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전생-93화 (93/275)

제93화

‘마지막, 단 한 발이다. 제발…… 제발 한 번에 무너지지 마라!’

마지막 젖 먹던 힘까지 모조리 짜낸 송운의 손끝에서는 한 줄기 빛이 쏘아져 나갔고, 그와 동시에 송운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퍼어엉!

* * *

선천기폭이 터지는 소리가 들려오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까?

아무런 반응도 소리도 들려오질 않자 송운은 질끈 감았던 두 눈을 조심스레 떴다.

‘……성공인가?’

조금의 희망을 품은 채.

그리고 완전히 눈을 뜨고 나자, 그의 눈앞에 하나의 길고 큰 통로가 생겼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벽을 뚫긴 뚫은 것 같다만……. 제대로 된 길은 아닌 것 같구나.’

송운은 씁쓸한 미소를 입에 띠운 채, 새로 생긴 통로를 쳐다보았다. 완전히 벽이 뚫리면서 새로운 길이 생기길 빌었건만, 그것은 송운의 헛된 바람일 뿐이었던 것이다.

그나마 생각보다 비고 내에서도 두껍고 단단한 면을 쏘았던 것인지,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직까지는 무너지지 않고 있었다.

그럼에도 송운은 좌절 아닌 좌절을 맛보아야 했다.

‘이 정도면 차마, 성공이라 부르기도 힘들겠군.’

뚫린 통로는 그 끝이 명확히 보이는, 정확히는 막다른 길이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 망설일 시간이 없겠구나.’

그의 생각대로 지금의 송운에게는 선택의 기로 따위는 없었다. 그 끝이 막혀있음을 알면서도 뛰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다른 길을 찾는다?

그러기엔 방금 전 자신이 날린 선천기폭으로 인해 비고가 무너지는 데 속도만 가속화시킨 꼴이 상황이다.

어마어마한 굉음을 내며 간신히 버티고 있던 천장이 후두둑 소리를 내며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이곳은 곧 무너진다. 일단 저곳으로 가보자!’

파바밧!

고민 끝에 결정을 내린 송운이 전광석화와도 같은 속도로 자신이 만들어낸 통로 속으로 달려 나가며 몸을 던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콰르르르릉!

쿠구구구궁!

송운이 도착하기 무섭게 마지막 남았던 공간마저 모두 무너지면서 밝았던 시야가 완전히 어두워짐을 느낄 수 있었다.

* * *

깜빡깜빡.

송운은 깜깜해진 통로 속에서 눈을 뜬 채, 눈만 끔뻑거리며 뜨길 반복했다.

빛이 완전히 차단된 곳에서 볼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으나, 단 한 가지 사실은 알 수 있었다.

‘갇혔군.’

자신이 쏘았던 선천기폭 덕분에 무너지는 비고 속에 깔려 죽는 것은 피했으나, 이젠 송운 스스로 만들어 낸 통로 속에 갇힌 꼴이 된 것이다.

하나, 촌각을 다투는 상황 속에서 일 초라도 망설였다면 송운은 이미 숨이 끊어졌거나, 끊어지기 직전이었을 터다.

그걸 알기에 송운은 자신의 모습에 절로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하하……. 이거 참, 꼴이 우습게 되었구나. 후우…….”

송운이 깊은 한숨을 들이 내쉬었다.

第十一章. 심마(心魔)

자신이 뚫어놓은 통로에 갇힌 송운은 허탈감에 빠졌다.

들어왔던 입구마저도 무너져 내린 돌덩이들로 뒤덮여 완전히 폐쇄된 공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살아남았으나 완전히 산 게 아니었다.

이곳에서 빠져나가지 못한다면 굶어 죽을 건 뻔했다. 먹는 건 둘째치더라도 갈증을 채워줄 물 한 방울조차 없는 곳이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어둠으로 가득 찬 통로에서 빠져나가기란 하늘의 별을 따는 것보다 더 어려워 보였다.

