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7화
“한데……. 주군. 이게 설마 끝! 입니까?”
뭔가 적잖이 실망한 듯 보이는 조총의 말투에 송운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설마 이게 끝이겠습니까? 안으로 따라오시지요.”
말을 마친 송운은 벽 끝에 나 있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러자 널찍이 펼쳐진 주거 공간이 보였다. 서점 안에 다섯이 편히 머물 만큼의 공간을 내어둔 것이다.
“오오! 침구다!”
이번엔 조총의 반응이 가장 빨랐다.
침구를 발견하자마자 몸을 날린 그는 그대로 벌러덩 드러누워 버렸다.
‘허허. 녀석도 참.’
하나 송운도 어느 정도 이해는 갔다.
지난 일 년간 그 넓은 중원 각지를 떠돌며 침구를 쓸 수 있는 상황이 얼마나 있었을까?
아마 있었다 한들, 흔치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모두가 한창 방 안을 둘러보던 그때.
송운이 책상 밑에 나 있는 작은 구멍에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구구궁.
“음?”
그러자 약간의 진동이 울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내부의 모습이 바뀌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멀쩡히 있던 천장이 뚫리면서 길이 생기고 잘 다듬어진 바닥이 열리며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생겼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송운이 건드리는 것마다 족족히 모양이 바뀌고 없던 문이 생기며, 벽이 돌아가며 조금 전과 있었던 위치가 바뀌고, 자리에 있던 가구들이 사라지면서 새로운 것들이 나타났다.
계속해서 보고 있자니 마치 미로를 보고 있는 듯하여 머리가 빙빙 돌 지경이었다.
그 행동을 수십 번을 반복했을까?
구구궁.
또다시 굉음을 내며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처음의 모습을 되찾았다.
“이, 이게 대체……. 무엇입니까, 주군?”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다섯 명 모두 놀라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고 있자, 송운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앞으로 천조회가 머물게 될 거처입니다. 겉으론 평범한 서점과 주거 공간이지만 여러 가지로 기관이 설치되어 있어 익혀두지 않으면 길을 잃어버리실지도 모릅니다.”
그 말에 다섯 명이 동시에 고개를 주억였다.
‘확실히 주군의 말대로 자칫하면 침입자는 고사하고, 우리마저도 제대로 익혀두지 않으면 길을 잃기에 십상이겠구나. 우리가 없는 사이 엄청난 것을 만드셨어.’
서사는 속으로 송운의 능력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
분명 하나의 공간에서 나오는 모습일 진데 변모하는 모습은 수십 개를 넘으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실상 이 근거지에 대한 구상은 참으로 역설적이게도 무황 비고로 인해 얻은 것이었다.
그로 인해 큰 피해를 보았으나, 이보다 완벽하게 밀실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확실히 별다른 진법 등이 있지는 않았으나 무황비고라는 이름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였지.’
고강한 무공을 익힌 이들마저도 혼란에 빠뜨렸으니 웬만한 이들이 침입해 와도 쉽사리 원하는 만큼 정보를 빼가긴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설령 기관을 움직인다 한들 그 미로 속에 갇힐 테고.’
자금이 꽤나 많이 들어가긴 했으나, 이들이 안전하게 생활을 영위해나가기엔 이보다 좋은 거처는 없었다.
송운은 아직까지도 신기한 듯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천조회의 모습에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곤 내력을 끌어올려 처음에 들어오면서 쳐두었던 기의 장막이 잘 작동하고 있는지 확인한 후, 천조회에게 거처에 설치된 미로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第四章. 수상한 대련
천조회가 돌아온 지 벌써 며칠이 흘렀다.
그 일을 제외하곤 여느 날과 다름없던 밤.
늦은 시각까지 홀로 수련을 하고 있던 송운에게 누군가 찾아왔다.
‘음?’
송운은 그 기척에 휘두르고 있던 검을 거두었다.
