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4화
第七章. 동행(同行)
송운은 서신을 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곧바로 그가 기다리고 있을 운양상단으로 향할 채비를 마쳤다.
기왕지사 검을 뽑은 것 단칼에 해결하기 위함이었다.
그런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평서란에게 이번 여정을 알리는 것이었다. 이미 일전의 폐관 수련에서 그러했듯 말이다.
‘아무리 오래 걸리지 않더라도 말도 없이 떠난다면 란 매에 대한 예의가 아니겠지.’
송운은 곧바로 평서란이 있을 황궁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 * *
최근 들어 평서란은 황제의 명으로 아버지 평목단을 따라 황궁 무인들의 수련을 지도하는 일로 바빠 보였다.
그리고 그건 오늘도 여전히 마찬가지였다.
“하압!”
“타핫!”
“거기에선 왼발이 오른발보다 많이 치우치면 안 됩니다. 좀 더 높게 올리세요.”
송운은 그런 그녀를 조심스럽게 멀리서 바라보았다. 함께 수련을 하거나 대련을 한 적은 있어도 평서란이 누군가를 가르치는 모습은 처음 보았기에 뭔가 생소한 기분이 들면서 마냥 신기할 뿐이었다.
‘이제 곧 중식을 먹을 시간이니 머잖아 수련은 끝날 터.’
이번에도 송운은 느긋이 이를 기다렸다.
‘역시 언제 보아도 란 매는 참 아름답단 말이지.’
열심히 하는 그녀의 모습은 그 누구보다 아름답고 빛이 났다. 평서란이 한번 움직일 때마다 흩날리는 머릿결은 부드럽고, 내리쬐는 햇볕에 슬쩍 눈을 찌푸리는 그녀의 표정 하나하나도 모두 사랑스러워 보였다.
그런 평서란의 모습을 지켜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송운의 생각대로 수련이 잠시 멈추었다.
“모두 수고하셨어요. 모두 한 시진 뒤에 뵙겠습니다.”
전달사항을 마친 그녀의 뒤로 우르르 성인 장정들이 빠져나가는 것을 보며 자연스럽게 송운의 곁으로 다가왔다.
“여기까진 어쩐 일이세요?”
“전할 말이 있는데 요즘 란 매가 통 바빠 보여, 이리 직접 온 것이오.”
“흐음. 뭔가 일이 생기신 모양이네요.”
“그렇소. 이번에 조광이에게 서신이 왔는데, 헌현현에 새로 상단을 하나 차렸다 하오. 벌써 약 이 년이 되어간다고 하더군.”
평서란은 조금 놀란 눈빛으로 송운을 바라봤다. 하기야 오랜만에 소식을 들었는데 상단을 차렸다고 하니 놀랄 수밖에.
하나 놀라는 것도 잠시일 뿐.
곧바로 축하의 인사를 건네 왔다.
“후후. 그거 정말 놀랍고 좋은 소식이네요.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요. 생각보다 양 소협이 대단한 능력을 지녔네요.”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소. 해서…….”
“다녀오셔야겠네요.”
평서란은 당연하다는 듯 눈이 부실만큼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그의 마음을 읽은 듯 대답했다. 그런 그녀의 재빠른 반응에 송운은 묵묵히 고개를 주억였다.
“란 매의 말대로 상단이 제법 자리를 잡았다 하니, 내 직접 가봐야 할 것 같구려. 아무리 조광이 혼자 잘 해내고 있다 한들 그간은 내게도 별다른 기별이 없어 몰랐으나, 알고 나서도 가보지 않을 수 없질 않겠소? 아무래도 이번 여정은 얼마나 걸릴지는 나도 잘 모르겠구려. 해서 이리 란 매에게 직접 의견을 묻기 위해 온 것이라오.”
“그런 것이라면 당연히 다녀오셔야죠. 양 소협의 얼굴을 뵙지 않은 지도 오래되셨잖아요?”
