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1화
‘지금!’
퍼버벙!
“크아악!”
송운은 빠르게 사도영의 뒤꽁무니를 향해 선천기폭을 다시 한번 작은 양을 모아 날렸고, 그것이 정확히 사도영의 몸을 맞춘 것이다.
작게나마 폭발을 정통으로 또 한 번 맞은 사도영은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며 몸을 굴렀고, 그로 인해 잠시나마 송운 일행이 숨 쉴 틈이 생겼다.
‘후우, 후우……. 이대로 있다간 모두 다 죽겠구나.’
송운이 속으로 깊은숨을 들이 내쉬며 사도영의 상태를 살핀다.
사도영이 지친만큼, 송운 일행 또한 계속되는 체력 소모로 인해 지칠 대로 지쳐있는 상황이다.
결코 송운 쪽이 유리하기만 한 상황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 무너지는 것을 멈추지 않는 비고의 상태는 점점 더 거대한 압박감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게다가.
“애송이…… 네 녀석!”
사도영이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일어서고 있었다.
송운이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정말이지 끈질긴 놈이로군.’
이미 입고 있던 검은 무복은 갈기갈기 찢기어 제대로 된 형태를 갖춘 의복이라 보기 힘들었고, 온몸에 피를 통째로 뒤집어쓴 듯한 모습이었으나, 그 눈빛 하나만큼은 투기와 광기로 물들어있다.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로다. 이쯤 되면 비록 적이나 그 의지만큼은 칭찬해주고 싶을 정도니…….’
다만, 연달은 두 번의 선천기폭에 조금은 주춤한 것인지 기세가 조금 전의 상황에 비해 많이 누그러진 상태였다. 전과같이 급하게 달려들기보다는 송운을 경계하고 있었다.
하나 칭찬은 칭찬이요, 지금은 살아 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송운은 결국 또다시 사도영이 덤벼들리라는 것을 직감했다.
지금의 그는 미쳐있다.
사도영의 행동과 눈빛, 그리고 온몸이 그 모든 걸 증명해 주고 있질 않은가?
보이는 족족히 적으로 인식하고 달려들 것은 당연지사(當然之事)요, 눈으로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더는 안 되겠구나.’
쿠구구구궁.
설상가상 점점 다가오는 거대한 진동을 느낀 송운이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계속해서 사도영과 싸우다가는 모두가 이곳에서 생을 마쳐야 할 것이란 생각이 송운의 이성을 자극했고, 평목단을 향해 소리쳤다.
“장인어른! 어서 란 매와 곽 소협을 데리고 이곳을 빠져나가십시오.”
“하면 운이 너는 어찌하려고?”
“저는…… 이곳을 막아야지요.”
걱정이 가득 배어 나온 평목단의 말에 송운이 입가에 부드러운 호선을 그리며 답했다.
송운 나름 그들을 안정시키기 위해서 보여준 미소였으나, 그것은 쉬이 통하지 않았다.
“안 된다. 어찌 그럴 수 있단 말이냐? 나간다면 모두 다 같이 나가야 한다. 더구나 상대는 괴물에 가까운 놈이 아니더냐? 저런 놈을 상대하는 데 너 혼자 두고 갈 수는 없다.”
“아버지 말씀이 옳아요. 어찌 운 가가만 홀로 두고 빠져나가라 하십니까?”
단호하게 끊어버린 평목단에 이어 평서란까지 고집 있게 막아섰으나, 송운은 더욱더 안 된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결국 스스로는 돌아서지 않으시겠군.’
애초에 당연히 저렇게 나올 것이란 것은 예상했던 송운이다.
“제 걱정은 마시고 부디 이곳에서 무사히 빠져나가 계시지요. 제게는 아직 비밀의 수가 하나 남아 있습니다.”
“아니다. 운아. 차라리 늙은 내가 남는 것이……!”
송운의 시선이 뒤에 서 있던 곽철우에게 향했다.
