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0화
게다가 왠지 별호와 어울리게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그르렁대며 말하는 공안마왕은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묘하게 긴장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자신들처럼 길이 멋대로 갈라지면서 천마와 마교인들 사이에서 따로 떨어져 나온 듯했다.
‘그렇다면 다른 놈들은 없는…….’
파바박!
하나 송운이 더 생각을 하기도 전에 공안마왕이 송운을 향해 달려들었고, 이에 놀란 송운이 빠르게 뒤로 빠졌다.
‘크으……. 빠르구나. 하나 놈은 한 명이다. 지금은 시간이 없으니 시선을 이쪽으로 끌어모은 뒤, 모두 동시에 덮쳐 한 방에 끝낸다.’
송운은 빠르게 자세를 바로잡아선 뒤, 공안마왕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지금은 검보다는 주먹이 훨씬 더 빠르고 안정적일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후웅.
순간적으로 모인 기가 팔꿈치에서부터 타고 흘러가 그것이 또 한 번 손목에서 주먹을 타고 나선형의 형태로 내질러진 힘은 엄청난 파공음을 동반 한 채, 공안마왕의 복부에 정확히 꽂혔다.
퍼억!
“커어헉!”
반응 속도에 민감한 공안마왕이었으나, 송운의 주먹을 피하기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까딱.
연이어 송운이 주는 신호에 평서란과 평목단. 그리고 곽철우가 공안마왕을 향해 달려들었고, 동시에 세 명의 검이 공안마왕의 혈도를 가로질러 통과했다.
“이…… 이 빌어먹을 정파 녀석드을! 우웨에엑……!”
풀썩.
모두의 공격을 받고선 한차례 핏물을 토해낸 공안마왕은 그 자리에 쓰러졌고, 두 번 다신 일어나지 못했다.
모두의 합공이 제대로 먹힌 것이다.
“죽은 건가?”
툭.
곽철우가 잠시 그의 상태를 살폈고, 공안마왕은 눈알이 희끄무레하게 뒤집힌 채로 숨이 멎어있었다.
“어서 뛰자꾸나. 시간이 없다.”
“그래야 하겠네요.”
쿠구구궁.
잠깐의 싸움으로 인하여 간신히 벌려두었던 격차가 또다시 송운 일행의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고, 이를 본 평목단이 재촉했다.
* * *
광안마왕과 마주친 뒤, 더욱 가속도가 붙은 송운 일행의 앞에 이번엔 또 다른 장애물이 나타났다.
아니 어쩌면 좀 전의 광안마왕보다 더 위험한 상황이었다.
드드드드드.
쿵!
‘젠장!’
길 앞에 있던 벽이 스스로 움직이기에 새로운 길이 나타날 줄 알았건만, 이번엔 완벽히 길이 막혀버린 것이다.
“길이 막혔습니다!”
곽철우의 말대로 이 이상 앞으로 갈 길은 없었다.
‘이러다간 정말 다 죽을지도 모르겠어.’
으득.
송운은 이를 꽉 깨물었다.
쿵! 쿠웅!
우르르릉!
송운을 비롯한 세 명의 등 뒤로 소름이 쫘악 끼쳤다.
앞은 막혔고, 뒤쪽에선 빠르게 비고가 무너지고 있었기에 지체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진퇴양난(進退兩難)!
그야말로 송운 일행 모두가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진 것이다.
‘살기 위해선 벽을 움직여야 한다.’
“어서 벽을 움직이게 하는 장치를 찾으세요!”
송운이 소리쳤고 이와 동시에 모두의 손과 감각이 미친 듯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미 일전에 벽이 얼마나 두꺼운지 체감한 바가 있기에 이것을 뚫는 것이란 불가능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벽을 움직일 기관을 찾지 못하면 죽는다.
“점점 다가와요. 어서 찾아야 해요!”
쿠르르릉.
평서란이 다급히 외쳤고, 그녀의 말대로 자칫하다간 꼼짝없이 이곳에 갇혀 무너지는 돌덩이에 맞아 죽을 상황이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천장에서 떨어지는 돌덩어리들이 잠깐 뒤를 돌아본 송운의 코앞까지 다가온 그 순간!
