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7화
이런 사도영의 모습에 평목단이 당황한 기색을 보일 무렵.
송운은 오히려 지금, 이 순간.
자신에게 온 커다란 기회임을 직감했다.
‘본 무공을 쓰려 하는 것인가?’
해남파의 주요절기인 남해삼십육검(南海三十六劍)을 버리고 사도영이 수십 년간 스스로 연마하고 닦아온 새로운 검법이다.
오래도록 익혀왔으나, 스스로 만들어낸 무공이다 보니 아직 완전히 안정되지 못한 사도영의 독문 무공인 멸혼절명침은 쓰는 만큼 위력은 무지막지하게 커질 테지만, 그와 비례하여 움직임은 더뎌지고 가려져 있던 허점은 커다래진다.
한데, 광기에 휩싸여 이성의 줄까지 끊겨버린 사도영이 펼치는 멸혼절명침은 허점이 더욱 명확했다.
송운은 그것을 꿰뚫어 보았다.
지금까지는 그의 철저한 방어막에 막혀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송운이라면, 이제는 그가 나설 차례였다.
‘지금이다!’
송운은 곧바로 자신의 선천지기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그 어떠한 순간보다 가장 중요한 시점이었다.
사도영이 우려했던 것처럼 자칫해서 양 조절에 실패한다면 사도영뿐만이 아니라, 자신들에게까지 피해가 올 터.
‘한 방에 그를 무너뜨리면서도 우리 쪽으론 최대한 피해를 줄여야 한다.’
곧 송운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고, 양과 방향을 조절하던 그의 손에서 선천기폭이 사도영을 향해 발포되었다.
슈우욱!
“이, 이런……!”
그 선천기폭을 바라보던 사도영의 낯빛은 새파랗게 어렸고, 미처 피할 새도 없이 빠르게 날아오는 선천기폭을 피하지도 못하고 정면으로 맞아야 했다.
퍼엉!
콰아아앙!
광속으로 날아간 선천기폭은 자신의 몸을 부딪치는 순간, 어마어마한 굉음을 내며 폭발했고 그와 동시에 주변의 먼지구름이 크게 피어올랐다.
“허……!”
하나, 송운의 의도대로 폭발의 위력은 송운 일행에게까지 닿지 않았다.
‘저 무공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를 멀리서 지켜보던 평목단의 눈에는 경이로움과 혼란스러움이 동시에 일었다.
평목단은 눈으로 똑똑히 지켜볼 수 있었다.
‘분명 운이의 손에서 나아가질 않았던가……?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한데, 난생처음 보는 무공이었다.
게다가 위력 또한 만만치 않다.
사도영과 함께 터져나간 그 무공은 비고의 한쪽 벽을 완전히 무너뜨려 놓았다.
그 어마어마한 위력에 평목단은 한편으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벽이 저 정도일진대, 사도영이라고 결코 무사하진 못하겠구나.’
송운 역시 평목단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이, 이럴 수가…….”
함께 지켜보고 있던 곽철우의 입에서 허탈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평목단과 평서란 모두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 이유는…….
뚝. 뚝.
“……감히……. 네놈 따위가 감히 나를……!!”
흩날리던 먼지구름 사이로 온몸에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채 피를 흘리며 분노한 표정이 역력한 사도영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
가장 당황한 건 선천기폭을 날린 장본인, 송운이었다.
‘이걸 맞고도 어찌 저 정도로 멀쩡할 수 있단 말인가?’
절대 사람이 맞고도 살 수 없을 만큼의 양이었다.
한데, 살아남았고 일어섰다.
그것도 모자라 기운이 남는지 여전히 분노로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채였다.
‘허…… 역시 쉬운 놈은 아니란 말이겠지.’
비록 내력은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으나,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가 이미 송운에겐 놀라움으로 다가왔다.
“내, 네놈은 반드시 살려두지 않겠다!”
그의 노호는 비고 안 전체를 쩌렁쩌렁하게 울리기 시작했고, 그때였다.
드드드드드.
동굴이 또다시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폭발의 여파인가?’
