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전생-88화 (88/275)

제88화

당헌기의 말에 평목단이 그에 동했다.

“그래서 말인데……. 미안한 건 알지만, 염치 불고하고 지금부터라도 같이 움직였으면 하오. 평 도독도 알다시피 지금 이곳, 비고 안에 들어와 있는 적들은 하나같이 모두 강하지 않소? 비록 지금 약간의 부상을 입긴 하였으나, 한 명이라도 더 있으면 도움이 될 듯하오.”

비록 지금은 외상과 내상을 적잖이 입은 당헌기이나, 현 무림 구주칠대무신의 자리 중 하나에 올라있는 그다.

그의 말대로 도움이 되기는 할 터.

게다가 지금 아군끼리 뿔뿔이 흩어져 있기보다야, 같이 붙어서 다니는 것이 훨씬 안전할 것이라 판단한 평목단은 알았다며 고개를 주억였다.

이에 당헌기가 평목단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포권을 취해왔다.

“고맙소. 내 나중에 꼭 이 일은 잊지 않고 보답하리다.”

“아니오. 당 단주. 어차피 애초에 같이 파견을 나왔으니 당연한 일이 아니겠소? 중간에 길이 엇갈려 잠시 헤어졌던 것뿐이니 너무 부담 갖지 마시구려.”

송운은 이상하게도 가장 먼저 튀어나가 한동안 따로 헤매었던 그가 탐탁지 않은 마음이 들었으나, 평목단의 선택에 따르기로 했다.

‘장인어른의 말도 일리는 있으니.’

지금은 한 명의 아군이라도 더 같이 있는 것이 이득이라는 것은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럼 이만 출발하도록 하죠. 당 단주께서도 어느 정도 체력을 회복하신 듯하구요.”

“나는 괜찮으니 괜히 나 때문에 멈춰있는 거라면 서두릅시다. 애초에 이 위험을 무릅쓰고서 이 안으로 파고들어 온 연유는 무경과 보물들을 먼저 차지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소? 이러다 모두 해남파나 마교에게 빼앗길지 모르오.”

만일 그런 상황이 온다면?

굳이 겪지 않더라도 끔찍할 것이라는 걸 모두가 이미 알고 있었다.

당헌기가 다급히 말을 이었고, 평목단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주억이자 이내 모두 앞을 향해 전진하기 시작했다.

* * *

당헌기와 재회 후.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지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길은 끝없이 이어졌지만, 아까와 같이 반복되진 않았다.

‘대체 얼마나 더 가야 무경이 있는 곳이 나오는…….’

그때였다.

“문. 문이 있습니다!”

곽철우가 약간 들뜬 목소리로 소리쳤다.

가장 앞서가던 곽철우가 무언가 육중한 철문을 발견한 것이다.

끊이지 않고 연결된 기나긴 길에 지쳤던 이들 모두의 얼굴에 조금씩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적어도 계속해서 이어지기만 하는 길을 걷는 것보다야 나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저곳에 어쩌면 무언가 있을지도 모르겠군.”

“지체할 것 없이 문을 열어보도록 하지. 내가 열어보겠소.”

가장 먼저 나선 건 다름 아닌 당헌기였다.

왠지 모를 그의 모습에선 다급함이 느껴졌다.

끼이이이익.

누구 하나 말릴 새도 없이 당헌기가 그 무거운 철문을 활짝 열어버렸고, 쇳덩어리들끼리 몸을 부딪치며 내는 기이한 소음이 모두의 귓가를 파고들며 괴롭혔다.

쿵.

두꺼운 철문은 보이는 만큼 무거웠는지 열리는 데에는 꽤나 오랜 시간이 들었고, 이내 문이 완벽히 열렸다.

번쩍.

“윽……!”

문이 열리면서 순간 안에서 번쩍거리는 불빛이 비쳤고, 그 빛에 익숙해질 무렵 눈을 떴을 때.

“허어……!”

“……?!”

