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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전생-82화 (82/275)

제82화

파바밧!

고개를 주억인 송운이 지면을 박차며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그 뒤를 평서란이 쫓았고 둘의 발걸음이 급해지고 있었다.

* * *

이미 두어 번에 걸쳐 마교 토벌에 나섰던 황궁의 무인들은 당연하게도 평목단을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성되었다.

준비를 마치자마자 곧바로 비고의 문이 열린 곳으로 향했다.

채쟁!

카가강!

“크아악!”

“절대 놈들을 보내선 안 된다!”

비고 앞에 도착한 송운을 비롯한 많은 무인의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인간들의 추악한 마음이 한데 모였군.”

그 모습에 평목단이 입을 열었고, 비고의 앞은 그의 말대로 아수라장(阿修羅場)이 따로 없었다.

수많은 이들이 서로의 병장기를 앞세우며 손속을 나누고 있었고, 피아를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엉켜있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저기서 서로의 생명을 앗아갔다가 또 빼앗겼다.

그 속에서 송운 측은 가까스로 무림맹 측 무인들과 합류할 수 있었다.

“오셨습니까?”

가장 먼저 황궁 무인들을 알아보고 다가온 것은 바로 곽철우였다.

지난번 일정을 뒤로 하고 처음으로 마주한 곳이 전장임에 송운과 곽철우는 모두 씁쓸한 표정이었다.

반존대를 했던 그때와는 조금 달라진 말투였으나, 당금은 그런 걸 신경 쓸 틈이 없었다.

“이번 무림맹 파견단의 단주로 오게 된 당헌기라 하오. 반갑소.”

그런 송운 일행에게 대략 오 척을 조금 넘는 키에, 근육으로 단련된 적당한 체구와 평범한 외모를 가진 중년의 남성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당헌기? 그렇다면 저 사람이 구주칠대무신 중 한 명인 당헌기란 말인가? 생각보단 평범하게 생겼구나.’

송운은 평서란을 제외하고 처음으로 보는 구주칠대무신의 모습에 속으로는 놀랐으나, 겉으로 티를 내지 않았다.

대신 차분히 평목단의 뒤에 섰다.

“황궁의 지휘로 나선 평목단이라 하오.”

작금의 상황이 상황인지라 서로 간단한 통성명만이 오간 후, 다시 시선은 모두 비고의 입구 쪽으로 쏠렸다.

“개판이 따로 없군요.”

“보시는 대로…….”

송운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곽철우가 말을 받았다.

“음……. 이곳을 뚫고 지나가야 한다는 말인가.”

평목단이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예. 저곳이 바로 비고의 입구입니다.”

그 순간 모두의 시선이 곽철우의 손끝이 가리키는 곳으로 향했다. 이미 자신들을 제외하고도 많은 무인들이 한데 얽혀 난잡한 상황이었다.

‘생각보다 입구도 작고 더군다나 저 난장판 속을 뚫고 지나가려면…… 전체가 다 들어가는 것은 무리겠어.’

잠시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송운의 귓가로 싸늘한 쇳덩어리의 감촉이 스쳐 지나갔다.

슈욱.

직감적으로 빠르게 피하지 않았더라면 이미 송운의 오른쪽 귀 하나가 날아갔을 것이다.

그것을 바라본 평목단이 외쳤다.

“넋 놓고 있으면 죽는다. 모두 출진하라!”

“예!”

그 말에 순식간에 무림맹과 황궁 무인들이 아수라장 속으로 뛰어 들어갔고, 곧 어느 쪽,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한데 섞였다.

* * *

무림맹에서 파견된 이들은 아직 어린 모두 곽철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이립에서 불혹 사이에 닿아있는 이들로서 익히 무림맹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이들이었다. 현재 그들 중에서 가장 높은 무위를 가진 이는 자신을 파견단주라 밝힌 당헌기(唐憲寄)였다.

현 칠대구주무신중 한 명으로 어마어마한 실력을 지녔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나 난전을 겪어야 했다.

