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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전생-104화 (104/275)

제104화

‘역시 란 매의 눈은 못 속이겠구나. 허어. 늘 이리 콕콕 집어주니……. 하나, 이것은 지금 말할만한 사안이 아니야. 구화지문(口禍之門). 언비천리(言飛千里)라 하였던가.’

애초에 그 상황에서 홀로 살아남아 다시 돌아왔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미 많은 이들의 주목이 되고 있다. 모두가 겉으로 티는 내지 않고 있지만, 어찌 그가 멀쩡히 홀로 살아 돌아올 수 있었는지 궁금해하는 이들이 세상천지에 널린 시점이다.

그런 마당에 혹여 잘못하여 이 일이 누군가 주워들어 세상에 널리 퍼지기라도 한다면?

자신은 고사하고 자신의 가족들 안위마저 위협받을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게다가 오랜 시간을 연마하고 높은 경지에 오른 사도영조차 감당하지 못하고 심마에 빠져 광기를 뿜어대지 않았던가!

누군가에게 알려준다고 하여 아무나 감당해낼 것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더욱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미안하지만……. 아직은 말을 해줄 수가 없소. 미안하오. 란 매.’

평서란에게 미안함에 잠시 표정이 어두워졌지만 누가 알아차릴 틈도 없이 그의 입가엔 미소가 걸렸다.

괜한 걱정을 심어주지 않기 위함이었다.

“어디 하나 다치신 곳 없이 돌아오셔서 다행이란 생각은 하였지만……. 심적으로 너무 지치신 것은 아닐는지요. 그러하신 것이라면 조금은 쉬었다 다시 일을 재개하시는 것도……. 흡! 가, 가가.”

이내 걱정이 그득 담긴 목소리로 말을 잇던 평서란은 곧 놀란 토끼 눈이 되어 숨을 들이켰다.

조금은 멀찍이 떨어져 있었던 송운이 자신의 코앞까지 고개를 들이민 탓이었다.

“아무런 걱정 하지 않아도 되오. 다만 한동안 쌓인 피로가 그대가 와있으니 긴장이 풀려서 그런 듯하니…….”

그러곤 어딘지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평서란의 어깨에 조심히 기대왔다.

“조금만. 조금만 이렇게 쉬고 싶구려.”

그런 송운의 행동에 평서란의 얼굴이 발개지면서 가슴이 두방망이질을 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곧 쌔액거리며 잠에 빠진 듯 보이는 그의 모습에 긴장이 탁하니 풀려버렸지만 말이다.

“우, 운 가가도…… 참…….”

그 모습에 웃음이 터진 평서란이었다.

순간 포개진 두 사람 곁으로 열린 창문 틈 사이로 따스한 바람이 불었다.

* * *

“으음…….”

몸을 뒤척이며 잠에서 깬 송운이 창문을 통해 보니 바깥은 이미 컴컴해져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다.

아마 축정(丑正)은 넘은 듯했다.

‘내가 깜박 잠이 든 모양이구나.’

그리고 송운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곁에 있던 평서란을 대신하여 베개만이 놓여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위에는 곱게 덮인 이불까지.

‘그럼 란 매는…….’

고개를 두리번거리던 송운의 눈앞에 마침 고개를 돌려보니 책상 위에 곱게 접힌 종이가 눈에 들어왔다.

운 가가께서 많이 피곤하셨나 봅니다. 깊게 잠드신 듯하여 차마 깨우지 못하고 시간이 지체되어 늦은 시간인지라 아버지께 걱정을 끼칠까 싶어 먼저 돌아갑니다.

평서란 올림.

마치 한 마리의 학이 날아들 듯 기품이 배어 있으면서도 단아한 글씨체는 그녀의 성품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보였다.

‘참으로 못 하는 것이 없는 여인이로구나. 허허.’

