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전생-105화 (105/275)

제105화

송운은 고개를 내저었다.

더 이상 물러설 생각은 없었다.

‘그 어떠한 역경이든 격파한다.’

해서 자신의 힘으로 만들어낼 것이다.

송운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생각보다 심력이 많이 소모되는구나. 천천히 나아가자. 욕속부달이라 했다. 조급할수록 흐트러지는 법이니.’

* * *

그렇게 몸을 일으킨 송운이 향한 곳은 바로 평서란의 집이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녀가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꽤 오랫동안 보지 못한 것 같구나.’

송운은 곧 평서란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왠지 어딘가 가슴 속 깊은 곳에서 간질거리는 듯한 기분이 샘솟았다.

“흠흠.”

그녀의 집 앞에 도착한 송운은 헛기침을 괜스레 크게 지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알아본 문지기가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문을 열었다.

자연스럽게 집 안으로 들어간 송운은 곧장 수련장으로 향했다. 입구에서 마주친 한 총관에게로부터 그녀가 수련장에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이미 평가의 집 구조는 꿰고 있는 송운이기에 따로 안내를 받을 필요는 없었다.

‘뭐, 어쩌면 당연한 것인가?’

평서란 또한 무관이다.

특별한 임무가 있지 않은 이상 수련을 하며 몸과 마음을 수련하는 것이 무관이 할 일이었으니. 다만 다른 무관들과는 달리 그녀는 집 안에서 따로 수련한다는 것뿐이었다.

‘그거야 나도 마찬가지니……. 흠.’

“하앗!”

후웅-!

수련장에 가까워지자 누군가의 기합 소리와 함께 날카로운 쇳덩이가 허공을 가르는 매서운 바람 소리가 송운의 귓가를 때렸다.

굳이 눈으로 보지 않아도 수련을 하고 있을 그녀의 모습이 자연스레 머릿속에 그려지자 송운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하지만 그것도 순간.

송운은 향하던 발걸음을 멈추었다.

‘음……. 너무 급작스러운 방문에 방해가 되려나?’

보고 싶은 마음에 달려오긴 했으나 막상 수련장에 다 와 가니 걱정이 슬그머니 고개를 치켜세운 것이다. 다른 이의 무공수련의 모습을 엿보는 것 또한 예의가 아니다.

그건 송운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약혼한 사이라 해도……. 그것은 실례이겠지.’

연락을 따로 넣지 않은 방문이었기에 조금 전과의 모습과는 달리 조심스러워지는 송운이었다.

‘딱히 급한 일도 아니니 기다리도록 하자.’

결국 송운은 그녀의 수련이 끝날 때까지 멈춰선 그곳에서 기다리기로 마음을 먹고 커다란 나무 아래 자리를 잡았다. 어차피 이쪽 길은 평가의 식솔들도 잘 사용하지 않는 길이었기에 평서란이 수련하는 소리를 제외하고는 그 어떠한 소리도 들려오지 않아 그가 잠시 머물기엔 제격이었다.

한참 후, 그 모습을 지나가던 한 시녀가 보고 자리를 마련하려 하였으나 송운은 그것도 마다했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흘렀을까?

탁.

고요함 속에서 느껴지던 대기의 진동이 멈췄다.

‘드디어 끝났군.’

그러곤 송운도 그와 동시에 몸을 일으켰다.

그가 감고 있던 눈을 떴을 땐 어느덧 중천에 떠 있던 해가 지평선과 맞닿아가고 있었다.

‘시간이 꽤나 많이 흘렀구나.’

송운 역시 그 시간 동안 헛되이 보낸 것이 아니라, 시공검에 대한 생각을 포함하여 많은 생각을 하며 보냈기에 생각보다 지루하진 않았다.

저벅저벅.

그리고 곧 익숙한 발걸음 소리가 송운의 귓가에 울릴 때 즈음. 기분 좋은 목소리가 함께 들려왔다.

“운 가가?”

전혀 눈치채지 못했기에 그를 발견한 평서란의 두 동공이 솔방울만큼 커다래졌다.

잠시 후.

“어찌 기별하지 않고 그곳에서 기다리신 거예요? 제가 언제 끝나실 줄 알구요.”

