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6화
第一章. 해남마제(海南魔帝)
채채챙-!
소오태산의 어느 한 중턱.
수십, 수백 명의 무인이 한데 섞여 날카로운 병장기를 부딪치며 양측 모두 격렬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한 치의 물림도 없는 그들의 정체는 바로 무황비고를 노리고 몰려든 마교도들과 해남파였다.
하나 그 엄청난 폭풍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마치 단둘만이 존재하는 세상인 마냥 서 있는 두 명이 있었으니…….
한 명은 자신의 눈앞에 있는 상대방을 향해 죽일 듯 노려보며 마기가 섞인 살기를 사방으로 풀풀 내뿜는 봉두난발을 한 괴인, 그는 육 척이 조금 넘는 듯한 키에 약 지천명이 조금 넘어 보이는 외형을 지니고 있었다.
조금 다듬으면 멀쩡해 보일 법도 했으나, 사방팔방 흐트러져 바람에 휘날리는 머리가 그를 더욱 광기에 미친 것처럼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
괴인과는 상반되는 모습으로 자신의 앞 지면에 칼을 다섯 자루나 박아 넣은 채, 앞의 괴인을 내리깔며 보고 있는 정체 모를 한 무인이 서 있었다.
적당히 마른 체구에 제법 잘생긴 얼굴을 지닌 그는 여유롭다는 듯 팔짱까지 낀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봉두난발의 괴인이 외쳤다.
“해남마제 네 이놈! 감히 마교를 우습게 보고도 네가 무사히 살아 돌아갈 듯싶으냐?! 오래도록 좁은 해남도에 갇혀 꼬리를 말고 지냈다더니 그사이 네놈이 진정한 마문(魔門)의 무서움을 잊은 모양이로구나!”
구구궁-
엄청난 내력이 깃든 괴인의 노호(怒號)는 그 주변 일대의 땅을 모두 울리게 만들 만큼 거대했으나, 정작 그를 마주하고 있는 무인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듯했다.
아니, 되레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읊어나갔다.
“크큭. 그대가 말하는 진정한 마문을 나누는 것은 대체 누구의 기준인가? 강자존(强者存)!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마교의 율법이 우스워지는군. 더 강한 자가 진짜 마문의 주인이 될 수 있을 뿐. 내 말이 틀렸는가, 탈백마왕(奪魄魔王)?”
거만한 자세를 취한 채 자신을 비꼬며 비웃는 듯한 그 모습에 더욱 화가 난 것인지 괴인의 눈에선 붉은빛이 쏘아져 나왔다.
“이노옴! 그렇다면 네놈이 그렇게 원하는 그것, 보여주도록 하마. 진정한 마문의 힘이 어떠한 것인지를!”
그때였다.
“멈추거라!”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뛰쳐나가려던 탈백마왕의 앞길을 막는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선발대로 나섰던 송운 일행이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황군과 정파의 모습에 당황한 것인지, 탈백마왕이 뛰쳐나가려던 몸을 틀어 멈추게 만들었다.
그 모습을 본 해남마제가 조용히 읊조렸다.
“쥐새끼의 등장인가? 생각보다 늦었군.”
* * *
송운 일행의 도착으로 분위기는 더욱 싸늘해졌다.
‘늦은 것인가? 이미 한판 거하게 판을 벌이는 중이었군. 게다가 저 둘…….’
송운은 이미 한가득 새빨간 핏물과 시체들로 잔뜩 더럽혀진 땅바닥을 바라보며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꽤나 먼 거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자에게서 진하게 느껴지는 익숙한 마기는 송운에게까지 미쳤고, 그의 한쪽 눈을 찡그리게 만들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큼 단순한 일개 마인은 아니라는 증거였다.
족히 수백 명의 마인들의 마기를 모아도 이자의 것만은 못하다고 여길 만큼 거대하고 강했다.
‘가히…… 어마어마한 마기로군. 얼굴이 익숙지 못한 걸로 보아 아마도 내가 보지 못했던 마왕 중 한 명이겠지.’
하나, 그뿐이 아니었다.
