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2화
피식.
팽팽한 긴장감이 맴도는 와중 송운의 입에서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조금은 웃기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덕분에 새로운 무공을 하나 창조해 내었으니 고맙다는 인사라도 해야 하는 건가?’
쐐애애액!
잠시 송운이 다른 생각에 빠진 그때, 허공을 가르며 매섭게 검이 날아오는 소리가 송운의 귓가에 들렸고 몸을 돌려 자신의 검으로 막아 냈다.
카가각!
‘휴우, 자칫하면 옆구리를 그대로 내어줄 뻔했군.’
방금 전 지나간 서늘한 감각이 송운의 온몸을 감싼다.
사도영이 송운을 향해 네 자루의 검들을 날려 보낸 것이다.
비록 자신이 박살 낸 덕에 검이 네 자루로 줄어들었고, 그 덕에 위력은 약해졌을지언정 속도는 여전히 빠르고 검의 궤적은 유연했다.
“애송이. 지금 네놈 따위가 날 비웃었느냐? 감히?”
‘감히 라는 말을 어지간히 좋아하는 모양이군.’
송운은 그런 사도영의 말을 무시하듯 씹어버리고선 그의 검들을 피하는 것에만 주력했다.
그러자 그 행동이 자신을 더욱 무시하는 것이라 느껴진 사도영이 방금 전에 날린 것보다 더욱 무자비하게 검을 놀리기 시작한다.
하나, 이 역시 처음 그와 마주쳤을 때 날아왔던 검들에 비하면 그 끝이 상당히 무뎌진 느낌이다.
“해남마제. 난 무경 따위 관심 없소. 조용히 보내주기만 한다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송운이 사도영을 향해 말을 던졌으나, 소용없었다.
“시끄럽다 애송이! 닥치거라!”
응답하여 날아온 것은 예기가 서린 검의 대화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존재하지 않았다.
계속해서 사도영은 검을 날려 왔고, 송운은 이를 피하는 데 정신이 팔려있을 무렵.
일순간 계속해서 들려오던 굉음이 멈추었다.
그와 동시에 쉬지 않고 날아오던 사도영의 검들도, 송운도 동시에 멈추었다.
‘……어찌 된 거지?’
어느 순간부터 연달아 무너져 내리던 것이 멈추니 당혹스러울 법도 했다.
그것은 사도영 역시 마찬가지였다.
‘잠시 멈춘 것인가? 하나 곧 재개될 터. 완전히 멈춘다면 좋겠지만…….’
그럴 일은 없어 보였다.
이미 겉으로만 보아도 비고의 절반은 무너져 내린 상태였다. 이렇게 불안정한 상태의 공간에서 미약한 충격이라도 가해지면,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이렇게 되면 싸움은 더 힘들게 될 터인데.’
오히려 비고가 무너지는 현상이 멈추면서 송운이 가장 강력하게 쓸 수 있는 선천기폭에 금제가 걸린 것이다. 자칫 잘못 건드렸다가는 좀 전의 속도보다 더 빠르게 무너져 내릴 가능성이 컸다.
초조해지는 마음과 동시에 혹여나 싶은 기대감에 송운이 사도영을 향해 바라볼 때였다.
가만히 서 있던 송운을 향해 이때다 싶던 사도영이 또다시 검을 날렸고, 이를 피하기 위해 송운이 검을 쳐낸 것이다.
카앙!
투둑. 퍼석.
‘이런!’
순간 송운이 아차 하였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콰르르릉!
반발력으로 인해 튕겨나간 사도영의 검이 급하강하면서 바위에 처박혔고, 그 충격으로 인해 쌓여 있던 돌멩이들이 휘청하는 듯싶더니 또다시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원인은 모르지만 잠시 멈췄던 현상은 송운의 예상대로 충격을 받자 마치 이를 기다렸다는 듯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고 아까보다 더 빠른 속도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된 이상 이판사판(理判事判)이다!’