평서란이 잔소리 아닌 잔소리에도 송운은 내내 기분이 좋았다. 어찌 되었건 자신의 목적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음, 그다지 오래 기다린 것도 아니고……. 란 매의 수련에 방해되고 싶지 않아서 그랬소. 결과적으로 그대의 얼굴을 보게 되었으니 된 것 아니오?”

“휴……. 다음부턴 미리 기별을 주시거나 오셨으면 오셨다고 말씀을 해주세요. 그럼…….”

“그럼?”

송운이 고개를 갸웃대며 뒷말을 묻자 평서란이 순간 귓불이 발개지며 말을 슬쩍 더듬었다.

“기, 기왕 수련하는 것. 운 가가와 함께하면 무공 수련에도 더 도움이 될 테니까요.”

말을 마침과 동시에 고개를 획 돌리는 평서란의 모습이 송운은 더욱 귀여워 보였는지 그녀의 머리 위로 굳은살이 박인 커다랗고 든든한 손을 올려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느 순간부터 송운의 철면피를 두른 그 행동에 평서란은 화들짝 놀라며 심장이 쿵쾅거렸으나,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송운은 손을 내릴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렇다고 딱히 싫은 건 아니지만…….’

오랜 수련으로 인해 온몸이 땀에 젖었기에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다. 하나 그러한 모습마저도 송운에게는 너무도 예뻐 보일 뿐이었지만.

‘참으로 예쁜 여인이다. 이런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게 되었으니……. 이 또한 복이라면 복인 게지.’

평서란은 그런 송운의 손에서부터 사뿐히 몸을 빼내며 말했다.

“우선 씻어야 해요. 방으로 먼저가 계세요. 금방 돌아올게요.”

“알겠소. 나는 신경 쓰지 말고 천천히…….”

부끄러웠는지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평서란이 먼저 사라졌지만 말이다.

* * *

“오래…… 기다리셨죠?”

어느새 씻고 옷까지 갈아입고 온 그녀는 조심스레 송운에게 다가왔고 자신을 바라본 송운이 잠시 멈칫하자, 그 반응이 긍정이라 판단을 내려버렸다.

‘역시 평소보다 너무 오래 걸렸나? 아니면 옷이 별로인가?’

지금 평서란의 모습은 늘 즐겨 입는 무복과 비슷한 옷이었으나, 묘하게 다른 점들이 있었다.

단순히 움직임이 편하게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가슴과 허리의 윤곽을 드러나게끔 처리된 옷감에 군데군데 눈에 띄는 효과를 주는 꽃들이 새겨져 있었다.

예전의 그녀라면 생각지도 않았을 옷들이었다.

그리된 연유는 지난번 북경에서 그와 함께 나들이를 나가면서 딱히 입을 옷이 없다는 생각에 막연한 기분을 느꼈던 평서란은 그 뒤, 편하면서도 예쁘게 입을 수 있는 옷을 마련한 것이다.

평서란 나름대로 파격적인 변모(變貌)를 한 셈이다.

하나, 그런 그녀의 마음을 달래주기라도 하려는 듯 약간 초조한 듯 보이는 평서란을 향해 송운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대를 기다리는 일인데 조금 더 기다리면 어떠하오? 한데…… 기왕 예쁜 옷으로 차려입은 김에 오늘 저녁은 밖에서 먹는 것이 어떻겠소? 란 매.”

뭔가 슬쩍 장난기가 묻어나오는 얼굴로 물어오는 송운의 말에 평서란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 저녁 식사는 늘 아버지인 평목단과 함께 했기 때문이다.

하나, 그런 생각도 오래가지 않았다.

‘아침에 아버지께서도 늦게 오신다고 하였으니……. 괜찮겠지?’

생각을 마친 평서란이 송운을 향해 화사하게 웃으며 말했다.

“가요. 운 가가.”

저잣거리에 나오니 이미 시간은 술초(戌初)를 넘은 지 오래였기에 어둑어둑한 하늘 위로 줄로 매달아둔 연등들이 형형색색으로 곳곳을 밝히고 있었다.

