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8화
“그나저나……. 저것은…… 어찌할까요?”
우곤은 가쁘던 숨이 고르게 되자 그제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깨져버린 수련장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음. 이미 깨져버린 것 걱정한다고 바뀔 건 없지요. 다만 형님의 급여에서……. 하하. 농입니다. 애당초 이러라고 만들어놓은 수련장 아닙니까? 너무 걱정 마세요.”
점점 표정이 울상으로 변해가는 우곤의 모습에 송운은 걱정 말라며 그를 달래었다.
어차피 바닥이야 사람들을 불러 고치면 금방 원상 복귀가 될 터다.
“앞으로도 자주 찾아오세요. 언제든지 저는 환영입니다.”
“주, 주군……. 그럼 오늘은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편히 쉬십시오.”
우곤이 감동하였다는 표정을 한가득 안고 떠난 후, 송운이 고갤 들어 하늘을 바라보니 조금씩 가라앉던 해는 어느새 거의 모습을 감추어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 * *
갑작스러운 대련은 그다음 날도 반복이었다.
저녁 시간, 또다시 홀로 수련하던 송운을 찾아온 것이다.
‘우곤 형님인가?’
어제의 일을 겪었기에, 당연히 우곤일 거라 생각했지만, 송운의 예측과는 달리 멀리서 느껴지는 기운은 그의 것이 아니었다.
바스락.
“조총이구나.”
“예, 저 조총입니다. 주군.”
어제와 비슷한 유형의 모습이었으나, 슬쩍 머뭇거렸던 우곤과는 달리 조총은 사람 좋은 얼굴로 넉살 좋게 웃으며 대놓고 부탁을 해왔다.
“주군! 저와 대련을 해주십시오!”
명백한 대련 신청이었다.
그리고 송운 또한,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주억였다.
송운이 알겠다는 표시를 해오자 조총 포권을 취하더니 곧바로 자세를 잡았다. 이미 허락이 떨어진 것 오래 끌 필요 없다는 듯 말이다.
그것은 송운도 마찬가지였다.
스르릉.
무인에게 대화란 서로 대련하는 것만큼 빠르고 간결한 것은 없었다.
쌔액-!
카앙!
창천쾌검을 익힌 조총의 검은 섬세하면서도 빨랐다.
게다가 내력을 끌어내지 않고도 듣는 것이 남들보다 훨씬 예민한 만큼, 상대방의 기척에 빠른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랬기에 가능한 조총만의 독특한 검법이었다.
창천쾌검의 청아하며 빠른 쾌와 조총의 밝은 귀가 만들어낸 작품인 것이다.
‘역시 내 눈이 틀리지 않았군. 그 두 가지가 제대로 상승효과를 만들어내었어.’
송운은 즐거움이 마음속 가득했다. 참으로 재미있는 검이 아닌가?
애당초 송운은 이것을 노리고 그에게 창천쾌검이라는 무공을 준 것이기에 내심 흡족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연신 날아오는 검 끝을 송운은 힘 한번 들이지 않고 요리조리 잘도 피해갔다.
이에 약이라도 오른 것인지 조총의 검이 점점 거리를 좁혀들더니 송운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제법이구나.’
하나 그것 또한 결국 송운에게는 이제 겨우 제대로 발을 뗀 아이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빠른 속도 덕에 다섯 개의 허상이 보였으나, 그중에서도 송운은 정확히 조총의 검을 찾아냈다.
터엉-!
송운이 날아오는 검배(劍背)를 쳐내었고, 순간적으로 힘이 들어간 탓에 그 충격이 고스란히 조총의 손목부터 어깨까지 타고 전해졌다.
“크윽……!”
챙그랑!
그와 동시에 검을 놓친 조총의 검이 바닥을 향해 날아갔다. 이를 악물고 버텨보려 하였으나, 과한 압력으로 인해 손바닥이 찢어지며 피로 흥건히 물들어 바닥으로 흘러 떨어졌다.
뚝. 뚝.
“헉헉…….”
