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9화
여러 의미로 적돈과 속웅분쇄각이라는 무공은 너무도 잘 어울렸다.
실제로 저것을 곧이곧대로 맞는다면 무공의 이름처럼 상대방은 영문도 모른 채, 온몸이 부서지는 고통과 함께 실제로도 몸의 모든 근육이 파괴되며 죽어 나갈 것이다.
하나, 그것은 대성에 이르렀을 때 이야기다.
‘음, 확실히 아직까진 힘은 있으나 정확성과 세밀함이 떨어지는구나.’
내심 송운이 속으로 아쉬움을 표했으나, 이 또한 결국 언젠가는 이루게 될 결실이다. 지금 이만큼 성장했다는 것만큼으로도 기뻐해야 할 일이었다.
후웅!
송운은 슬슬 마무리 지어야 할 때임을 깨닫고 날아오는 적돈의 발을 피하며 몸을 휘감았고 허리의 힘을 이용하여 몸을 잔뜩 낮춘 채로 피한 그의 발은 어느새 적돈의 목 앞에 닿아있었다.
명명백백한 적돈의 패(敗)였다.
대련이 끝나자마자 그의 다시 눈빛이 순하게 돌아오면서 적돈이 남긴 말은 단 한마디였다.
“……배고파요.”
그 모습에 송운이 크게 웃었다.
확실히 적돈의 모습은 이러한 면이 훨씬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며 말이다.
“그래. 어차피 이제 곧 중식을 먹을 시간이니 함께 들자꾸나.”
그의 말에 적돈의 표정이 한층 밝아졌다.
‘내일은 그럼 대오 형님이 오시려나? 아무튼 오늘 중식은 숙수들이 고생을 좀 하겠구나. 허허.’
* * *
적돈이 다녀간 다음 날인 오늘.
송운의 예측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천조회가 몇 날 며칠에 걸쳐 차례로 왔다 갔으니 당연히 맞을 수밖에 없었겠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송운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스륵.
“……대오 형님?”
송운이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누군가가 갑자기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덕분에 송운은 휘두르고 있던 검을 그대로 허공에 멈추어야 했다.
아무리 자신이 수련에 집중하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변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앞서 왔던 천조회들의 기운을 모두 알아차렸을 만큼 말이다. 한데, 갑자기 나타난 대오의 모습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오감에 있어서는 송운 또한, 지지 않는다 여겼거늘, 어느새 대오는 자신의 곁에 다가와 있었던 것이다.
‘순간 무언가 느껴지긴 하였으나……. 설마하니 내 바로 옆에서 튀어나올 줄이야. 역시 대오 형님의 능력 또한 대단하구나.’
대오는 기를 갈무리하는 것도 갈무리하는 것이지만, 주변의 지형지물을 너무도 잘 이용할 줄 알았다. 육안과 심안을 고루 피하니 은신이 뛰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형님들과 조총, 적돈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대오 형님이 가장 빠르게 많이 성장하셨다.’
물론 다른 이들 또한 속도가 느린 것은 아니었다. 다만, 대오의 능력이 그것들을 모두 능가할 만큼 너무 뛰어났을 뿐.
어쩌면 그동안 그에게 없었던 자신감이 붙은 것이 크게 한몫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놀라는 송운을 바라보던 대오가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하나, 예전처럼 목을 움츠리거나 하는 행동은 없었다.
“아, 아마 주군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이렇게 제가 성장하지도 제 능력을 깨닫지도 못했을 겁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주군.”
그 말에 송운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아닙니다. 제가 도와드렸다 한들, 형님의 능력이 없었다면 이 정도의 경지까지 도달하였겠습니까? 거기에 형님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지요. 오히려 제가 고마울 일입니다.”
조용히 그의 말을 듣고 있던 대오는 송운을 향해 깊게 고개를 숙였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주군. 그럼 전 이만…….”
그러곤 처음 나타났던 때와 마찬가지로 조용히 어둠 속으로 파묻히듯 사라졌다.
이에 송운은 말없이 그가 사라진 곳을 향해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 * *
‘확실히 다들 강해졌구나.’
며칠간 다섯 명의 능력을 모두 겪어본 송운은 역시 자신의 판단이 옳았음을 다시 한번 느꼈다. 자신의 눈이 틀린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이렇게 속속들이 보여주고 있으니, 송운은 기쁠 수밖에 없었다.
무공을 준 것 또한 잘했다는 생각에 기분이 아주 좋았다. 솔직히 일 년이란 시간 동안 이토록 많은 발전이 있을 줄은 송운 본인도 몰랐기 때문이다.
결국 자신에게 또한 도움이 될 테지만, 무엇보다 내민 손을 거침없이 잡아준 그들에게 무언가 해주었다는 생각이 그를 더욱 뿌듯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걸견폐요(桀犬吠堯)라 하였던가?’
자신이 먼저 그들을 진심과 믿음으로 대하였기에 천조회 또한 송운에게 충성을 맹세할 수 있는 것이리라.
믿음이 있는 관계일수록 좋고 서로가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좋다. 그것이 이 험난한 세상 속에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방어막이 되어줄 것이다.
그렇게 시간은 강물이 흐르듯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있었다.
第五章. 움직임
아직은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초봄.
송운은 멀리서 불어오는 저녁 바람에 몸을 맡기며 지금까지도 느껴지는 뜨거운 열기와 땀방울을 씻어냈다.
‘벌써 한 해가 갔구나.’
천조회가 돌아오고도 어언 일 년여의 시간이 지났다.
그 사이 천조회는 송가의 식구들.
특히 송하, 송후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처음엔 제각기 흩어져서 해오던 대련이 어느 순간부터인가 모두 함께 수련하는 시간으로 변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에는 송운의 의도가 다분히 포함되어 있었다.