어차피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라고 하였던가?
이미 무너지기 시작한 비고가 또다시 멈춰 주리라는 보장 따위는 어디에도 없었다. 송운 역시 망설였던 선천기폭을 사도영을 향해 쏘아 올렸다.
퍼엉!
하나 이번만큼은 선천기폭이 사도영의 몸을 꿰뚫지 못하고 애꿎은 비고의 벽면을 때렸고, 이는 더욱 무너짐을 가속화시키는 꼴이 되어버렸다.
선천기폭을 피한 사도영은 의기양양한 웃음을 지으며 송운을 바라보고 있었다.
‘몇 번이고 당할 수가 아니라는 것인가.’
송운은 문득 씁쓸해지는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최후의 그것까지 모조리 쏟아부었고, 사도영은 그것을 피하였다. 앞으로의 승패는 더욱 장담할 수 없는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애송이 언제까지고 네 그 비겁한 술수가 통할 것이라 생각하였느냐? 오산이고 오만이다.”
사도영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네 개의 검들이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날아왔고, 섬광처럼 날아오던 검들을 송운이 간신히 쳐내는 순간.
송운의 두 눈이 솔방울만 하게 커졌다.
‘해남마제, 설마 직접 검을 휘두르겠다는 뜻인가.’
날아가서 땅으로 곤두박질쳐야 할 검들이 그대로 사도영의 손에 안착한 것이다.
여태껏 단 한 번도 사도영의 손으로 검을 휘두르는 싸움을 본 적이 없었다. 한데, 이번만은 마음을 바꿔먹은 것인지 그가 검을 손으로 잡았고 송운의 코앞까지 광속으로 달려왔다.
“죽어라.”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한 사도영의 입가에는 승리의 미소가 가득 담겨 있었고, 이내 송운의 심장을 향해 그의 검이 날카롭게 달려들었다.
‘허, 결국 이리 허망하게 죽는 건가……. 아니지. 적어도 이렇게 장인어른과 란 매를 살리었으니 허망한 죽음은 아닌 건가…….’
방금 전까지 빠르게 다가오던 사도영의 검은 이상하게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느리게 다가오면서, 순간적으로 회귀한 후 몇 년간 있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송운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회귀 이후 아버지에게 가졌던 편견을 깨고 부자지간의 정을 돈독히 다질 수 있는 시간이 생겼고, 동생들과 어머니에게 형, 오빠. 그리고 아들로서 해 줄 수 있는 것들도 해보았다.
하늘이 준 기회로 전생에 갖지 못했던 가족들과의 화목한 시간을 얻은 것이다.
게다가 자신이 집을 떠난 후 있었던 사건인 화마는 비록 막지는 못하였으나 가족들을 모두 구하여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켰지 않은가?
송운의 입가에 한 줄기의 호선이 그려졌다.
‘그래. 적어도 가족들을 구하지 않았느냐. 한낱 사람이 하늘의 은공(恩功)을 입어 두 번 얻은 생을 이리 마감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구나.’
그러곤 행복했던 기억이 깨어지면서 다시 현실로 돌아온 송운은 자신의 심장께까지 다가온 사도영의 검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의 죽음을 직감한 송운이 아찔해지려던 순간.
퍼어억!
콰직!
집채만 한 돌덩이 하나가 사도영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나오면서 그대로 격타했다.
그로 인해 사도영은 땅바닥으로 추락했고, 송운의 시야 속에서 사라졌다.
너무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기에 어안이 벙벙하던 송운이 땅바닥을 향했고, 돌덩이에 깔려 핏물이 자욱하게 번진 사도영의 주검만이 보였다.
단말마(斷末魔)의 비명도 질러보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한 초고수의 허망하면서도 끔찍한 죽음이었다.
* * *
‘허, 이거야말로 진정한 이이제이인가.’