송운은 순간 자신이 조금 과했다는 것을 깨닫고 지쳐 주저앉은 조총에게 다가갔다. 하나 송운이 사과를 건네기도 전에 숨을 고르던 조총이 먼저 웃으며 입을 열었다.
“휴우. 역시 주군을 따라가기엔 저는 아직 한참 멀었지 말입니다.”
“오랜만에 재밌는 검을 만나 흥에 취해 손속이 조금 과했다. 미안하다 조총아.”
“괜찮습니다. 다 저를 위함이 아니십니까? 더 열심히 수련하라는 뜻으로 알고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편히 쉬시지요. 주군.”
송운은 돌아가려는 조총에게 간단한 치료라도 받고 가라고 했지만, 그는 씩씩하게 괜찮다며 완강히 거부하고 돌아갔다.
혼자 남은 송운은 문득 송하가 떠올랐다.
그녀 역시 검을 다루는 속도로 치자면 송하의 또래에 견주어 손색이 없는 솜씨다.
쾌와 쾌가 만난다.
‘송하와 조총이 서로 만나면 양측 모두에게 도움이 될까? 왠지 흥미로운 일이 생길 것 같구나.’
송운의 입가엔 어느새 가느다란 호선이 피어올랐다.
* * *
조총을 보내고 달빛에 몸을 의지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두컴컴해진 수련장. 물론 송운은 빛에 의존하지 않아도 될 만큼 시력이 증력되었기에 굳이 상관은 없었다.
그렇게 홀로 남아 뒷정리를 하던 도중 송운은 머리 뒤편으로 느껴지는 싸늘한 느낌에, 몸을 비틀었다.
쌔애액-!
탁!
피하자마자 정확히 송운이 갓 서 있던 자리에서 일 촌(寸) 정도 떨어진 거리에 화살이 틀어박혔다.
‘화살? 설마 암습인가?’
처음엔 흑야나 적이라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치부하기엔 기감까지 끌어올려 살펴보았으나 살기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렇게 되니 더욱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미묘한 차이지만 애초에 자신의 몸을 향한 방향이 아니었다.
잘못 날린 것이 아니란 소리다.
‘어딘가 익숙한 기운인데…….’
아리송한 느낌에 한 번에 떠오르지 않는 기운의 주인에 송운이 빠르게 머리를 굴릴 그 무렵, 또 한 번의 화살 사례가 뒤를 이었다.
쐐애액-!
파바바바박-!
이번엔 총 다섯 발.
그것도 그냥 박힌 것도 아닌 수련용으로 세워둔 나무를 뚫고 파고 들어갔다.
화살 한 방이라고 하기엔 가히 엄청난 파괴력이다.
송운은 식은땀이 절로 흘렀다.
대체 누가 살기도 담지 않고서 살을 저리 맹렬히 날린단 말인가.
그것도 이 야심한 시각에 말이다.
하나 곧, 그 아리송했던 기운의 주인이 활이라는 것과 접점(接點)을 갖자 송운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짝!
“서사 형님!”
송운이 자신의 이름을 외치자, 누군가 이를 기다렸다는 듯 조심스레 걸어 나왔다.
송운의 판단대로였다.
그러곤 송운을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이렇게 갑자기 놀라게 하여 송구합니다. 하나, 꼭 주군께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무례하였다면 용서해주십시오.”
“아닙니다. 아니에요. 되레 다른 의미로 놀랐습니다. 서사 형님의 것일 거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할 만큼 말입니다.”
그러한 서사의 모습에 송운 역시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설마하니 정말 서사 형님이실 줄이야.’
솔직히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의 이름을 불렀으나 놀라웠다.
무공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우곤의 성화에 심법만 어쭙잖게 배워봤었지, 무공을 직접 사용하여 활이라는 것을 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한데도 이 정도의 실력을 벌써 갖추지 않았던가?
참으로 어마어마한 발전이었다.
송운의 계속되는 칭찬에 서사가 민망해졌는지 어둠 속에도 보일 만큼 발개진 귀를 하고선 헛기침을 내뱉었다.
“큼큼, 뭐 이 정도쯤이야 누구나 다 배우면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밤이 깊었습니다. 이만 저는 돌아가 보겠습니다. 쉬십시오.”