“곽 소협. 두 분을 잘 부탁합니다.”
다시 한번 얼굴에 미소를 띤 송운이 곽철우를 향해 부탁을 남기며 천장으로 손끝을 향했다.
콰아앙!
쩌저저적.
누구 하나 말릴 새 없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송운이 천장으로 쏘아 보낸 선천기폭으로 인해 송운과 나머지 일행들이 있던 곳이 갈라져 나간 것이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모두가 죽을지도 모릅니다. 장인어른. 송구하오나 나가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이에 놀란 평목단과 평서란, 그리고 곽철우는 뒤로 몸을 급하게 뺄 수밖에 없었고 그리되고 나서야 평목단은 송운의 의도를 알아챌 수 있었다.
‘우릴 인위적으로 갈라서 보낼 셈이로구나!’
송운의 앞을 기점으로 평목단과 평서란, 곽철우가 따로 떨어져 나온 것이다.
“운아! 돌아오거라!”
“운 가가!”
하나 그 둘의 간절한 외침은 외침으로 끝날 수밖에 없었다.
이곳에서 사도영을 죽이지 않는다면 끝까지 따라와 죽이려 들려 할 것이다.
이미 한참의 거리를 가진 송운이 멀리서 외쳤다.
“꼭 살아남아서 돌아갈 테니 조금만 기다리고 계세요! 금방 따라가겠습니다.”
그런 송운의 입가엔 끝까지 미소가 지워지지 않은 채, 평목단과 평서란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 * *
“운 가가……!”
자리를 뜨지 못하고 계속해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던 평목단과 평서란의 손목을 각기 하나씩 잡아 이끄는 이가 있었으니…….
곽철우였다.
굳은 얼굴에 무겁게 닫힌 입술 사이로 곽철우의 목소리가 비집고 흘러나왔다.
“지금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조금 있으면 비고가 완전히 무너질 겁니다. 서둘러 가야 해요. 송 소협께서도 우리가 한시라도 빨리 이곳에서 빠져나가길 바라고 있지 않겠습니까?”
그럼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자, 곽철우가 마지막 말을 덧붙였다.
“송 소협은……. 결코! 살아 돌아올 겁니다. 그러니 우리도 반드시 살아야지요. 그래야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곽철우의 그 마지막 말은 꿈쩍하지 않던 평목단과 평서란의 마음을 조금 움직였고, 간신히 발을 떼는 데까지 성공했다.
하나 돌아서는 순간에도 평목단과 평서란 둘 모두 마음과 발걸음은 천근만근(千斤萬斤)과도 같았다.
평목단은 자신의 오랜 지기인 송악의 얼굴이 떠올랐다.
자신의 아들을 버려둔 채, 친구만 빠져나왔다는 소식을 듣는다면 자신을 분명 곱게 바라보진 못할 터다.
아니, 차라리 자신을 원망해야 속이 편할 만큼 송악의 성정상 겉으로 티를 내진 못해도 홀로 속앓이를 할 게 뻔했다.
참으로 통탄(痛嘆)스러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운아……! 내 대체 악이의 얼굴을 어찌 본단 말이냐……?’
하나 그것을 알면서도 지금은 갈 수밖에 없었다.
지금 가지 않는다면 송운이 이렇게까지 한 것의 의미가 사라진다.
떨어지지 않는 마음을 뒤로한 채, 결국 몸을 틀었고 그런 평목단의 뒤에 말없이 서 있던 평서란의 눈가 역시 촉촉이 젖어 들어가고 있었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지아비로서 평생을 약속한 남자를 자신을 대신하여 사지에 남겨두고 돌아서는데 어떤 여인의 마음이 편할까?
가슴이 뜯겨 나가는 것과 같은 고통이 평서란의 마음을 아릿하게 물들였으나, 송운이 스스로 택한 길.
곽철우의 말대로 지금은 가야 할 때였다.