송운은 바닥을 새빨간 핏물로 가득 적신 사도영의 처참한 모습을 바라보면서 한편으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비록 적이었으나, 그의 의지만큼은 본받을 만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나 이렇게 되지 않았더라면 내가 죽었겠지. 내가 운이 좋았던 게야.’
송운은 얼굴에 씁쓸한 고소를 띠우며 고개를 저었다.
그 순간에 정확히 사도영의 머리 위로 돌덩이가 떨어지지 않았더라면 지금 저곳에 싸늘한 주검이 된 채 쓰러진 것은 사도영이 아닌 자신이었을 것이다.
일순간 사도영의 검이 자신의 심장으로 향했을 때의 생각이 떠올랐고 송운의 등 뒤로 소름이 쭈뼛하며 돋아났다.
한데, 그의 시체에서 눈을 돌리려던 송운의 시선을 잡아끄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서책 한 권이었다.
정확히 무황 비서라고 쓰인 책은, 마치 송운에게 자신을 가져가라는 듯 그 속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설마, 저게 사도영이 말한 그 무공서인가?’
땅바닥이 피로 젖어 흥건했음에도, 이상하리만큼 책은 멀쩡했다. 사도영이 돌덩이가 떨어지는 와중에도 어떻게든 서책을 지키려 하였던 것인지 무황 비서라 적힌 서책을 바깥쪽에 빼둔 것이다.
마지막까지 사도영의 그런 노력이 없었다면 책은 이미 피에 젖은 채로 돌덩이 속에 함께 묻혔을 터다. 사도영이 그만큼 무황 비서에 대한 엄청난 집착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송운은 그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정말 여러모로 대단한 자로군.”
죽어가는 와중에도, 아니 실상 자신이 죽을 거라는 예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찰나의 순간에 서책을 챙겼다는 건 정말이지 대단하다는 말로밖에는 표현할 방도가 없었다.
“어쨌든…… 결국 이건 내 손에 들어온 건가. 하기야 나도 이곳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면 사도영의 신세와 별다를 것이 무에 있단 말인가?”
툭툭.
그러한 생각이 들자 송운이 바닥에 떨어진 서책을 주워 털고서는 품 안에 넣은 후 재빨리 사방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사도영은 죽었지만, 비고는 계속해서 무너져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쿠구구궁.
‘우선 살고 봐야겠지.’
송운은 서둘러 막혀버린 길 대신 열 수 있는 또 다른 비밀 통로가 없는지 찾기 시작했다.
‘분명, 여기 어디엔가 하나쯤은 있을 법한데……. 제발 나와라…….’
한참을 벽면을 쳐다보며 찾으러 다녔을까?
하나 송운의 기대만큼 새로운 길은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이러다간 정말 이곳에 뼈를 묻게 생겼구나.’
우르르릉!
쿠웅!
계속해서 무너지는 비고는 점점 송운이 서 있을 곳마저 없애고 있었다.
그 모습에 초조해진 송운은 결단을 내리기로 마음먹었다.
‘이제 답은 정말 하나뿐인가……? 적어도 이곳에 이대로 아무것도 해보지 못한 채로 있다가 죽는 것보다야 낫겠지.’
송운은 기를 끌어모아 자신의 남은 내력을 확인해보았다.
우웅.
그러자 곧 몸에 남아 있는 내력이 반응하며 답했고, 꽤나 많은 내력을 썼음에도 아직 선천기폭을 한 번 크게 날릴 수 있을 만큼은 남아 있었다.
‘좋아. 이 정도면 마지막으로 쏟아부을 양은 되겠구나. 기회는 단 한 번뿐이다. 운아.’
꿀꺽.
긴장되었는지 침을 한번 꼴깍 삼킨 송운은 이윽고 아직 무너지지 않은 벽면을 향해 손을 내뻗었다.
그러고는 온 정신을 집중시켜 중앙의 한 점으로 내력을 끌어올렸다. 더 이상 길이 없으니 스스로 길을 만들고자 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