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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전생-111화 (111/275)

제111화

부르르.

하나 그런 그의 노력에도 몸은 아는지 모르는지 한없이 떨리고 있었다.

“……송운이 은밀하게 흑야의 뒤를 쫓고 있습니다. 이미 흔적을 모두 지우긴 하였으나 혹여 주군께 귀찮은 일이 될까 싶어……. 어찌할까요?”

잠시 후 은형의 생각과는 달리 들려온 독고백의 목소리는 매우 부드러웠다. 송운을 부르는 명칭마저도 말이다.

“운 동생이 말이냐? 쿡쿡. 그냥 두거라. 어차피 지금은 세상천지를 뒤진다 한들 찾을 수 없을 것이니.”

그뿐만이 아니었다.

분명 아까 와는 또 다른 의미의 미소였다.

은형은 단박에 직감했다.

이번에는 정말로 기분이 좋을 때 나오는 웃음이라는 것을 말이다.

순간 드는 생각은 단 하나뿐이었다.

‘……정말로 도무지 알 수 없는 분이다.’

그러한 독고백의 반응 때문에 곁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흑령이 뭔가 알 수 없는 기묘한 표정을 짓고 있다는 건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 * *

휘이잉.

‘오늘따라 아무도 없구나.’

송운은 맑은 하늘 아래 휑한 수련장을 향해 바라보며 모호한 표정이 흘러나왔다.

그곳엔 일 년간의 격한 수련을 그대로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 곳곳에는 상처로 가득하다. 한데 그러한 곳에 사람이 없으니 뭔가 허전했던 것이다.

‘천조회야 요즘 정보를 캐러 다니느라 집안에 거의 붙어있는 일이 적으니 그렇다 치지만…….’

아니, 실제론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송하 역시 늘 송운의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더니 무슨 연유에선지 오늘따라 보이질 않았다.

‘송후야 얼마 남지 않은 향시 준비에 바쁠 테고…….’

가끔 찾아오는 평서란 마저도 요즘 들어 평목단을 따라 황궁에 드나드느라 바쁘니 결국 이렇게 송운 혼자 따돌림 아닌 따돌림 신세가 된 것이다.

‘허허……. 거참.’

송운은 속으로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처음에는 혼자가 익숙했다.

당연했다.

전생에선 혼자였으니.

본래 혼자 수련하던 것이 당연하던 그가 일 년 사이 이제는 너무도 어색했다.

하나, 그러면 어떠하고 저러면 또 어떠하랴?

홀로 있다고 하여 수련을 못 할 송운이 아니었다.

‘차라리 잘 되었구나. 이번 기회에 그동안 잠시 접어두었던 시공검에 대해 수련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여러 사람들과 함께 대다수의 시간을 함께하다 보니 질풍무에 대한 깊이만 점점 깊어지던 참이었다. 물론 그게 결코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무인으로서는 기쁜 일이나, 정작 시공검에 대해선 다뤄볼 수 있는 시간이 너무도 적은 탓에 여전히 오리무중이었기 때문이다.

‘일 년 전과 비교해 전혀 나아진 것이 없으니…….’

송운은 애꿎은 머리만 긁적였다.

게다가 너무 오랜만인지라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할지 막막하기만 한 것이다.

‘그러하다면…….’

송운은 가부좌 자세를 취했다.

“후우.”

그러자 그를 중심으로 주변의 기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빠른 속도로 송운의 몸 안에 쌓이기 시작했다.

하나, 한참을 심법을 돌리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이리 생각해 보고 저리 생각해 보아도 별다르게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대체 시공검이라는 것에 담긴 묘리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 당시 폭발적인 기운은 생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무엇인 가였다. 한데 그 순간 문득 그 단어가 송운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선천기폭?’

어쩌면 내력을 한 번에 모아 터뜨리는 그 원리는 선천기폭과 비슷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송운은 부푼 기대감을 안고 가부좌를 풀고 몸을 일으켰다.