걸음걸이라던 지 기운이 자신이 알고 있는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송운의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으하하! 역시 주군이십니다. 이거 주군의 수련에 괜한 방해가 된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다가오기도 전에 자신의 기척을 읽은 듯 보이는 송운의 모습에 커다란 덩치에 걸맞은 큰 도를 메고 서는 어울리지 않게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이고 있었다.
“우곤 형님. 거기 서 계시지 말고 이리로 오세요.”
송운은 반가운 얼굴로 그를 맞이했다.
거처에 대해 익혀야 한다며 통 바쁜 그들이었기에 다시 재회했음에도 마주할 시간이 없었던 터라 며칠 만에 보는 그 얼굴은 더욱 반가웠다.
“이 시간엔 어쩐 일이십니까?”
“그것이……. 일 년간 제 실력이 어디까지 올랐는지 궁금해서 말입니다. 게다가…….”
송운은 우곤이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쭈뼛거리는 모습에 웃음보가 터질 뻔한 것을 간신히 추스르고 그의 뒷말을 기다렸다.
“그……. 처음 시작했을 땐, 쭉쭉 치고 올라가더니 어느 순간부터 수련의 진전이 없으니…….”
말끝이 한없이 축 처지는 것을 보니, 그도 한동안 마음고생을 깨나 했을 것이다. 이러한 모습이 왠지 송운에게 낯설지 않았다. 이곳에 온 뒤로도 아마 며칠간을 고민하다 어려운 발걸음을 뗀 것 같았다.
‘송하도 비슷한 반응이었지.’
송운은 그의 말을 더는 들을 것도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음, 그러니 한마디로 저와 대련을 해달라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습니다! 바로 그거……! 크흠흠.”
송운이 자신의 뜻을 단박에 알아듣자 잠시 흥분한 것인지 우곤이 소리를 높이다 너무 컸다는 걸 깨닫고 헛기침을 했다.
“하하. 그런 부탁이라면 당연히 들어드려야지요. 어찌 그런 것을 머뭇거리십니까? 형님답지 않으십니다.”
송운은 그의 부탁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무공이란 수련과 대련을 할수록 성장하는 법.
그 상대가 우곤이라면 더더욱 환영이었다.
* * *
스르릉.
대련이 시작되자 우곤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그건 송운 또한 마찬가지였다.
우곤이 먼저 그 커다란 도를 뽑아 들자, 송운 역시 환성을 꺼내 들었다. 도를 들었으니 그에 걸맞게 무기를 검으로 잡은 것이다.
송운은 도를 잡은 그의 모습에 살짝 놀랬다.
그의 덩치도 만만치 않은데 거기에 어울리는 대도까지 꺼내 들으니 막상 그 기세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늘 그가 호탕하게 웃고 떠드는 모습만 봐왔기 때문에 그 느낌은 왠지 모르게 생소했다.
‘생각해 보니 형님들과는 한 번도 대련이라든지 수련을 함께한 적이 없구나.’
후웅-!
‘아차!’
펄럭!
송운이 잠시 딴생각을 하는 사이 우곤이 도를 휘둘러왔다. 재빠른 반사 신경으로 피하고 나니 엄청난 바람이 송운의 옷자락을 건드렸다.
‘생각보다 빠른데?’
크기에 놀라고 속도에 놀랄 그 무렵.
우곤이 씨익 웃으며 송운에게 말했다.
“주군이라고 해서 봐 드릴 생각은 없습니다. 잘 피하셔야 할 겁니다! 타핫!”
우곤은 그 말을 끝으로 우렁찬 기합 소리와 함께 쉴 틈 없이 송운을 몰아쳐 왔다.
채쟁!
카가각-!
검과 도의 날 끝이 맞물리면서 날카로운 쇠가 갈리는 소리가 여러 차례 오갔다. 우곤이 거대한 도를 휘두르며 송운을 압박해 올 때마다 송운은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첫 일격에서도 느꼈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도에 담긴 무거움은 점점 커지는 반면 속도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단순히 무식하게 힘만 세게 싣는 것이 아닌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 위력 또한 커지고 있었다.