그만큼 마교와 해남파의 무인들이 숫자로 밀어붙이거니와, 그 무위도 하나같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자칫하다간 보물을 모두 빼앗기게 생겼군.’

이에 당헌기의 마음이 조급해진다.

“모두 어떻게 해서든 이 앞을 뚫고 지나간다!”

채앵!

한껏 외친 그는 곧 자신의 왼쪽 허리춤에 메여있던 검을 뽑아 들고 앞으로 나아 섰다.

“이 빌어먹을 정파 놈드을! 이젠 여기까지 와서 판을 치는구나! 놈들을 결코 보내선 안 된다! 막아라!”

사방에서 이를 악다문 독기어린 시선들이 상대방의 살과 피를 갉아 먹으며 살기를 나누고 있을 그때.

서걱.

그의 뒤편에서 무언가 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섬뜩한 그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한 청년이 자신의 뒤로 몰려드는 적들을 홀로 막아서고 있었다.

‘무, 무슨?!’

적이었다면 빠르게 검을 내뻗었을 테지만, 청년의 얼굴은 그도 아는 이였다.

‘아까 전 그 아이로구나!’

급하게 도착한 황군들 사이에서도 곽철우와 함께 잠시 인사를 나누었던 청년이었다.

아니, 실상 당헌기도 이름은 이미 알고 있는 이였다.

소문에는 발이 없고 발 없는 말은 천 리를 간다고 하였던가?

무림에서의 그 정도의 소식은 소문을 퍼뜨리고 다니기 좋아하는 호사가(好事家)들을 통해 멀리 퍼져나가곤 했다.

‘지난번 단칼에 마왕 한 명을 죽였다고 하였던가? 어느 정도 그들이 하는 말속에는 허황됨도 포함이 되어 있긴 하나…….’

직접 눈으로 보고 싶었다.

어린 나이에 그 정도의 실력을 갖춘 이라면 무림인으로서 호승심을 끌어내기까지 했으니.

그래서일까?

정신없는 싸움 한복판에서 더욱 당헌기의 시선을 끌었다.

나이는 이제 막 약관에 들어선 듯한 앳된 외모에 적당히 잘 자리 잡은 근육과 골격들이 정신없는 전장 속에서 그의 모습만이 당헌기의 눈가에 박혀 들어온다.

하나 그뿐만이 아니었다.

부드럽다.

하나 부드러움만이 다가 아니었다.

유와 힘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었다.

‘게다가…… 흐름이 끊기질 않는구나!’

적들을 끊어내는 그의 손속은 전혀 어리숙하지 않았다.

기의 흐름이 유순하며 검의 본신과 다루는 이의 손길이 전혀 어색하지 않아 빠르면서도 정확하게 상대방의 허점만을 잡아내 끊어낸다.

쓸데없는 군 동작을 줄이며 별다른 내력이 내비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송운이란 청년의 동작에는 강력한 힘이 담겨 있었다.

얼핏 보아도 그 무위는 보통의 것이 아니었다.

무림맹에 오래 몸담은 그로서도 보기 드문 인재였다.

‘오룡일봉만 해도 대단하다 여겼거늘 그들과 비슷한 또래에 대체 어디서 저런 녀석이 튀어나왔단 말인가? 곽철우, 아니 그보다 더 높은 실력이다. 참으로 대단하구나. 허어……!’

실제로 송운의 모습을 본 당헌기는 감탄을 감추지 못하였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흘렀을까?

어느덧 비고의 입구까지 무사히 통과하였으나, 들어온 인원은 처음에 비해 몇 되지 않았다.

송운이 뒤를 돌아보자 곽철우와 중년의 무림맹 무인들 여덟. 그리고 평서란과 평목단까지 이렇게 총 열두 명이 전부였다.

나머지는 여전히 검들의 폭풍 속에서 발목을 잡힌 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하나 그 사람들마저 모두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어떠한 일에서건 희생이 따르는 법.

땅바닥을 훑어보니 새겨진 발자국이 꽤 많다.

