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5화
휙휙.
송운은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무림에선 수많은 재능을 가진 이들이 태어난다.
하나, 그렇다고 하여 모두가 다 그 꽃을 활짝 피워 향기를 내는 일은 드물다.
좋은 인연과 환경.
그리고 스스로의 노력과 의지에 의하여 그 재능을 피우고 죽느냐 피우지 못하고 죽느냐가 결정되는 세상이다.
먼 과거에도, 앞으로의 미래에도 같을 터.
‘신경 끄자. 가뜩이나 생각해야 할 것도 많은 이때에, 굳이 또 다른 거리를 안을 필요는 없겠지.’
이래저래 후기지수들을 보며 나름대로 평가를 하고 있던 송운의 귀에 곽철우의 일침에 잠시 주춤하는 듯 보였던 남궁장후의 목소리가 재차 들려왔다.
“차라리 내가 지휘하는 게 낫겠네. 선발대가 뭐 이리 느려?”
걸어가는 내내 송운의 심기를 건드리는 데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마음에 안 들어.”
송운이 서 있는 곳과 남궁장후의 거리가 꽤 벌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귓가에 들릴 만큼 큰 소리였다.
결국 들으라고 하는 말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 보이는구만.’
남궁장후는 속으로도 중얼거렸다.
처음에도 말했듯, 송운의 나이와 직책이 계속해서 거슬린 모양이었다.
“아직 나이가 어리고 경험이 적은 아이라 저리 하는 것이오. 그저 무시하시면 되겠소.”
“형님!”
그런 곽철우의 말에 발끈했는지 남궁장후가 그를 향해 외쳤다.
“대체 왜 자꾸 내 편은 안 들고 저놈 편만 드는 거야?”
“우린 지금 같은 편끼리 싸우자고 온 것이 아니다. 무림맹의 대표 자격으로 온 만큼 처신을 잘하라는 총군사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 것이냐?”
“흥. 나랑 싸우면 내가 이길 게 뻔하구만.”
빠직.
순간, 송운의 귓가로 이성의 줄이 한 가닥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 * *
“나랑 싸우면 내가 이길 게 뻔하잖아? 감히 대 남궁세가를 이름도 없는 놈이 함부로 따라올 수 있을 거 같아?”
그런 송운의 상태를 아는지 모르는지 남궁장후의 목소리는 점점 커져만 갔고, 이를 말리던 곽철우도 포기했는지 대꾸조차 하지 않고 있을 때 즈음.
“나를 이길 수 있다고?”
조용히 읊조리는 듯한 송운의 목소리가 모두의 귓가를 서늘하게 스쳤다.
그 목소리에는 아무런 살기도, 분노도 담겨있지 않았으나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섬뜩함에 잠시 발걸음이 멈추었다.
그에 잠시 멈칫했던 남궁장후가 이대로 있으면 지는 것이라 생각했는지 상황 파악하지 못한 채 말을 이었다.
“뭐, 그렇게 갑자기 나오면 누가 고개를 조아리며 죄송하다고 사죄라도 할 줄 알았냐?”
송운은 예전의 멋모르고 날뛰던 장철두가 생각났다.
‘무림 초출 주제에 덤벼들다가 두들겨 맞고 나서야 잘못했다고 빌었었지 아마?’
피식.
그 모습이 떠오른 송운의 입에선 웃음이 삐져나왔고, 그를 들은 남궁장후는 더욱 화가 났는지 이내 얼굴이 빨개졌다.
“감히 날 지금 비웃은 거냐? 애송이 주제에!”
“애송이라고 했느냐? 그렇다면 직접 상대해 주마.”
계속해서 이 상태로 간다면 정작 마두들을 상대로 교전할 때, 자신의 말을 듣지 않을 게 뻔했다.
그리되면 정말 중요한 순간에 위험이 들이닥칠 수도 있을 터.
게다가 어린 나이에 사람들이 너도나도 후기지수라며 받들어주고 가문에서 또한 오냐오냐 키웠을 게 뻔했다.