송운은 그녀에게 고마우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무공의 단련으로 인해 온몸의 감각이 예민하게 날이 서 있는 그다. 한데 평서란이 움직이면서 잠에서 깼을 법도 했거늘, 전혀 그런 기색이 없었던 것을 보아하면 얼마나 그녀가 조심히 움직였는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요즘 들어 매일 고민에 빠져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탓도 있을 테지만…….’

아무리 심법을 돌린다 한들, 잠으로 보충할 수 있는 면은 따로 존재하는 법이다. 아마도 그렇게 쌓였던 피로가 누적되어 깊이 잠든 것이리라.

‘그런 상황에 옆에 란 매와 있으니 되레 그 긴장이 풀렸던 모양이구나. 한데 이거……. 음. 왠지 미안하군. 허허.’

어쩌면 아주 오랜만에 단둘이 있음에도 깊게 잠든 송운을 야속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과 함께 송운은 몸을 일으켜 세웠다.

아직 날이 밝아오려면 멀었으나 이미 잠이 깬 뒤인지라, 더 이상 오지 않는 잠을 붙들고 있는 것보다야 뭐라도 하는 것이 낫겠다는 심경에 몸을 일으킨 것이다.

‘괜히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지.’

송운은 집안의 식구들이 깨지 않도록 슬그머니 집 밖으로 향했다.

* * *

타닥.

조용히 집에서 빠져나온 송운이 향한 곳은 집 인근에 있는 작은 뒷산이었다.

‘괜히 시끄럽게 집안 식솔들 깨울 바에야 이곳에서 하는 것이 내 맘도 편하니.’

워낙 작아 산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터라 사람들이 자주 왕래하지 않을뿐더러 지금처럼 늦은 새벽에는 짐승 한 마리조차 보기 어려운 곳이었다.

그중에서도 산에 나 있는 공터 주변을 감싸고도는 나무들은 앙상한 가지만이 남아 아직 겨울이 지나지 않았음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고향은 지금도 사시사철 소나무로 푸를 테지.’

송운은 기운을 끌어 올려 주변을 살폈다.

그러곤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후, 운기조식의 자세를 취했다.

우웅.

그의 마음에 마치 응답이라도 하듯 천천히 끓어오르는 내기는 이내 송운의 온몸 구석구석을 타고 돌기 시작했다.

지금 송운의 몸에는 전생에서는 꿈도 꿀 수 없을 만큼의 내기가 충만했다. 회귀한 이후 시작점을 몇 년을 더 단축시킨 덕에 쌓인 내공도 더 늘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선천지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만년설삼까지 효과를 톡톡히 보았으니…….’

내공뿐만이 아니었다.

천의선천기공을 통해 질풍무를 얻었고, 더 나아가 깨달음을 얻고 조화경의 경지에 이르렀다. 지금 송운의 실력이라면 웬만한 문파의 고수들과 겨룬다고 한들 밀리지 않을 터.

‘그것에 안주하여 여기서 멈춰 설 수 없다.’

그에게는 무인이라면 누구든 갖는 호승심과 열망이 있다. 비록 아버지의 뜻을 따라 학문 또한 게을리하지 않고 있으나, 송운 마음속 깊은 곳에는 여전히 무에 대한 갈망이 존재한다.

하나 그것보다 더 큰 이유는 단 하나.

다시 찾은 가족의 행복과 안전이었다.

‘비록 이번 무황비고의 일로 인하여 마교의 힘이 크게 줄었다고 한들, 이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는 한 결국 그들은 다시 찾아온다.’

게다가 그 덕분에 의도치 않게 자신이 알고 있던 마교대전을 준비해둔 시기가 크게 흔들렸을 터다. 더더욱이 그들의 행적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송운은 자신이 알고 있던 전생과는 너무도 다른 현생에 머리가 복잡해져 왔다. 모두 다 똑같을 것이란 생각은 하지 않았으나, 점점 뒤틀리고 있다는 걸 느낀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지.’

무슨 일을 하든 가장 중요한 정보에 있어선 앞일을 대비하여 만들어둔 천조회가 있다.

