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3화
‘송후로구나.’
아마도 송하가 자신과 함께 수련한다는 말을 듣고 따라 나온 듯했다.
‘하기야, 송후는 지난번에 왔을 때도 학문에 매진하여 수련을 함께 하지 못했었지.’
송운은 되레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공에 관심이 많은 송하와는 같이 수련하자며 보낸 덕에 함께한 시간이 많은 반면 송후와는 북경으로 올라온 이후, 식사 시간을 제외하고서는 거의 얼굴도 보기 어려울 만큼 같이 있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 그런 동생의 마음도 이해가 갔기에 이해하고 넘어갔었던 것이다.
“어? 큰오빠다!”
그런 송운을 먼저 알아본 것은 송하였다.
폴짝폴짝 뛰며 송운을 향해 손을 내젓는 그녀의 모습은 너무도 귀여웠다. 곧 지학의 나이에 다다를 그녀였지만, 여전히 오빠들 앞에서는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고 귀여웠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송후가 그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오셨습니까? 형님.”
더는 어릴 적 자신을 보며 수줍어하던 송후가 아니었다.
‘송후가 올해로 열여덟이었던가? 정말 잘 자라주고 있구나.’
송운은 그 모습에 그저 고맙고 또 고마울 뿐이었다. 무럭무럭 자라나는 동생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그의 삶의 낙 중의 하나였으니.
“한데 오늘은 웬일로 송후도 같이 나와 있구나. 이거 오랜만에 삼 남매가 모두 한자리에 모였는걸?”
송운의 그러한 말에 송후가 오랜만에 쑥스러운 듯 고개를 슬쩍 틀며 말을 이었다.
“예, 이제 학문도 어느 정도 안정이 되기도 하였고 형님과도 함께한 시간이 오래된 듯하여…….”
그런 송후의 모습에 송운의 얼굴에 웃음기가 돌았다.
“무얼 그리 쑥스러워하는 게냐? 하하. 그럼 오랜만에 우리 송후의 무공실력도 볼 수 있겠구나.”
“혀, 형님.”
송후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송운을 바라보자, 괜찮다며 고개를 주억였다.
“그럼 나 시작한다?”
말 한마디를 끝으로 곧바로 그동안 갈고닦은 솜씨를 드러냈고, 그것은 송운을 다시 한번 감탄하게 만들었다.
쌔액-!
타닥!
한층 더 정갈해진 기는 흐름을 유순하게 하는 데 돕고 있었고, 날카로운 칼끝은 땅을 박차고 나비처럼 날아올라 벌처럼 쏘아 올렸다.
비록 여인이 익히기에는 조금 딱딱한 면이 없잖아 있는 질풍무였으나, 오히려 그것이 송하에게는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듯했다.
‘내공과 더불어 다른 면도 모두 더 나아갔지만, 역시 속도가 더 늘었다. 이 나이에 벌써 이 정도의 수준까지 끌어올렸다니……. 적어도 또래 아이들 사이에서만큼은 송하를 따라올 만한 녀석은 찾기 힘들겠구나.’
워낙 어릴 적부터 무에 대한 남다른 재능으로 송운을 놀라게 했으나, 이 정도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던 터다.
더구나 그 나이 또래답지 않게 쭉쭉 길게 뻗은 팔다리는 그녀의 검이 흐르는 길을 더욱 빛나게 하고 있었다.
하나, 송운은 약간의 입맛을 다셨다.
‘음,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탁.
그 순간.
송하의 수수하면서도 날카로웠던 검무가 멈췄다.
“우리 하야가 훌륭히 성장해주었구나. 이 오라비가 곁에서 좀 더 신경 써주지 못한 게 미안할 만큼 말이다.”
“아니야, 오빠. 오빠가 아니었으면 애초에 무공은 배우지도 못했을 텐데 뭘.”
코끝을 찡긋거리며 말하는 송하는 조금 부끄러운지 슬쩍 눈을 하늘로 향했다.