송운 일행 모두의 입이 떡 벌어질 만큼의 어마어마한 양의 금은보화(金銀寶貨)와 보석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 * *

“……이방, 비고의 보물이 숨겨져 있는 곳이었군요.”

담담한 듯 말을 이었으나, 곽철우의 표정 또한 엄청나게 놀라고 있었다.

‘어마어마한 양이로구나! 과연 무인이 아니라 한들 사람들이 눈에 불을 켜고 찾을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다.’

명문파 중 하나인 화산파에서 조차 이 정도 양의 보물은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놀란 것은 송운과 평서란 또한 마찬가지였다.

“무황비고가 괜히 무황비고는 아니었네요.”

‘비고 하나를 털면 웬만한 중소 문파 하나 정도는 그냥 지을 수 있다더니……. 그 말이 사실이었군.’

송운 또한 이러한 금은보화를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음에 놀라운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게 말이오. 굳이 무경이 아니더라도 모두가 탐내 하는 이유가 있었구려.”

얼핏 보아도 그 가치가 수십만 냥에서 족히 수천만 냥까지 나갈 법한 물건들로 가득 차 있는 데다, 그 와중에 금화들도 드문드문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으니!

오히려 놀라지 않는 게 더 이상할 정도였다.

하나, 여전히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는 송운 일행의 모습과는 대변되는 모습을 띠고 있는 이가 있었다.

‘……음?’

바로 당헌기였다.

“무경을 찾아야 한다. 무경을…….”

그가 속으로 중얼거리던 말은 입 밖으로도 무심결에 새어 나오고 있었고, 무언가에 홀린 사람인 마냥 주변을 뒤지기 시작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진귀한 보물을 보면 응당 그곳으로 가장 먼저 시선이 가는 것이 사람이거늘, 그의 모습은 마치 반미치광이처럼 보물을 두고 다른 곳을 헤집고 있었다.

이 모습을 바라보던 송운의 미간이 슬쩍 찌푸려지며 고개를 슬쩍 좌우로 흔들었다.

‘……아무리 무인이라고 한들 그 집착이 과하군.’

송운 역시 무인이었으나, 무경에 그 정도로 광적인 집착을 보이진 않았다. 한데 당헌기의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왠지 무서운 느낌이 들 정도였다.

“어찌 되었건 이 방을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우리인 듯하구나.”

“그런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이 흐트러지지 않은 걸 보면.”

세월의 흐름에 의해 조금이라도 부패할 법한 물건들도 모두 처음의 본 모습을 유지한 채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후우……. 금은보화는 찾았으나, 왠지 이곳에 무경이 숨겨져 있을 것 같지는 않군.’

송운이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확실한 건 아니었으나, 이상하게도 송운은 그러한 직감이 들었다.

* * *

반면 그 시각.

급작스러운 미로의 작동으로 인해 자신의 의지와는 별개로 송운 일행과 강제적으로 떨어져 나온 사도영은 가슴 속 깊숙이 차오르는 분노를 끌어안아야 했다.

놓쳐버린 먹잇감에 대한 분노가 차오른다고 하여 계속해서 한곳에서 머물 수는 없는 법.

사도영 역시 그 길고도 지겨운 길을 끊임없이 걷고 있었다.

뚝. 뚝.

하지만 그의 마음과는 달리 좀 전의 폭발로 입은 상처는 사도영의 온몸을 좀먹듯이 파고들고 있었다.

본인은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었을지언정, 마치 그 사실을 깨닫게라도 해주겠다는 듯 사도영이 가는 길을 따라 핏물이 그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그 빌어먹을 애송이 녀석! 다음번에 마주한다면 반드시 네 목숨을 찢어 발겨주마.’

그런 사도영의 뒤에는 이젠 정말로 몇 남지 않은 해남파 무인들 몇 명이 간신히 그의 뒤를 뒤따르고 있었다.

한참을 걷고 걸었을까?

눈두덩이 부근으로 핏줄이 터지고 핏물이 잔뜩 흐른 덕에 흐릿해진 사도영의 시야에 어딘가 알 수 없는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문 하나가 들어왔다.