괴인의 앞, 단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꼿꼿이 서서 의아한 눈빛으로 송운을 바라보는 해남마제의 모습이 송운의 눈동자에 비친 것이다.
‘저쪽도 만만치 않은 듯하구나. 아니…… 오히려 저쪽이 훨씬 더 강한가?’
송운의 시선이 반대편으로 향했다.
그는 앞에 서 있는 마왕과는 달리 마기가 느껴지진 않았으나, 알 수 없는 사이한 기운이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었다.
분명 앞의 마인에게로부터 느껴지는 마기는 여태껏 송운이 겪어왔던 이들의 것보다 월등히 강했지만, 되레 자신의 기운을 한껏 감추고 있는 저 검은 무복의 사내가 더 위험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무위가 높은 무인일수록 자신의 내력을 갈무리 짓는 데 탁월한 재주를 지니고 있다.’
게다가 지면에 박힌 다섯 개의 검이 마치 자신의 눈앞에 있는 것처럼 날카롭게 느껴지면서 왠지 모를 위화감으로 상대를 압박해온다.
언제든지 뽑혀 위협을 가할 수 있다는 것처럼.
직감적으로 느껴져 오는 그것은 송운의 뒤에 서 있던 오룡일봉에게도 그대로 전해졌는지, 얼굴과 몸에 잔뜩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그렇다면……. 저자가 바로 해남파의 수장인가?’
“웬 애송이 놈이냐?”
전장을 파악하고 있던 송운에게로 적막을 깬,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신의 앞길을 막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화가 난 것인지, 잔뜩 으르렁거리며 송운을 향해 외쳐왔다.
‘하나 둘…… 여섯. 황군만이 아니라 정파의 새끼들도 함께한 것인가. 기운이 제법이긴 하나 결국 별거 없는 핏덩어리들이로군.’
그에 반면 해남마제가 웃음을 흘린다.
피식.
“강자존의 율법은 비단 마교만이 아닌 강호에 몸담은 이라면 누구에게든 포함되는 이야기지.”
말을 마치기 무섭게 그는 지면에 단단히 박혀 움직이지 않을 것만 같던 검들을 향해 손을 내뻗었다.
우우웅-
그 내뻗은 손이 검파에 닿지도 않은 채 그의 손놀림대로 부름을 받들겠다는 듯이 검들이 차례대로 지면에서 빠져나와 허공으로 떠올랐다.
“헛?!”
다들 그 기이한 모습에 놀라 동공이 커질 무렵, 그의 검들이 빠르게 탈백마왕을 향해 날아갔다.
어마어마한 내력과 함께 날아간 검들은 탈백마왕뿐만이 아닌 곁에서 지켜보던 이들의 간담까지 서늘하게 만들 만큼 위력적이었다.
쌔애애액-!
파밧-!
“이익! 해남마제 이놈! 내가 네 그딴 더러운 술수에 놀아날 줄 아느냐?!”
그와 동시에 날아오는 검을 피하고자 탈백마왕이 얼굴이 사색이 된 채로 몸을 날렸고, 검들을 모두 피해냈다.
‘피하지 않으면 죽는다!’
비록 말은 했으나, 그 역시 만만치 않은 기운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나 이내 탈백마왕은 자신이 얕보였다는 생각에 울분이 터지는지 붉으락푸르락해진 얼굴로 반격을 하려는 듯 해남마제가 있는 곳으로 곧바로 방향을 틀고선 곧바로 달려 나갔다.
으득.
‘감히 나 탈백마왕을 능욕하려 들었단 말이지?’
그 역시 피했다고 생각했고, 옆에서 지켜보던 모두가 그렇게 여길 그 순간.
갈 곳을 잃었던 검들의 끝이 공중에서 그대로 곡선을 그리며 방향을 바꾸어 탈백마왕의 뒤로 섬광처럼 날아갔다.
푸슈슈슉-!
“끄…… 헉! 쿨럭! 해남마…… 제, 이노오……!”
그러곤 피할 새도 없이 단숨에 해남마제의 손길을 따라 마왕의 몸을 마치 벌집처럼 쑤셔놓는 것이 아닌가?