하나 송운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조금 전의 폭발로 인한 것도, 사도영의 노호로 인한 것도 아니었다.
‘설마, 또다시 미로가 바뀌는 것인가?’
이미 몇 번 들었던 익숙한 소음이었다.
아마도 누군가가 미로의 배치를 바꾸는 조작기를 다시 누른 것이리라.
‘이대로라면 시간이 얼마 없다.’
까득.
벽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사도영은 그 모습에 잠시 망설이는 듯했으나, 결국 이를 바득바득 갈며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자칫하면 무너져 내린 저 틈에 갇혀 영영 빠져나오지 못할 수도 있을 터다.
이는 평서란과 곽철우도 마찬가지였다.
“곽 소협. 저쪽으로 넘어가야 해요!”
“알고 있소. 서두릅시다.”
파바밧!
쿠웅!
길을 막으며 버티고 있었던 평서란과 곽철우가 빠르게 몸을 날리며 송운과 평목단이 있는 곳으로 합류했고, 몇 초 지나지 않아 벽이 완벽히 그들 사이를 가로막았다.
그렇게 송운 일행이 보이지 않게 되자 사도영이 무릎을 꿇으며 피를 토해냈다.
“컥. 쿨럭. ……우웨에엑……!”
송운 일행이 눈앞에 있기에 자신의 속을 긁어내면서까지 아득바득 무리하며 서 있었던 것이다.
꿀렁이며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오는 검붉은 핏물은 그의 발밑을 가득 적셨고 그의 분노를 더욱 자극시켰다.
“이 애송이이! 네 이노오오옴……! 내 결코 네놈만은 살려두지 않겠다! 크아아악!”
완벽히 시야에서 사라진 송운 일행 쪽을 바라보던 사도영은 두 눈이 혈안이 된 채, 핏물을 쏟으며 살기를 가득 실은 외침을 내뱉었고 그 소리가 비고 안을 타고 멀리 퍼져나갔다.
* * *
쿠웅!
길이 완벽히 나뉘며 사도영의 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지자, 달려온 평서란이 가장 먼저 한 것은 아버지인 평목단의 상처를 살펴보는 것이었다.
“아버지! 상처는 좀 어떠세요?”
“음. 그럭저럭 괜찮구나. 애초에 슬쩍 스쳐 가기만 한 것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걱정스러운 표정이 가득한 평서란을 향해 평목단이 웃으며 말했으나, 그녀의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다.
그러곤 곧 품 안에서 무언가 주섬주섬 꺼내었다.
“혹시 몰라서 가져온 금창약이에요. 우선은 이거라도 발라 드릴게요.”
‘이거라도 있어서 다행이야.’
평서란은 평소에도 늘 품속에 여분의 약을 챙기고 다녔다.
무림이라는 곳은 언제 어떻게 상처를 입을지 모르는 속을 알 수 없는 숲속과 같은 곳이다. 이런 이들에게 금창약 정도는 필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것이 아버지의 상처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는 사실에 마음을 한결 놓을 수 있었다.
“허어, 이 아비는 정말 괜찮다.”
“제가 걱정돼서 그래요. 아버지.”
몇 번의 말씨름 끝에 평서란에게 진 평목단은 순순히 상처를 내어주며 벽에 몸을 기댄 채 지그시 눈을 감으며 입을 떼었다.
한마디 한마디 내뱉는 그의 음성은 어딘지 모르게 조금 지쳐 보이는 것은 착각이 아니리라.
“후우……. 그나저나 미로의 작동기를 누가 누른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고마워해야 할 것 같구나.”
송운 역시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였다.
그때였다.
잠시간의 휴식을 가지려던 송운 일행의 귓가로 사도영이 외치는 발악에 가까운 음성이 들려온 것이다.
“이 애송이이! 네 이노오오옴……! 내 결코 네놈만은 살려두지 않겠다! 크아아악!”
쭈뼛.
순간 모두의 온몸을 타고 소름이 돋아났다.
“하……. 아직도 저 정도의 소리 지를 기운이 남은 건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 송운을 향해 치료에 열중하던 평서란이 걱정스럽게 말을 이었다.