그러곤 선천기폭을 만들기 위해 주먹에 내기를 둘러쌌다.

우웅.

이미 그것에 대해선 지난번의 일로 완전히 깨달았기에 손쉽게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렇게 모인 내기를 순식간에 터뜨렸다.

쾅!

완벽하게 자신이 원하는 통제하에 선천기폭이 허공에서 터져나갔으나, 송운은 실망한 기색이 가득한 표정을 안고 고개를 내저었다.

혹시나는 역시나였다.

‘겉으로 보기엔 비슷하나 이것과는 다르다. 하기야…… 무황이 만들어낸 무공이 겨우 내가 생각한 것과 비슷할 리 없지.’

송운은 곧 한쪽에 고이 풀어두었던 검파를 집어 들어 환성을 꺼내었다.

스르릉.

우우웅-

맑은 검 울림과 함께 환성이 기분 좋은 울음소리를 내었다. 그 소리는 마치 송운의 마음을 달래려는 것마냥 고요하면서도 아름다웠다.

‘그래그래. 꼭 굳이 시공검에 대해서만 생각할 게 아니라 오랜만에 제대로 펼쳐보자꾸나.’

자세를 잡은 송운이 이내 검과 함께 물 흐르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후웅-

초식을 뛰어넘은 그의 몸짓 한 번에 잔잔한 호수에 바람이 이는 것처럼 시작하더니 곧 거대한 돌풍으로 변해 사나운 파도처럼 사방을 흩날렸다. 그 여파로 주변에 있던 나무들이 좌우로 크게 흔들리면서 앉아있던 새들이 놀라 달아났다.

푸드득!

그동안 천조회와 동생들의 무위를 고려하여 늘 절제해왔던 것에 비해 풀어낸 그 폭발력은 어마어마했다.

“후읍……!”

그래서일까?

그런 건 염두에 둘 새도 없이 흐름을 곧이곧대로 따라 송운의 주변에 흐르던 기들을 움직였다. 곧 어마어마한 내기가 하나로 융합되어 송운의 의지대로 이리저리 방향이 바뀌어 갔다.

무질서 속에서 새로운 질서가 성립하는 순간이었다.

‘자연과 하나가 되는 것이 진정한 무리라.’

그러던 도중 감겨있던 송운의 눈앞에 무엇인가 일렁였다.

“……?!”

찰랑-

하나, 그것도 찰나.

송운이 눈을 뜸과 동시에 흐릿했던 형상마저도 완전히 사라져버린 후였다.

‘이것도 아닌 것인가…….’

결국 송운은 허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잡힐 듯 안 잡힐 듯, 마치 뜬구름과 다를 것이 없구나. 휴우…….’

송운이 답답한 마음에 하늘을 바라보았을 땐 중천에 떠 있던 해가 어느덧 지평선 저 멀리 뒤편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이미 초저녁이 지난 시간이다.

그때서야 송운의 후각에 밥 짓는 향이 타고 들어왔다.

‘이런, 벌써 시간이 이리도 흘렀던가? 어머님이 찾으시겠구나.’

그러곤 사방을 둘러보니 자신이 일으켜둔 흙먼지가 가득했다. 송운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서둘러 옷을 털어내곤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 * *

천조회가 움직이고 얼마의 시간이 더 흘렀을까?

중간 결과를 전하는 천조회의 표정은 그야말로 암울했다. 그도 그럴 게 그토록 애타게 사방을 뒤지고 다녔으나, 결국 흑야의 끄트머리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소, 송구합니다. 주군.”

“대체 어찌 감추었는지 쥐도 새도 모르게 모습을 감추었습니다요. 끙…….”

그 모습에 되레 송운이 미안해질 정도였다.

첫 임무였기에 더욱 잘하고 싶은 그들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만큼 흑야는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걸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너무 많은 것을 바라면 체하는 법이다.

그중에서도 다행인 것은 그렇게 활동을 펼치면서 아직까진 만월문을 비롯한 다른 정보 집단과 부딪힘은 없었다는 것이다.