하나,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탈백마왕의 온몸을 쑤셨던 다섯 개의 검들이 일제히 동시에 뽑히면서 사방으로 피가 튀어 나간 것이다.
츄악-!
완벽한 마무리였다.
송운은 그에 속으로 외쳤다.
아니 그 모습을 본 모든 이들의 눈이 커졌다.
‘설마…… 이기어검(以氣御劍)?!’
“해남마제…….”
곽철우가 그의 이름을 조용히 읊조렸고, 지켜본 이들의 눈빛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송운의 머릿속이 혼돈으로 뒤덮였다.
‘정녕…… 정녕 해남파의 장문인인 해남마제가 천하 제일고수를 논할 수 있는 경지에 올랐다는 그 소문이 사실이었단 말이냐?’
그 소문은 송운이 살았던 전생의 미래에서까지도 전혀 밝혀지지 않았던 일이었기에, 근거 없는 소문이라 여겼다.
한데 자신의 눈앞에서 직접 그의 무위를 보았다.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 한낱 사술 따위가 아니었다.’
이기어검이란 검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 검을 자유자재로 구사하게 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러야 쓸 수 있는 최고의 검술 중 하나였다.
그동안 무림에서는 이기어검이라며 수많은 이들이 눈속임을 해왔지만, 결국 그것은 모두 진짜가 아님이 판명이 났었다.
그만큼 과거에도 지금에도 그 경지에 이른 이는 극소수에 달했다. 게다가 이미 진짜 이기어검을 다루던 이들이 자취를 감춘 것은 오래전의 일이다.
한데 그러한 것을 해남마제가 직접 보여준 것이다.
처음 본 그 순간부터 그의 기세가 처음부터 만만치 않다고 느꼈던 송운이지만 이 정도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렇게 모두가 놀라고 있는 사이 탈백마왕의 몸에서 빠져나온 다섯 개의 검이 귀신처럼 빠른 속도로 날아와 송운 일행이 있는 곳 바로 뒤에 꽂혔다.
쐐애액-!
푸욱.
너무도 순식간에 눈앞에서 수장을 잃었다.
더 덤벼볼 생각조차 없는지 꽁무니를 빼며 기겁해서 도망가는 마교 놈들에겐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해남마제의 관심은 오로지 송운 일행으로 향한 것이다.
조금 호기심 어린 눈빛을 한 해남마제의 시선이 지면에 꽂힌 검들처럼 날카롭게 송운 일행에 꽂힌다.
“머리를 잃자마자 도망가기 급급한 녀석들이라……. 역시 오합지졸 마교 놈들이로군. 혹여 너희도 덤빌 참이더냐? 그렇다면 귀찮으니 한꺼번에 덤비거라.”
새하얀 얼굴의 그는 소름 끼치도록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고개를 까딱이며 송운의 일행에게 말하는 해남마제의 말은 거의 반협박에 가까운 말이었다. 애초에 덤벼서 이길 자신이 없거든 덤비지 말라는 뜻과도 같았다.
그런 해남마제의 물음에 감히 그 누구도 답할 수 없었다.
이미 그의 손길 한 번에 마교의 십대 마왕 중 한 명의 목숨이 허망하게 날아갔다.
한데 대체 어떤 간 큰 녀석이 그의 물음에 응하겠는가?
꿀꺽.
침 넘기는 소리마저 들릴 만큼 고요해져 적막감만이 감도는 짧은 침묵 속에서 송운조차도 아무 말 하지 못한 채 입을 다물었고, 그 모습에 해남마제는 비웃음을 날렸다.
“큭. 역시 죽고 싶어 미친 자는 없는 것인가? 제 목숨 귀한 줄은 아는가 보구나. 그 선택이 너희의 목숨을 살렸다. 적어도 멍청하게 죽을 걸 알면서 불 속으로 뛰어드는 나방 꼴은 면했으니.”
순간 돌아선 송운과 해남마제의 눈이 마주쳤고, 그 싸늘하면서도 알 수 없는 중압감이 송운의 온몸을 감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