‘그럴 순 없지!’
꾸욱.
드드드드드.
“모두 뛰세요!”
* * *
“허억, 허억…….”
거의 뛰어들다시피 열린 벽 옆쪽으로 달려 나간 송운 일행은 가쁘게 숨을 골았다.
송운은 조금 전의 상황을 떠올렸다.
아직도 살짝 떨리는 손이 이를 기억하고 있었다.
하늘이 핑 도는 것만 같은 착각이 일 정도였다.
천정이 무너지는 것이 코앞까지 다가온 순간. 벽을 뒤지던 송운의 손끝을 타고 이상한 벽 하나가 느껴졌고, 그로 인해 옆길이 열린 것이다.
‘만일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조금 전까지 서 있던 곳에 커다란 돌덩이들이 내려앉은 것을 바라보던 송운의 머릿속에 끔찍한 생각이 떠올랐다.
“이 옆길도 곧 무너질 게다. 서둘러 가자꾸나.”
가장 빨리 숨을 안정시킨 평목단이 송운과 평서란, 곽철우를 재촉했다. 평목단의 말처럼 마음을 추스를 시간 따위는 없었다.
이미 주변은 산산이 부서져 그 형태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여전히 비고는 무너지고 있었다.
* * *
채재쟁!
카앙!
몇 번의 방해물들을 헤치고 간신히 살아남은 송운 일행의 귓가에 검들이 부딪히며 내는 날카로운 고음 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더 가자 어딘가 낯익은 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이 결코 하나같이 멀쩡해 보이지 않았다.
“후, 결국 돌고 돌아 또 저들이네요.”
지긋지긋하다는 듯 말하는 평서란의 목소리엔 힘이 조금 빠진 듯 보였다.
반복되는 악재의 악재에 지칠 만도 했다.
“또다시 해남마제와 천마인가? ……빌어먹을!”
쉽게 입을 떼지 않던 곽철우의 입에서는 징글징글한 그 모습에 욕지거리가 자연스레 튀어나왔고, 그건 송운 또한 마찬가지인 듯싶었다.
‘정말 악연도 이렇게 질긴 악연이 따로 없군. 하필 이런 상황에 저놈들을 마주치다니. 제길. 한시라도 빨리 도망갈 생각은 안 하고 어찌 둘이 또 싸우고 있느냔 말이야! 저놈들은 목숨이 두 개 세 개라도 되는 건가?’
비록 그 덕에 사도영과 구천악의 시선이 자신들에게 쏠리는 것은 피할 수 있었으나, 그곳을 지나가야 하는 송운 일행으로선 답답할 노릇이었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그 격돌하는 충격의 여파로 주변의 무너짐을 더욱 빠르게 진행 시키고 있었으니…….
이대로 조용히 그들과 마주치지 않고 빠져나가고 싶었으나, 사도영과 구천악을 지나가야만 다음 길이 뚫린다. 완전히 그들을 배제 시킬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자칫하다가 저곳에 휘말리면 가까스로 살아나온 것이 의미가 없어질 터였다.
‘어떻게 하면 이곳에서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까.’
송운이 계속해서 머리를 굴릴 그 시점.
문득 그들의 대화가 송운의 귓가를 울렸다.
“이제 그만 순순히 무공서를 내놓고 물러나거라. 해남마제!”
쐐애애액!
카가각!
구천악이 순식간에 검을 들고 해남마제의 곁으로 다가갔으나, 사도영의 다섯 자루의 검이 이를 허용치 않았다.
“이 무공서는 절대 양보할 수 없다. 천마!”
그러곤 또다시 격돌.
송운 일행은 그제야 둘이 싸움을 하고 있는 연유를 알 수 있었다.
‘으음……. 해남마제가 결국 무경을 얻었나 보군. 천마가 이를 알게 되면서 싸움이 붙은 거였나?’
송운의 입가에 쓴 웃음이 고였다.