* * *
천조회의 행보는 그다음 날도 끊이지 않았다.
‘음, 오늘은 대낮인가?’
잠시 읽던 책을 멈춘 송운은 저 멀리서 느껴지는 익숙한 기운에 방에서 나왔다. 방에서 나가자마자 마주한 것은 밝은 햇빛에 유난히 붉은 피부가 빛이 나고 있는 이였다.
“적돈이구나.”
송운이 먼저 인사를 건네자 그가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모습에 송운은 직감했다.
‘허허. 역시 대련 신청인가?’
송운은 우선 조용히 내력을 끌어올려 적돈의 몸을 자세히 살폈다. 그러자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송운의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예전보다 좀 더 체계적으로 몸의 균형이 잡혔구나.’
여전히 겉으로 보아서는 그의 몸은 육중했고 누가 보아도 사람들의 기준에서 보자면 적잖이 뚱뚱했다. 하나 지방처럼 보이는 살들은 이제 팔 할 이상이 근육으로 변해 단단했다. 따라서 보기에도 축 처진 것이 아니라 엄청난 탄력감이 붙어있었다.
송운은 그 속에서 느껴지는 그의 힘을 보았다.
자신이 적돈에게 준 속웅분쇄각은 속칭 무림인들이 말하는 외공에 가깝다. 속웅분쇄각 자체가 자신의 신체 자체인 근육이나 뼈. 그리고 피부를 단련하는 데 중점을 두는 것이기 때문이다.
‘적돈이 이를 잘 간파해내었구나.’
송운이 말없이 계속해서 자신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자, 자신이 이곳에 왜 왔는지 적돈이 먼저 느릿느릿 입을 열었다.
“……대련. 부탁드립니다. 주군.”
늘 식탐에 대해서가 아니면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 적돈이었기에 신선한 그 모습은 조금 생소하게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송운은 얼굴에 미소를 띠우며 말했다.
“우선 이곳은 대련하기는 좋지 않으니 장소를 옮기자꾸나.”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적돈이 빠른 속도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마치 자신의 능력을 모두 보여주겠다는 듯이.
* * *
자리를 옮긴 둘은 서로 정중히 포권을 취했다.
포권을 푼 적돈의 눈빛이 맹수의 그것으로 변하였고 이내 주먹이나 무기 따위는 필요 없다는 듯 송운을 향해 발이 날아갔다.
‘적돈에게 저런 모습도 있었던가?’
늘 멍하고 배고픔에 허우적대던 눈빛만 보아왔건만, 오늘만큼은 달랐다. 송운은 적돈의 그러한 모습에 또 한 번 놀라야 했다.
하나, 놀라는 것도 잠시일 뿐.
‘역시 각술에는 각술이겠지.’
송운 또한 그런 적돈의 모습에 환성을 내려놓고 몸을 날렸다. 최근에는 시공검으로 인해 검에 대한 수련의 강도를 더욱 높인 그지만 결국 무는 하나.
이미 질풍무를 익히면서 초식이라는 틀에서 벗어난 송운이지 않은가.
빠르게 적돈의 무공에 대응해나가기 시작했다.
“타핫!”
파바바밧!
쿠웅!
여러 번 허공에서 송운과 맞부딪힌 후, 지상으로 내려섰고 다시 공중으로 뛰어오르기 위해 육중한 적돈의 발이 지면을 박찰 때마다 지면이 깊게 팼다.
어마어마한 괴력이었다.
송운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저걸 맞는다면 기절, 아니 황천길을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기 때문이다.
‘마치 예전에 잡았던 산 왕과 마주했던 순간이 떠오르는구나.’
비록 진짜 산 왕은 아니었으나 자신에게 공격을 가할 때마다 느꼈던 그 오싹함이 다시 살아나는 것 같았다. 거대한 몸집과 온몸에 빳빳하며 붉은 털이 나 있던 그 모습이 왠지 적돈과 얼추 비슷하게 들어맞지 않는가.
‘어쩌면 속웅분쇄각은 그 산 왕의 모습을 본떠 만든 것일지도 모르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