“하나, 아직 부족한 면이 많다는 것은 하야 너도 알 테고……. 앞으론 차근차근 내가 곁에서 네 수련을 도와주도록 하마. 이번엔 후야의 실력을 볼 차례인가?”
“예, 형님.”
그 말을 들은 송후가 곧 고개를 주억이며 기수식을 취했다.
그 역시 송하만큼은 아니더라도 무공을 배우는 것을 좋아했다. 무공 자체에서 오는 성취감도 있었으나, 가장 큰 이유는 힘이 있어야 소중한 것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형을 통해 알게 모르게 어릴 적부터 느껴왔기 때문이다. 그걸 알기에 북경으로 온 후 학문에 더 치우칠 수밖에 없으면서도 무공을 손에서 놓지 못한 것이다.
‘종류를 떠나 무언가를 배우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는 아이이니.’
송운은 그러한 동생들의 모습에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송후가 펼치는 무공에 빠져들어 갔다.
第二章. 고민
송운은 그 뒤로 꾸준히 동생들과 함께 수련하며 새벽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은 송운뿐만이 아니라 송하와 송후에게도 즐거운 시간이었다.
물론 학문도 게을리하는 법은 없었다.
비록 거인이 되긴 하였으나, 아직 학문으로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멀고도 먼 길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한동안 거의 고 총관에게 맡기다시피 넘어가 있었던 사업에 관한 것도 본 주인이 다시 돌아왔으니 송운의 손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앞으로 몇 달이다.’
곧 마지막 추위가 지나고 나면 겨울이 가고 완연한 봄이 될 것이다.
그때 돌아올 것이라 약조했던 천조회를 생각하여 앞으로 그들이 머물 공간을 새로 물색하고 지어야 했다. 이미 한 번 천조회의 거처를 들켜 큰 낭패를 보았었기에 그 과정은 아주 은밀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하여 다른 이에게 맡길 수 없어 송운의 손이 많이 타는 일이었다.
‘바쁘구나. 바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바쁘지 않으려야 바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하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그의 얼굴은 결코 찡그려지는 법이 없었다.
아니, 되레 즐거워 보였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니 이제야 정말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온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역시 전생에 떠돌던 무림의 생활도 좋았지만, 가족들과 함께한다는 것은 나에게 크나큰 힘이로구나.’
모든 것은 무황비고의 일이 터지기 전과 같이 흘러가고 있었다. 다만 그런 송운에게 커다란 고민거리가 하나 생겼으니…….
‘시공검이라…….’
작금의 무림에서는 비고와 함께 무황의 비서까지 모두 묻혀버렸다 알고 있지만, 그것은 겉으로 드러난 사실일 뿐.
제시공존 공시존해.
즉시공간. 자존형시 각동시괴.
‘후, 머릿속에 완전히 각인되어 지워지지도 않는구나.’
송운은 눈을 찡그리듯 감았다.
한동안 생각조차 하지 않았으나, 문구들과 그때 보았던 영상들은 그의 머릿속에 마치 조각칼로 새겨놓은 것처럼 떠나질 않았던 것이다.
이대로 오랜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억지로 잊어 보려 한다 해서 잊힐 것이 아닐 만큼 그것은 강렬했다.
‘어차피 이리된 것 다시 익혀보아야 하는 것인가?’
무황비서는 사용하기엔 너무도 위험한 것이었지만, 잘만 사용한다면 그 무엇보다 가장 큰 힘이 되어줄지 모르는 것이다.
사람의 힘으로는 꼼짝도 하지 않을 만큼 커다란 암반 더미를 단숨에 쪼개버린 힘이다.
그랬기에 송운은 여러모로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인이라면 그 누가 탐내하지 않겠는가.
송운은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자문자답하길 반복했다.
‘굳이 목숨을 담보로까지 하면서 이것을 익혀야 하는가?’
그 당시의 상황에는 워낙 절박하였기에,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라는 생각으로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행하였으나 그런 경우가 아니었더라면 함부로 사용했을 무공은 아니었다.