덕분에 무경이 사도영의 손에 들어간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이 또한 탐탁지 않은 결과였기 때문이다.
‘하긴 천마의 손에 들어갔어도 결국 똑같은 상황에 마주했겠군.’
하나, 지금은 무경을 탐할 때가 아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비고는 모두 무너질 터.
무경보다는 우선 목숨이 더 먼저였다.
‘빼앗을 때까지 싸울 참인가?’
“운아, 아무래도 저곳을 뚫고 지나가야 할 듯싶구나. 그것밖엔 방도가 없다. 하니 빠르게 달려간다.”
결국 결단을 내린 평목단이 사도영과 구천악을 지나쳐 가자며 의견을 내놓았고, 이에 송운과 평서란, 곽철우가 고개를 주억였다.
더는 주저할 시간이 없었다.
“그럼 가도록 하죠. 맨 앞에 제가 서겠습니다.”
“알겠어요. 아버지.”
파밧!
결단을 내린 송운 일행이 이내 사도영과 구천악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빠르게 놀릴 그때.
콰르르르릉!
천둥과도 같은 소음을 내며 이들이 있는 곳과 가장 가까운 곳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고, 다가오는 송운 일행과 비고가 무너지는 광경을 천마가 바라보고선 급히 도주를 택한 것이다.
까득.
“이 빌어먹을 해남마제 자식……! 모두 후퇴해!”
아직까지 구천악에 온통 정신이 팔린 사도영은 송운 일행을 눈치채지 못했는지 그의 광기에 휩싸인 목소리가 비고 안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겁먹은 하룻강아지처럼 도망가는 꼴이라니. 봐줄 만 하구나. 큭큭……. 크하하하하! 이 무공서는 내 것이다. 내가 발견했단 말이다! 아무도 내어주지 않을 것이야!”
‘드디어 해남마제가 미쳤군. 아니 원래 미친놈이었나.’
송운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빠르게 천마가 향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니, 옮기려 했다.
카아앙!
일순간 구천악에게 시선을 빼앗겨 송운 일행을 보지 못했으나, 그가 달아나는 순간 사도영의 눈에 그들이 들어온 것이다.
“이 무공서는 내 것이다. 애송이.”
송운의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새겨졌다.
* * *
쐐애액!
카앙!
‘이런, 우릴 봐버렸군. 그냥 조용히 넘어가려 했거늘…….’
무너지는 비고의 모습에 이미 구천악은 자리를 뜬 지 오래였고, 대신하여 송운의 발목을 붙잡은 건 사도영이였다.
“아무래도 해남마제의 눈에는 우리가 무경을 탐하려 달려든 것처럼 보이는 듯하구나.”
“그런 것 같습니다. 장인어른.”
송운의 곁으로 다가온 평목단이 송운의 귓가에 나지막이 읊었고, 그에 동조한다는 듯 송운 역시 고개를 주억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지금 이렇게 미친 듯이 달려들진 않았을 터다. 그런 사도영의 생각과는 달리 무공서를 빼앗을 생각이 전혀 없다며 소리치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한들 지금의 사도영의 귓가에 들릴 리 만무했다.
결국 깊은 한숨을 내쉬며 그를 설득시키는 것을 포기한 송운은 빠르게 기수식을 취했다.
어차피 말이 통하지 않을 거라면 무력을 선사하는 것이 더 빠를 터.
송운의 두 눈이 빛났다.
‘위력은 많이 줄었구나.’
그나마 다행인 건 아까 전 마주쳤을 때와 달리 확연히 사도영의 위력이 많이 떨어져 있다는 것이었다.
송운의 선천기폭으로 인해 크게 다치고도 구천악과 한 판 더 승부를 보려 뛰어들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몰랐다.
‘지금은 저딴 무공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이 더 중요한데……. 돌아버리겠군.’
사도영의 검들은 여전히 허공을 날아다니며 송운 일행을 위협했고, 날렵한 몸놀림을 선사하며 송운이 이리저리 피해 다녔지만 송운이 그럴수록 사도영의 광기 어린 시선은 더욱 기를 쓰고 그를 쫓았다.
그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