송운은 흔쾌히 다녀오라고 말하는 평서란의 모습이 그렇게 예뻐 보일 수 없었다.
그는 그녀의 볼에 가볍게 입맞춤했다.
순간 그러한 송운의 행동에 평서란은 잠시 얼굴이 붉어졌으나, 이번만은 조금 달랐다.
‘늘 나만 받는 것 같잖아?’
찰나였다.
“……!”
송운은 조금은 대담해진 그녀의 행동에 놀랐다.
평서란 역시 그의 볼에 입맞춤 한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싫은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송운은 애꿎은 헛기침을 하며 말을 이었다.
“크흠. 흠. 걱정하지 않도록 간간이 연통(聯通)하겠소. 그사이 몸 건강히 있어야 하오.”
“제 걱정은 하지 마세요. 이곳에 있는 한 누가 감히 저를 함부로 할 일은 없을 테니까요. 운 가가야말로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후후.”
예상대로 놀란 그의 모습에 괜히 기분이 좋아진 평서란은 웃으며 답했다.
‘이젠 부모님에게만 말씀드리면 되겠구나. 부모님도 좋아하실 거야.’
아무쪼록 운양상단으로 향할 송운의 발걸음이 한층 가벼워졌다.
* * *
송운은 마지막으로 가져가야 할 짐들을 확인했다.
애당초 짐이라고 해봐야 늘 그래왔듯 한두 벌 정도의 여벌의 무복과 약간의 여비.
그리고 이젠 그의 몸의 일부처럼 느껴지는 환성까지.
남들이 보면 조촐해 보일 수도 있을 터지만 송운에겐 정말로 이 정도면 충분했다.
그 이상의 것은 정말 ‘짐’이 될 뿐이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경공이 상승의 경지에 오른 송운으로서는 헌현현은 그리 먼 거리가 아니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겠구나. 대략…… 이년 만인가?’
자신의 약혼식에서 보았던 양조광의 모습이 마지막이었기에 오랜만에 그를 본다는 생각이 송운을 더욱 즐겁게 해주고 있었다.
똑똑.
그때, 누군가 송운의 방문을 두드렸다.
송운은 느껴지는 기운에 단박에 누구인지 알아챌 수 있었다.
그는 누구냐 물을 새도 없이 곧바로 들어오라 일렀다.
“들어 오거라.”
벌컥!
거칠게 문을 열고 들어온 송하의 모습에는 왠지 모르게 설렘이 가득한 표정과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큰오빠! 나도 같이 갈래!”
생각지도 못했던 그녀의 당돌한 말에 송운은 잠시 당황했다.
‘음? 분명 어디선가 보았던 장면 같은데…….’
송하는 어리둥절해 보이는 송운의 표정에 거절당할 것 같았는지, 더욱더 열심히 열변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이제 나도 더 이상 예전의 어린애가 아니란 말이야. 예전에 오빠가 더 나이가 들고 무공 실력이 늘면 그때 오빠와 함께 구경을 다니자꾸나. 라고 분명 십여 년 전쯤 오빠가 약속까지 했었잖아. 같이 가게 해줘.”
송하가 예전의 자신이 했던 말과 목소리, 표정까지 똑같이 지어내자 그제야 송운은 이 상황을 어디서 보았었는지 기억해내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그래. 네 말을 듣고 나니 기억이 나는구나.”
송운은 몸은 커졌지만, 여전히 그때와 똑같은 눈망울로 초롱초롱 자신을 쳐다보는 송하의 모습이 너무도 어여뻤다. 시간은 흘렀으나, 그가 바라보는 동생의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마냥 어린아이 같았다.
‘내가 이렇게 가족의 품으로 다시 돌아온 것이 벌써 십여 년 전 일이라니……. 세월이라는 것이 정말 이리도 빨리 가는구나.’
송운은 새삼 드는 생각에 추억을 떠올렸다.
그때만 해도 송하는 겨우 열 살의 꼬마였건만, 어느덧 이리 자라 어엿한 숙녀가 되어가고 있지 않은가?