‘얼핏 보니 서른 정도는 이미 이 앞을 지나갔다. 마교와 해남파 무인들이 선두로 들어갔다고 하더니……. 그 말이 사실인 모양이군.’

당헌기가 생각하기 무섭게 누군가 입을 열었다.

“서둘러야 합니다. 이미 꽤 많은 인원이 이곳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더 늦는다면 눈 뜨고 코 베이는 사태가 도래할 겁니다.”

그 말에 평목단이 고개를 주억였다.

“그러는 것이 좋겠소. 이것도 결국 눈에 보이는 정도일 뿐이니……. 더 뒤처지면 비고는 마교 혹은 해남파에게 빼앗길 것은 보지 않아도 뻔하오.”

시간이 없다.

다급하면서도 조곤조곤 말을 잇는 평목단의 말을 끝으로 모두가 고개를 주억였다.

파바밧!

그리고 동시에 합의라도 한 것처럼 모두의 몸이 앞으로 빠르게 튀어 나갔다.

第五章. 비고 혈전

똑. 똑.

비고 안은 생각보다 특별한 건 딱히 없어 보였다.

어두우며 음습했고, 그저 어디서부터인지 모를 물이 천정을 타고 흘러내리는 소리가 고요함 속에 적막을 깨뜨렸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었다.

“무황비고라는 이름에 비해 내부는 상당히 조촐하군. 그 흔한 진법(陣法)하나 없으니…….”

평목단이 조용히 읊조리자 당헌기가 그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이며 말을 이었다.

“그러게 말이오. 무황이 만든 것인 만큼 누구든 쉽게 무공비서를 가져가도록 놔두진 않았을 터인데……. 이거 예상보다 안으로 들어가는 길이 쉽구려.”

그 둘의 말대로 비고는 너무도 평온했고, 그 때문인지 비고의 초입(初入)에 들어섰을 때보다 한층 긴장이 풀려있는 듯해보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긴장이 풀렸기보다는 허탈하다는 표현이 더 맞을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초입에서 내던 속도를 줄이고 비고 속 어딘가에 감춰져 있을지 모르는 함정들을 찾아내기 위해 조심스럽게 움직였으나, 전혀 감지되는 것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쯤 되니 비고가 가짜라는 생각까지 드는 송운이었다.

하여 송운은 계속해서 걸어 나가면서도 머릿속만큼은 바빴다.

‘어찌하여 이리도 허술하게 비고를 만들어 두었단 말인가?’

초입부터 샅샅이 내력으로 뒤지듯 찾아보았으나, 송운 역시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하니 이상하게 여길 수밖에.

그뿐만 아니라, 송운 일행만 함정에 걸리지 않은 것이 아님을 증명이라도 해주는 듯 사방에는 아무런 흔적조차 없으니, 그게 더 이상할 노릇이었다.

어쩌면 그것마저 환각진(幻覺陳)으로 이루어진 것일지도 몰랐다.

해서 혹여나 하는 마음에 그것조차 뒤져보았으나 그것도 역시 아니었다.

‘아무리 함정이 없어도 너무 없구나. 명색이 무황이 만들어낸 비고이거늘……. 혹 그 세월이 너무 오래되어 진법이 모두 녹슨 것인가?’

송운이 이상하게 생각하며 의아함에 고개를 내 젓고 있을 무렵.

꾹.

조심스럽게 걷고 있던 중년 무인의 발밑 언저리에 무언가 눌리며 이상한 소리가 난 것이다.

“헛! 모…… 모두 피하시오!”

파앗!

지금껏 함정이라는 것을 보지 못했던 이들은 그 커다랗고 다급한 목소리에 놀라 뒤편으로 몸을 날렸다.

“…….”

휘잉.

한참을 몸을 움츠리고 있었을까?

이상하리만치 고요함만을 동반한 그곳에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만이 훑고 지나갔다.

‘……아무 일 없는 건가?’

그러자 하나둘씩 몸을 일으켜 세웠고, 이내 아무런 일도 없음을 알고서야 각자 자그마한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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