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9화
“맞네. 놈이 머릴 굴리며 아직은 몸을 많이 사리고 있다곤 하나, 그 역시 뛰어난 무공 실력을 갖추고 있네. 물론 그분에 비하면 월등히 부족하나 그래도 작금, 천하에서 손가락에 꼽히는 초고수니 당연한 말 아니겠는가? 더구나 마인치고는 이성이 제대로 붙어있는 자일세. 결코 우습게 볼 자가 아니란 말이지.”
“자네 말도 어느 정도 일리는 있네만 나는 사도영(使道靈)에게 걸어보도록 하지.”
사도영.
해남마제의 본명이었다.
세간(世間)에서는 모두들 그를 해남마제라는 별호로 부르고 있었으나, 그의 본명은 사도영이었다.
흑색 복면의 말에 청색 복면이 고개를 주억이며 답했다. 예상했던 답안의 두 인물이니,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사도영이라……. 그도 나쁘지 않지.”
“더욱이 이번에 그분께서 특별히 기대하고 있는 인물 중 한 명이 아닌가? 자네 말대로 구천악도 월등하나, 그 실력은 사도영도 못지않다고 여겨지네. 탈백마왕을 단숨에 죽일 정도라면 그 실력 또한 만만치 않을 터.”
흑색 복면이 말을 끝맺기 무섭게, 객잔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뜨기 시작한다.
“뭐 어찌 되었건 둘 중 그분의 무공을 얻는 놈이 더 강해질 테지. 우리는 그저 계획대로만 움직이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흠……. 이만 움직여야겠군. 자칫하면 놈들이 눈치챌 수도 있네.”
“그러도록 하지.”
사삭.
말을 마친 둘은 나타났을 때와 같이 빠르고, 은밀하게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 *
태화전.
황제를 중심으로 꽤 많은 이들의 신하들이 모였다.
무거운 분위기에 모두가 좋지 않은 얼굴을 하고 있을 그때, 가장 먼저 황제의 입이 열렸다.
“이미 무황비고의 소식은 모두가 잘 알고 있을 거라 믿소. 마교와 해남파가 움직였던 이유 또한 그 때문이라는 것도 알 터. 그대들은 이것에 대해 어찌 생각하오?”
황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누군가 입을 열었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소신은 설령 그 소문이 거짓이라 한들 사람을 파견을 보내는 것이 옳다 사료(思料)되옵니다. 폐하.”
신하의 말에 황제는 묵묵히 고개를 주억였다. 그 역시도 그쪽의 의견에 좀 더 치우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만일 거짓된 정보라면 군사를 돌리면 그만이나, 사실이라면 그로 인해 입게 되는 피해는 엎질러진 물처럼 걷잡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실우치구(失牛治廐)를 해선 안 되는 일이었다.
그만큼 중대한 사항이었다.
“음……. 역시 그렇소? 송 군사. 그대는 어찌 생각하오?”
“소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혹여나 마교나 해남파의 손에 들어간다면 필히 여린 백성들은 물론이요, 온 나라가 피로 물들 것은 보지 않아도 뻔한 일입니다.”
그 뒤를 이어 다른 신하들 또한 앞서 말한 이들의 의견에 동조하는지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괜히 잘못 반대하고 나섰다가 진짜라면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울 터였다. 게다가 송악이 지지하는 이상 그를 막을 자는 아무도 없었다.
황제가 그 모습에 한번 시선을 빙 둘러본 후 마음의 결단을 내렸다.
더이상 망설일 필요는 없었다.
“조사단을 파견하시오. 윤허하겠소.”
“명, 받잡겠습니다. 폐하!”
第三章. 선천기폭(先天氣爆)
무림맹에서 무황비고의 소식을 전해 들은 이후 온 무림이 준동하고 있었다.
황실과 몇몇 정파인들에게만 알려졌던 무황비고의 존재는 연기처럼 널리 퍼져 이제는 웬만한 크고 작은 문파들이라면 모두 알 만큼의 사실이 되었다.