“마지막 발악인 거겠죠? 서 있었으나, 결코 가벼운 상처로 끝난 것 같진 않아 보였으니 말이에요.”
“그럴 것이오. 그래도 두 번 다시 마주하고 싶진 않은 얼굴인 건 확실하군.”
송운의 말에 동조한다는 듯 묵묵히 서 있던 곽철우가 고개를 주억였다.
“이만 쉬었으면 일어나서 다시 걸어가 보자꾸나.”
치료를 다 마쳤는지 평목단이 몸을 다시 일으켰다.
第八章. 폭발
사도영과 한바탕 격전이 있었던 이후, 계속해서 걸어 나가던 송운 일행 앞 멀리서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누구지? 적인가?’
스르릉.
순간 긴장한 송운은 자신도 모르게 두 주먹에 힘을 불끈 쥐었고, 각자 모두가 자신의 무기를 뽑으려던 순간.
“……쿨럭. 평 도독?”
비고 안을 조용히 울리는 그 목소리는 송운 일행에게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음성이었다.
“당 단주인가…….”
“하아아…….”
적이 아닌 아군이라는 말에 공기 속 팽팽히 일었던 긴장감이 풀리며 저도 모르게 길고 긴 한숨이 새어 나왔다.
멀리서 보았을 때는 혹여나 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긴장했으나, 그의 목소리와 자신들의 시야가 확보되면서 한참 전에 자신들과 헤어졌던 당헌기라는 사실에 안도한 것이다.
“허억……. 펴, 평 도독이 맞으시오?”
가까이 다가온 당헌기의 몰골은 꽤나 처참했다.
처음에 단정했던 그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송운 일행과 떨어져 있던 사이 누군가와 한차례 격전을 맞이하였는지 온몸에 피 칠갑을 한 채였고, 입은 상처가 꽤 컸는지 아직도 피가 끊이질 않고 흐르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시오?”
놀란 평목단이 당헌기를 부축하며 물었고, 그는 곧 한숨을 한 번 푹 내쉬며 답했다.
“후우……. 한참을 달려가다 눈앞에서 마왕들을 마주쳤지 뭐요. 몇 번 크게 부딪히던 차에 다행히도 벽이 새로 움직이는 덕에 그들과 멀어져 이 정도로 그쳤소. 크윽…….”
송운이 얼핏 그의 몸 상태를 훑었고, 상처가 겉으로 보이는 외상뿐만이 아니라 내상도 제법 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기야 천마와 마왕들을 홀로 마주쳤으니, 살아 나온 것이 어쩌면 천만다행인 건가?’
그에 평서란도 역시 같은 생각이었는지, 아까 쓰고 남은 금창약을 품에서 꺼내어 선뜻 그에게 내밀었다.
“어찌 되었건 살아오셨다니 다행입니다. 상처가 제법 깊어 보이네요. 우선 금창약이라도 바르세요. 조금이라도 나을 겁니다.”
그 순간 송운의 머릿속에 문득 무언가 떠올랐다.
‘당헌기는 천마와 마왕들과 싸우다 벽이 열리면서 가까스로 도망쳤다고 했다. 그리고 우린 해남마제와 싸우다 길이 갈라지면서 나오질 않았던가? 하면……. 대체 누가 미로를 작동시킨 것이란 말인가?’
그 생각은 송운뿐만 아니라 평서란과 평목단, 곽철우의 뇌리를 동시에 스쳐 지나갔다.
“그리되면 우리가 나왔던 미로를 움직인 것이 당 단주도 마교인도 아니었다는 말이로군.”
얼굴이 사색이 된 평목단의 말에 곽철우가 그 말을 이어받았다.
“그러고 보니 양측 다 위기일발의 순간에 모두 미로가 작동되었다는 건…….”
둘의 말에 동시에 있던 모두의 얼굴이 빠르게 굳어졌다.
* * *
그렇게 모두가 얼어 붙어있는 사이.
당헌기가 금창약을 평서란에게 건네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툭툭.
“어찌 되었건, 그게 누가 되었든 지금 당장 중요한 것은 무경을 찾는 것이 아니오?”
“그건 맞는 말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