냐?”

“응. 아직은 괜찮아. 이 정도는 거뜬해.”

꽤나 먼 거리를 달려왔으나, 송운의 생각보다 송하는 많이 지친 기색은 아니었다.

아직까진 숨소리도 거칠어지지 않았다.

송하가 그만큼 많이 성장했다는 점도 작용했으나, 송운이 그녀에게 맞추어준 것도 한몫했으리라.

그럼에도 송운은 동생이 기특했다.

“그래. 조금만 더 힘을 내거라. 거의 다 와 가는 것 같구나.”

또다시 둘 사이의 대화는 사라졌고, 그렇게 한참을 달렸을까?

척.

마을에 다다르기까지 몇 장 남겨놓지 않은 거리에서 누군가 송운의 앞길을 막아 세웠다.

아차 싶은 송운은 급히 몸을 멈춰 세우고선 송하를 자신의 뒤로 물렸다.

‘아까 그놈이구나!’

송운의 속마음이라도 읽은 것인지 그의 복면 속 입가가 씨익 하고 올라갔다.

“크흐 용케도 내 기운을 읽었구나. 하나, 네놈의 도주도 여기까지다. 송운.”

그 순간 송운의 육감에 무언가 스쳐 지나가는 기억이 떠올랐다.

‘대체 누구기에…….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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