이제는 정파든 사파든 누가 되었건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다들 앞에서는 뒤꽁무니를 빼며 아닌 척 관심 없는 척했으나,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갈 리 만무한 욕심 많은 이들은 이미 어둠 속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상단은 상단 나름대로 그 값어치를 매기어 어마어마한 돈이 될 것이라 여겨 그 뒤를 쫓았고, 무를 익힌 무인들에게는 말로 할 것도 없이 엄청난 소식이었다.
손아귀에 들어만 온다면 세상을 부릴 만큼의 강한 힘을 갖게 되는 것이다. 무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꿔볼 수 있는 세상이었다.
하여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이들로 점점 많아졌고, 북경은 탐욕에 눈이 먼 이들로 들어차기 시작했다.
그만큼 세상으로 뛰쳐나온 무황비고의 소식에 대한 파급력은 가히 어마어마했다.
이에 황실에서도 무황비고에 대해 알아보라는 조사단이 편성되었고, 그 중심에 송운이 있었다.
* * *
타다닥.
“이쪽은 아닌 듯하군요.”
소오태산의 근처.
송운을 포함한 몇 명의 인원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그들의 눈 밑에는 퀭하니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있었고, 지쳐 보였다.
“아쉬우나, 그런 것 같습니다.”
스윽.
송운은 땅바닥을 한번 쓱 훑었다.
‘이미 이곳은 다른 이들이 한바탕 헤집어 두고 갔구나. 땅이 눅눅한 것을 보니, 파인 땅을 다시 한번 흙으로 메워 놓았다.’
비고에 설치해 두었을 법한 진법의 흔적은 없었으나 앞선 이들의 흔적은 남아 있었다.
그들 나름대로 조심스레 흔적을 없앴다고 여겼을 테지만, 그걸 송운이 모르고 지나칠 리 만무했다.
송운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벌써 몇 주야 째 인가?’
저 산 너머로 해 질 녘 노을이 붉게 하늘을 적시고 있었다. 송운은 몸을 일으키며 뒤에 있던 이들에게 말을 건넸다.
“오늘은 이만 해산하도록 합니다. 말도 오래 달렸으면 바꾸어 주듯, 사람도 휴식을 취해야 더욱 일의 효율이 늘지 않겠습니까?”
욕속부달(欲速不達)이라 하였던가?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하였다. 송운은 그 말을 늘 가슴속에 새겨두고 살아왔다.
급할수록 느리게, 그러나 게으르지 않게.
지금도 한시가 급한 상황이긴 하였으나, 이미 몇 날 며칠을 잠도 못 자고 씻지도 못한 채, 찾아 헤맨 이들이다.
이미 모두의 얼굴에는 어두운 그늘이 내려 앉아 있었다.
그런 그들을 재촉한다고 하여 풀릴 일은 아니었다.
“하오나……. 알겠습니다. 단주님.”
송운의 제의를 거절하려 했으나, 송운의 너무도 단호한 목소리에 어쩔 수 없다는 듯 자릴 물렸다.
“예, 그럼 오늘은 이만 쉬고 내일 다시 찾아보기로 하지요.”
* * *
막사로 돌아온 송운은 한동안 제대로 씻지 못해 더러워진 몸을 정갈히 씻은 뒤, 따뜻한 물속으로 몸을 담갔다.
‘고되구나.’
비록 작은 욕조였으나 그의 피곤함을 달래기엔 충분했다.
찰방.
욕조에 몸을 누인 후 눈을 스르륵 감은 송운은 잠시간이나마 휴식을 즐기고자 마음먹었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그 따스함과 포근함은 그런 송운의 추위에 얼었던 지친 심신을 달래주고 있었다.
‘음, 좋구나.’
사도영과 마주친 이후로, 처음으로 맞이하는 송운의 달콤한 휴식 시간이었다.
하나, 그것도 잠시.