한데 작금 무사히 집으로 돌아온 상황에서 목숨을 다시 건다?
게다가 지금 자신에게는 이미 천의선천기공과 질풍무가 있지 않던가?
‘하나…… 그렇다고 이렇게 쉽게 포기하기엔 너무도 아깝구나. 의도한 것은 아니나 기껏 무황이 만든 무공을 이리 얻었거늘…….’
그 순간, 흘러 지나가는 생각에 송운은 자신이 했던 말을 다시 되짚었다.
‘……잠깐. 그래. 이것은 그 옛날 무림의 왕으로 칭송받던 무황이 만든 것이 아니더냐?’
그렇게 생각되니 여기서 또 하나의 의문점이 생겼다.
‘자신이 만든 것이 이 정도로 위험한 것임을 알고 만든 것일까?’
그렇게 생각한다면 가능성은 또다시 존재한다.
만들어낸 연유는 후대를 위해 만든 것일 터.
애초에 사용하기 위하여 만든 것이니, 완전히 익힐 수만 있다면 자신만이 사용할 수 있는 강력한 무공이 되리라는 것이 또 다른 판단이었다.
그가 아는 바에 의하면 작금의 무림에 그만한 수준의 무공을 구사하는 이는 찾기 힘들다. 이미 오래전 은거에 들어간 고수들을 제외하고 이에 근접하는 실력을 지닌 이들이라고 해야 백능을 포함하여 구주칠대무신이 전부일 뿐.
‘그중 한 명이었던 해남마제는 이미 세상을 달리하였고……. 천마라면 가능할까? 하지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보다 더 가족을 지키는 것도 한층 수월해질 수 있겠지.’
송운은 그때의 기억을 슬며시 머릿속에 떠올렸다.
시공검을 펼쳐보다 비고 속에서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겨야 했던가?
‘…… 다신 겪고 싶지 않은 끔찍한 기억이다.’
기억을 떠올리니, 마치 그때의 고통이 생생히 온몸으로 전해져 오는 것 같은 기분에 송운은 절로 이마가 찌푸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도라도 해본 덕분에 비고를 탈출하는 데까진 성공하였으나 그 때문에 사경을 헤맸고 그때 마침 백형이 자신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산짐승의 밥이 되어 살아 돌아오지 못했을 터.
그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송운은 자꾸만 망설여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무황비서가 아니었다면…….’
“후우……. 결국 돌고 돌아 제자리인가.”
탁.
“무엇이 돌고 돌아 제자리란 말씀이십니까?”
순간, 송운의 곁에서 익숙한 맑고 고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평서란이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으며 몸을 틀어 그의 말을 듣고 물어온 것이다.
송운은 그제야 자신의 곁에 평서란이 있었음을 떠올렸다.
‘아차! 고민이 깊어져 란 매가 곁에 있다는 걸 잠시 잊고 있었구나.’
“그것이…….”
송운이 순간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자, 평서란이 차분히 말을 이었다.
“운 가가. 요 며칠 안색도 영 좋질 못하십니다.”
“아무것도 아니오. 단지 오랜만에 이것저것 하려다 보니 머리가 조금 아픈 것일 뿐. 난 괜찮소.”
“흐음…….”
송운이 대충 얼버무리려 하자 평서란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에게 다시 물었다.
“단순히 그렇다고 하시기에는 고심이 너무 깊어 보이세요. ……역시 그사이 무슨 좋지 않은 일이라도 있으셨던 건 아닌지요?”
송운은 정확하게 짚어내는 평서란의 말에 속으로는 뜨끔 하였으나, 겉으로 티를 낼 수는 없었다.
송운은 괜찮다고 말하였으나, 전혀 괜찮지 않았다.
하나, 아직은 섣불리 누구에게 털어놓을 사안이 아니었다. 적어도 확신이 들지 않는 이상, 아니.
무공을 익히는 것에 대한 확신이 든다고 하여도 이는 세상 밖으로 퍼져나가서는 안 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