송운이 그들을 향해 부드러운 미소를 띠우며 말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첫술에 어찌 배부를 수 있겠습니까? 정말 괜찮으니 그리 시무룩해지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나 천조회를 달래면서도 답답함이 드는 것은 송운도 마찬가지였다. 곧바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으나, 이 정도일 줄은 송운도 상상하지 못했던 터라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하물며 일전의 회원장가 때처럼 연계된 상단조차도 없질 않은가?

‘으음……. 하늘로 솟은 것인지, 땅으로 꺼진 것인지. 어찌 이리도 꼭꼭 숨었단 말인가.’

차라리 영영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테지만, 그동안의 행적을 살펴보면 결코 쉽게 사라질 놈들은 아니다.

생각해 보면 비고의 일에도 탐을 낼 법도 하건만 그때도 그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래도 여러분 덕분에 주변의 문파와 가문들의 정보를 얻기 시작했으니 잘되었습니다. 다만 흑야는 지금은 몸을 숨겼을지 모르나 이대로 긴장을 늦출 수는 없는 법이겠지요. 앞으로도 계속해서 주시해주세요.”

그래도 도움이 되었다는 송운의 말에 그나마 침울했던 분위기가 조금은 풀리는 듯했다. 단순한 그들의 모습에 송운은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것이 천조회의 가장 큰 매력이었다.

“자자, 오늘은 이 정도로 접어두고 식사하러 가시죠. 그동안 제대로 한 끼 챙겨 먹기도 힘드셨을 테니 푸짐하게 한 상 차려드리겠습니다.”

“……밥! 좋아요!”

그에 말 한마디 없던 적돈이 크게 외쳤고, 다시금 모두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第六章. 운양상단(運陽商團)

하북성(河北省) 헌현현(獻縣縣) 중심에 위치한 마을.

초가 켜있는 방 안, 주변에 잡다한 서류들에 둘러싸여 간신히 얼굴만 보이는 한 젊은 청년이 열심히 붓을 놀리고 있었다.

스윽 스윽.

한번 시작한 붓놀림은 그 끝을 모르는 듯, 한 시진에서 두 시진. 두 시진에서 네 시진이 지나도록 계속해서 움직였고 서늘하던 공기는 점점 열기가 더해져 그의 이마에는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주륵.

뚝.

“……이런.”

한창 일에 몰두하던 그는 서류에 묻어난 것을 옷깃으로 여러 번 찍어내더니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엔 땀방울이 아닌 코에서 흘러내린 새빨간 선혈이었다.

아마도 서류를 새로 작성해야겠다고 생각을 할 무렵.

벌컥!

누군가 문을 열었고, 그가 코를 막고 있는 것을 보고선 이미 많이 겪었다는 듯 익숙하고 재빠른 손놀림으로 손수건을 건네주며 앞에 놓인 서류를 치워냈다.

“단주님! 그러게 무리하지 마시래두요!”

단정한 옷차림의 아직은 어린아이로 보이는 곱상한 소년이 버럭 소리를 질렀으나 그는 별것 아니라는 듯 대수롭지 않게 손을 휘휘 내저었다.

“난 괜찮다. 그래도 그 덕에 오늘 일은 대강 마무리가 된 듯하구나.”

그가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못마땅하다는 듯 뚱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아무리 단주님이 대단하시다곤 해도 이렇게 계속해서 홀로 무리하시는 건 안 돼요. 내일까진 이 방에서 일장이라도 가까워지시는 건 이 위강(偉强)이가 허락 못 합니다! 대체 곽 총관님을 비롯해서 다른 분들도 많이 계시는데 왜 아직도 굳이 단주님이 다 해결하려고 하시는 거예요? 이젠 단주님 혼자가 아니란 말이에요!”

단단히 화가 난 듯 뾰로통해진 얼굴로 도통 이해 못 하겠다며 또박또박 단단히 엄포를 놓는 그 작은 소년의 말에 결국 단주라 불린 이가 항복을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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