송운은 뜨거웠던 욕조의 물이 차디찬 겨울의 냉혹한 추위에 식어 버리기도 전에 몸을 일으켜 세웠다.
아직은 할 일이 태산처럼 많다.
송운은 머릿속에 떠도는 생각들을 정리했다.
‘지금은 이 정도만 쉬어도 충분하지.’
새카맣게 온 하늘을 뒤덮은 짙은 어둠이 물러가기에는 아직 한참의 시간이 더 걸릴 터였으나, 작금의 송운에게는 그러한 휴식 시간도 사치일 뿐이었다.
반나절의 시간을 준 휴식은 일을 잠시 쉬라 한 것뿐이지, 스스로의 수련을 쉬라는 의미는 아니었다.
‘서둘러 완성해야 해. 시간이 별로 없다.’
송운의 머릿속에 사도영의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그의 무위를 따라잡으려면 아직 한참은 부족한 자신이었다. 게다가 마교의 힘도 무시할 수가 없는 현재로선 방심할 틈 따위는 없었다.
어쩌면 해남마제라는 별호가 그에게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문득 드는 송운이었다.
‘나는 아직 그들에 비해 너무도 부족한 존재구나.’
몸에 남아 있던 물기를 모두 닦아낸 송운은 잘 개어진 자신의 무복으로 갈아입었고 곧바로 조용한 공터로 향했다.
공터에 도착한 송운은 주변에 인적이 있는지 확인부터 한 후 아무도 없다는 걸 안 후에야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러곤 천의선천기공을 돌리기 시작한다.
우웅.
이내 송운의 온몸을 타고 조금씩 내기가 타고 흘러간다. 그의 의지대로 천천히 때로는 빠르게 선천지기가 반응하며 격동한다.
‘조금 더 빠르고 확실하게 내기의 흐름을 잘 읽어내야 한다.’
비록 조화경의 길에 접어든 송운이었으나, 이제부터가 진짜다.
거기에 많은 내기를 지녔다고 해서 거기서 끝이 아닌 것이다.
송운은 내기를 끊임없이 돌리며 운용해 나갔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 내력을 얼마나 잘 이해하느냐가 관건이었다.
아무리 빠르게 성장한다고 한들, 그가 가진 무위만큼 단시간에 성장해내는 것은 송운도 무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해서 생각해 낸 것이 바로 지금 송운이 수련하려는 그것이었다.
* * *
며칠 전.
송운은 끊임없이 돌고 도는 선천지기를 가지고 이러저러한 고민에 빠졌다.
‘분명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내력은 많다.’
우웅.
송운은 끓어오르는 선천지기를 끌어올렸다.
그 양은 이제 자신이 가진 내력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을 차지하고 있었다.
천의선천기공을 돌리는 세월이 늘어나면서 점점 몸에 쌓인 그것의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기 때문이었다.
하나…….
‘이것만으로는 사도영을 이길 수 없어.’
내력이 많다고 해서, 자신보다 무위가 한 단계 더 앞서나가 있는 이를 이긴다는 것은 보장할 수 없었다.
아니 불가한 일이었다.
‘이것을 보다 체계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지금 이 상태로는 손 한 번 까딱해보지 못한 채 죽는다. 이른 시일 안에, 더 효과적인 방도가 필요해.’
그날 눈앞에서 보았듯, 사도영의 무위는 눈 깜짝할 새에 상대방의 몸을 날카로운 칼날로 꿰뚫어버리는 놀랍도록 무서운 능력을 지니고 있다.
대응할 새도 없이 쇠붙이는 심장을 관통하며 자신의 목숨을 앗아갈 것이다.
송운은 그 소름이 끼치는 상상에 등 뒤로 소름이 쫙 일었다.
‘도대체 어찌하면 해남마제를 이길 수 있단 말이냐?’
그보다 더 빠르면서도 강력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이전처럼 단순히 더 작은 내력으로 큰 힘을 발휘하는 정도가 아니라 위급한 상황에 상대는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의 위력을 지닌 무언가가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