‘이 통로의 길이만 해도 족히 이 리(里)는 되어 보이는구나. 이곳을 대체 어찌 빠져나간단 말이냐. 허어…….’

송운은 통로 내벽을 손으로 만져보았다.

아직도 진동이 느껴지는 걸로 보아, 무너짐은 아직도 진행 중인 듯했다.

‘후우……. 이러한 상황에 선천기폭을 사용하면 지금 그나마 남아 있는 통로마저도 무너지겠구나.’

잠시나마 송운이 일말의 희망을 가졌던 선천기폭을 사용하려 한 마음을 접을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이미 많은 진동으로 인해 지반마저도 약해진 상황.

이러한 상황에서 선천기폭은 정말 최악의 선택.

무리수였다.

기껏 숨어 있는 통로마저 무너진다면 송운은 그대로 돌덩이에 깔려 즉사할 판이었으니…….

털썩.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은 송운은 마지막 희망이던 선천기폭을 포기하고 난 후 잠시 바닥에 드러누웠다.

내력도 거의 모두 소모한 상황에 계속됐던 격전들과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언제 무너져 내릴지 모르는 통로 안에 갇혀버렸다는 심리적인 압박감.

이 모든 것이 송운의 기운을 앗아가고 있었다.

한참을 죽은 듯이 누워 있었을까?

이도 잠시.

송운은 문득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래, 아무리 최악의 상황이라 한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반드시 있는 법이지 않느냐? 힘을 내보자.’

그나마 다행인 건 지금 자신이 숨을 쉬는 데 벅차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바깥 상황을 전혀 알 수 없어 확실한 시간은 알 수 없었지만, 대략 송운의 느낌으로 흐른 시간은 약 두 시진 정도다.

‘폐쇄된 공간에서 숨을 쉬는 것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건 어딘가 분명 바깥과 연결되는 구멍이 있다는 말일 터! 그렇다면 샅샅이 뒤져본다면 구멍 하나 정도는 발견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에 희망이란 빛을 본 송운은 마음을 침착하게 가라앉히고서 어둠 속에 벽을 더듬거리며 다시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방금 전과는 달리 꽤나 힘찬 발걸음이었다.

* * *

콰과과과광.

우르르르릉!

“……완전히…… 완전히 무너져 내렸네요.”

한 명의 여인과 두 명의 남성이 몸엔 온통 먼지를 뒤집어쓴 채, 허탈한 표정으로 붕괴되는 비고를 바라보고 있었다.

휘청.

“서란아!”

“전…… 괜찮아요. 아버지.”

그들의 정체는 송운의 희생 덕분에 간신히 길을 찾아 비고 밖으로 나올 수 있었던 평서란과 평목단, 곽철우였다.

평서란은 빠져나오기 무섭게 와르르 주저앉아버린 비고를 바라보며 허탈한 표정으로 말을 읊었고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주저앉으려 하는 걸 간신히 평목단이 부축했다.

그들이 바랐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는지, 비고의 삼분지 이 이상이 주저앉았음에도 자신들 외에 그 누구의 인영도 보이지 않는다.

그 뜻은 즉, 송운이 빠져나오지 못했다는 말과도 같았다.

“평 소저.”

“……아무 말도 하지 말아주셨으면 해요. 곽 소협. 지금은……. 지금은 그 어떠한 말도 듣고 싶지 않아요. 살아 있을 거예요. 운 가가는……. 정말 강한 사람이니까.”

그녀의 고개가 땅을 향한 채 어깨가 순간 부르르 떨려왔다.

어떻게든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었으나, 위태로운 그녀의 목소리에 곽철우가 떼려던 입을 닫았다.

억지로 정말 억지로 자신을 일으켜 세우고 있는 듯한 느낌이 그녀에게서 강하게 뿜어져 나왔다.

곽철우는 그런 평서란을 뒤로 한 채 평목단을 향해 바라보았다. 그나마 평목단의 상태가 조금 더 나아보였지만 그도 역시나 넋이 반쯤은 나간 생태였다.