중원 최고의 미색을 갖추었다고는 할 수 없을 테지만, 하남성에서 손에 꼽을 만큼 미인이던 어머니 예령을 닮아가면서 이미 북경으로 이사를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주변에서 그녀에게 청혼을 해 온 이가 있을 정도였다.
‘아이들은 그만큼 빨리 성장한다고 하였던가? 허허. 새삼스럽게 느껴지는구나.’
송운은 뿌듯함과 동시에 고민에 빠졌다.
과연 송하를 데려가도 될 것인가에 대해서 말이다.
‘올해로 송하의 나이가 열여섯이던가? 으음……. 하기야 이젠 이런 경험도 해볼 때가 되었지. 송하의 말대로 이미 약속도 했던 것이니…….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지.’
어차피 언젠가는 부딪히게 될 세상이다.
어느 정도 나이도 찼고, 송하의 무공 실력 또한 일취월장하였다. 하나 그것이 그녀에겐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자칫하면 자신의 무공을 믿고 위험한 일에 말려들 수도 있는 것이고.’
계속해서 온실 속 화초로 세상 물정을 모르는 아가씨로 키우느니 자신이 같이 다녀줄 수 있을 때 세상 구경을 시켜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혼자 내보내는 것보다야 나와 함께 하는 것이 더 안전할 테니.’
한참을 고민하던 송운은 드디어 입을 뗐다.
“우선은 어머니와 아버지께 허락을 받는 게 우선인 것 같구나. 어차피 이 오라비도 부모님께 언질을 넣어야 하니 그때 같이 말해보도록 하마.”
“와! 정말이지?!”
송하는 마치 벌써 같이 가겠다는 허락을 맡은 것마냥 기뻐하며 방방 뛰었다.
‘나와 함께 가는 것이니 부모님도 딱히 반대를 하실 것 같지도 않으니. 허허.’
다음날.
송운은 송악과 예령에게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인해 길을 떠나게 되었고, 송하와 함께 길을 떠나도 괜찮겠냐며 물었고, 다행히 양측 모두 별다른 제지 없이 흔쾌히 허락을 얻어낼 수 있었다.
그렇게 처음으로 송하와 단둘이 떠나는 여행이었다.
* * *
처음으로 단둘이 떠나는 여행길에 신난 송하를 뒤로 하고 송운이 천조회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아무도 없을 때 떠났던 예전과는 달리 그들이 있기에 한동안 집을 비우게 될 것임에도 무언가 마음 한쪽 구석이 든든해져 왔다.
“형님들 모두 제가 없는 동안 부모님과 송후, 잘 좀 부탁드립니다.”
송운의 당부의 말에 천조회는 자신감 충만한 목소리로 걱정 말라며 힘차게 외쳤다.
“주군이 자릴 비우시는 동안 저희가 아주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얼씬 못하도록 잘 지키고 있겠습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일랑 마시고 몸 조심히 다녀오시지요.”
“예, 그간 새로운 소식이 있거든 곧바로 주군께 연락을 취하겠습니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어머님. 아버님. 저희 다녀오겠습니다. 그간 몸 건강히 계십시오. 간간이 소식을 전할 터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구요. 송후는 조만간 있을 향시 준비 잘하고. 다녀와서 보자꾸나.”
“예, 형님. 몸조심하십시오. 송하, 형님 말씀 잘 들어야 한다.”
“당연하지! 날 뭘로 보고. 헤헤.”
걱정하지 말라는 듯 웃는 송후와 이를 맞받아치는 송하에 이어 송악도 한마디 거들었다.
“우린 잘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말거라. 함께 하면서 송하를 잘 챙기리라 믿는다. 언제나 너희의 안전이 최우선이니라. 알겠느냐? 운아.”
“예, 알겠습니다. 아버지.”
그런 송운의 뒤로 길을 떠난다는 생각에 마냥 신나있는 송하의 모습이 아무래도 염려가 되었는지 예령이 그녀를 안아주며 말을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