비록 아직 돌아오진 않았으나, 그들을 믿는다. 거기에 지금 전국 각지를 돌며 세상과 마주하고 있을 양조광까지.

송운은 혼자가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송운은 되레 더 강해져야겠다는 갈망이 더욱 커졌다.

송운은 문득 그러한 생각이 들었다.

‘떠올려 보면 내가 익힌 무공은 어느 것 하나 사람에게 직접 배워본 것이 없구나.’

질풍각도 천의선천기공도 모조리 책을 통해서 얻은 지식들이었다. 그 말인즉슨, 제대로 된 스승이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지금 시공검 또한 마찬가지였다.

‘시공검은 비록 책으로도 남아 있진 않으나 머릿속에 토씨 하나 빠짐없이 남아 있으니…….’

무공의 무 자도 모르던 약골의 몸으로 책 한 권에 의지하며 한 성에서나마 이름을 조금 떨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끈기와 노력이었다.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본능적으로 무공이라는 것을 감지한 송운은 죽을 것 같은 고통 속에서도 그것을 참고 견뎠다. 스스로 필요로 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지금에서야 그의 머릿속에 다시 한번 각인된 것이다.

‘아무것도 모를 때, 무공을 잘못 익히면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과연 내가 질풍각을 배우려 하였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결론은 ‘했을 것이다.’라는 쪽이었다.

무공이라도 악을 쓰고 익히지 않았다면 송운은 결국 떠돌이 생활을 하며 빈민가에서 쓸쓸히 죽어갔을 터다.

‘아니면 어느 돈 많은 놈들의 노예로 팔려 가 죽을 때까지 노동착취를 당했겠지.’

비극적인 결말일 테지만 그것은 현실이고, 사실이다.

송운은 씁쓸해지는 전생의 기억에 잠시 추억에 빠져들었다.

‘그래. 까짓것 무공이라 함은 결국 누군가가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 시공검이라고 해서 크게 다를 것은 없다. 다만 그것을 다루기 위한 노력이 배가 들 뿐. 어떻게 해서든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길다면 길었던 고민이 끝이 나자 어느덧 새벽녘 밝아오는 밝은 태양 아래, 그늘 속에서 송운의 두 눈이 오랜만에 생기롭게 반짝였다.

* * *

하나의 인연이 끝나면 새로운 인연이 찾아온다고 하였던가.

송운은 그러한 인연 대신 새로운 고민을 맞이하고 있었다. 실상 고민이라기보다는 연구에 가까웠지만…….

‘후우……. 막막하군.’

송운이 속으로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자 미간이 슬쩍 찌푸려졌다.

막상 시공검을 익히고자 마음을 먹고 나니 어찌해야 할지 감이 전혀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무공을 실현시켰다가는 그때와 같이 죽을 고비를 넘길지도 모르기에 함부로 실행에 옮기기엔 무리였다.

송운은 우선 그때의 감각을 서서히 떠올렸다.

‘단 세 번의 걸음이다. 그 안에 시공검의 모든 것이 담겨 있을 터.’

송운은 차차 눈앞에 그때의 그림을 그려나갔다.

첫 번째 걸음에 세상과 자신의 사이에 흐르던 기의 흐름이 미묘하게 바뀌고 두 번째 걸음에선 공간이 모조리 뒤틀리는 것과 같은 묵직함이 다가온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걸음에선 세상과 자신이 종잇장처럼 구겨지는 느낌과 동시에 앞으로 억지로 떠밀려 나가는 느낌이었다.

그 세 번째 걸음의 끝에 앞의 공간을 횡 베기와 함께 긋는 순간.

공간을 뛰어넘음과 동시에 자신의 앞에 그 무엇이라도 모조리 갈라버리게 된다.

“허억……!”

송운은 그것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몸 안에서 미세한 충격이 올라옴을 느꼈다. 그 당시의 충격을 온몸이 기억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렇다고 포기할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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