그 때문에 생긴 오만함이라면 그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적당히 힘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그리 오랜 시간도 걸리지 않을 터다.
‘뭐……. 후배 양성하는 셈 치면 되는 건가?’
송운이 목을 슬쩍 풀며 말했다.
“그렇다면 직접 붙어보면 알게 되겠지.”
“이익! 이 신분도 모르는 천한 애송이 주제에! 나중에 후회하며 울면서 땅이나 치지 말거라!”
순식간에 그 둘이 있던 자리는 대결장으로 바뀌었고, 아무도 말리는 이 하나 없었다. 오히려 주변에 있던 오룡일봉은 슬쩍 뒤로 비켜주기까지 했다.
곽철우도 이내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차라리 작금 이 자리에서 대판 싸우고 넘어가는 게 나을 테지.’
말린다고 말려질 남궁장후가 아니라는 걸 익히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 넓은 마음씨로 선은 내어주마. 오거라!”
남궁장후가 마치 아량을 베풀 듯 말했으나, 이내 송운이 고개를 좌우로 젓자 자존심에 금이 간 것인지 괴성을 내며 달려들었다.
“나중에 후회하지나 말거라! 타핫!”
권법을 배운 남궁장후였기에 별다른 무기는 필요 없었다. 친히 내어준 선공까지 손에 쥔 남궁장후의 앞길을 막는 건 아무도 없었다.
“애꿎은 사람 하나 잡겠네.”
그 모습을 본 당무옥이 조용히 읊조렸고, 모두의 생각과 일치하는 듯했다.
후웅-!
‘됐다!’
이윽고 엄청난 속도와 함께 날아간 주먹은 송운에게로 정확히 맞아 들어가는 듯 보였다.
그 여파로 바닥에서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한데, 그 순간 당연히 자신이 이길 것이라는 자신감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던 남궁장후의 입에선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려왔다.
“헉!”
모두의 예상과는 다르게 송운은 너무도 멀쩡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이, 이상하다?’
가장 먼저 놀란 건 남궁장후였다.
분명 정확히 찔러 들어갔음을 확인한 그다.
그의 빠른 속도와 힘이 담긴 천풍장력(天風掌力)은 웬만한 이들이 모두 꺼려하는 그것이었다.
한데 송운은 그를 너무도 태연하게 피해낸 것이다.
“머…… 멀쩡한데?”
그를 시작으로 주변에서 모두 당황하는 사이, 남궁장후를 향해 곧바로 송운이 주먹으로 되받아쳤다.
‘권법에는 권법으로 응해주어야 마땅하겠지.’
파아앙-!
이내 송운의 주먹이 어마어마한 파공음을 내면서 남궁장후의 코앞까지 향해 날아갔다.
‘젠장!’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 채, 남궁장후는 그대로 굳어버렸고 자신도 모르게 저절로 눈이 감겼다.
한참의 고요함 속.
‘뭐, 뭐야?’
분명 강력한 충격이 전해질 것이라 여겼거늘,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음에 이상함을 느낀 남궁장후가 눈을 떴고, 곧바로 자신의 코앞에서 멈추어버린 송운의 주먹이 보였다.
“이익……! 감히 날 상대로 농락하려 들어?! 어디서 이 천한 애송이 따위가!”
그걸 확인한 남궁장후가 자존심에 금이 간 것인지 씩씩거리며 달려들려던 차.
“아니, 오라버니가 틀렸어.”
지금까지 아무 말 없었던 팽후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내가 틀렸다니 그건 또 뭔 소리야?”
억울함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팽후영을 향해 쳐다보자 한 번 입을 연 그녀가 무표정으로 계속해서 읊어나가기 시작했다.
“이번 황궁 군대의 총군사 송악. 그분이 누구라고 생각해? 송 부 대주의 성도 송이야. 송씨 가문의 큰 공자. 게다가 황제의 검으로 불리는 평 우도독의 하나밖에 없는 딸의 약혼자.”
그녀의 말에 곧 모두의 얼굴에 경악스러움으로 뒤덮였다. 그냥 줄을 잘 선 애송이일 뿐이라 생각했거늘, 자신들의 예상을 보기 좋게 빗나간 것이다.