‘운 가가……. 반드시 살아 돌아오셔야 해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입술을 꼭 깨문 그녀는 입가를 따라 피가 흘러 비릿한 향이 타고 흘렀으나, 그런 것 따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렇게 평목단과 평서란이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두 명 모두 돌아선 것을 확인한 곽철우는 송운이 부탁한 마지막 말을 떠올리며 잠시 그가 있을 방향으로 고개를 숙였다.
‘송 소협. 그대의 값진 희생, 절대 잊지 않겠소.’
* * *
송운은 사도영과 대치를 하면서도 한편으로 평목단과 평서란, 곽철우가 잘 떠나는지 끝까지 지켜보고 있었다.
혹여라도 이곳으로 다시 오지는 않을까 싶은 마음에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그들을 보내는 송운도 결코 마음이 좋진 않았다.
다행히도 곽철우의 말에 몸을 이끄는 듯 보였고, 그렇게 그들의 뒷모습을 보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 송운은 그제야 이글이글 불타고 있는 사도영에게로 완전히 시선을 돌릴 수 있었다.
‘이제 맘 놓고 싸울 수는 있겠으나……. 이를 어찌 헤쳐나가야 할지가 걱정이군.’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
第十章. 마제의 최후
쿠구구구구궁.
쿠웅! 쿵!
그 커다란 비고는 계속해서 무너져 내리고 있었고, 사방에서 떨어져 나오는 크고 작은 돌멩이들은 커다란 흙먼지를 휘몰고 왔다.
휘이잉.
비고가 무너지는 걸 보면서도 아직까지 유일하게 도망가지 않은 두 명.
그 중심에 송운과 사도영이 서 있었다.
생명 하나 느껴지지 않는 이곳에서 모든 것이 무너지는 순간에도, 둘 사이에서 고요하게 흐르는 미묘한 기류는 마치 세상이 멈춘 것처럼 보일 정도였으니…….
하나 정작 본인들의 세상에서는 매우 복잡하면서도 빠르고 거칠게 상대를 염탐하고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도영은 광기에 휩싸인 상황에서도 본능적으로 송운을 경계하며 빈틈을 노리고 있었고, 반면 송운은 이미 사도영의 실력을 눈으로 보고 몸으로 직접 느꼈기에 조심하고 있는 것이었다.
본질은 조금 달랐으나 서로를 어려워하고 있다는 것은 같았다.
무공은 사도영이 분명 송운에 비하여 몇 수 위를 점하고 있지만, 이미 그의 몸은 상처로 인해 엉망으로 변한 지 오래다. 가장 결정타는 송운이 날렸던 선천기폭이었으니, 어쩌면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게 용할 정도였다.
그가 아직까지 버티고 있을 수 있는 이유는 단 세 가지.
사도영의 무위와 독기.
그리고 광기가 당금의 사도영을 지탱하고 있는 유일한 힘의 근원이요 원천이었다.
하여 송운이 사도영과 이 정도의 대립을 이루고 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하나 그렇다고 해서 송운에게 탈출할 정도의 여력까지 생긴 건 아니었다. 지금은 단지 사도영에 비해 조금 덜 지치고 상처가 적을 뿐.
송운 역시 그와 별다를 건 없었다.
‘후우, 도대체 해남마제를 어찌하면 쓰러뜨릴 수 있단 말인가? 쓰러트렸다 싶으면 다시 일어나고 또 일어나는구나. 정말이지 아까도 느낀 것이지만 괴물이 따로 없군.’
아무리 이미 무너지고 있는 동굴일지언정, 선천기폭 한 방이면 와르르 무너져버릴 만큼 선천기폭의 위력은 어마어마하다.
실로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란 소리다.
한데 그러한 것을 두 번이나 맞고서도 아직까지 자신의 눈앞에 서 있다.
과거와 현재의 삶을 통틀어, 저만큼 질긴 적은 보지 못했다. 물론 그때와 지금은 본인의 실력 차도 어마어마하게 차이가 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