‘두 분 모두 상태가 몹시 좋지 않군.’

곽철우 역시 송운의 생각에 마음이 좋지 못한 건 사실이었으나 친우의 아들이자 사위이며 자신의 지아비가 될 사람을 저곳에 두고 온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만큼은 아닐 터다.

하여 안타까운 마음에 무언가 해주고 싶었으나, 당금의 상황에서 곽철우가 해줄 수 있는 건 평서란의 말처럼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말없이 곁을 지켜줄 뿐.

‘대체 어찌…… 어찌하면 좋단 말이냐. 운아. 부디…… 부디 무사히 돌아오거라.’

평목단은 끓어오르는 감정을 애써 추스르며 발걸음을 옮겼다. 어찌 되었건 이미 벌어진 일이며, 자신은 황군의 지휘자가 아니었던가?

이 사실을 황궁과 송악에게 알려야 했다.

그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본분이다.

‘반드시…… 살아 돌아오리라 믿는다. 운아. 우리들을, 그리고 너를 위해서.’

한참을 서 있던 그는 무겁디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 * *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대체 비고가 어찌 생겨먹었기에 이리 무너진단 말이냐!”

“조금만 더 가시면 될 것 같습니다. 외부의 공기가 이쪽에서 유입되어 흐르는 걸 보니…….”

연신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달리고 있는 이는 바로 좀 전까지 사도영과 칼끝을 겨눴던 구천악이었다.

미쳐버린 사도영과 계속해서 맞부딪혔다가는 그곳에서 생을 마감할 것이라는 판단을 내린 그가 후퇴를 명한 것이다.

‘해남마제, 대체 무슨 일을 겪었기에 그리도 광기가 서린 눈빛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의문과 아쉬움 속에서도 무너지는 비고를 벗어나기 위해 도주를 택한 구천악과 남은 마왕들은 서둘러 길을 찾기 바빴다.

아무리 무공이 중요하다고 한들, 본인들의 목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살지 못하면 무황의 무공을 얻는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해남마제. 난, 내가 살고 봐야겠다. 덕분에 눈엣가시가 될지도 모르는 해남마제와 해남파 녀석들을 쉽게 처리했군. 이 정도만으로도 큰 이득인 셈이야.’

구천악의 눈빛이 순간 벌겋게 빛이 났다.

“찾았습니다! 이곳으로 오시지요 주군!”

어차피 무너지는 미로로 된 비고 안에서 그들이 거리낄 것은 없었고, 길이 없으면 마구잡이로 부숴대며 마왕들이 길을 찾아낸 것이다.

그리고 천마를 비롯한 마왕들이 모두 비고를 빠져나오는 순간!

콰르르릉!

‘이런…… 미친.’

간신히 밖으로 도망친 구천악은 바깥에서 바라본 비고의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

아니 이미 죽고 없을 테지만, 이곳을 찾아낸 녀석을 향해 욕을 퍼붓고 싶었다.

무황의 무공서가 탐이 났고, 그것을 손에 얻는다면 더욱 손쉽게 천하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 그동안의 공백을 깨고 자신의 본거지에서 이곳까지 친히 나선 차였다.

한데, 그러한 것이 자신의 목숨을 버릴 뻔하였으니, 눈앞이 아찔해지는 순간이었다.

이미 절반에 가까운 비고가 무너져 내린 것이다.

그리고 비고의 입구를 중심으로 사방팔방에 널린 시체들과 핏물들 사이에 어느덧 까마귀들이 날아와 앉아 있었다.

어마어마한 돌덩이들에 흙먼지로 자욱한 이곳은 벗어나지 않았더라면 무황의 무덤이 아닌 자신들의 무덤이 되었을 거란 생각이 그를 오싹하게 만들었다.

‘하나의 거대한 무덤이 되어버렸군.’

이성을 잃어버린 사도영에 반해, 구천악은 이해타산적이고 냉철한 이성을 지닌 이였기에 빠르게 포기하고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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