‘저 커다란 도를 이 정도의 속도로 다룰 수 있다니!’
천중도법이라는 무공이 아깝지 않을 정도였다.
무림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무기는 단연컨대 검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 한들 도(刀)역시 빠지면 서운할 만큼 적잖은 이들이 애용한다.
하지만 그가 봐왔던 이들 중 우곤처럼 거대한 도를 쓰는 이는 손에 꼽을 만큼 적었고 그중에서도 이 정도의 속도와 무게감을 내는 이는 더더욱 없었다.
아니, 무공이 조금 낮은 것일 뿐, 그것 하나만큼은 그를 따라올 자가 없다고 봐도 무방할 듯했다.
‘검이 아닌 도가 이 정도라면……. 타고났거나 그만큼 그동안 수련을 지독하게 한 것이겠지.’
고강한 무위라고까진 할 수 없지만, 이 정도라면 우곤 역시 수많은 실전과 수련을 통해 얻은 것이라 볼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힘이 세다 한들 힘이 센 것과 그것을 들어 무게를 싣고 속도를 내는 것과는 엄연히 다른 것! 정말 많이도 성장하셨구나.’
비록 조화경의 경지에 들어선 송운을 이기기에는 너무도 역부족했으나, 한 번 한 번의 공격이 송운에게 묵직하게 다가왔다.
옛날의 그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대련을 해본 적이 없어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그때와는 많이 늘었다는 걸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을 정도였으니 더 이상 말은 필요치 않았다. 최소한 어디 가서 나자빠질 정도의 급은 벗어난 셈이다.
‘이 정도면 일류 고수급이라 하여도 손색이 없겠구나.’
송운이 흐뭇한 미소를 띠었다.
하나 그것은 그것이고 대련은 대련이다.
‘조금만 내가 넋을 놓고 이걸 정통으로 맞았다가는 아무리 나라도 그냥 갈지도 모르겠군.’
그렇게 생각한 송운은 이내 여태껏 끌어올리지 않았던 내력을 슬쩍 끌어올려 빠르게 치고 빠지면서 그의 공간의 범위에서 빠져나왔다.
부웅-!
콰앙!
쩌저저저적.
목표를 잃은 묵직한 파공음이 송운의 귓가를 스쳤고 우곤의 도는 곧장 맨바닥을 향했다.
하나 우곤이 아무리 빠르다고 한들 송운은 여유롭게 피할 수 있었고 결국 애꿎은 바닥으로 향하였다. 그리고 그것이 땅에 내려 찍히자 그 속에 실린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거미줄처럼 갈라지며 파편이 사방으로 튀어 나갔다.
타닥!
그 일이 벌어지는 찰나의 순간, 가볍게 땅을 박차고 오른 송운의 날카로운 검 끝이 우곤의 몸 뒤를 향했다.
털썩.
그러자 우곤이 모든 걸 내려놓았다는 듯 이내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헉……. 역시……허억……. 주군이십니다.”
“어마어마한 괴력이군요. 맞았으면 즉사했을 겁니다. 우곤 형님.”
송운이 서운하다는 말투자, 우곤이 곧바로 숨을 헉헉거리면서도 맞받아쳤다.
“후우……. 주군 정도 되시는 분이라면…… 후우. 당연히 피하실 줄 알았습니다.”
그러곤 씨익 웃는 것이 아닌가?
송운은 약간의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사실, 애초에 그도 알고 있었다.
자신이 우곤의 공격 범위를 벗어나는 순간 그것을 감지한 후, 마지막 온 힘을 짜내어 스스로의 모든 걸 보여주었다는 것을 말이다.
“역시 큰형님답게 통이 크십니다.”
송운은 그런 그의 모습에 웃으며 주저앉은 우곤의 손을 맞잡아 일으켜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