‘무공이란 자고로 수련과 실전을 통해 성장하는 법이지.’
전생에서 몸으로 직접 부딪치며 살아온 송운은 누구보다 그것을 잘 알기에 실전을 겪을 수 없다면 되도록 많은 이들과 다양한 무공을 익힌 이들이 서로 수련을 하게끔 만든 것이다.
게다가 앞으로 평생을 함께 동고동락(同苦同樂)하며 지낼 사이이니 이렇게 친해지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판단하에 내려진 결론이었다.
처음엔 낯선 이들과 함께한다는 것에 머뭇거렸으나 무공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송하였기에 그 기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역시 내 생각이 옳았구나. 다행이야.’
그 결과로 천조회는 그 이름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성장했고, 송하와 송후 역시 자신의 벽을 한 단계씩 더 뚫고 올라섰다.
‘물론 거기까지 오르는 데 있어서 엄청난 노력을 쏟아부었지만…….’
그 누구도 엄살 따위는 부리지 않았다.
처음엔 꽉 막혀있던 것이 송운의 수련 덕분에 뚫림과 동시에 쭉쭉 치고 올라갔기 때문이다. 뭐라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즐거웠기에 시간이 흐르는지도 모르고 밤을 새워가며 수련에 매진한 적도 있었다.
비가 오나 눈이지만 오로지 수련에 매달린 결과.
덕분에 천조회는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절정의 경지에 접어들었다. 그 깊이는 차이가 있었으나 늦은 나이에 새로운 무공을 시작한 것 치고는 눈부신 발전이었다.
노력에 송운의 수련법까지 더해지며 효과를 톡톡히 본 셈이다.
‘이 정도의 노력이 있었기에 지금의 천조회가 만들어진 것이겠지.’
송운은 이제 슬슬 천조회가 움직일 때가 왔다는 것을 직감했다. 벌써 비고의 일이 있고 난 후 평온한 시간이 무려 일 년이 넘게 지속 중이지 않은가.
송운이 눈을 지그시 감았다.
‘……조용하구나. 지나치리만큼.’
늘 시끌벅적하던 삶이 되레 너무 조용하니 이것 나름대로 이상하다 여겨졌다. 많은 사람들은 오랜만에 태평성대가 찾아왔다며 이 평화를 즐기고 있었으나 송운만은 그럴 수가 없었다.
일 년 전 흑야가 조용하면서도 바삐 움직였던 것을 생각해 본다면 의심이 들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만큼 말이다.
‘차라리 세상이 좀 시끄러운 것이 낫겠구나. 이리 폭풍전야(暴風前夜)처럼 고요하니 불안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인가…….’
이제부턴 송운 역시 남들처럼 더 이상 앞날을 알 수 없다. 이미 몇 년 전 예상했던 시간보다 빠르게 화마가 지나갔고 마교대전은 일 년 전 일로 인해 마교가 힘을 잃고 난 후 시점이 흐트러졌다. 단순히 예측은 할 수 있을 터나, 그것은 말 그대로 추측일 뿐.
놈들의 움직임을 포착하는 것이 아니라 계획을 알아차리고 먼저 대처해야만 이겨낼 수 있다.
애초에 그것을 위해 천조회를 만든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이제 그때가 온 것이다.
‘녀석들보다 한발 앞서 나가야 한다.’
꽈악.
송운의 꽉 쥔 두 주먹이 부르르 떨려왔다.
* * *
‘오늘은 시간을 일부러라도 내어 장인어른께 가봐야겠구나.’
송운은 평목단을 본 지 오래되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자신이 간다면 언제든지 두 손 두 발 들고 환영할 사람이 바로 평목단이다. 거리 또한 먼 것이 아니거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서로 얼굴을 맞대지 못한 이유는 양측 모두 일이 바빠 시간이 맞지 않아서였다.
‘그렇다 한들 겉으로 테는 내지 않으셔도 서운해하고 계실 테지.’
하나뿐인 사위가 이리 얼굴을 보이지 않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송운은 그리 생각하며 오늘의 일과를 빠르게 처리한 후, 평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오, 이게 누구냐. 우리 사위 송운이가 아니냐?”
그의 반응은 송운의 생각대로였다.
반가워 마지않는 표정과 목소리로 송운을 한껏 반겨주었다.
“오랜만에 장인어른을 뵙습니다.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나야 늘 잘 지내고 있다마다. 오늘은 어쩐 일로 여기까지 발걸음을 한 것이냐?”
“사위가 장인어른을 찾는 것이 꼭 무슨 일이 있어야 오겠습니까? 말 그대로 장인어른을 찾아뵌 지 너무 오래된 듯하여 왔습니다.”
송운의 말에 평목단이 파안대소하며 그를 안으로 들였다.
“그래그래. 으하하! 마침 잘 왔다. 오늘 황상께 좋은 차를 내려받은 참이다. 여기 차 좀 내오너라.”
“예, 주인어른.”
잠시 후.
따뜻한 차 한 잔과 함께 간단히 먹을 수 있는 다과가 준비되었다.
그러곤 차를 따르며 주변의 기척이 없는 것을 확인한 송운이 먼저 입을 때였다.
쪼르륵.
“장인어른. 요즘 황궁은 어떻습니까?”
“평소와 다를 바가 없다. 네가 걱정하는 흑야 역시 계속하여 주시를 해보았으나…… 그 뒤론 얼굴을 감춘 지 오래구나.”
평목단이 좀 전과는 달리 진지해진 얼굴로 답해왔다.
이에 송운은 감탄했다.
송운이 먼저 묻지 않았음에도, 단박에 그의 질의의 속뜻을 알아듣고선 먼저 얘기를 꺼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