“자자, 오늘이 지나면 한동안 들어오지 못하는 물건입니다! 보고 가세요 보고!”

“쌉니다 싸요! 시력을 잃었던 정 씨가 이 가격을 듣고 눈을 떴다는 가격입니다요!”

“오늘 야시장이 섰나 보네요. 사람도 평소보다 많은 걸 보니 말이에요.”

시끌벅적한 북경 시내 모습에 평소와는 달리 조금 들뜬 목소리로 말하는 평서란의 모습에 덩달아 송운 또한 마음이 즐거워졌다.

“그러고 보니 지난번, 란 매와 함께 북경 구경을 나갔던 것 이후론 처음이구려. 게다가 그때는 낮이었고……. 지금 밤의 모습을 보니 다른 곳이 아닌지 착각할 지경이로군.”

“그러신가요?”

물론, 이러한 모습들이 다시 활기를 띠게 된 것은 불과 달포도 채 되지 않았다. 한동안은 추위와 함께 마인들이 설치고 다닌다는 흉흉한 소문으로 인하여 사람들이 집 밖으로 잘 나오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리는 되찾은 평화에 평소보다 배로 더 복잡했다.

그리고 그 순간.

꼬르륵.

송운의 뱃속에서도 조금 요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함께 찾아온 잠시간의 정적에 곧 송운이 멋쩍은 듯 말했다.

“하하. 그러고 보니 점심도 먹지 않아서인지 녀석이 밥을 달라고 조르는구려.”

“후후. 그럼 요기도 할 겸 잠시 들어가 쉬죠. 저도 슬슬 배가 고파오던 참이에요.”

근처 객잔으로 들어간 송운과 평서란은 간단히 국수 두 개와 만두 한 판을 시켜 배를 채운 후, 다시 저잣거리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도중.

송운의 눈에 무언가 확 들어왔다.

본신은 은으로 만들어진 듯했고 그에 분홍빛이 도는 보석이 박힌 고운 장신구였다.

그리고 날카로운 매의 눈으로 송운의 시선을 알아챈 장사꾼이 송운의 곁으로 다가와 말을 폭풍처럼 쏟아내기 시작했다.

“헤헤, 대협. 이 물건 보십쇼. 색깔이 참으로 곱지 않습니까? 대협께서 참으로 보는 눈이 있으십니다. 그렇지 않아도 어제 막 들어온 새로운 물건입죠. 평소엔 잘 들어오지 않는 물건인지라 만나기 힘든 아인데, 아이쿠! 요렇게 주인을 만나나 봅니다요. 그리고…….”

장사꾼은 곁눈질로 다 안다는 듯 미묘한 웃음을 짓더니 평서란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곁에 계신 분에게 아주 잘 어울리기도 하고 말입죠.”

아직 송운은 사겠다는 말도 없거늘, 그는 마치 사겠다고 말이라도 한 것처럼 설레발을 쳤다. 하나, 송운 역시 평서란과 잘 어울릴 것같이 보였기에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이것으로 주시게.”

“운 가가?”

“하이고! 감사합니다요! 은자 닷 냥입니다!”

제법 비싼 값이었으나, 송운은 일절 고민도 없이 돈을 건네었다.

‘그러고 보니 란 매에겐 늘 받기만 했었지.’

지금 자신이 왼쪽 허리춤에 애검으로 차고 다니는 환성도 가슴에 늘 품고 다니는 붉은 부적도 모두 그녀가 준 것들이다.

그에 반면, 자신이 그녀에게 해준 것은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운 가가. 값이 너무 비쌉니다. 게다가…… 전 장신구는 잘 어울리지 않구요.”

평서란이 두 손을 꼼지락거리며 연신 그를 말렸으나, 송운은 이미 제값을 치르고 건네받은 은장신구를 그녀의 머리에 조심히 꽂아주었다.

평소 장신구를 하지 않던 평서란이었지만, 본판이 워낙 뛰어났기에 되레 그녀가 장신구를 빛나게 하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까지 하게 만들고 있었다.

심지어는 지나가는 행인들마저 한 번쯤은 쳐다보게 만들 정도였으니 생각이 과한 것이 아니란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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