‘저건 또 무엇이지?’

무심코 그냥 지나치기엔 사도영의 감이 그를 놓아주질 않았다.

게다가…….

‘큭. 어차피 돌아갈 길도 없군. 이곳을 지나쳐야만 다음 길로 나아갈 수 있다는 건가?’

사도영이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살펴보아도 방을 지나치지 않고서야 갈 수 있는 길은 왔던 길 뿐이다.

사도영이 뒤를 향해 고개를 틀었다.

생각보다 꽤 먼 길을 걸어왔고, 다시 돌아간다면 결국은 또 미로가 반복될 것이다.

‘다시 저 길을 돌아간다. 라……. 그것만큼 귀찮은 일은 없지.’

틀었던 고개를 돌린 사도영이 문을 다시 바라보았다.

‘설마 함정이라도 설치되어 있는 건가……? 아니지. 애초에 이런 생각 따위를 하고 있다는 자체가 웃기군. 내가 언제부터 그러한 것을 따졌단 말인가? 날아가던 새가 비웃을 일이로군.’

지금까지 미로를 제외한 그 어떠한 함정도 찾아보지 못한 비고 내부다.

이제 와서 어떠한 진법이 설치되어 있다는 것도 우스운 일일 터다.

더불어 그의 본능적인 직감이 이곳을 통과하라고 가리키고 있질 않은가?

피식.

사도영은 입가에 비릿한 웃음을 걸친 채, 방을 가로막고 있는 문에 손을 대었고 이내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그러자 오랫동안 방치되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은 채 부드럽게 문이 열렸다.

‘신기할 노릇이군. 무황의 비고라면 만들어진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을 터인데…….’

한데 문은 쉽게 열렸으나, 사도영이 생각했던 것처럼 그 앞으로 나아가는 길은 따로 없어 보였다.

‘일반적인 눈속임 따위였나? 결국 다시 뒤로…….’

하나, 그런 생각도 잠시.

그보다 더 사도영의 시선을 빼앗는 것이 있었으니.

제법 고급스러운 재질로 만들어졌는지 윤기를 잃지 않은, 마치 하늘로 승천하는 듯한 고귀한 용의 무늬가 새겨진 탁상이었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자면 그 탁상의 매끈한 다리를 따라 본체로 눈이 간 사도영은 이내 비고의 천장을 바라보며 앙천대소(仰天大笑)하기 시작했다.

‘여기 있었군.’

어이없는 듯 웃던 웃음은 점점 광소로 번져나갔고, 방 안에 가득 사도영의 웃음소리로 가득 들어찼다.

“……큭. 크큭. 크하하하하하!”

그 책 표지에 쓰여 있는 단 하나의 글귀 때문이었다.

무황 비서(秘書)

“멍청한 놈들. 결국 무황의 비서는 내 것이다! 크하하하!”

* * *

“잠시 그대들에게 할 말이 있소.”

무경을 찾아 한참을 헤매던 당헌기가 잠시 멈추고선 송운 일행에게 가장 먼저 꺼낸 이야기는 단 하나였다.

“이곳에서 가지고 나가는 보물들은 모두 황제께 바칠 것이오. 다만……. 무경은 발견되는 한 우리 무림맹 측에서 가져가도록 하겠소이다.”

당헌기의 비장한 목소리에는 어쩐지 어딘가 모를 음습한 기운이 어려 있었다.

하나 아무도 대답이 없자 재차 입을 열었다.

“한마디로 거래를 하자는 말이오. 애초에 무황이라는 인물은 무림인이오. 하여 무림맹에서 직접 나선 것이 아니겠소? 잃어버렸던 것을 되찾아 가려는 것뿐이외다. 평 도독.”

“으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목단이 계속 알 듯 모를 듯 신음만을 흘리며 선뜻 답을 하지 못하자 당헌기가 다시 한번 쐐기를 박기 위해서인지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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