툭툭.
아무도 더 입을 열지 못하고 있을 때, 송운이 가볍게 자신의 무복을 털어내며 말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실수도 하는 법이 아니겠소? 이번 일은 그냥 눈감아줄 터이니 다시는 이런 오만방자한 행동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허물이 있다면, 버리기를 두려워 말라 하셨소. 아직 어린 나이니 그랬던 것이라 이해하고 넘어가도록 하지.”
“그건……. 그러니까…… 나는…….”
순식간에 뒤바뀐 형국(形局)에 당황한 남궁장후가 말을 더듬거리자, 송운이 한마디 덧붙였다.
“그리고 세상에는 그 어느 것도 하찮은 건 없소. 설령 그것이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라 할지언정 말이오.”
말을 마친 송운이 뒤에 어정쩡하니 지켜보던 군사들을 향해 외쳤다.
“자그마한 소란으로 인해 시간이 조금 지체되었습니다. 죄송하게 생각하는 바입니다. 모두 출발합니다.”
* * *
그 일이 있었던 직후, 오룡일봉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묵묵히 송운의 뒤를 따랐다.
아니, 실상 유일하게 홀로 계속해서 떠들던 남궁장후가 조용해진 것이다.
아까와는 판이하게 달라진 상황이었다.
‘내가 너무 과했나?’
기가 죽어버린 듯한 남궁장후의 모습에 괜스레 미안한 마음까지 드는 송운이었으나, 이내 마음을 접었다.
그동안은 어느 누구도 그에게 그런 충고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남궁세가의 현재 유일한 자식이라고 했다.
아마 그만큼 오냐오냐하며 키워졌을 터.
누구나 잘못은 한다.
다만 그 잘못을 알고, 고치면 되는 것이다.
공자 왈, 不而不改 是謂過矣(불이불개 시위과의).
과오를 범하고 고치지 않는 자는 또 다른 과오를 범하고 있는 것이라 하였다.
‘스스로 생각이 있다면 변하겠지.’
아마 남궁장후에게서 어떠한 악의가 느껴졌다면 얘기는 달라졌겠지만, 딱히 그런 것도 아니었기에 그를 믿고 넘긴 것이리라.
그렇게 송운이 이것저것 생각을 하며 걷고 있을 때였다.
툭툭.
“음? 무슨 일…….”
누군가 자신을 건드리는 느낌이 나 돌아보니 남궁장후가 고개를 땅으로 처박은 채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송운은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묵묵히 바라보았다.
“……그게…….”
“천천히 말해 보시오.”
말을 꺼내던 송운이 담담한 목소리로 아까와는 다른 모습이자, 이에 용기를 얻었는지 남궁장후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까는 미안하게 됐……. 아니 미안했습니다!”
‘허허.’
그런 남궁장후의 모습이 꽤나 귀여웠던 것일까?
송운은 속으로 너털웃음을 지었다.
“괜찮습니다. 나 또한 이런 일로 괜히 욱하여 같이 잘못을 저지른 것이니, 미안합니다. 하나, 앞으론 내 말에 잘 따라주었으면 합니다.”
“다, 당연히 그리합니다! 아니 그리하겠습니다!”
송운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가장 앞서 나가던 무인으로부터 도착을 알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도착했습니다. 부 대주.”
“드디어……. 도착인가?”
모두의 마음에 긴장감이 맴돌기 시작했다.
* * *
“썩 좋지 않은 분위기로군.”
송운은 눈 앞에 펼쳐진 거대한 산의 모습에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왠지 모르게 음습한 분위기가 흘러나오며 그들의 몸을 감쌌기 때문이었다.
‘본래는 영험한 산이라 들었거늘…….’
채앵-!
키기긱-!
한데 그런 송운의 귓속에 멀리서부터 극히 미미하게나마 날카로운 쇳덩이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직감적으로 위험을 느낀 송운이 뒤를 돌아봤고, 순간 오룡일봉과 눈이 마주쳤다.
끄덕.
“전군, 출전이다!”